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풍성해지는 교회

요한계시록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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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여러분 용두사미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머리는 용인데, 꼬리는 뱀꼬리이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풍성하고, 대단한 것처럼 보였지만 끝이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상황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말을 하는데요. 대단한 영화인 것처럼 광고를 하였지만, 실제로 영화관에서 보면 내용이 광고가 다일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용두사미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교회가 에베소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진리로 굳게 지키는 자들이었습니다. 어떤 이단이든 교회에서 멀리하고, 내어 쫓는 든든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나중은 처음사랑과 처음 행위를 잃어버린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의 나중은 처음보다 못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나눈 지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여러분의 나중은 어떠하신가요?
여러분은 지금 처음보다 풍성함을 누리고 계신가요? 처음보다 더 풍성해지기를 소망합시다.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는 에베소교회와는 달랐습니다. 그들에 대한 주님의 평가는 19절에 말씀을 보면 나중행위가 처음보다 더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날이 풍성해지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의 사업-사역은 줄어들지 않고 더욱 풍성해져만 갔습니다. 그들의 풍성함의 원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은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 중에 풍성함의 원리와 칭찬만을 다루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책망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 두아디라지역
두아디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유물 발견이 적어 사료가 적어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낮습니다. 가장 특색이 적고 내세울 것이 없는 덜 알려진 교회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일곱교회 중 가장 긴 분량을 가집니다. 양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들은 주님이 보시기에 가장 안타까운 실정에 놓인 것입니다.
두아디라 지역하면 바로 기억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맞추면 사탕하나 드리겠습니다. 네 자주장사-자색옷감장사 루디아입니다. “행 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두아디라 지역은 패션의 도시로 염색업과 직물업에 발달이 되 있는 곳입니다. 주석에 따르면 염색옷과 청동세공과 가죽구두를 이 지역에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곳은 무역항으로 상인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상업 활동을 하려면 길드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물건을 만드는 것도 파는 것도 길드가 관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길드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길드가 모이면 언제나 이교제사와 음란한 파티가 열렸습니다. 이방제사는 구약시대부터 제사와 음행이 섞여있는 제사였습니다. 이러한 문란함에 이질감을 느낀 많은 헬라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사도행전에 거룩한 헬라인이 될 정도였습니다. 우상숭배 – 영적 간음과 육적 간음이 행해지는 문제 앞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선택하여 두아디라 교회는 상업에 참여할 수 없었고 가난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문제 앞에 말씀을 전하는 교사는 성도들에게 어떤 길을 제시해야 할까요?
쉬운 길을 가르쳐야 합니까? 잘 사는 길을 가르쳐야 하나요?
이러한 문제 앞에 성도들은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무엇을 선택해야 합니까?
1) 거짓 가르침이 시작됨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문제는 코로나가 끝나고 직면하는 세계적인 어려움입니다. 돈을 너무 많이 풀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가 우리가 싸워 이겨내야 하는 실제적인 싸움입니다. 이러한 경제적인 대 환란 앞에 우리 성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거짓교사의 문제는 사도들이 살아 있을 때도 존재했습니다. 거짓교사는 교회에 홀연히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지난번 버가모 교회에서 나누었던 니골라당도 발람의 꾀를 따라 성도들을 경제적으로, 성적으로 미혹했습니다. 니골라는 당시 영지주의 이단으로 육은 악하고 선/지식만이 선하다는 가르침으로 삶의 문란은 괜찮다고 가르쳤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많은 성도들을 발람의 꾀에 빠지게 하여 음행에 빠지게 했습니다. 비느하스가 칼을 들어 음행한 청년들을 심판한 것과 같이 그들 앞에 칼을 들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두아디라 교회에도 거짓교사가 들어왔습니다. 이 거짓교사는 경제적 어려움과 길드의 가입 문제 앞에 확실한 가르침 보다는 모호한 자세로 가르쳤습니다. 우상에 참여하게하고, 행음하게 했습니다. 세상에서 쉬운 길을 가도록 가르친 것입니다. 타협해도 괜찮다. 우상과 연합해도 괜찮다고 속인 것입니다.
우상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바울을 고린도교회에게 말씀합니다. “고전 10:20-21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그와 교제하며 연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짓교사의 가르침은 배교적 수준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음에 대한 모호한 자세와 거짓 가르침이 그들을 미혹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문제 안에서 신앙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2. 주님의 말씀
1) 그들에게 나타난 예수님
주님은 교회에게 말씀하실 때,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계 2: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이 모습은 그들을 어떠한 모습으로 도우시고, 책망하시고, 심판 하시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계 1장 후반부에 등장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계 1:14-15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촛대를 거니시며, 교회에 말씀하시는 분이 예수님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다니엘이 본 하나님의 아들이신 인자의 환상의 모습과 같습니다. “단 10:6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 인자로서 심판자로서 교회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예수님의 모습은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 눈이 불꽃 같음
그의 눈이 불 꽃 같다는 것은 모든 것을 꿰둟어 보시고, 지켜보고 계시는 의미를 갖습니다. 교회의 모든 행위를 살피심으로 그들이 행하고 있는 순종과 불의를 모두 알고 계신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눈앞에서 우리는 위로를 느끼며 받을 수 있고, 징계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눈앞에 어떤 사람일까요? 칼빈은 하나님 앞에서를 강조했습니다. ‘코람데오’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서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면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살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을 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찌 범죄하리요”라며 죄를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두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된 우리를 모두 지켜보십니다.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 눈에서 피할 사람이 있을까요?
