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안식을 베푸는 날개

룻기 강해설교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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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지난 설교에서 환대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눴습니다. 이 환대는 율법과 안식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오늘은 이 율법과 안식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1- 안식은 율법으로부터 나온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안식은 율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1절에 나오미가 룻에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이 안식은 룻기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개념입니다. 엘리멜렉 가정이 약속의 땅을 떠나면서 안식을 잃어버렸고 다시 안식을 찾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룻이 이 안식을 더 풍성하게 누리도록 하기 위해 나오미가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와 룻을 연결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보아스와 룻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겠습니까? 보아스는 그 지역의 유력한 사람이고 지역의 유지입니다. 룻은 이방여인입니다. 연결 고리가 없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지역의 유지와 이방여인이 연결될 확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율법을 통해서는 가능합니다. 2장 20절과 3장 2절을 참고하면 보아스는 엘레멜렉 가정에게 기업 무를 자이고 그 의무가 있는 가까운 친족입니다. 엘리멜렉 가정이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땅을 팔면 그것을 사다가 다시 돌려줄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 기업 무를 제도와 연동해서 형사 취수제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엘리멜렉 가정에 아들들이 다 죽고 며느리 하나만 남았습니다. 보아스는 가까운 친족이기 때문에 과부가 된 룻에게 장가를 들어서 엘리멜렉 가문에 대가 이어지도록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율법의 의무가 바라보고 있는 지점은 다름 아닌 안식입니다. 약자에게 안식을 베풀기 위해 이런 율법이 있습니다. 나오미는 3장 1절에서 룻이 율법에 근거한 안식을 누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적용) 율법은 일종의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하나님은 이 율법을 순종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율법 순종을 통해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통질서를 어기면 잠시 잠깐은 편리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횡단보도 근처에 사람이 없으니까 빨간불이더라도 그냥 악셀을 밟고, 좁은 도로에 차가 없으면 무단횡단 해서 건너가면 너무나 편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규칙을 어기는 것이 습관이 되다보면 언젠가 큰 사고를 겪게 됩니다. 우리는 교통질서 안에서 거의 절대적인 평안을 얻습니다. 교통질서를 지킬 때 사고 위험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내가 질서를 지킬 때 사고가 나더라도 나는 보상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교통질서를 지킬 때 평안을 얻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율법의 질서를 따를 때 그 안에서 하나님이 보장해주시는 안식을 얻습니다. 평안을 얻습니다. 율법은 안식을 가져다줍니다. 율법을 지키는 나도 안식을 얻고 내가 율법을 지킬 때 다른 사람도 안식을 얻게 됩니다. 율법으로부터 안식이 나옵니다.
2- 율법은 어려운 이를 덮어주는 여호와의 날개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율법을 준수하는 일이 어려운 이들을 덮어주는 날개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 입장에서는 율법에 근거해서 안식을 얻지만 반대로 보아스는 율법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안식을 베풀어야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보아스의 율법 순종이 하나님의 날개라고 이야기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어떤 지시를 합니다. 보아스가 수확을 다 마치고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부를텐데,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라고 합니다. 보아스가 먹고 마시기를 다하고 난 뒤 타작마당에서 잠을 청할 때 보아스의 발치에 누워라고 말합니다.
고대 근동의 전통은 수확기에 수확을 다 마치면 타작마당에서 탈곡을 하고 먹고 마시며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잔치가 다 끝나면 기분이 굉장히 좋지 않겠습니까?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해달라고 룻이 직접 가서 부탁한다면 그것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 나오미가 생각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본문을 읽을 때 오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는 부분에서 마치 성적으로 유혹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는 건 애도의 기간을 끝났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말로 씁니다. 이제 룻이 이전 남편이 죽은 것에 대한 애도를 끝내고 보아스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에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도 성적인 상황을 묘사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마치 한 이불속에 들어가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원문상에는 이불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의 발을 들고 거기 누우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번역할 때 발을 들라는 말이 어색해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번역을 한 것 같습니다. 발을 들고 누우라는 말은 아마도 그의 발이 있는 자리에 누우라는 뜻이며 룻이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로서 보호를 요청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룻은 시어머니에게 순종했습니다.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잔치가 다 끝날 때 까지 기다렸습니다. 보아스가 타작마당에 누울 때 그의 발치에 누웠습니다. 보아스가 깜짝 놀랍니다. 보니까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습니다. 보아스가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 룻이 대답합니다.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여기 옷자락은 히브리어로 카나프인데, 이것은 날개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룻기 2장 12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라는 말이 나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한 축복인데, 여기 나온 날개라는 단어도 카나프입니다. 보아스는 룻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축복을 했고 이제 룻은 보아스의 옷자락, 보아스의 날개 아래에 들어가길 원합니다. 기업 무를 자로서 보호해주기를 간절히 청원하고 있습니다. 룻은 기업을 무르는 율법에 근거해서 안식을 얻으려 하고 있고, 보아스는 기업을 무르는 율법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안식을 룻에게 전달 할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날개는 율법을 지키는 자들에 의해 구현됩니다. 보아스는 율법의 정신을 준수할 때 그의 옷자락은 하나님의 날개가 됩니다. 룻을 보호하고 품게 됩니다. 고대에 옷은 그 사람의 권위와 신분을 상징합니다. 보아스는 그가 가진 권위와 신분, 그 유력함을 날개로 삼아 룻을 보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는 자의 옷자락을 하나님의 날개로 바꾸셔서 약자들을 돌보십니다.
(적용)우리에게도 옷자락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이나 물질이 있습니다. 지위와 권한이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에 순종해서 약한 자들을 품고 보듬고 환대한다면 이 옷자락은 단순한 옷자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의 정신에 순종하는 우리 옷자락을 하나님의 날개로 삼으셔서 이 땅의 많은 이들을 품으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날개가 어디 있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옷자락으로 그들을 덮어주어야 합니다.
날개는 품는 의미도 있지만 초월의 의미도 있습니다. 고대인들에게 인간 세계를 초월하는 대표적인 상징이 날개입니다. 그래서 언약궤에는 그룹의 날개가 있습니다. 시편 18편 10절에는 하나님이 바람 날개를 타고 날아오르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우리의 옷자락이 하나님의 날개가 되어 이 날개로 다른 이들을 품을 때, 우리는 세상의 원리를 초월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내가 율법에 순종하여 내 옷자락, 지위, 권세 물질이 다른 이를 품는 하나님의 날개가 될 때, 우리의 날개는 내가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날개가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옷자락을 내어주는 것으로 우리는 하늘의 백성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품어주는 내 옷자락이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결론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 하는 성도님 여러분! 이번 한 주 율법을 실천하여 안식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율법이 우리의 옷자락이 되어, 하나님의 날개가 되어 어려운 이들에게 안식을 줄 수 있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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