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성도 일하시는 하나님

룻기 강해설교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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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는 이런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네가 만약 오후 네 시에 온다고 하면 나는 오후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이 대사는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친구가 되는 법을 설명할 때 한 이야기입니다. 여우는 기다림의 시간을 행복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소망이 가까워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전만 해도 기다림에는 설렘이 있고 행복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을 어떻게든 줄이려고 합니다. 총알 배송, 새벽 배송으로 물건을 빨리 받아야 하고 드라이브 쓰루를 통해서 주차하고 매장 들어갈 필요도 없이 물건을 받아야 합니다.
기다리는 건 바보 같은 행동인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성도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는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삶이 말씀과 기도로 회복되길 기다리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은 고난 가운데 인내하고 참고 기다려야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이 세상은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데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우리는 기다리는데 익숙해져야 합니다.
보아스가 율법에 정신에 근거해서 룻에게 환대를 베풀었습니다. 이 모습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합니다. 룻이 보아스의 완전한 환대인 기업을 무르는 일을 기다리는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기다릴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1- 성도는 증표를 가지고 소망을 기다린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성도는 증표를 가지고 소망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3장 본문에서 룻은 타작마당에서 자는 보아스를 찾아가서 발치에 누운 뒤 기업무를 자의 의무를 해달라고 청원합니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가진 사람들 중에 보아스 본인 보다 더 우선인 사람이 있으므로 그 사람이 만약에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포기하고 그 의무가 보아스에게 넘어오면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룻은 보아스의 발치에서 누워있다가 사람들이 알아보기 힘든 새벽시간까지 있다가 일어납니다. 아마 야심한 밤에 타작 마당에서 남녀가 같이 있었다고 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겉옷을 펴서 잡으라고 합니다. 룻이 그것을 펴서 잡았을 때 보아스가 보리를 여섯 번 되어서 룻에게 지워주고 성읍으로 들어갔습니다. ‘되어준다.’는 말은 잘 아시는 것처럼 됫박으로 퍼서 담아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문에는 그냥 여섯 번 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보아스가 보리를 담아주는 단위가 에바인지 호멜인지 성경에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 여섯 번 준다고 번역하기엔 좀 그래서 아마 여섯 번 되어준다는 한국식의 좋은 번역이 나온 듯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보아스가 룻에게 보리의 양을 얼마나 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준 보리의 기능적인 측면에 주목해야 합니다. 뭐하러 이렇게 보리를 줬을까? 이 보리는 일종의 증표역할을 합니다.
이 타작마당에서의 접선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닙니다. 비공식적인 자리입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시집을 가야 기업도 무를 수 있고,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문의 사위로 들어가서 끊어진 대를 다시 이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비공식적으로 청원하는 자리가 오늘 본문의 배경인 타작마당입니다. 룻의 입장에서는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가 되겠다고 한 약속을 들었지만 이 약속이 타작마당에서 한 약속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비공식적인 장소에서 한 약속이기 때문에 불안할 수가 있습니다.
나중에 4장을 보시면 알겠지만 기업 무를 자에 관련된 서약은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타작마당에는 보아스와 룻 밖에 없습니다. 보아스가 아무리 말로 장담을 해도 룻의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준비한 것이 바로 여섯 번 보리를 되어 준 것입니다. 이 여섯 번 되어준 보리가 보아스가 한 약속의 증표가 됩니다.
(증명)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복음적인 비유가 됩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인류가 낙원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잃어버린 낙원을 돌려주실 분이 계십니다. 이 기업을 물러주실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재림 하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심으로써 인류가 잃어버린 낙원이라는 기업을 물러주십니다.
예수님 입장에서는 당연하게 우리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주시길 원합니다. 그것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약해서 의심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죗값을 계산해주셨고 거기에 따라 우리에게 기업을 물러주신다는 약속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증표가 필요합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보리 여섯 번을 되어줘서 증표를 삼게 한 것처럼 우리에게 증표가 필요합니다.
이 증표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례입니다. 성례에는 세례와 성찬이 있습니다. 이 증표들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업 무를 자, 우리의 구속자가 되심을 믿으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 증표가 없이 예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은 힘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나의 기업 무를 자가 된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으면서도 이 믿음이 흔들립니다. 당장 예수님이 마련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까 불안합니다. 하늘의 기업이 눈에 안보이니까 세상의 기업, 땅의 기업이 더 좋아보입니다. 세상의 부동산, 주식, 물질이 더 가치있어 보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대신에 세상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세상의 것들을 더 즐기고 싶어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이런 유혹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증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기업을 쉽게 믿지 않는 우리를 위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도록 증표를 마련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으며 이 땅의 것이 결국은 부질없는 것을 깨달으며 믿음의 가치를 따라 살게 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내가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원 받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세례 받지 않더라도 교회가 세례를 선포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신의 백성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눈으로 보며 믿게 됩니다. 성찬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눈으로 보며 맛보게 됩니다. 이 말씀과 성례를 종교개혁자들이 뭐라고 했냐면 참된 교회의 표지라고 했습니다. 참된 교회란 순수한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집행되는 것이 참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위해 주신 증표는 한 단어로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기까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이 땅에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교회를 통해 연약한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며 동역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도록 하셨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릴 때 가장 중요한 증표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라는 증표를 통해서 믿음을 굳건히 하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립니다.
