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나그네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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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Tone 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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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O
C
E
A
E
Social
서론
수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우리가 정욕을 버리고 사회 질서에 순종함으로써 선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1- 정욕을 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우리가 정욕을 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는 이방인들 가운데 흩어져 살고 있는 임시 거주자 성도들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부터 보고 있는데 2장 10절까지의 베드로전서까지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우선 성도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얻기 위해 산 소망을 바라보며, 이전의 삶으로부터 구원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이 여행 가운데 우리는 산돌로 지은 성전의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되어서 세상 가운데서 거룩한 민족으로 제사장 나라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원리를 이야기 하고난 후에 2장 11절에서 어떻게 하면 이렇게 살 수 있는지 방법론을 제시하기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이 11절 하반절에 나오는 것처럼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영혼은 몸과 반대되는 정신의 개념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 삶’ 그러니까 ‘전인’을 말합니다.
정욕을 제어하라고 할 때 여기서 ‘제어한다.’라는 말은 ‘소유하지 말라’라고 번역하는 것이 좀 더 매끄럽습니다. 11절 후반부에 정욕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과 12절 전반부에 행실을 선하게 가져라는 말이 짝을 이룹니다. 11절에서는 정욕을 소유하지 말고 12절에서는 선한 행실을 소유하라고 대조하면서 본문의 메시지를 좀 더 날카롭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버리기만 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12절에 나오는 것처럼 행실을 선하게 가져야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방인 가운데서 행실을 선하게 가지라고 강조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둘러싸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 가운데 살아갑니다. 교회의 성도가 이방인들 가운데 살 때 정욕을 버리고 선한 행실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방인들과 똑같거나 혹은 더 못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목적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 하는데, 12절 하반절에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방 세계에 서 있는 교회가 선한 행실을 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집니다. 여기 오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나 심판을 말하고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과 최후심판을 말합니다. 우리는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예비하여 이방인들 가운데 선한 행실을 가집니다. 이 선한 행실이 주님 다시 오실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적용) 우리의 삶은 사도 베드로의 시대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삽니다.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흩어져서 살고 있습니다. 흩어져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 사이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이 불신자들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면 오늘 본문 12절에 나온 것처럼 우리가 악행 한다고 비방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비방합니다. 우리를 술 한 잔 못하는 예수쟁이, 융통성 없는 예수쟁이, 사회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즐길 줄 모르는 예수쟁이라고 비방합니다. 또는 예수쟁이라면서 저렇게 사나 우리랑 똑같네? 라고 하며 비방합니다.
이런 비난과 조롱에 노출될 위험 가운데 우리는 제사장 백성으로 살고 있습니다.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11절이 말하는 것처럼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선한 행실을 소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도덕심은 당연히 초월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처럼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갚으며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세상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2– 제도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전환문장)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제도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드린 정욕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일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설명) 우리나라는 정치, 외교, 안보, 경제가 복잡한 상황가운데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민주화와 경제발전이 너무 급하게 압축으로 이루어진 나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느 지점에 있어야 하는지 굉장히 혼란합니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지, 혹은 담을 쌓아야 할지, 정치에 참여한다면 어느 정당, 정치인의 정책을 지지해야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운지 굉장히 혼란합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흩어진 교회고 나그네입니다. 우리의 가장 근간되는 정체성은 제사장 민족입니다.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무엇입니까? 어떤 정치이념이나 정당도 복음보다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이끌어온 세속적인 신념이나 가치관도 결국 풀처럼 마르고 꽃처럼 시듭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자세를 기본으로 해서 인간 제도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13절은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질서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이 세계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세운 어떤 법칙들이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허락 아래에 세워진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 질서가 아주 틀리지 않은 이상에야 따릅니다. 질서를 따르는 이유는 내가 신뢰하는 집단이나 사상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라 그런 게 아닙니다. 주를 위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본문을 보면 13절부터 쭉 보시면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 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가 쓰인 당시는 황제가 로마를 다스리고 식민지에 총독을 세워서 다스리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우리가 선거를 통해서 나라의 일꾼들을 뽑고 그 일꾼들이 군사력과 경찰력을 이용해서 안보와 치안을 지키고 합리적으로 자본과 재화가 돌도록 적절하게 시장에 방임 혹은 개입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라의 일꾼들이 일할 때에 그들에게 순종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일꾼이 좋아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매력적이라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하여 순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정치 성향과 공직자들의 행보가 일치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공직자들을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때문에 순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이 질서에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협력할 때 비기독교인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이 소통의 장에서 교회의 영향력과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이렇게 주를 위하여 사회질서에 순종할 때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혹은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무식한 말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복음의 진리에 거스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교회가 오해받지 않기 위해 주를 위해 질서에 순종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오해 받지 않아야 복음이 훼손되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회질서가 누가 봐도 보편타당한 내용이고 맞는 내용이라면, 이 사회질서를 통해 질서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난다면 우리는 주를 위하여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해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막아야 합니다. 그 입을 막아야 합니다.
(증명)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간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어떤 초자연적인 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고레스의 종교관용정책 때문이었습니다. 고레스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기름부음 받은 자로 묘사되지만 문학적인 묘사입니다. 다윗과 같은 그런 믿음의 왕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헌을 보면 고레스가 바벨론을 침공했을 때 마르둑이라는 신의 이름을 찬양하며 침공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적인 사건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회복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세상의 질서를 이용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를 위하여 고레스 왕에게 순종하여 페르시아를 벗어나서 본토로 돌아가 다시 나라를 세웠습니다. 주를 위해 질서에 순종한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하나님께 순종한 일이 되었습니다.
(적용)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듯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 발 디디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를 위해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를 위해 직장에서 상사에게 순종하고 주를 위해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교수님을 존경하며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주를 위해 선거권을 잘 활용하고 주를 위해 입대하며 주를 위해 예비군과 민방위 훈련에 잘 참여합니다.
방역당국의 방역정책이 공평하지가 않다고 말이 많이 나왔습니다. 단속의 편의성에 따라서 교회나 학교는 열심히 단속하고 사람이 금방 들어오고 빠지는 식당 지하철 같은 곳은 열심히 단속하지 못합니다. 단속의 편의성에 따라 좀 편파적인 것 같아서 굉장히 억울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땅의 많은 교회들이 주를 위해 방역 당국에 협조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렇지 않은 교회가 있어서 어리석은 자들이 무식한 말을 하는 빌미를 제공하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잘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주를 위해 질서에 순종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방인들에게 둘러싸인 교회가 살아야 하는 방법이고 사도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방인들에게 둘러싸인 나그네인 교회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첫째로 정욕을 버리고 선한 행실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방 세계 가운데 흩어진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을 회복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 선한 행실, 영광의 회복과 연관되어서 우리는 주를 위해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성향, 입장 때문에 사회 질서에 순종하고 불순종하고를 정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보편타당하게 합의된 사회질서에 대해 주를 위하여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은 한 주간도 세상 가운데 흩어진 교회로서 정욕을 버리고 선한 행실을 선하게 하고 주를 위해 질서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 일을 통해 세상 가운데 복음이 힘 있게 뻗어나가게 하는데 쓰임 받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