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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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들어가는 말
요일 5:1-12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영생을 얻으리라
요 17:1-5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6:66-71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항상 미래를 생각하라. 폴 틸리히 ultimate concern! 궁극적 관심! 항상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관심의 촛점을 미래에 두고 살아야 한다. 행복한가? 궁극적 관심에 촛점을 맞추고 재평가 해보라.
베드로의 고백: 1. (마16장)- 고백: “네가 안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 - 고백 후에 곧 베드로는 실수: 내가 십자가를 져야겠다. 베드로가 극구 만류합니다. 베드로의 생각: 내가 아는대로 메시아의 왕국을 이루실 분이십니다. 요즘, 예수님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그런 불길한 생각 하지 마십시오. 그런가 하면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절대로 그렇게 되도록 두지 않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말씀하시니까 제자들이 다 흩어졌다. 예수님이 능력도 많고 말씀도 좋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알 수 없다. 베드로의 고백: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사오니 내가 어디로 가오리이까?” 첫째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칼 바르트: 말씀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고, 지식의 주체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공부하고, 내가 연구하고, 내가 경험한 것으로, 내 지식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오신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다. 말씀이 오늘도 주도적으로 역사한다! 내가 연구하고 훈련하고 공부해서 쌓아서 그리스도의 지식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알게 하시고, 따르게 하시고, 믿게 하신다는 말씀. 그리스도가 강권적으로 그렇게 하신다.
말씀은 곧 생명력! 그리고 능력이다! 베드로는 보았다. 체험했다. 그리고 오늘 이 수준에 온 것. 영생의 말씀을 간증하는 이 수준에 온것! 유진 피터슨, “말씀을 듣고 깨닫고 결단하고, 말씀에 순종해 나가면, (이분이 강조하는 바는 이것)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어느새 내가 변화되어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게 중요. 이걸 잊지 말아야! 어느 유명한 분의 자기 체험: 주일 아침에 부부간 다툼. 나 이 사람하고 결혼한 것이 잘못. 이런 사람을 아내로 택했나? 그러나 예배에 참석. 설교를 통해 은혜를 주심.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기억나는 것은 없다마는,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내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라! 이것이 바로 복음! 뭘 알았다, 뭘 깨달았다, 요절을 외우고, 뭐 그럴 것 없어요.
베드로 말씀의 역사를 예수님과 함께 3년동안 다니며 보았다. 야이로의 딸. 달리다쿰, 딸아 일어나라. 그것이 말씀이었다. 그 말씀의 능력에 의해 이 어린 아이가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런가 하면, 나인성 과부의 아들, 장례식장입니다. 울며 통곡하고 있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이것이 말씀. 긴 얘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긴 설명이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논리적인 설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이 말씀이이면 됩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는데, 썩은 냄새가 나는데, 죽은 나사로를 향해서 “나사로야 나오라!” 여기서 베드로는 깨달았다. 말씀이 무엇인가? 말씀은 철학이 아니요, 지식이 아니에요. 말씀은 곧 능력이다. 시체를 향해서 말씀, 죽은 아이를 향해서 말씀, 바다를 향해서 “고요하라.” 말씀. 설명이 없다. 이건 명령이다. 말씀의 선포. 그 자체가 능력! 그런가 하면, 가버나움에서 지붕을 뚫고 내려온 환자를 향해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모든 사건을 통해서 베드로는 이제 깨달음. 주님은 말씀이요, 말씀은 능력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율법적 지식이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경건이 아니다! 이것은 말씀 그대로! 말씀에 대한 응답!
공관복음 신앙의 세 단계: 첫, 케라스, 기적이요 놀랍다는 뜻.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없고, 깜짝 놀라는 사건. 많이 보았다. 베드로 깜짝깜짝 놀랐다. 기적이다! 예수님의 전 생애가 기적이다. 초과학적이요 초자연적이다. 그렇게 믿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고, 그래서 예수님의 표적을 기대! 그래서 이스라엘 회복이 이 표적을 통해서 이뤄질줄로 기대!