이 속 시끄러운 세상, 복잡한 인간관계, 팍팍한 각박한 삶이 너무 견디기 힘들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너무나도 멀어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증표를 주셨습니다. 지금처럼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 교회로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은혜를 받으며 언젠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저 아름다운 나라, 참된 낙원을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힘든 세상 살이 가운데 기대하는 바가 조금이라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 교회 증표를 가지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룻에게 보리를 여섯 번 되어준 보아스처럼 교회라는 증표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이 증표를 가지고 소망을 가지며 기다립니다.
2-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신다.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는 자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새벽녘 어둑어둑한 시간에 룻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물어봅니다.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이게 재밌는 것이 원문에는 ‘너는 누구냐?’라고 되어 있는 것을 자연스러운 번역을 위해 ‘어떻게 되었느냐?’라고 해놓았습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했을 때는 어떤 의미겠습니까? “내 딸아 네가 남편을 잃은 이방 여인 룻이냐? 아니면 보아스의 예비 신부냐?” 이것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보아스에게 보리 곡식으로 증표를 받은 룻에게 “네가 누구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증표로 받은 나에게 네가 누구냐 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증표로 받았는데 내가 옛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교회를 증표가 있기 때문에 새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혹은 교회 공동체에서 나에게 질문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다시 룻과 나오미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나오미가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룻은 타작마당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룻이 가장 중점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바로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준 것입니다. 그리고 17절에 보시면 15절에서는 생략된 보아스의 당부가 룻을 통해서 설명됩니다. “네 시어머니에게 빈손으로 가지 말라” 보아스는 룻에게만 증표를 허락한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에게까지도 증표를 전달하고 그 증표 안에 있는 소망을 함께 실어 보냈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보아스가 보낸 증표를 보고 이야기합니다. “그 사람이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나오미는 증표를 통해서 보아스의 신실함을 보았습니다. 룻에게 증표를 준 보아스는 엘리멜렉 가문의 기업을 무를 수 있도록 힘쓸 것이며 될 수 있으면 보아스 자신이 엘리멜렉 가문의 대를 잇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보아스는 타작 마당에서 했던 약속이 그저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한 약속이 아니라 반드시 보아스가 해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룻을 통해 보낸 증표를 통해 이것을 믿었습니다. 보아스가 이 일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일할 것이라 말하며 룻을 안심시켰습니다. 실제로 4장 내용을 보면 보아스는 엘리멜렉 가문의 기업을 물러주기 위해 힘쓰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4장을 설교할 때 다루겠습니다.
나오미가 진술한 보아스의 모습은 쉬지 않는 모습입니다. 룻이 타작마당에서 부탁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보아스는 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보아스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번 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보아스의 옷자락을 통해 하나님의 날개가 구현된다고 할 때 보아스가 엘리멜렉가정을 위해 일하는 모습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일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증명)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정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것처럼 하나님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에덴동산이라는 기업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업을 다시 인류에게 물러주기 위한 계획을 구상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12지파를 세우시고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 나라의 다윗 혈통을 통해서 기업 무를 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이 혈통 가운데 기업 무를 자 보아스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나님은 역사 가운데 신실하게 끊임없이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반했지만 징계 하셨을지언정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기업무를 자가 되셔서 인류가 잃어버린 낙원의 기업을 물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아들이고 믿게 하기 위하여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끊임없이 말씀을 받으며 은혜를 받으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도록 주의 성령을 통하여 독려하시고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쉬지 않고 일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기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 역사를 성취하시기까지 결코 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이런 신실한 성품을 보아스를 통해서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적용) 보아스는 하나님이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꾼이었습니다. 이방 여인인 룻을 언약의 공동체로 편입시켜서 엘리멜렉 가문을 살리기 위해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이 엘리멜렉 가문과 보아스의 집안의 혼인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보아스는 하나님의 신실한 구속사역을 위한 복음의 일꾼이 됩니다. 보아스는 복음의 일꾼이 되어 신실하게 일했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의 보아스가 되어야 합니다. 보아스를 통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이 드러난 것처럼 우리를 통해서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소망의 증표 교회를 세상에 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역을 통해 인류가 잃어버린 낙원의 기업을 돌려주실 뿐인데 그걸 보증하는 증표가 바로 교회다. 말씀이다. 이걸 세상에 소개해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뭔가 다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이 교회가 예배를 못드리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코로나라도 복음을 듣고 예배당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아스처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세상에게 소망의 증표인 교회를 소개하고 이 증표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계속해서 쉬지 않고 일하심을 알려줘야 합니다.
결론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성도는 교회라는 증표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다리는 성도들을 기약 없이 기다리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성도들을 위해 교회를 통하여 끊임없이 일하십니다. 우리는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복음에 사역에 동참합니다. 이번 한 주간 저와 성도님들이 교회 증표로 소망을 얻으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또 동참하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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