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능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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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 성전에 나아오심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함께 천국에 갑시다. 천국에 가려면 무엇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알고 계신가요?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심리학자들이 아기들을 자세히 연구해본 결과 이런 발표를 했습니다. 태어나는 아이들 중 대략 40%는 순한 천성을 가지고 태어나고, 10%는 까다로운 천성을 가지고 태어나고, 그리고 15%는 느린 천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보시니 사람의 천성이 다른가요, 같은가요? 다른 정도가 아니고 각양각색입니다. 심지어 같은 엄마 배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도 같아요, 달라요? 달라요. 사람들의 천성과 은사가 다 같다면 어떨지요?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 사람들이 많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나무들이 오직 사과나무 밖에 없다면, 무엇하러 사과나무를 수도 없이 기르나요. 적당히 먹을 만큼만 심어 기르면 되겠지요. 사과만 해도 온갖 종류의 사과나무들이 있기에 모든 종류가 가치있고 귀합니다. 하나님은 원래 다양한 것을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세상을 다채롭게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나 혼자 하는 것 좋아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인격이 서로 다른 세 인격이세요. 그런데 한 마음 한 뜻으로 연합하신 분들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삼위일체를 잘 믿지를 못합니다. 그런 예를 이 세상에서 본 적이 없거든요. 이 세상에서는 부부 지간에도 서로 안 맞아서 불화하는 경우가 많고, 한솥밥 먹고 자라난 형제 자매들도 서로 죽이고 살리고 하는 세상이다보니 그렇습니다. 여러 사람이 하나가 되려면 강력한 독재자가 강제로, 군대식으로 잡아 끌고 가는 예 밖에 본적이 없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분들이시지만, 동시에 한 하나님으로 연합된 분이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 10:30)
예수님께서는 이 신비로운 하나됨을 우리에게 모본으로 보이시고, 나아가 이 일을 가능케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그저 서로 다른 천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악으로 인해 뒤틀리고 망가진 천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다보니 그저 이 꽃은 빨강꽃, 저 꽃은 노랑꽃이라고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씨앗부터가 독초요, 가라지인 경우들이 있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죄로 인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독사의 자식이요, 본래가 가라지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어떤 천성을 가진 사람이었나요? 막달라 마리아의 천성은 어떤 천성이었나요? 그들 모두가 본래 죄악의 천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다 귀한 영혼들입니다만,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유전적으로 타고난 천성은 죄인의 천성입니다.
금왕교회로 이사오던 날, 저는 이전에 있던 교회에서의 마지막 봉사를 청주교도소에서 했습니다. 침례 받은 교인 중 한 명이 범죄를 저질러서 교도소에 수감됐어요. 그 사람이 제게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나 해서 그 부탁으로 물건을 전달해주고 나왔는데요. 높은 담벼락에 철조망이 쳐져있고, 분위기가 서늘한 교도소 경내를 들어갔다 나오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부모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그는 젊은 대학생 청년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요. 이 사람도 저희 아이들처럼 마냥 귀엽고 예뻤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도 다녔지만 결국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범죄를 저질렀고 교도소에 수감된 것입니다. 이 사람이 물로만 침례를 받는데 그치지 않고, 성령의 침례를 받아 온전히 거듭났다면 이런 죄를 짓지 않았을텐데... 침례로만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침례를 받았다면 이러한 고난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다 할 때, 이 구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재림의 그날에 영광으로 가득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인가요? 그러나 그것은 이 땅에서 구원받은 결과로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들어가려면 우리 모두는 먼저 조상으로부터 유전 받은 천성으로부터 구원을 얻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그분의 은혜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저희 아이들이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로부터 구원 얻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천성이 까칠하고 예민한 스타일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예민하시고, 저희 외할머니가 예민하십니다. 그런데 예민한 천성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보니까 살기가 힘들더라구요.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합니다. 안 받아도 될 스트레스를 스스로 많이 받습니다. 죗 된 천성을 가지고, 죄가 가득한 환경에서 자라나다보면, 마치 척박한 땅에서 아무렇게나 잔뜩 자라나는 가시풀처럼 되어 버립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웃들 모두가 이러한 죄로 기울어진 천성으로부터, 그리고 죄가 가득한 이 세상으로부터 구원 얻으시길 축원드립니다. 그 거칠었던 베드로는 구원 얻었습니다.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천성으로부터 구원을 얻었습니다. 어떻게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말입니다. 여기에 구원의 희망이 있고 비결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2-15)
