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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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망한다-과거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분 안의 소망을 품는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망한다-과거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분 안의 소망을 품는 것이다.
[서론]
우리 모두 알다시피 지금 우크라이나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습니다.
곧 있으면 우크라이나 수도가 함락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암살될 것입니다.
러시아 독재자 푸틴은 과거 러시아 대제국을 재현하기 위해 자신들의 힘을 전세계에 과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동안 전 세계에 큰 전쟁이 없었는데 이제 뭔가 평화가 깨지는 조짐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정치적 위치가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합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있고,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보면 안되는 이유이며 우리가 큰 관심을 갖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10여년 전 폴란드에 있다가 비자 갱신을 위해 옆 나라인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우연히 '타냐'라는 우크라이나 여대생을 만난적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르보프'라는 아주 오래된 도시를 잘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우크라이나 소식을 들으니 그 친구 안부가 궁금해졌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하루 빨리 종식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왜 전쟁이 일어났을까요?
학자들은 여러가지 정치, 경제, 군사적 이유들을 설명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과거 1,2차 세계대전을 잊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70여년이 넘어가니까 인류는 과거 전쟁으로 얼마나 끔찍한 일이 있었는 지 잊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의 태도를 결정합니다.
지금 우리가 만나볼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이토록 고집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이유는 그들이 과거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기억한다, 잊어버린다와 같은 단어들입니다.
과연 우리는 왜 과거를 돌아봐야만 할까요?
[본론]
오늘 본문을 이해하려면 앞에 나온 내용을 먼저 이해해야만 합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나라가 망했고, 자신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다음 세대는 그러한 일을 겪지 않도록 단단히 신앙교육을 해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히 출애굽 시절에 일어난 일들을 통해 지금 그리고 앞으로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야할 지 가르쳐야만 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왜 중요할까요?
첫째,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라는 거울을 봐야 현재 우리의 모습이 뭐가 잘못되었는 지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를 기억하는데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다룰 때 보았듯이 이집트에서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 때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이야기가 43절부터 51절까지 등장합니다.
43 하나님이 이집트에서는 여러 가지 징조를 보이시고, 소안 평야에서는 여러 가지 기적을 보이셨다.
44 강물을 피로 변하게 하셔서, 시냇물을 마실 수 없게 하셨다.
45 파리를 쏟아 놓아서 물게 하시고, 개구리를 풀어 놓아 큰 피해를 입게 하셨다.
46 농작물을 해충에게 내주시고, 애써서 거둔 곡식을 메뚜기에게 내주셨다.
47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때리시고, 무화과나무를 된서리로 얼어 죽게 하셨으며,
48 가축을 우박으로 때리시고, 양 떼를 번개로 치셨다.
49 그들에게 진노의 불을 쏟으시며, 분노와 의분과 재앙을 내리시며, 곧 재앙의 사자를 내려 보내셨다.
50 주님은 분노의 길을 터 놓으시니, 그들을 죽음에서 건져내지 않으시고, 생명을 염병에 넘겨 주셨다.
51 이집트의 맏아들을 모두 치시고, 그의 힘의 첫 열매들을 함의 천막에서 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10가지 재앙을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이처럼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고,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집트에서 극적으로 빠져나왔지만 이집트 군대가 뒤쫓아오자 어떻게 하셨습니까?
52,53절입니다.
52 그는 백성을 양 떼처럼 인도하시고, 가축 떼처럼 광야로 이끄셨다.
53 그들을 안전하게 이끄시니,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들의 원수들은 바다가 덮어 버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홍해 바다를 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바다를 지나가게 하셨고, 이집트 군대는 홍해에 모두 수장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이끄시는 목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땠습니까?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이던 광야에서 여전히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19-20절입니다.
19 그들은 하나님을 거스르면서 "하나님이 무슨 능력으로 이 광야에서 먹거리를 공급할 수 있으랴?
20 그가 바위를 쳐서 물이 솟아나오게 하고, 그 물이 강물이 되게 하여 세차게 흐르게는 하였지만, 그가 어찌 자기 백성에게 밥을 줄 수 있으며, 고기를 먹일 수 있으랴?" 하고 말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위에서 샘물을 내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이 한 말들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적의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앞서 요한복음에서도 보았듯이 기적은 우리에게 일시적으로 믿음을 줍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마치 박카스같은 각성제처럼 일시적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끊임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 하셨을까요?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로 체벌하셨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매를 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체벌을 가하자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34-35절입니다.
34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멸하실 때에,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을 찾았으며, 돌아와서 하나님께 빌었다.
35 그제서야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반석이심과,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자이심을 기억하였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나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을 찾고 자신들의 잘못을 빌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반석이시며, 구원자임을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이 반석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허허벌판인 광야에서 반석은 더위나 폭우 등을 피하는 쉼터 역할을 합니다.
때로는 반석에서 물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위기를 만날 때 하나님은 의지할 수 있는 반석같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자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노예였을 때 그들을 해방시켜주신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의 노예에서 해방시켜주신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마음이 변하지 않은 채 겉으로만 반성하는 척 했다는 것입니다.
36,37절입니다.
36 그러나 그들은 입으로만 하나님께 아첨하고, 혀로는 하나님을 속일 뿐이었다.
37 그들의 마음은 분명히 그를 떠났으며, 그가 세우신 언약을 믿지도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입으로만 하나님께 회개하는 척했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하나님의 언약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에 대해서 시인은 이스라엘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40-42절입니다.
40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얼마나 자주 반역하였던가? 황무지에서 그를 얼마나 자주 괴롭혔던가?
41 그들은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
42 그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건져주신 그 날도 잊어버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과거를 잊은 백성은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잘못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돌아보는 백성은 소망이 있는 법입니다.
