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로 정의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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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얼마전에 책을 한 권 샀습니다. 박권교수가 지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입니다. 이 책은 근래에 핫한 이슈인 “양자역학"에 관한 해설서 입니다.
아마 양자역학은 그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이름은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특히 마블 영화를 통해서 양자역학이라는 용어가 많이 회자 되고 있습니다. 앤티맨이 작아지고 커시는 것 역시 미시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이 적용된 것이지요. 또 다중 우주 즉, 멀티 버스를 배경으로 해서 만들어진 마블영화가 바로 어벤져스 입니다. 그리고 최근의 베트맨도 멀티 버스를 배경으로 그려진 영화입니다.
이 처럼, 양자 역학은 이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만히 욥기서를 읽으면서 이 양자역학을 생각했습니다.

1. 과거의 경험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확률이 높을 뿐입니다.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의 말을 듣고 단단히 화가 나서 대답을 합니다. 3절 말씀을 보십시오.
Job 20:3 NKRV
내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책망을 들었으므로 나의 슬기로운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는구나
욥의 친구들은 분명 욥이 잘 못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부터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욥에게 잘 못을 인정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욥은 억울하지요. 잘 못한 것이 없는데, 잘 못을 인정하라고 하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래서 욥은 19장에서 충고하는 친구들을 향하여 19장 29절에서 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Job 19:29 NKRV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한마디로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난을 잘 못 판단하고, 그렇지 않아도 괴로운 욥을 더 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욥의 친구들은 “칼의 형벌”을 받는 다고 매우 공격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잘 못 판단하고 욥을 괴롭히는 말을 하는 친구들을 향하여, 한마디로 “말 조심해" “알지도 모르면서 떠들지 마"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소발은 이러한 욥의 말을 2절에서 “내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책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소발은 다시 말을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말이 2절에 따르면, 매우 슬기로운 마음에서 나온 말로 생각합니다.
소발이 자신의 생각이 매우 슬기로운 마음에서 나왔다고 생각한 이유는 4절에 나옵니다.
Job 20:4 NKRV
네가 알지 못하느냐 예로부터 사람이 이 세상에 생긴 때로부터
즉, 자신이 욥을 비판하는 생각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생긴 때로부터"는 언제 부터를 말합니까? 바로 하나님이 천지창조하실 때 인간을 창조하는 그 때부터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올 때 부터 정해진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5절 말씀입니다.
Job 20:5 NKRV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즉, 악인이 잘 되는 자랑도 즐거움도 영원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돈도 잘 벌고, 출세도 잘 하는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보다 권모술수를 잘 쓰고, 좋은 줄을 잡고, 이리저리 기회를 따라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정직하고 강직하고 타협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일 수 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소발에 따르면, 그들의 잘 됨은 마치 “자기의 똥”같라라고 말합니다.
6, 7절을 보겠습니다.
Job 20:6–7 NKRV
그 존귀함이 하늘에 닿고 그 머리가 구름에 미칠지라도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하리라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한다는 말은 이렇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동물의 똥을 지푸라기와 썩어서 벽돌처럼 만들어 말립니다. 그것을 겨울에는 불을 피우는 연료로 사용합니다. 그 분뇨로 만든 연료들은 불로 태워져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모습을 소발은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늘에 닿을 정도로 존귀하게 된 그러한 악인은 흔적도 없이 망해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Job 20:8 NKRV
그는 꿈 같이 지나가니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요 밤에 보이는 환상처럼 사라지리라
그 번영한 악인은 꿈 같이 지나가고 밤에 보이는 환상처럼 사라진다 합니다.
이것이 맞는 말일까요? 정말 잘 되는 악인들은 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까요?
또한, 소발은 번창하는 악인들은 결국에는 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Job 20:15 NKRV
그가 재물을 삼켰을지라도 토할 것은 하나님이 그의 배에서 도로 나오게 하심이니
재물을 삼켰다는 말은 19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Job 20:19 NKRV
이는 그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버렸음이요 자기가 세우지 않은 집을 빼앗음이니라
즉,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그 가난하느 자들의 소유들을 빼앗는 행위가 15절의 “재물을 삼켰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소발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불의하게 삼킨 재물은 결국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결국 토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먹는 것은 입에는 달아 보이지만, 14절 말씀처럼 창자 속으로 들어가면, 독사의 쓸개처럼 써서 토할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 불의하게 얻은 재물은 즐길 수 없다는 말이 되지요.
과연 그럴까요?
20장에서 말하는 소발의 생각은 악인이 아무리 잘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하나님이 망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Job 20:23 NKRV
그가 배를 불리려 할 때에 하나님이 맹렬한 진노를 내리시리니 음식을 먹을 때에 그의 위에 비 같이 쏟으시리라
하나님은 악인이 잘 되는 꼴을 못 보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잘 되는 악인들의 결국은 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것은 변하지 않고, 정해진 하나님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2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Job 20:29 NKRV
이는 악인이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요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기업이니라
악인은 아무리 잘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망하는 것이 불변하는 하나님의 법칙일까요?
