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가 일으키는 것

룻기 강해설교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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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룻기 설교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어제 설교에서는 아무개라고 하는 기업 무를 자가 자기 기업에 손해를 입을까봐 기업 무르는 것을 포기했고 반면에 보아스는 율법의 정신에 순종해서 그 손해를 감수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손해를 감수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줍니다.
1- 손해를 감수할 때 구원역사가 일어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손해를 감수할 때 구원역사가 일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드디어 보아스가 나오미의 가정의 기업 무를 자가 되고 룻의 신랑이 되는 것을 법적으로 확정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난 번에 설교한 것처럼 엘리멜렉 집안의 가장 가까운 친척,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첫 번째로 가진 아무개라는 사람은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싶어서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포기했습니다. 보아스에게 양도했습니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가 됩니다. 엘리멜렉 집안의 이 기업을 사서 물러주면 이 기업은 엘리멜렉 가문의 기업이 됩니다. 거기다가 룻과 결혼을 해서 엘리멜렉 가문의 계보를 이어줘야 합니다. 보아스 입장에서는 손해도 이런 손해가 없습니다. 보아스는 이런 손해를 감수하겠다고 공식적인 석상에서 증언했습니다. 보아스는 남편을 잃고 자식이 없는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한 없는 인애를 베풀었습니다.
11절부터 보시면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들과 장로들의 축복이 등장합니다. 보아스에게 시집 간 룻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라헬과 레아는 야곱의 아내들입니다. 야곱은 라헬과 레아 이들의 여종인 빌하와 실바를 통해 열 두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이 열두 아들들이 훗날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선조가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선택하신 민족이 아니겠습니까? 이 민족의 어머니가 되는 라헬과 레아처럼 된다고 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입니다.
보아스는 유다지파입니다. 유다는 레아가 낳은 아들입니다. 그렇다면 룻이 ‘레아’처럼 될 것이다. 라고만 하면 될 것을 하필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한다고 했겠습니까? 이것은 구원역사의 초점이 철저하게 룻에게 맞춰져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레아와 라헬, 그리고 그들에게 속한 두 명의 여종을 통해 열 두 지파가 생기고 이 열두 지파를 통해 언젠가 메시아가 나올텐데 메시아의 소망이 열 두 지파로 퍼져있었지만 이제 룻이라는 여인에게로 초점이 맞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역사를 일으키실텐데, 이 구원역사가 룻에게 집약되고 룻은 메시아의 어머니가 됩니다. 그 메시아는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을 블레셋 손에서 구한 다윗,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됩니다.
12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보아스에게 상속자를 약속하시는데 보아스의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보아스는 베레스의 후손입니다. 베레스는 유다가 낳은 자식이고 유다는 레아가 네 번째로 낳은 아들입니다. 보아스가 베레스의 후손이기 때문에 베레스의 이름을 예로 들어서 축복을 한 것입니다. 그 집안에 제일 유명하고 알려진 사람처럼 복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38장에는 다말이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유다의 첫째 아들 엘은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해서 죽어버렸습니다. 율법에 따라 둘째가 형수와 결혼해서 자녀를 안겨줘야 하는데 그걸 거절해서 둘째인 오난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셋째인 셀라가 남았지만 유다가 남은 아들을 잃을까봐 율법을 어기고 다말에게 셀라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후사를 잇고 싶어서 매춘여성으로 위장해서 시아버지인 유다와 동침을 해서 유다 집안에 베레스라는 아들이 태어납니다. 제가 많은 내용을 생략해서 설명했지만 어쨌든 다말은 후사가 계속 이어지지 않은 집안에 후사를 이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계보가 이어지도록 한 여인입니다.
다시 룻기로 돌아가면 성문 앞의 백성들과 장로들은 보아스가 다말이 며느리로 들어간 베레스의 집안처럼 되도록 한다고 했습니다. 다말이 며느리로 들어가서 유다의 계보가 이어진 것처럼 이제 룻이 보아스의 집안에 시집을 가서 보아스의 계보가 이어질 것입니다. 이 계보는 구원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낳을 계보이며 인류를 구원할 계보가 될 것입니다. 보아스가 어떻게 해서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까? 보아스가 손해를 감수하고 인애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가 이렇게 손해를 봤기 때문에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 구원 역사를 펼쳐나가셨습니다.