독일의 경우를 보십시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나라를 침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 중 가장 잔혹했던 일은 500만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죽인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알기로는 독일은 아직까지도 유대인들에게 수많은 배상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 대통령, 총리도 그들의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이 더 대단한 것은 그들의 후손들에게도 철저히 전쟁에 대한 교육을 한다는 것입니다.
독일 학교들은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학생들을 데려갑니다.
그 곳에는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현장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서 독일 학생들은 자신들의 할아버지들이 행했던 악행을 보며 다시는 반복하면 안될 역사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과거는 우리에게 오답노트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러시아와 일본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도 자신들의 과거를 뼈져리게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역시 전범 국가인데도 죽은 전쟁범인들을 모아둔 야스쿠니 신사에서 제사를 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과거를 왜곡하거나 과거를 잊은 나라는 또다시 잘못을 반복하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한 개인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이스라엘을 이집트 노예에서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은 죄의 노예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할 과거는 나같은 죄인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같은 경우 예수님을 믿기전 삶의 목표는 오직 돈과 성공, 쾌락이었습니다.
돈 많이 벌어서 내가 하고싶은 거 다하면서 사는게 제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는지 항상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들보다 더 풍족하게 하고 사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여겼습니다.
무엇이 내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때 저는 언제나 삶의 주인이 나였습니다.
그리고 나의 우상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고난 후 제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과 믿은 후는 정말 다른 삶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았는 지 잊어버린 그리스도인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들은 ‘좀비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살았는 지 죽었는 지 알 수 없는 존재 말입니다.
입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종교생활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감사가 없고, 감격이 없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려 남들을 쉽게 비판하고 비난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과거를 기억해야만 하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그럼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두번째 이유는 무엇일까요?
둘 째, 과거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비춰 현재 나의 태도를 바꾼다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들 자체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기적을 베풀어도 한순간이고, 또다시 원점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신 것입니다.
구약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고집스럽게 불순종하고 죄악을 저질렀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힘으로 우리의 부패한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물론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많은 도움을 주지만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소용없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아무리 강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도 사람의 악한 본성, 이기적인 본성이 바뀌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인간의 탐욕은 현재 코로나라는 전 세계적 전염병을 가져왔습니다.
기후 위기 앞에서 인류는 수많은 재앙을 겪고 있습니다.
또한 영원히 유지될 거 같던 인류의 평화는 이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가져왔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안 좋은 일들이 인류에게 일어날까요?
미래가 암담하기만 합니다.
다음 세대에게 미안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38,39절입니다.
38 그런데도 그는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의 죄를 덮어 주셔서 그들을 멸하지 아니하시며, 거듭 그 노하심을 돌이키셔서 참고 또 참으셨다.
39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신다. 사람은 다만 살덩어리, 한 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존재임을 기억하신다.
이것은 주님의 성품에 대한 구절입니다.
주님은 긍휼이 많으셔서 우리의 죄악을 덮어주시고 우리를 완전히 멸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참고 또 참아주십니다.
여기서 ‘긍휼’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라하밈’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자궁에 있는 아이에 대해 느끼는 어머니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어머니의 모성애를 잘 표현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어머니의 모성애보다 더 많이 우리들을 사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우리가 살덩이, 또는 마치 한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바람처럼 연약한 것을 아십니다.
그만큼 우리의 믿음이 변덕스럽고 불성실하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엊그제 ‘금쪽같은 내 새끼’ 보니까 부모의 사랑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부모말 더럽게 안 듣는 아이인데도 끝까지 참아주고 기다려주더라구요.
예전에 아이돌했던 엄마인데 아들이 ADHD이거든요.
완전 고집 장난이니거든요.
한번은 엄마가 자기 말 안 들어주니까 맨발로 집을 나가버리더라구요.
그런데 그 엄마가 결국 울면서 아이를 찾으러가더라구요.
하나님의 사랑이 이와 같습니다.
그런 하나님 사랑이 절정으로 드러난 사건이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에게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인간의 옷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인 인간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인류는 앞으로 기후위기, 식량위기, 전쟁위기, 전염병 위기 등 수많은 위협에 직면할 것입니다.
두려운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자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주실만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죄악으로 난리를 쳐도 하나님은 이 땅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54,55절입니다.
54 그들을 거룩한 산으로 이끌어 들이시고, 그 오른손으로 취하신 이 산으로 이끄셨다.
55 여러 민족을 그들 앞에서 몰아내시고, 줄로 재어서 땅을 나누어 주시고, 이스라엘 지파들을 자기들의 천막에서 살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말도 안듣고 고집을 피웠지만 결국 그들을 거룩한 산,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땅을 분배해주시고 이스라엘 지파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 통치하시는 곳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내 삶의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갈 때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시작됩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탐욕보다 하나님의 성품인 긍휼이 넘치는 세상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이 땅의 소망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는 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현재 우리의 신앙태도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을 오랫동안 기다리십니다.
그 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사랑의 절정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매주마다 구원 찬양을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오자 광야가 시작되었습니다.
곧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고난 후 이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광야같은 삶이 시작됩니다.
온갖 유혹이 도사리고 있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두려운 곳입니다.
우리는 때로 믿음에서 넘어지고 쓰러질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계셨듯이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불성실하지만 하나님은 성실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광야같은 인생길 주님이 우리를 인도해주시고 보호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반석이 되시고, 우리의 구원자가 되실 것입니다.
이런 광야의 길에서 오직 믿음만이 우리의 나침반입니다.
우리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부분적으로 경험하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탐욕과 고통이 넘치는 세상이 치유와 회복, 긍휼과 기쁨이 넘치는 세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런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내가 있는 자리에서 부분적이나마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