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1새벽]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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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10[내 맘에 한 노래 있어]
본문 요14:25-28 (p. 173)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이제 얼마 후면 제자들을 떠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알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실 준비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본문을 통해 가르치셨다. 이제 떠나실 날이 몇일 안 남았기 때문이다. 본문 26절을 보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모든 이별이 다 아프고 아쉬운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것은 그리 슬픈 일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떠나셔도 성부께서 '성령'을 보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26절을 통해 말씀하시듯 성령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다고 말할 때 '이름'이란 '그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다는 것은 여전히 성자께서 성령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오시면 그간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을 다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시며 승천하셔서 이제 물리적으로는 자기 백성과 떨어지게 되겠지만, 성령을 통하여 여전히 자기백성과 함께 하실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떠나심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매우 슬픈 일'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 하늘에 가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본문 28절 말씀을 보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 다시 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이후에 '보혜사 령'을 통해 교회 가운데 항상 거하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조금 생소한 말씀을 하신다. '너희가 나를 진정 사랑한다면 내가 하늘의 아버지께 감을 기뻐해야 한다' 왜 기뻐해야 하는 것일까?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가신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성부께 가신다는 것은 이 땅에서의 고난을 마치신다는 의미이고, 성부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자 하나님을 성육신 하게 하신 모든 목적, 즉 택하신 백성들의 죄사함, 구원사역을 다 완성하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속량을 얻은 우리는 성자께서 하늘로 올라가심에 대해 기뻐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실 것을 말씀하신다. 보편적으로 헤어짐은 슬픈 것인데 예수님은 슬픔보다는 기쁨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실 준비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평안을 말씀하신다. 본문 27절 말씀을 보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곧 십자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평안이라니? 장차 닥칠 상황과 아주 안 어울리는 말 같다. 이 상황에서 '평안'이 가능한 것인가?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아셨다. 그런데도 예수님 안에 평안이 있으시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그 평안을 제자들에게도 주신다고 말씀한다.
이 평안은 분명히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방식이 다른 평안이다. 차원이 다른 평안이다. 세상은 보통 무엇인가를 더 얻게 되고, 자기 만족이 있을 때 평안이 있다.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같은 상황에서도 그렇지만, 남이 쉽게 침략할 수 없을정도로 강한 무기와 군사시설을 갖추면 나라의 평안이 찾아올 수 있다. 또 정말 사고싶었던 것들을 사면 일시적으로 마음의 평안 혹은 만족이 찾아올 수 있다.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루면 평안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그 평안은 매우 일시적이다.
지금 예수님 안에 있고 제자들에게 주시는 그 평안은 비참한 죽음을 앞두고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이다. 그 평안은 어느 기간동안에만 누릴 수 있던 일시적이고도 임시적 평안이 아니라 영원한 평안이다. 이 평안은 어느 기준을 달성해야만 누릴 수 있는 조건적 평안이 아니라 절대적인 평안이다. 이 평안은 세상에서처럼 강자가 약자의 것을 갈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어떤 상황이라도 예수님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평안이다. 도대체 그 평안이 무엇인가?
아버지와 아들됨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평안이다. 전능하신 창조주와 그분의 독생하신 아들됨의 관계에서 누리는 평안함.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분과 그분의 아들됨의 관계에서 찾아오는 평안함이다. 어째서 이 평안함은 영원한 평안함인가? 어째서 이 평안함은 절대적 평안함인가? 어째서 이 평안함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함인가? 아버지께서 영원하시고, 절대적인 분이시기 때문이다. 비록 육신의 죽음 앞에 놓였지만 주님께서 평안을 누리셨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잠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십자가에서 비참한 죽임을 당하실 것이며 죽음의 권세 아래에서 얼마 동안 머무실 것을 아셨지만, 그럼에도 평안하셨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들됨의 관계를 누리셨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이 아들됨의 관계를 누리실 것이기에.
여러분, 주님께서는 주님이 누리시는 이 평안을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여러분, 평안한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는 평안을 생각한다. 세상이 주는 평안을 생각한다. 그러한 평안은 절대 평안이 될 수 없고, 잠시 잠깐 이는 바람에도 흔들리고 휘청대는 평안일 뿐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절대평안을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의 어떤 존재도 줄 수 없고, 그들이 경험해 보지도 못한 평안이다.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구속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그 누구도 교회에 주신 이 평안을 빼앗을 수 없다. 믿으시는가?
이 평안은 무엇인가? 사람은 당장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그분의 핏값으로 사셔서 주님의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에 오는 평안이다.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우리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하시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삼아주심으로 오는 평안이다. 또한 장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에 모든 악인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하실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완전한 영광의 상태로 우리를 회복시키사, 영원토록 충만한 안식 가운데 들어가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찾아오는 평안이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잠시 잠깐일 뿐이다. 어떤 조건이 하나 상실되면 곧바로 무너져 내리는 평안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은 영원하며, 누구도 이를 빼앗을 수 없다.
주님께서 장차 당하실 고난을 앞두고서도 그토록 평안을 누리셨던 이유, 아버지와 아들됨의 관계 안에서 평안을 누리셨던 것처럼, 이 땅을 살아가며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섬기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아버지와 아들됨의 관계속에서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평안을 매순간 누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르다. 이 평안은 영원하다. 이 평안을 주시기 위해 독생하신 아들이 버림을 받았고, 이 평안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낮고 천한 이 땅까지 오셨으며, 이 평안을 주시기 위해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수치와 수모를 당하시고 매질을 당하셨으며 침뱉음을 당하셨고, 이 평안을 주시기 위해 영광스러운 분께서 저주받은 바 되사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
여러분, 이 말씀앞에서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라. 지금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안, 즉 자기 몸 버려 우리에게 허락하신 아버지와 아들됨의 관계로 인한 평안을 지금 여러분들은 누리며 살고 있는가? 정말 평안한가? 여러분의 이 땅에서의 삶, 직장, 가정, 신앙 모두가 진정 샬롬을 누리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세상이 알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평안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어쩌면 우리는 그 평안을 내팽겨치고 세상이 주는 평안, 그 임시적이고 일시적이며 유한한 평안만을 붙좇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이 주는 평안에만 목이 말라서 그 평안만을 갈구하다가, 그 유한한 평안이 깨어질 때 ‘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느냐고, 왜 하나님께서는 나를 돌보시지 않느냐며, 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평안을 주지 않으신다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러분의 영혼이 갈급해하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가?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 주시는 영원한 평안을 사모하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된 관계로부터 오는 이 평안, 그래서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으며, 취소되지도 않고, 빼앗길 수 없는, 이 영원한 평안을 누리는 모든 양문교회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함께 기도하자. 함께 기도하실 때, 주여, 세상의 유한한 평안, 그 허황된 평안만을 좇아 살아왔던 나는 아니었는지 돌아봅니다. 친히 자기 몸 버려 이루신 그 평안 대신에 세상이 주는 그 반쪽짜리 평안만을 구하며 살아오진 않았나 돌아봅니다. 이 시간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그 무엇도 빼앗지 못할 평안,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평안, 상황과 형편과 상관없이 영원한 평안을 사모하게 하시고, 그 평안 가운데 만족함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