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하나님 나라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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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수요일 마다 베드로전서를 설교를 했었는데 오늘 갑자기 다른 본문을 들고 나와서 무슨 일인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오는 주일부터 우리 주일학교가 교단의 새로운 공과인 킹덤스토리로 공과공부를 진행합니다. 새로운 공과교육 가이드라인이 수요일에 공과내용으로 설교를 하면 그 내용을 셀장이나 주일학교 교사가 잘 소화를 해서 이 내용으로 모임이나 공과공부 시간에 나누면 됩니다. 그래서 온 교회가 같은 말씀을 묵상하도록 의도 되었습니다.
저도 수요기도회를 인도하는 설교자로서 총회교육원에서 나온 내용에서 제가 본문을 부지런히 연구한 것을 더해서 이 시간이 은혜의 시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교육원에서 나온 킹덤스토리 시리즈는 성경 66권을 3년 동안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살펴봅니다. 오늘부터 수요일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계속 나눠보겠습니다.
혹시나 혹시나 베드로전서 시리즈가 이대로 끝나나 하는 아쉬움이 있으신 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새벽마다 하는 룻기 설교가 한 번 밖에 안 남아서 룻기 끝나면 제가 베드로전서를 반드시 마치겠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전서 설교 듣고 싶으시면 새벽기도 나오시면 됩니다.
자! 어쨌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인가?
우리는 믿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심지어 저도 기도할 때나 설교할 때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아마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이 땅에서의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계속 듣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흔히 ‘죽으면 가는 곳’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면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됩니다. 우리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이 정도 개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광범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했을 때 ‘나라’는 히브리어로 ‘말쿠트’, 헬라어로는 ‘바실레이아’라고 합니다. 말쿠트랑 바실레이아는 둘 다 통치를 의미합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영토와 주권과 국민이 있어야 하는데 고대적인 관점에서는 통치가 있는 곳에 곧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가 가는 곳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불의를 심판하시고 우주만물을 붙드시고 운행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통치는 전 우주를 대상으로 하고 이 넓은 우주에 빈틈없이 들어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는 영역은 바늘구멍 하나만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삶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고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수요 기도회 때마다 성경 곳곳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그전에 성경을 읽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어떤 책을 보면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책을 읽게 됩니다. 이 관점을 소개하는 것이 책의 추천사나 머리말입니다. ‘이 책은 이런 필요에서 쓰여 졌고 이런 이야기를 할 것이다 굉장히 유익하다.’ 이런 식입니다. 예를 들어서 전래동화인 흥부와 놀부이야기를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흥부와 놀부이야기’의 추천사를 쓴다고 치면 어떻게 쓰겠습니까? 흥부와 놀부를 어떤 관점에서 봐야할지 그 주제를 잘 설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부분 전래동화가 그렇듯이 흥부와 놀부의 주제는 권선징악입니다. 선을 권하고 악을 징벌하는게 흥부와 놀부의 주제입니다. 다친 제비를 치료한 흥부는 부자가 되고 제비를 일부러 다치게 한 욕심쟁이 놀부는 벌을 받습니다. 그걸 통해 ‘아 착하게 살아야 복 받고 못되게 살면 벌 받는구나’라는 걸 깨닫습니다. 이렇게 하면 ‘흥부와 놀부’를 잘 읽은 것입니다. 만약에 흥부와 놀부를 보고 ‘주걱으로 뺨 맞으면 아프겠다.’, ‘착한 사람은 자식을 많이 낳는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그건 이 책을 잘못된 관점으로 읽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책이나 글을 읽을 때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성경에도 물론 이런 관점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주제는 무엇일까? 성경을 어떤 관점으로 읽어야 할까? 하고 많은 고민을 했고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주제를 찾는 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성경신학’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성경을 연구하다가 그 주제를 ‘언약’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으신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 이런 식으로 ‘성경에서 약속이 점차 발전되고 있다.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과의 약속이다.’라고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맞습니다. 언약은 성경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언약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성경의 주제가 출애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변화산 사건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께서 별세하실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이 별세가 헬라어로 ‘엑소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영어로 ‘엑소도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출애굽하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모세가 되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출애굽 시키십니다. 이런 관점으로 성경을 읽으면 성경이 출애굽 주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물든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출에덴 시키셨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홍수 심판이라는 큰 바다를 건너게 하셨고, 아브라함을 우상숭배하는 갈대아 우르에서 탈출하게 하셨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하고 포로생활에서 출바벨론 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으로 우리를 출애굽 시키십니다. 그래서 성경의 주제를 때에 따라서 출애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가장 최근 들어서 연구되는 부분이 성경의 주제가 성전이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에덴성전을 시작으로 광야의 성막, 솔로몬 성전, 에스겔 성전, 스룹바벨 성전, 성전 되신 예수님 그리고 성도가 성전으로 세워집니다. 인류가 잃어버린 에덴성전을 회복해 나가는 이야기가 성경의 주제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성전이야기가 성경의 주제가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주제로 역동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면 수요기도회 때마다 어떻게 성경을 읽을 것이냐 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로 그 관점으로 성경을 읽으려고 합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로 그분의 우주적인 나라를 만드셨습니다. 인류의 타락으로 인해서 그 나라를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로 다시 그 나라가 회복되었습니다. 이제 이 나라는 더 확장되고 우리 삶에 침투하고 역사합니다. 그리고 주님 오시는 날에 완성됩니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수요일 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묵상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의 통치와 회복과 일하심을 경험하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알려주는 책이다.
자! 이제 성경을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으로 읽을 것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볼 두 번째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를 알려주는 책은 성경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까 실컷 성경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펴본다고 해놓고서는 다시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쌩뚱맞긴 합니다. 하지만 확실히 짚고 넘어 가야 합니다.