(2) 발이 빛난 주석같음
주님의 발은 빛난 주석과 같습니다. 주석은 힘을 상징합니다. 장엄한 권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주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장엄한 권능으로 교회위에 서서셔 교회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주석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주석은 풀무를 견대내야지만 나오는 광물입니다. 그래서 발에 주석을 지니신 주님은 고난의 풀무를 지나신 분으로 교회가 당하는 고난의 풀무를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함께 고난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에 대한 숭배를 거절한 대가로 풀무에 들어갔습니다. “단 3: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주님은 고난의 풀무를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가 고난을 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질고를 아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질고를 경험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님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은 능력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주님 앞에 선 사람이 누구라고 말씀하고 있죠? 네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밝히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두아디라시는 제우스의 두 아들을 섬겼습니다. 그 두 아들은 로마 황제와 아폴로인데 아폴로는 태양과 같이 빛나는 엄청난 미모를 지닌 신의 아들입니다. 그들은 이 두 신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섬겼습니다.
두아디라교회에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신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통치하시며, 교회에 계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 가지 신 중 선택하여 섬기는 것이 아닌, 참으로 선택하며 따라야 하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삶 가운데서 무엇을 선택하십니까? 우리 주님이 우리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됩시다.
2)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칭찬
(1) 나중이 처음보다 많은 교회(19절)
우리 19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실까요?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두아디라 교회는 사업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내는 일에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과 사업은 모든 것을 아울러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나타냈습니다.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하는 것은 본문에 나타난 4가지는 4가지의 종류이기보다 사랑은 섬김을 낳고, 믿음은 인내를 낳는 구조, 쌍으로 이해함이 좋습니다.
섬김 :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섬김이라는 열매를 낳았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환대를 하는 것은 주님께서 맡기신 일입니다. 이 일에 대해 26절은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자신의 일이라며 이것을 끝까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일하십니다.
적용 : 우리 주변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눈이 주님의 눈이 되어, 우리의 손이 주님의 손이 되어 섬길 사람을 찾고 도와주는 손과 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역이 우리의 삶에 있다면 더욱 풍성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인내 : 인내는 믿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앎에서 나오는 소망과 인내는 믿음이 없으면 지켜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앎으로 그들의 인내는 풍성해졌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충성은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이들의 행위는 더욱 풍성해져만 갔습니다.
(2) 처음보다 나중이 못한 교회(에베소교회)
두아디라교회와는 반대로 처음보다 나중이 못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처음에 말씀드린바와 같이 에베소교회입니다. 그들은 뜨겁고 풍성했지만 처음사랑을 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뜨겁게 시작했지만, 식어버리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데요. 이 모습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는 그들의 사랑이 식어지지 않고, 점점 풍성해져만 갔습니다.
여러분은 에베소교회에 가깝나요? 두아디라교회에 가깝나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3) 적용 : 은혜를 사모하는 교회
그렇다면 그들의 사랑이 식지 않은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갈수록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풍성함의 참된 비결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능력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부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골 2:9-10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우리는 바닥에 사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청년 시절, 팀별 모임을 갖을 때 팀원에게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보면 한 주간 어떻게 살았냐고 물어보면 자신은 지옥에 살다 왔다고 고백합니다. 저도 하루하루 한주 한주가 지옥 같고, 벗어나기 힘든 상황 가운데 살아갔던 적이 많습니다. 우리가 어쩔 때는 충만하지만 어쩔 때는 공허하여 헛헛함을 금치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상황 속에 빠지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은혜 안에 온전히 거하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과 실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은혜와 능력이 충만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가난한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갈망이 있는 삶,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바라는 삶, 여러분의 삶에 은혜의 갈망이 없다면 생명이 있는 지를 의심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난한 심령으로 날마다 채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갈망과 믿음이 두아디라 교회를 풍성한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결론 및 적용 : 갈망이 없으면 부으심도 없습니다. 그들의 나중행위의 풍성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마음과 경건하게 하나님을 찾는 경건한 오늘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늘을 갈망하지 않고, 찾지 않는데, 어떻게 처음보다 풍성한 열매가 나오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찾는 경건한 오늘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2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하루하루를 주님을 붙잡으며 주님으로 채우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에게 더 할 것이 없다고/ 더 지울 것이 없다고 24절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경건한 오늘/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는 오늘을 통해 내일이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난 나중 행위의 풍성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진리를 굳게 잡읍시다. 우리가 믿는 바를 오늘도 굳게 잡읍시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주어진 은혜의 수단 가운데로 날마다 나아오십시오. 말씀과 기도와 성례/ 찬양으로 주님께 여러분의 마음을 보여드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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