건강한 교회를 세우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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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를 세우라 2(고린도 전서 1:10-17)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고린도 교회는 그 당시 고린도 사회 전반의 퍼져있던 세상의 풍조를 극복하지 못하고,
교회 안에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비단 고린도 교회를 위한 말씀일 뿐 아니라, 교회 안에 문제들로 갈등과 어려움을 겪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을 위한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들은 고린도전서의 메시지를 통해, 현대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들과 영적 위기를 극복하고,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이것이 고린도 전서를 우리에게 주신 이유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 있었던 문제 중에 첫번째로 분열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4장까지 파벌로 인한 분열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고린도교회에 심각한 문제였음을 알 수 있어요.
바울은 분열의 원인들을 지적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해결의 원리를 제시합니다.
고전1장부터 시작해서4장까지 분쟁과 분열의 네 가지의 원인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인들 중에서 오늘은 첫 번째 원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고전1:12절을 보면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분열과 다툼이 고린도 교회의 분쟁의 첫째 원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따른다”는 사람중심의 결속이 고린도 교회 안에 존재했습니다. 어느 한 개인이나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사람중심의 결속을 가지고 자신들만 똘똘 뭉치는 건강하지 못한 그룹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건강하지 못한 4개의 그룹들이 등장합니다.
바울파입니다. 그러나 정작 바울은, 글로에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듣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어요.
이들은 교회를 개척한 바울에 의해 예수님을 믿고, 가르침을 통해 믿음이 성장한 그래서 바울의 리더십과 비전을 좋아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교회 안에 하나의 그룹으로 뭉쳐 있었습니다.
아볼로파입니다. 아볼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행전을 보면 그는 성경에 능한 사람입니다. 말씀을 잘 가르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었던 성경교사였습니다.
아볼로의 teaching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룹입니다.
게바파, 베드로파입니다. 이들은 베드로의 열정과 능력을 좋아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파입니다. 이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한 증언을 중시하는 사람들로 모여진 또 하나의 파벌이었습니다.
이러한 파벌로 인해 성도간에 서로 반목하여 믿음의 공동체의 하나됨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한마디로 교회가 분열되게 되었습니다.
좋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좋은 점을 본받고, 그것을 따라 신앙 생활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관계성을 가지고 살도록 창조되었기에,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문제는 잘못된 목적으로 모일 때 생깁니다. 우리 몸 안에 있는 세포들도 자기의 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을 파괴하고 공격하기 시작하면
그건 더 이상 건강한 세포가 아닙니다.
병든 셀, 암세포가 됩니다. 건강한 세포들을 공격하여 병든 세포가 점점 커지는 것을 그냥 두면 건강한 셀들이 다 죽고 결국에는 회생불능에 빠지게 됩니다.
적절한 수술과 치료를 해야합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 존재했던 네 개의 분파는 건강한 모임이 아니라, 병든 세포, 암세포와 같은 그룹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과 권리와 주장을 위해 자기들끼리 뭉쳐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체들을 공격하는 말과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모여서 자꾸만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헐뜯고, 부정적인 말로 분열을 조장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리더들이나 지체들을 공격합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이런 건강하지 못한 파벌들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의 반목과 다툼이 교회를 어려움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러한 심각한 분쟁의 문제를 놓고 바울은 직접적인 해결책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세 가지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을 통해 그들의 현재 모습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첫째질문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어져 있느냐, 다른 말로 하면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면 교회의 머리되시고 삶에 주인 되신 주님을 중심으로,
조화와 통일을 이루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는 말씀입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몸이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의 몸을 찢고 깨뜨리려고 하느냐?
두 번째 질문은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였느냐? 아니다. 그런데 왜 바울을 추종하느냐? 이거 누가 하는 말입니까? 바울이 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추종하는 바울파를 옹호하거나 옳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으로 인해, 분파가 생기고,
교회가 위기에 봉착한 결과를 가져온 것에 대해, 엄중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였느냐? 아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너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냐, 예수님 따라 가야지 왜 나를 따라가느냐?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성도라면,
개인과 그룹의 이익을 따라 파당을 만들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 질문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침례를 받을 때 누구의 이름으로 받았느냐? 바울의 이름으로, 베드로의 이름으로 아볼로의 이름으로 받았는냐?
아니다. 침례, 세례를 받을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지 않았느냐? 는 것입니다.
침례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과의 연합입니다.
로마서 6:3-4절에 보시면 침례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연합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침례를 받음으로, 세상으로부터는 죽고, 예수님과의 연합으로 다시 살았음을 고백하는 의식이 바로 침례입니다.
너희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면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는 겁니다.
바울은 이 세 가지 질문을 통해 바울이 이야기하는 답은 무엇입니까? 이것이 인간중심의 파벌과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열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주님이시고, 교회의 머리시다 따라서 우리가 따라가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이시다 라는 겁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가 존경할만한 영적 스승을 갖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내 신앙생활에 영향을 준 분, 좋은 가르침을 준 분,
그 분을 귀히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가 따라 가야 될 분은 우리의 삶에 주인 되신 예수님입니다.
만일 예수님보다 사람을 더 신뢰하고 그것을 추종하여 파벌을 만들 때 그것이 머리되신 주님의 몸을 어지럽히는 요인이 됩니다.
건강한 영적 리더는 자기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늘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 사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신뢰하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계속하여 예수께 초점을 맞추고, 닮아가도록 본을 보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람 중심의 파벌을 만드는 유혹을 넘어서서, 그것이 파벌이 되지 않도록, 분쟁이 되지 않도록 예방할 수가 있을까요?
교회 안에 시작되는 분쟁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가 있을까요?
오늘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합할 수 있습니까? 구호를 만들어 합합시다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신앙생활의 초점을 예수님께 둘 때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할 수 있습니다.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좋아하시는 것을 같이 기뻐하고 좋아하며, 그것을 위해 서로 격려하고 섬기고, 애쓸 때,
자연스럽게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연합될 줄로 믿습니다.
머리되신 주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욕심과 야망과 자존심을 버릴 수 있다면, 힘든 희생을 할 수 있다면,
더 나아가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다면 교회는 온전히 하나가 되어 머리되신 예수님께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늘 기억하세요. 우리는 언제든 파벌을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에게서 멀어질 때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은 계속하여 날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피흘려 죽으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시고, 동행해주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빚진 자 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순종하여 몸된 교회를 세워나가기를 원합니다.
이런 예수님 중심의 마음과 삶이 인간적인 분열과 분쟁의 위기들을 넘어 하나되게 할 수 있습니다.
누굴 위해 사십니까? 우리의 삶에 주인,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을 위해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자신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