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실수를 반복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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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 자기 산당들로 그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그들의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하였으매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그가 그의 능력을 포로에게 넘겨 주시며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그가 그의 소유 때문에 분내사 그의 백성을 칼에 넘기셨으니 그들의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그들의 처녀들은 혼인 노래를 들을 수 없었으며 그들의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그들의 과부들은 애곡도 하지 못하였도다 그 때에 주께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고함치는 용사처럼 일어나사 그의 대적들을 쳐 물리쳐서 영원히 그들에게 욕되게 하셨도다 또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 그의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도다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2013년 경에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명해진 문구가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문구입니다.
익숙한 문구이지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라는 격언과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격언을 하나로 합친 문구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냥 문구 만으로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어느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서 적절한 표정이 담긴 사진에 이 문구를 합성하면서 큰 유행을 탔습니다.
이 문구가 표지를 장식한 책도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흑역사"라는 책인데요. 인간의 역사에서 자행된 흑역사(?)들을, 영국의 한 작가가 정리한 책입니다.
이 작가는 인간을 지칭하는 ‘호모 사피엔스', 즉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이 단어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왜냐하면 가장 똑똑한 동물이라고 하기에는, 인간은 역사적으로 너무 많은, 그리고 어이없는 실수와 실패를 거듭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류가 실수와 실패 뿐만 아니라, 놀라운 발전과 문명을 이뤄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 속에서 실수와 실패가 계속 반복되는 경향을 보여 왔기에, 과연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릴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이 책 내용 전반에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제게 인간이 저지른 여러 뼈 아픈 실수 중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전쟁'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욕심과 잔인한 폭력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서로를 증오하고 살해하며,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보기 좋았다고 하신 아름다운 세계가 폐허로 변해 버린 역사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위협은, 최근 뉴스를 통해서 접하고 있는 것처럼 여전히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역사를 통해 지혜롭게 실수와 실패를 교훈 삼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 인류의 역사라는 말이 일견 동의가 됩니다.
그런데 이는 성경에서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아삽의 시인데, 특별히 아삽의 ‘마스길’이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마스길'이라는 단어는 ‘생각하다', ‘깨닫다', ‘가르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사칼'이라는 단어에서 파생 되었지만,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여러 시편에서 표제어로 사용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교훈적이고 반성적인 시'라는 뜻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편의 저자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과 반성을 전해 주고 있을까요?
첫째, 타락한 인간은 끊임 없이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56절부터 59절까지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께 대적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 자기 산당들로 그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그들의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하였으매
어떻습니까?
단 세 절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그들이 시험하고 반항한 대상을 보면 깊이 느끼게 됩니다.
그들이 시험하고 반항한 대상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지존하신 하나님'이라고 시편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지존하시다’ 라는 뜻은 ‘지극히 높으신', ‘가장 높으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즉, 그 어떤 존재도 하나님 위에 있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지존하시다는 표현은, 온 우주와 인류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설명하는데 이 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감히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였다 라고 시편 저자는 기록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57절에서 이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이토록 반항하는 것은,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께 보였던 것과 같았다고 오늘 본문은 증언합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했던 반항은 무엇입니까?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가셨습니다.
그 여정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그 시작은 애굽의 왕 바로, 즉 자신을 세상의 왕이라 여겼던 완악했던 그에게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를 통해 바로와 애굽이 아닌, 하나님이 진짜 지존하신 하나님이심을 애굽과 온 땅에, 그리고 그 곳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으러 달려 오는,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애굽 군대의 위협과 공포 앞에,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무사히 지나갔으나 애굽 군대는 홍해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황량하고 척박한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이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기적과 하나님의 능력이 누구를 향한 것이었습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은 이토록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이 정도로 은혜와 기적을 경험했다면, 지존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선포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요?.
그러나!
그들은 물이 부족한 상황 앞에,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까맣게 잊은 채, 당장 눈 앞의 어려움에만 매몰되어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조상들은 스스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기억하십니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우리에게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들은 지금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이 금송아지가 감히 지존하신 하나님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입니까? 그런데 이 어리석은 조상들의 행동을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지금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복하고 있다고 시편 저자는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꿈꾸는교회 가족 여러분.
혹시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반복되는 죄 된 습관에도, 크게 다를 바 없는 하루하루에 익숙해 지고 계시진 않습니까?
이 아침에 다시 한 번 우리의 마음과 생각들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혹시라도 내 안에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대적하는 모습들이 있지 않은지 하나님 앞에서 점검하고 돌이킬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교훈은, 그럼에도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심판을 끝이라 이야기 하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 심판은 새로운 시작과 다름없습니다. 마치 죽음이 끝이라고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죽음은 부활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죄악 앞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을 향한 거부와 심판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가 그의 소유 때문에 분내사 그의 백성을 칼에 넘기셨으니 그들의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그들의 처녀들은 혼인 노래를 들을 수 없었으며 그들의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그들의 과부들은 애곡도 하지 못하였도다
그들의 조상들과 같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했던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이방 민족의 손에 넘겨졌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청년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죽임을 당했는지...이스라엘의 처녀들이 혼인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시편 저자는 증언합니다.
그렇게 반복된 죄악으로 인한 심판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감히 슬퍼하는 소리조차 낼 수 없는 황폐한 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심판을 새로운 시작으로 만드십니다.
그 때에 주께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고함치는 용사처럼 일어나사
마치 잠이라도 드셨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모른 척 하셨던 하나님께서 일어나셨다고 기록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고함치는 용사처럼 하나님께서 일어나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일어나'시면, 하나님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들이 이유도 모른채, 마치 아예 없었던 존재처럼 갑자기 멸망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66절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대적들에게는 ‘하나님의 일어나심’으로 영원한 치욕을 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갑자기 왜 일어나시는 것일까요? 이렇게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에게, 왜 일어나셔서 그들을 괴롭히는 원수들을 물리치시는 것일까요?
이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 즉 언약 때문입니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바로 이 약속을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을 부인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실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신실하다는 것은 믿을만 하고, 의지할만 하며,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신실하다는 성품은 죄 된 우리가, 그리고 배드의 세상에서는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성품입니다.
우리가 다른 누군가와 약속을 할 때 어떻게 하나요?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죠. 말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약속에 대한 어떤 징표를 삼는 것입니다.
또 물건을 구매하거나 계약할 때는 어떻습니까? 사인을 하기 전에 반드시 계약서나 약관 등을 꼼꼼히 살펴 볼 것을 당부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불리한 문구들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즉 배드의 세상에서는 신실함이 아니라, 의심함으로 살아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명기 7장 9절에서 고백하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아멘!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천 대에 걸쳐서라도 반드시 이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약속을 지키시는데, 다른 어떠한 징표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 다른 불리한 조건이 숨어있지도 않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그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증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영원히 지켜질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사랑하는 꿈꾸는교회 가족 여러분.
감사하게도, 그리고 매우 감격스럽게도...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기억하시며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과 온전한 순종을 내어 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시험하고 대적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를 답습하는 자가 아니라, 지존하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 드립니다.
이 시간 이렇게 기도합시다.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의 결말을 보았습니다. 나의 삶이 실수와 죄악을 반복했던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않게 하옵소서.
혹시 내 안에 반복되는 죄악들이 있다면 이 시간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시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의 자리에서 떠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나의 삶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