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여인은 다릅니다.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69 views
Notes
Transcript
(출 1:15-22)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도입
우리 모두는 선택의 순간을 때때로 맞이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는지 고민합니다. 그래서 선택장애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인터넷에 ‘선택장애 극복법’을 검색하면 많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어려운 선택에 처해있었던 사람을 보게 됩니다.
본문 분석
출애굽기 1장 8절부터 새로운 왕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정착할 당시에는 이미 힉소스족속이 애굽을 공격해서 애굽의 북부인 나일강 삼각주와 중 하류지역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한편 하류와 중류를 힉소스 족속이 점령하자 원래 애굽인들은 중 상류로 쫓겨나서 실력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힉소스가 통치한지 100여년이 지난 후 애굽인들이 힉소스를 몰아내고 말았습니다. 이때 친 힉소스였던 요셉의 은혜로 잘 지내고 있었던 히브리 사람들이 곤경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왕은 히브리 사람들을 미워했고 노예로 강하게 부려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애굽 왕은 새로운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15절 16절입니다.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얼마나 끔찍한 흉계입니까? 여기서 주목할 점은 히브리 산파를 이용해서 이스라엘 남자아이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 두 산파는 그냥 아이를 낳는 것을 보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수석 수간호사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히브리사람이 얼마나 많은 데 산파가 두 명 뿐이겠습니까? 이들은 산파들의 리더 였습니다. 그리고 애굽왕은 그들의 지위를 얼마든지 뺏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바로의 지시에 따르면 얼마든지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애굽 왕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17절을 보시면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합니다.
여기서 이 산파들은 산파들의 우두머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아기를 받아내는데 전문가들입니다.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바로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바로는 왕입니다.
왕은 눈과 귀가 있습니다. 왕은 왕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눈과 귀가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 왕이 살펴보고 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산업혁명으로 옷이 대량생산 되기전에는 어린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의 옷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자라기 전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정도 지나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산파들은 거기에 대한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수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조마조마 했겠습니까? 결국 바로가 산파들을 불렀습니다.
18절을 보면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여기서 바로가 공개적으로 군대를 불러 히브리민족을 자극 하지 않으려함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의 음험함이 드러나지요 또 히브리 산파들의 리더를 불러 벌하려고 물었던 것입니다.
사실 바로는 이렇게 단순하게 물어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지는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산파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천천히)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게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만약 거짓이라면 바로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한 것일까요?
첫 번째는 문화적 차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이를 낳는데 노력을 최소화 하지만 히브리사람은 달랐을 것이다. 라고 보는 견해가 있기도 하고 애굽사람들은 아이를 낳게 되면 산모는 최소한의 일만 하고 나머지 모든 것을 산파가 다 하는 반면에 히브리 사람들은 집에서 거의 대부분을 다하고 나머지 부분만 산파가 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다를 수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두 산파를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바로를 속이기 위한 작전이 성공했다고 말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저는 이게 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산파의 장인 십브라와 부아가 미리 이러한 사실을 히브리 공동체에 알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밀리에 암묵적인 약속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기가 실제로 나오기 전에 산파를 부르지 말 것을 부탁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전체적으로 애굽인들을 속이는 계획을 만들었고 이를 실행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산파들의 머리인 십브라와 부아가 일부러 산파들이 천천히 도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가정해 볼 수 있는데 아이가 나오기 전에는 산파를 공개적으로 부르지 말라 이렇게 산파들은 지혜롭게 대처하였습니다.
이러한 지혜로운 대처로 하나님께서는 산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20절을 보시면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이것을 보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에게 복을 주신것과 백성이 번성하고 강해진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산파들이 받은 복은 21절에 나옵니다.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보통산파들은 고대세계에서는 자녀를 갖지 못한 여자들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긴 시간 아이들을 낳는 일을 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산파들에게 큰 은혜를 부어주셔서 그들이 아이를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안이 잘 되게 되었습니다.
산파들은 당대 최고의 권력자이면서 증오심으로 가득찬 잔인한 사람인 바로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21절과 같은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산파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 이름도 애굽왕 파라오의 이름도 나오지 않는 상황 속에서 십브라와 부아의 이름이 기억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포기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광범위하게 유아살해를 시작 합니다.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이제 끔찍한 일이 일어납니다. 모든 애굽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자손의 갓난 사내아이를 죽이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일강에 던져서 죽이기로 하였습니다. 산파들의 노력으로 막았던 유아살해가 다시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과 타협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사람들에게 아무짓도 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왕은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하며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애굽왕은 인구수가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정면으로 싸우는 것은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 싸워서 물리치기 보다는 혹독하게 노예로 부려먹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학대하고 억압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억압하고 핍박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을 말살하려고 악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고 합니다. 사실 노동력만 빼먹어도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수년을 했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바로는 그 민족을 말살 시켜야 직성이 풀렸고 그렇게 계획을 세워 진행하려 하였습니다.