바울은 스스로를 가리켜 죄인 중에 괴수라고 칭했습니다. 그는 본래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 3:6)였습니다. 자신이 속한 교단, 유대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감히 그 누구도 그가 속한 교단과 그 교단의 교리와 나아가 본인의 신앙에 대하여 그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분의 품성과 십자가의 희생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배웠던 구약의 계명과 율법들이 사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의로움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알면 알수록 우리가 속절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임을 알려줄 뿐입니다. 천성적으로 죄로 기울어져서, 잠시 피어났다가 사라져버리는 들풀과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 우리임을 알려줄 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처지에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다만 장대에 달리신 구리뱀,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면 살려주시겠다 약속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 평강의 왕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길 축원 드립니다. 마음속에 사탄 마귀가 세상을 바라보게 할 때, 눈을 들어 예수를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사탄이 과거를 바라보게 할 때, 예수를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사탄이 현실을 바라보게 할 때, 예수를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사탄의 목적은 오직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매순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되었든지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으로부터 떼어낼 수만 있다면 그는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물론 일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운전도 하고, TV나 유튜브도 봐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을 할 때, 예수님께 쉼 없이 기도하며 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무언가를 기도하며 하는 것과 기도를 멈추고 하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이것은 마치 뜨거운 냄비를 잡아 들어야 하는데 맨손으로 하느냐 장갑을 끼고 하느냐와 같은 차이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며 무슨 일을 하면 그것은 나의 천성, 나의 힘, 나의 지혜로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렵고, 힘들고, 엄두도 안 나는 일을 예수님께 기도하며 하면 두꺼운 장갑을 끼고 불덩어리를 만지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괜찮은 것입니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그 어떠한 불가능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가장 어려운 일은 죄악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렘 13:23)
제가 본래는 워낙 예민해서 목회를 포기해야겠다고 여러 번 수도 없이 고민했던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잘 보이고, 이 세상에서 저만 제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되고, 교회든, 목사든, 정부든, 심지어 가족이든, 다 본래 나아가야 할 길에서 어긋났고 오직 나만이 이 모든 문제들을 볼 줄 아는 은사가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제가 애초에 그리스도인이 된 계기는 사실 우리 교회의 교리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지난 화요일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목회자의 자녀로 자라며 강제적으로 지켜야만 했던 온갖 율법들에 질렸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조금만 더 크면 난 내 마음대로 살겠다. 예수 안 믿는다라고 마음을 굳게 먹었었습니다. 청소년기에 저는 누가 바늘로 찔러도 눈물 한방울 안 흘릴만큼 마음이 굳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리스도인이 된 계기는 예수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은혜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주시는 사랑,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보여주신 그 사랑이 제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셔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 재림교인으로 살겠다 결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도 모르게 ‘왜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신앙하지 못할까?’ 라고 생각하며 제 가시풀 같은 옛사람이 고개를 들어 주변 사람들을 판단하고 나아가 제 인생을 망가뜨리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의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마치 돌짝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예수님을 만나 싹을 틔우긴 했는데, 뿌리를 더 깊이 내리지 못하고, 성장하기를 멈추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로, 하나님은 그런 저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저에게 매순간 예수님을 의지하고, 매일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누군가와 만나 대화를 나눌 때 그를 향한 안 좋은 감정이 고개를 들거든, 예수님께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울한 생각, 절망적인 생각, 분노의 생각 등이 떠오를 때, 예수님께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눈에 보이게 우리에게 나타나 칼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을 통해 공격합니다. 그것은 더 위험하고 더 잔인한 공격입니다. 칼 든 강도는 집 문을 걸어잠그면 못 들어오게 할 수 있습니다. 쇠로 된 갑옷을 입으면 그의 공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공격합니다. 그는 심지어 성경과 예언의신을 가지고도 우리의 정신을 공격하고 시험하는 존재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교회에 와서 성도들을 만날 때 분노가 치밀어오른다면, 그 모든 감정이 사단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이 복음사업에 우리가 동참할 때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과 이 신앙공동체를 무너뜨리고자 다양한 술수를 쓰는 마귀가 우리 모두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는 그 일을 위해 낮과 밤도 없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합니다. 성도 여러분의 생각을 지키시길 축원 드립니다. 끊임없는 기도로 모든 악한 생각들을 이겨내시길 축원 드립니다. 아바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시고, 성령을 끊임없이 초청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이 배는 사람의 힘으로 가는 배가 아닙니다. 바람의 힘으로 가는 배입니다. 성령을 끊임없이 구하시며 ‘잠잠하라 고요하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함께 구해주시길 바라며 말씀 마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