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8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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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446 [주 음성 외에는]
하나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늘 변함없이 우리를 붙들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연약하고 넘어져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 감사합니다. 매번 실패하고 넘어지는 나에게 실망하고 낙심하여도 우리를 향한 은혜를 거두지 않으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며 그 사랑 안에 충만히 거하게 하시고, 그 사랑을 늘 높이고 자랑하며 찬양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룻2:1-13
오늘 본문의 말씀은 룻이 보아스를 만나는 장면이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모아 지방에서 돌아온 이방 여인이다. 비록 이방여인이지만, 룻 1:16 의 말씀처럼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니이 나의 하나님이시 되신다"는 신앙을 고백한 자이다. 이스라엘 백성과 동일한 여호와 신앙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 돼지만도 못하게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룻은 정말 은혜를 입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면 누구든 그분의 자녀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오늘 본문은 드러내고 있다.
1절 말씀은 보아스를 소개하는 구절로 시작한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이다. 또한 그를 가리켜 “유력한 자"라고 부른다. 이 말은 보아스가 “큰 재산을 소유한 부자" 라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유력한 자" 라는 표현은 “보아스" 라는 이름의 의미와도 일치한다. 히브리어 “보아스"는 “그에게 힘이 있다" 라는 의미인데, 당시 사회적 맥락으로 “힘이 있다"는 것은 곧 돈이 많음을 의미했다. 실제로 오늘 본문과 룻기 전체에서 보아스는 엄청난 부자로서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어느 날 모압 여인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말한다. 2절을 보시면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그러자 시어머니 나오미는 “내 딸아 갈지어다" 라고 친근하게 대답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밭에서 곡식을 벨 때 다 거두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두라고 명하셨다. 물론 이방여인 룻이 이러한 율법을 정확히 알고 나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시어머니와 함께 가난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는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그래서 밭으로 나가 이삭을 줍기 시작한다.
3절을 보면,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게 되었음을 말씀한다. “우연히" 누구의 밭에 이르렀다 말씀하는가? “우연히” 보아스의 밭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연" 이라는 개념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예측하지 못했던, 예상조차 하지 않았던, 어떤 인과관계도 보이지 않는 현상을 가리켜 “우연"이라고 말한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우리에게는 “우연"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는 “우연" 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하나님 모르게 뭔가 일어날 수 있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을 그분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대로 섭리하신다. 그분의 섭리를 완전히 깨닫지 못하는 우리 눈에는 “우연"처럼 보일 뿐이다.
거기다 공교롭게도 4절 말씀에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으로부터 자기 밭에 도착했음을 말씀한다. 그것도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그 순간에 말이다. 여기서도 동일하다. 보아스가 마침 자기 밭에 도착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다. 보아스나 룻이나 자기들은 정말 우연히 그곳에 도착한 것이 맞다.
이때 보아스에게 룻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에 자기 사환에게 “이는 누구의 소녀냐" 라고 묻는다. 그러자 사환이 룻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6-7절 말씀을 보면,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소녀인데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사환의 설명을 들은 보아스는 룻에게 “내 딸아 들으라" 라고 친근하게 말한다. 이삭을 주으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자신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까지 말한다. 또 소년들에게 룻을 건들지 못하도록 조치하였고, 이삭을 줍다가 목이 마를 때는 소년들이 길어온 물을 마시라는 호의까지 베푼다.
이에 룻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함께 10절을 읽어보자.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지금 룻은 보아스가 베푸는 호의에 극도로 감격하면서 그에게 감사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인으로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는 룻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또 받은 호의에 감격하며 감사해하는 표정을 한번 상상해보라. 그간 시어머니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큰 은혜를 입어 감사하며 기뻐하는 룻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리지 않는가?
10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하나님의 원수되었던, 그러나 베풀어주시는 측량할 수 없는 큰 은혜 앞에 선 우리 죄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하나님, 나는 추악한 죄인이거늘 어찌하여 이 같은 나에게 은혜를 베푸십니까? 나는 도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이거늘, 어찌하여 나를 이와 같이 사랑해 주십니까" 이것이 우리의 합당한 반응이 아니겠는가.
보아스 앞에 얼굴을 대고 엎드린 룻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보아스는 오늘 본문에서 “유력한 자" 라고 소개된다. 자신의 힘으로 이방여인에게 큰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룻은 보아스의 은혜를 입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도 보아스는 룻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이는 보아스의 전적이고 일방적인 관심이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전능자로서 우리에게 무한한 은혜를 베푸시는 위치에 계시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입기 위해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뭔가 조건을 달성하거나 내가 뭔가 업적을 이루거나 내쪽에서 은혜를 입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일방적이고도 무조건적 은혜를 받게 되었다.
유한한 우리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우연처럼 이루어진 것 같다. 우연히 교회다니던 친구를 통해 복음을 전해듣게 된 것 같고, 우연히 지나며 들었던 말씀이 어느 날 부터 내 마음을 깨부수기 시작하였으며, 우연히 받았던 기도가 내 심령을 쪼개기 시작하였고, 우연히 집어들었던 전도지가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우연히 이웃 따라 찾아왔던 교회에서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된 것 같다. 우리 눈에는 모든 것이 우연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전부터 모든 상황을 섭리하셔서 우리를 그분의 곁으로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 없이 비참하게 살아왔던 우리에게 어느날부터 그분의 무조건적이고 전적인 은혜를 쏟아 붓고 계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마치 본문 속의 룻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우리의 얼굴을 땅에 대고 그분을 경배해야 정상이다. “나는 자격 없는 비참한 죄인이거늘, 어찌하여 주께서 나에게 이러한 은혜를 베푸십니까" 라고 엎드려지는 것이 우리의 지당한 반응이다.
양문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든 일상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아래에 있음을 믿는가? 그렇다면 내 일상 속에서 “우연"처럼 진행되던 순간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우리 일상의 순간들을 섭리하셔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자 나의 모든 것들을 올려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일상의 모든 순간들에 섭리하셔서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반드시 이루어가실 것이다. 어떤 절망적 상황에 처하더라도 본문의 룻처럼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며 나아갈 때, 12절 보아스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한 일에 넉넉히 보답해 주시고, 그분의 보호를 받으러 나오는 우리 모두에게 온전한 상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오늘 하루도 이러한 주님을 더욱 신뢰하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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