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1:5-16
날짜: 4/15/2007 주일 새벽
본문: 열왕기상 21:5-16
제목: 불신앙은 죄악을 저지르도록 합니다.
주제:
지난 시간에는 신앙이라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첫째로 신앙은 눈에 좋고 편리한 것을 탐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둘째로 신앙은 눈 앞에 있는 이익 앞에서 NO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셋째로 신앙은 하나님의 뜻에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불신앙이 가져다 주는 범죄를 살펴 보기를 바랍니다.
불신앙의 사람들이 어떠한 범죄에 빠질 수 있는지를 살피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시는 이 새벽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불신앙은 권력을 휘두르려고 합니다.
7절 “왕이 이제는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왕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데 왕에게 속한 백성 중에 당신이 가지기를 원하는 것을 거절하는 자가 있다는 말입니까? 만일 당신이 왕의 체통을 유지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즉 나에게 단지 당신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곧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겠습니다.
옳건 그르건 그것은 곧 당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도 비용없이 거저 말입니다."
이세벨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이방여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권력이 주어지니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망정 권력을 휘두르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신앙은 주어진 권력을 휘두르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에게는 이러한 유혹이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크고 작은 권력을 주실 것입니다.
권력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크고 작은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잘 관리할 수도 있고, 그것을 불의하게 휘두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선택은 바로 나에게 달린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내 욕심대로 사용하느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느냐가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목적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까지의 과정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불신앙은 거짓되게 하나님을 사용하려 합니다.
19절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저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 하였더라”
아까도 말씀 드렸습니다.
이세벨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도 하나님의 이름을 악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을 보십시오.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불경죄로 돌로 쳐 죽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대적들도 성경에 정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이야기 한다고 모두 하나님의 사람은 아닙니다.
각종 이단들…심지어 불교 비슷한 종교에서도…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말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진리를 바르게 보고 경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거짓을 말하라는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신앙의 행동입니다.
어떤 경우에고 거짓말은 옳지 않습니다.
더구나 누군가를 음해하기 위한 거짓이라면… 더 더욱 금해야 합니다.
더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거짓을 저지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 급하면…나 하나님! 믿는 사람이야! 이런 식의 말을 남용하여… 자기의 유익을 취하려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해 봤자… 요즘은 본전도 못 찾습니다.
“믿는 놈들이 더 하더라… 전 그래서 절대로 목사인데요! 라는 소리 안 합니다.”
그러므로 진실하게 말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불신앙은 죄의 유혹에 동조합니다.
이세벨이 남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다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결과적으로 어떻게 했습니까?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그 땅을 강제로 빼앗았던 것입니다.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이정도되면… 아합왕…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약속의 백성이라면… 내가 이러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하면서 옷을 찢고 땅을 치며 회개했어야만 하였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비록 시작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빨리 돌아설 수 있어야 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다윗왕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였습니다.
간통죄와 살인교사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그 때 내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나이다 라고 말하며 즉시 회개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회개하는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죽이지 아니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16절 “아합이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그리고 내려갔더라”
그는 은근히 좋아하며… 강팍하게 그 포도원을 취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범죄할 수 있습니다.
의도적이던, 또는 무의식적이던 또는 피치못할 상황에서 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로 돌아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신앙을 고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회개하며 돌아섬으로 주님의 용서를 받으시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봇의 죽음과 아합의 죽음은 모습은 비슷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름.
나봇의 죽음이 순교라면 아합의 죽음은 심판임.
아합에게 주신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히 그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영원한 지옥을 의미함.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