종교마다 다 어떤 목적지가 다 있습니다. 불교는 극락왕생이고 이슬람도 죽으면 자기 나름대로의 낙원이 있어서 거기로 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기들 나름대로의 천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신자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기독교도 믿고 죽으면 자기들 나라에 가고 불교도 믿고 죽으면 자기들 나라에가고 다 비슷비슷하네? 똑같네? 이렇게 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랑 그런 걸 비교를 하나 말도 안 된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 믿음의 뿌리 든든하신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불신자나 초신자 입장에서는 각자 믿고 싶은 것 믿고 각자 좋은 곳으로 가면 그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이 “집사님! 다른 것도 믿으면 좋은 데로 간다는데요? 우리랑 뭐가 달라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정확하게 오류 없이 설명하는 책은 오직 성경책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을 시작으로 승천하시기 전까지 계속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셨고 사도들도 이 하나님 나라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이 하나님 나라 이야기들을 문서로 기록해서 성경으로 남겼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 이야기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다른 종교에서 어디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하는 건 그 사람들만의 생각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온 하나님 나라를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끔 가다가 영혼이 잠깐 육신을 떠나서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다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어릴 적에 교회에서 보내줘서 수련회를 다녀왔는데 천국과 지옥을 갔다 온 분이 간증을 했습니다. 얼마나 간증을 재밌게 하셨는지 20년 전에 들은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이 땅에서 믿음 생활 잘한 사람은 천국에 갔더니 엄청 커다란 집에 살고 있고 집이 너무 커서 헬리콥터 타고 돌아다닌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 믿음 생활을 잘 못해서 어디 허름한데 초가집에 살고 있고 천국에 과일 나무에서 열매를 하나 따다가 먹었는데 한 입 베어 물면 사과 맛이 나고 한 입 베어불면 딸기 맛이 나고 뭐 이런 식으로 간증을 하셨는데 얼마나 재미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 이후에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는데 지옥에도 갔다 오셨다고 그럽니다. 이 땅에 있을 때 예수님 안 믿고 죄 지은 사람들이 불구덩이에서 고통 당하고 후회하고 울고 불고 너희는 예수님 잘 믿어야 한다고 그랬답니다. 예수님이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안타까워서 울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예수님은 지옥에 있는 사람을 안타까워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지옥에 있는 사람을 안타까워하면 신학적으로 굉장히 큰 문제가 생깁니다. 제가 지금 사역자니까 그걸 알지 20년 전에 그걸 알았겠습니까? 이렇게 기가 막힌 이야기들을 하고 막판에는 무슨 지옥에서 울리는 비명소리를 녹음을 해왔다고 합니다. 녹음한 걸 트니까 사람들 비명소리가 들리고 거기 있던 초등학생들이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다들 충격과 공포에 빠져있는데 그 와중에 호기심이 많던 저는 “목사님! 영혼만 빠져나가서 지옥에 탐방 갔다 왔는데 녹음기는 어떻게 들고 간 거예요?” 이런 질문을 하고 있고 목사님은 대답을 제대로 못해주셨습니다. 아마 지금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많이 당황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간증을 하신 분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천국과 지옥이 진짜 있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알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성경으로만 하나님의 나라를 알 수 있습니다. 유튜브 들어가보면 스님들도 극락을 보고 오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걸 진짜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환상으로 뭐 보고 돌아오는 건 진리가 될 수 없고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천국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 이해하고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감동, 영감이 있는 유일한 책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주일학교 선생님도 계시지만 주일에 아이들에게 가르칠 핵심적인 내용이 이겁니다. 성경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합니다. 다른 종교나 어떤 종교적 체험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그저 죽고 난 뒤에 가는 어떤 곳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믿는 신은 그 영역에만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 이 세상과 우리 삶을 다스리시는 분이고 그분의 통치를 통해 우리의 삶에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사후 천국만 말하지 않습니다. 현재적인 천국을 말하고 종말론적인 천국을 말씀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살아있습니다. 다른 종교의 하나님나라, 천국은 죽었습니다. 환상에만 있습니다. 그 실체가 없습니다.
3-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산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고 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말하면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백성들이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교단은 직영신학교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다른 교단은 직영신학교가 몇 개씩 있기도 한데 우리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천안에 딱 하나 고려신학대학원 밖에 없습니다. 수도권이나 충청도 출신 학생들이 신대원에 입학하면 처음 놀래는 것이 바로 사투리입니다. 여기는 분명 천안인데 신대원에 들어오면 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신대 신학과 출신인 교수님 중에서도 20년을 천안에 사셨는데 경상도 사투리를 쓰십니다. 그래서 신대원의 별명이 천안 안에 경상도였습니다. 우리가 죄악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 때 우리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보시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7절에 그 결과를 설명하는데, 성경이 만들어 내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곳이 곧 어디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분명히 죄악 가득한 세상 가운데지만 성경이 만들어낸 하나님의 사람들이 계속 생긴다면 말씀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넓혀나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실천하는 것은 개인 신앙의 문제를 뛰어넘어선 문제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나가면 우리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 각자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될 때 하나님 나라가 이 죄악 된 세상에 침투하고 그곳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 하나가 올바로 서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사탄의 나라를 이기고 점령하는 문제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나만 좋은 나라 낙원으로 들어가 버리면 끝입니다.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내가 변화되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사람이 삶이 끝날 때 천국에 가는 것이고 종말에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하나님 나라와 죽어서 가는 천국과 종말에 이뤄질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론
설교를 맺으려 합니다. 사랑하는 당평교회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성경을 가까이 하여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될 때 우리가 있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가 더욱 확장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다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