두번째 단계, 뒤나미스: 이것은 능력이다. 사건은 같은 사건인데, 병자 낫고, 장님, 문둥병자. 좋아요. 이 사건을 하나님의 일이다! 유대 사람들은 그렇게 해석. 하나님의 현실이 나타났다. 그렇게 받아들임. 지금 까지 선하게 살고 복주시고, 착하게 살 때 복 주신다고 믿고 살았다. 사건과 관련이 없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 우리가 사는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있잖아요. 요즘 신문을 읽으면서 “역시 하나님으 살아 계시다.”
셋째, 세메이온: 요, 행에서는 꼭 이적이라 하지 않고, 꼭 “표적"이라 함. 영어로 “사인". 이 사건 속에 말씀이 있다. 하나님의 계시가 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있다. 그것을 읽을 줄 알면 표적이다. 사건을 보고 놀란 것만 아니다. 사건을 ㄱ보고 신앙고백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사건 속에 하나님의 말ㅆ므을 듣는 것. 이것이 “표적" 공관: 이적, 능력이라 합니다만, 요, 행에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 속에서는 “표적"이라 함.
어떤 분: 감기만 걸려도 말씀이 들린다. 경건한 사람의 눈에 “말씀 아닌 것이 없다.”
베드로: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영생으로 향한 말씀, 영생의 약속이 있는 말씀, 그렇게 하여 주님께 대한 고백을 하게 됨. “믿고 알았습니다.” 믿음을 주시고 알게 하시고, 믿음은 하나미의 선물! 그 믿음이 내게로 올 때 그 다음 단계로 알게 하십니다. 알고 만족케, 깨닫고 알게 하심.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반드시 열매를 맺으리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너희와 항상 함께 잇으리라. 그 말씀 믿고 고백할 때, 영생의 축복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많은 일을 하심. 병자 살림, 죽은 자, 문둥병, 장님, 많은 사역을 했는데, 그 사람들, 그 후속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다음이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오신 예수> 잠간 다시 와서 그 동안 결과 어떻게 되었나? 저도 궁금합니다. 와서 한 곳에 가니, 알콜 중독자 - 쓰러져, 세상 사람들과 시비, 세상에 쓰레기 같은 인간이 시비를. 옛날레 장님이었는데 눈 뜨게 해준 사람. 어깨 - “예수님 어떤 일이십니까?” “네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세상에 잠간 다시 왔다.” “나면서부터 장님, 깜깜한 세상. 비참하게 연명. 눈을 뜨게 해 주셔서 감사, 할렐루야! 그러나 그것은 잠간이요. 눈을 뜨고 보니. 세상이 못된 세상이요. 모든 것이 불합리. 그레서 화가 나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래,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느냐?
조금 더 가시니, “깡패 두목" - 넌 어떻게 다시 깡패 두목이 되었느냐? 저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손만 내미면, 구걸해서 연명해서 살아 왔는데, 예수님이 다시 걷게 하심. 할렐루야, 감사! 앉아 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도와 주었는데, 이제 걷게 되니, 배운 것도 없고 능력도 없고. 살길을 찾다 보니, 이렇게 됨.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느냐?”
조금 더 가시니, “호객행위를 하는 창녀" - 제가 원래 창녀였는데, 하나님의 딸 삼아 주시니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그후, 결혼을 할 수도 없고, 취직을 할 수도 없고, 설겆이라도 하려면, “더러운 손". “하나님의 딸로 깨끗하게 살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되었느냐?”