(증명) 우리가 뭔가를 이루려면 손해를 봐야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이 놀러 다니면서 맛있는 거 먹을 때 집에서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게 된 것입니다. 놀 수 있는 시간을 손해 본 것입니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메달리스트들이 예능에도 나오고 광고도 찍고 그렇지 않습니까?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고액의 상금을 받고 유명세를 떨치는 것을 보면 참 존경스럽기도 하고 대단해보이기도 합니다. 왜 그 친구들이 제 또래들에 비해서 그런 엄청난 영광을 누리겠습니까? 저는 그 나이 때 친구들이랑 축구하고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평범한 일상을 보냈는데, 그 친구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통스러운 훈련으로 다 보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대해 보상받는 것입니다. 뭔가를 이루려면 손해를 보는 건 인간사의 당연한 원리입니다. 손해에는 힘이 있습니다. 남들이 누리는 것을 누리지 않고 편안함, 안락함을 희생하면 거기서 엄청난 힘이 나옵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이 손해의 능력을 복음에 사용해주시길 바라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더 나은 나의 모습을 위해서 현재에 끼치는 손해를 기꺼이 감수합니다. 우리는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현재에 끼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손해에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나의 일상을 조금씩 헌신할 때 거기에 엄청난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면 당장 내 인생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냥 여유로운 아침을 손해보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그 기도가 쌓이고 쌓여서 한 영혼이 구원 받고 상처 입었던 영혼이 치유 받고 그러다가 교회가 세워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일학교 사역을 하다보면 정말 어려운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 포기해버리면 그 아이는 받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포기 안하고 끝까지 애정과 관심으로 품어주면 언젠가는 변합니다. 나의 자존심과 마음의 평안함을 손해보고 계속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더 낮추고 때론 맞추다보면 그 아이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기쁨을 체험해보신 분들은 복음의 사역에 계속해서 자신의 자원을 투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손해를 사용하셔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유일하신 아드님인 예수님을 손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것을 손해볼 줄 알아야 합니다. 손해에는 능력이 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발적인 손해를 사용하셔서 믿음의 시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헌신도 담겨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2- 손해를 감수할 때 증인들이 세워진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손해를 감수할 때 증인들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증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9절, 10절, 11절 총 세 번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증인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증인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보아스가 기업을 물러주며 손해를 볼 당시에 그의 주변에는 증인이 있었습니다. 보아스가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주는 일을 할 때 증인들이 그것을 다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을 실천하는 참된 인애의 정신이 실존할 수 있다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장로들과 백성들이 인애를 베푼 보아스를 통해 메시아의 계보가 이어지고 이어진다는 축복을 했을 때 현장에 증인들이 있었습니다. 이 증인들은 이 날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보존해서 후손에게까지 남겨줬을 것입니다.
18절부터 22절까지 보시면 족보가 등장합니다. 보아스가 기업을 무른 이후로 어떻게 다윗에게까지 계보가 이어지는지에 대해 나옵니다. 이 계보를 우리가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날로부터 생긴 수많은 증인들이 보아스가 기업을 무른 사건이 다윗 왕가가 서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증언했고 그런 관점이 룻기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날의 놀라운 증언은 마태복음 1장 5,6절에게까지 연결됩니다. 룻기에 기록된 믿음의 계보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되기까지 증인들이 자신의 증언을 다음 세대에 계속해서 물려준 것입니다.
손해는 증인을 남기는 힘이 있습니다. 손해에는 감동이 있고 교훈이 있습니다. 이 감동과 교훈을 계속해서 남기고자 하는 증인을 만들어냅니다. 복음을 위한 손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손해도 필연적으로 증인을 만들어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헌신과 손해를 사용하셔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여기에 대한 증인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증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내가 손해보더라도 내 곁에 나의 헌신을 지켜본 증인들은 나의 헌신이 하나님 앞에서 절대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그 증인들에 의해 다음세대에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손해 볼 일꾼들이 또 다시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손해 볼 때 증인이 생기고 그 증인들에 의해 다른 복음의 일꾼들이 양성될 것입니다.
(적용) 우리가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지만 이 일이 참 힘이 빠지고 의욕이 생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고 알아달라고 하려니 당연한 일을 생색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할 때 모르는 것 같아도 주변에서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손해 보는 것을 보고 ‘아 저 사람이 저렇게까지 하는 것 보니까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것 같아’, ‘예수님이 정말 나를 위해 죽으신 게 맞구나’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당장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우리가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하면 성경의 원리에 따라 반드시 증인이 생기고 증인들이 이 땅에 참된 복음 사역자들이 있음을 증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때론 우리가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사용하셔서 이 땅에 지금도 구원 역사를 일으키신다는 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 고백을 다른 이들에게 담대히 전하여 우리가 증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교회에 구원 역사에 대한 참된 증인들이 가득할 때 주안에서 형제 자매 된 자매가 서로 위로 받으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복음의 사역을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손해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손해를 각오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해를 사용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해는 증인을 일으키고 증인들의 증언에 의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담대히 손해 보는 우리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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