요한 복음 10장 10절을 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도둑 사탄의 목적은 결국 사람을 도둑질 할 뿐만 아니라 죽이고 그 영혼까지 멸망시키려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을 멸망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다사용합니다. 오늘 바로는 십브라와 부아라는 산파들에게 남자 아이를 죽이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참 비열하고 악합니다. 애굽의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사탄 마귀가 성도를 괴롭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로의 간교함과 간악함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가 십브라와 부아에게 어떻게 말했는지는 모릅니다. 이 일은 아주 비밀스러운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바로가 좋은 곳으로 이들을 불렀을 것입니다. 왕궁일 수도 있고 어딘지 모르지만 그들을 은밀하게 불렀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브아와 부아라면 어떠했을까요? 삼엄한 경비가 있는 왕궁 은밀한 곳에서 왕의 앞에 불려나가서 지시를 받았을 때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들은 바로의 말에 어떠한 변명도 달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분위기에서 이 말을 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어느 장소든지 그 장소만의 분위기가 있지요 어떤 사람이 유럽 여행을 갔는데 중세시대 어떤 성에 방문했는데 분위기가 으스스했다고 해요 이유없이 무섭고 더 있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성에서 많은 사람들이 잔인한 형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느 장소든이 그 분위기가 있습니다.
바로가 은밀한 곳에서 두 사람에게 말할 때 두 사람은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왜냐구요 그 은밀한 곳에서 많은 악하고 잔인한 일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과 마귀가 우리을 대하는 일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때로는 방심하게 하며 마음을 놓게 만듭니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마음 놓아도 돼! 과학이 이렇게 발전 했는데” 하며 우리 마음을 방심하게 하여서 언제든지 우리를 멸망과 악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직접적으로든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 무너지게 하든지 사탄은 우리를 계속 공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가 노역을 엄하게 시킬 때 그것만 지키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특히 백성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로는 아주 끔찍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 합니다. 그것도 드러내지 않고 히브리 산파들의 손을 빌어서 말이죠
그리고 내용을 보면 더 끔찍합니다.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왜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고 했을까요? 파라오가 노동력을 빼앗기지 않을까요? 당시 사람들에게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는 엄청났습니다. 거의 모든 것을 사람이 직접 해야하는 시기에서 양질의 노동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장로들은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바로가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자신의 재산을 상하게 하지 않을거야”
그러나 바로는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탄 마귀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들은 기회가 되는대로 성도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사탄 마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탄 마귀의 목표를 알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로는 산파들을 사용한 그들의 악한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합니까?
22절을 보면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이제는 애굽사람들을 총동원하여 결국 아이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사탄 마귀들은 끝가지 멸망시키려 함을 기억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2. 성도는 말씀을 지킴으로 남들과 달라야 합니다.
바로의 요구에 산파들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바로의 지시에 따를 것인가? (강조)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인가?(강조) 바로가 무능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당근과 채찍 둘 다 휘두를 것입니다. 당근은 어떤 당근을 줄까요? 많은 물질을 보여 주었을 것입니다. 금 은 보석과 온갖 진귀한 보물을 보여주었을 것이고 일만 잘 성사되면 이보다 더한 것도 줄 수 있었을 것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의 말을 따르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습니다. 산파들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벌이 인간의 벌보다 더 무서움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여러분 바로 앞에 서 있으면 얼마나 무섭고 긴장되었을까요?
여러분들도 그 자리에 있으면 몸이 얼어붙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가 명령을 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은 굴복할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산파들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저항했습니다. 악한 자들의 명령에 지혜롭게 저항했습니다.
본문을 보시면 그들의 지혜로움을 알 수 있습니다. 산파들은 히브리여인들은 애굽여인들과 달라서 라는 말을 통해서 유아살해라는 끔찍한 일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 여인들도 산파들에게 협력하여 사랑하는 아기의 죽음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왜 이들이 달리 행동하였던 것일까요? 바로보다 더 크신 분이 누구인지 알았던 것입니다. 더 크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세상을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산파들은 목숨을 걸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우리가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잊어버릴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하기도 하고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보고 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 답답해 계속 보고 있어 나도 자유롭고 싶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리고 돌아가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삼아 우리가 성도로 잘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펴주고 계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지은 후 인간은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자유롭게 살아간다고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죄만 짓는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진리 되신 하나님 안에서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모든 삶의 근원이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안다고 하지만 실상은 모릅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어도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해석은 분분합니다. 해석이 분분하다는 것은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확하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였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고 하는 일 우리가 존귀하게 되고 낮아지는 일들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보고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저는 율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잘 지켜야 천국 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들이잖아요 그리고 하나님을 알잖아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행동이 달라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성도로 사는 것은 어찌보면 손해보는 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희생만 해야 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이 참으로 복된 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큰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산파들에게 많은 은혜가 부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십니다.
청년의 시기는 젊고 힘이 넘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이룰 수도 있지만 죄도 많이 저지를 수 있는 시기입니다.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기억하면서 성도로써 하나님의 자녀답게 매순간 순간 살아가시는 행복한 교회 청년들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결론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타협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탄과 약한 영들은 결국을 우리를 멸망시킬 때 까지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심을 압니다. 그 하나님께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분의 사랑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성도로서 다르게 살아갑니다. 성도니까 다르게 살아야해 무슨 규칙처럼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기대를 도저히 저 버릴수 없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 하나님의 사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행복한 교회 청년들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1 세상의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 합시다.
2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겠다고 결단하는 기도 드리겠습니다.
결단찬양: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마무리기도
하나님아버지 지금 우리는 유혹이 가득찬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상황은 이리속에 있는 양과 같습니다. 우리가 다가오는 유혹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 주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 사랑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는 연약합니다. 부족합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가 결단하고 나아가오니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