이건 소설이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궁금한 것이 하나 더! 문둥병자 10명을 고쳤는데, 가다가 나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딱 한 사람만 와서 감사.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여러분, 그 아홉은 어디에? 틀림 없이 술집에. 그 다음 얘기 하나 할까요? 꼭 이혼했을 것! 예수님 앞에 5천명 떡을 얻어 먹은 사람들. 예수님 뒤를 따라 오며 “호산나, 호산나" 했던 사람들? 예수님의 마음을 참 많이 아프게 했다. “왠 일이냐?” - “갈릴리에서 온 선지자입니다.” 갈릴리에서 온 촌사람들인데 퍼레이드 하니 눈 좀 감아 주세요. 무슨 소리? “갈릴리에서 온 선지자?” “만 왕의 왕입닏!” 왜 말을 못하나?
그 때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다시는 함께 다니지 않더라! 67절, 더 서글픈 말씀: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 얼마나 고독한 말씀, 얼마나 기가막힌 일? 그 3년을 같이 다녔는데, 12 제자 앞에 두고, “너희도 가려느냐?” 아주 절절한 실존적 고돌이 여기에!
더 서글픈 애기: “예수님 십자가 지고 가심" - “십자가를 대시 질 사람이 누구?” - 베드로 아니면 요한! “구레네 시몬!” - 예수님의 제자도 아님. 지나가다가 동정의 말 몇 마디! - 예수님의 제자는 어디에?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님. 예수님의 뜻을 다른 것이 아님. 예수가 가신 목적을 같이 간 것도 아님. 예수는 수단이요, 내가 목족이요. 내 욕망, 내 세속적인 욕망, 출세, 물질, 세상의 번영과 자유 평등, 세속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귀한 말씀을 들었지만 듣지 못하였고, 보았지만 볼 수 없었고, 예수를 따를 수가 없다다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세 가지 조건! 이 조건이 아니면 따를 수 없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실제적인 말씀! 이렇게 될 때, 베드로: 마 (16)에서 베드로 고백 - “베드로야 네가 복이 있다. 그러나 그건 네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네게 은혜를 주셔서 네가 고백하게 했느니라.” “하나님이 알게 하셨느니라.” 그런데 오늘에 와서 요(6장) - 베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아섬: “만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십자가를 내가 지지, 예수님이 지게 하시겠습니까?” - 예수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내 제자가 되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욕심 다 버려!), 오늘: “너희도 가려느냐" - 베드로: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내가 어디로 가리이까?” 헬: 주님이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계십니다! 영생으로 향하는 말씀, 레마타: 말씀. 로고스와 대조. 오늘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 =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영생을 주는 말씀! 예수님 한 때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영생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목마르지 않습니다
인생을 성고: 1. 목적이 분명해야, 2. 촛점이 분명해야, 3. 그 목적을 지향하는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목적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공부하는 아이들 -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둘 다 할 수 있는가? 둘 중 하나를 버려야! 버려야 찾는 것이 아니라, 찾음으로 버리는 것! 이것이 본문. 영생의 말씀: 내가 믿고야 알았습니다. 믿는다 = 순종, 그 모든 것을 버렷다는 말. 믿고 순종하고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 따라 다니면 이것 하나 알게 된 것! 예수님의 말씀 속에 영생이 있다!
가버나옴: 지붕을 뚫고 상을 달아 내림 - 예수님이 그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한 마디가 얼마나 귀중한지 모른다. 여보시오, “내 병이나 고칠 것이지, 내가 죄인이든 아니든 뭘 쓸데 없는 데 참견하시냐고?”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말 -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이것이 영생의 말씀! 십자가에 있는 강도 - 일생을 강도로 살았지만, “주여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옵소서.” 딸 한 마디 -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것이 영생의 말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미안, 어떤 사람들 영생의 말씀 너무 많이 보겟다고, 성경 너무 많이 보다가 시험. 공부 많이 한다고 공부 잘하는 것 아니다! 요점을 알아야!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무엇이 요점인지 알아야!
68:8 “주여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으매… 믿고 알았습니다.” - “믿었더니 알았습니다.” 그 영생을 받아들인 그 생명 - 비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는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여러분 요즘 많은 절망적인 소식들이 들려 옵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베드로처럼 고백해야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매, 내가 어디로 가오리리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