그런데, 우리는 소발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옳지 않으면, 이 세상에 정의라는 것이 없겠지요. 하나님은 정의로우시기 때문에 악인들은 반드시 망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정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으로 소발의 말은 정의의 관점에서 흠잡을 때 없이 맞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그의 옳은 말이 욥에게 적용할 때는 틀리 말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번영하는 악인은 결국에는 망한다는 것이, 망한 번영한 사람이 악인이라는 의미일까요?
소발은 욥이 부자로 번영했다가 망했음으로 욥은 악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번영한 악인은 결국 망하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예전에 순복음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믿었던 신앙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금도 믿고 있을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삼박자의 축복입니다.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다. 즉, 예수님을 잘 믿으면, 하는 일이 다 잘 되고,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이 것을 순복음 사람들은 역으로 적용합니다. 하는 일이 잘 못 되면,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병들면 예수님을 잘 못 믿는 것입니다. 아니면, 무슨 죄를 지은 것입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규정이 있을꺼라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또한 우리 삶의 방식의 절대적인 규정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은 우주적이고 구속사적인 예수님을 통한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 역사가 기록 되어 있을 뿐입니다. 즉,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 뿐입니다. 성경은 그 외의 어느 절대적인 삶의 규범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욥기 처럼, 절대적인 삶의 규범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확률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확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과학에서는 양자역학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양자역학하면 떠 올리는 생각이 쉬레딩거의 고양이 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복잡하지요.
예전에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물리 시간과 화학시간에 배웠던 원자 모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운데는 원자핵이 있고, 전자가 그 주변을 원을 그리면서 돈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보어의 원자 모형이라고 해서 교과서에서 늘 보던 모양입니다. 마치 원자 세계는 우주의 세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양 주변을 지구 등 여러 행성이 공전하며 돌 듯이 전자도 원자 핵을 가운데 두고 주변을 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들어서면서, 보어의 원자 모형은 포기 되었습니다. 전자는 원자 핵 주변을 돌지 않습니다. 전자의 위치는 확률로 존재함을 막스 보른이 처음으로 제안했습니다. 즉, 전자는 원자 주변에서 마치 구름 처럼, 여기저기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 것을 나중에 마스 보른의 조수였던 하이젠베르크에 의해서 불확정성의 원리로 발표 됩니다. 한마디로, 미시세계, 즉 원자 세계에서 전자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확률로 존재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보른의 절친이었던 아인슈타인이 아주 유명한 말을 하지요. “신은 주사위 노름을 하지 않는다"
양자 역학 이전에 뉴튼이 제안해던 역할을 고전 역학이라합니다. 즉, 물체의 속도와 방향을 알면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것을 쉬운 말로 하면, 이 세상은 인과관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결과를 알면, 원인을 알 수 있고, 원인을 알면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원리가 등장하면서, 결과를 알아도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혹은 원인을 알아도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오직 확률로 알수 있다는 것이지요.
욥기는 마치 뉴튼의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싸움처럼 보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옛날 사람들로 부터 온 이야기를 들먹이며 욥의 현재의 모습을 보고 원인을 욥의 죄로 생각했습니다. 마치 사업이 망하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인지 고민하는 것과 같습니다. 병이 들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이지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업을 해서 성공하고 망하는 것은 확률입니다.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모두 다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또, 똑 같은 선생님에게 공부를 하고, 똑 같이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 다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을 위해서 먹는 것도 가려서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신앙심이 좋다고 해서 병에 안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든 안 믿든 병에 걸리는 것은 확률로 걸립니다. 예배를 잘 드리든지 못 드리든지 하는 일이 잘 되고 안 되는 것은 확률로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 양자역학이라는 이 세상의 운동 법칙을 만드시고, 그 운동 법칙에 따라 이 세상이 움직이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소발은 이 확률로 이루어진 이 세상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뉴튼의 고전역학은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일까요? 인과관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양자역학이 미시세계의 역학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고전역학은 여전히 우리가 살고 있는 거시세계를 설명합니다. 즉 고전역학, 인과 관계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적용됩니다.
사실, 고전 역학이 거시세계에 적용된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더 크게 보면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최종 원인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원인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확률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더 큰 눈으로 확대해서 우리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면, 이 확률로 일어나는 일 역시 하나님꼐서 하시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욥이 고통 당하는 것이 욥의 죄가 원인이 아니지만, 그 욥의 고통의 최종 원인이 하나님이신 것처럼, 현재 우리의 실패와 성공, 좌절과 회복 등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의 최종 원인이며, 통치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으로, 현재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믿으십시오. 다만, 내가 하는 일이 잘 안되는 것을 나의 죄에서 찾지 마십시오. 또한 다른 사람이 잘 못 된 것 역시 그 사람이 무엇인가 죄가 있어서 그런다고, 소발처럼 판단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확률로 살아갈 뿐이고 이 세상이 확률로 결정되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세상이 확률로 결정된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그 말은 결과를 보고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혹은 현재 상태를 보고 미래의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현재 이 일이 일어났구나 하는 것만 인식할 뿐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납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확률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사십시오.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것 뿐입니다. 어떤 특별한 원인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일이 확률로 일어나도록 설계하신 최종 원인은 하나님이심을 명심하십시오. 확률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 삶 가운데 확률적으로 일어나는 일들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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