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장 17-30절 성찬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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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 views은혜의 방편 중 하나인 성찬을 제대로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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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는 절대로 세속주의, 자본주의, 성공주의, 황금만능주의와 같은 사상들이 들어와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의 사상들이 교회안에 너무나 많이 들어와 있음을 우리가 봅니다.
대표적으로 대형교회와 소형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것들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바라볼 때 대형교회는 좋은교회, 작은 교회는 안 좋은 교회, 대형교회는 가고 싶은 교회, 작은 교회는 가고 싶지 않는 교회, 대형교회 담임목사님은 목회에 성공한 목사, 작은 교회는 목회에 실패한 목사... 이런 자본주의 논리로 교회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작은 교회들은 우리 교회도 대형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아니면 내가 직접 대형교회에 가거나, 만약 내가 가지 못하면 자녀들만이라도 대형교회에 보내기를 원합니다.
교회의 기준을 세속주의, 자본주의, 성공주의, 황금만능주의에 근거해서 바라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 대형교회는 좋은 교회이고, 작은 교회는 좋지 않은 교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좋은 교회의 기준은 교회가 얼마냐 크냐? 성도가 얼마나 많냐? 어떤 좋은 프로그램들을 갖추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좋은 교회의 기준은 그 교회에 얼마나 올바른 은혜의 방편이 시행되고 있느냐가 기준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88문
질문 :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혜택을 전달하시는 외적 방편은 무엇입니까?
답 :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혜택을 전달하는 외적인 방편은 특별히 말씀과 성례와 기도입니다.
은혜의 방편 : 말씀, 성례(세례,성찬), 기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는 예배때 올바른 말씀이 선포가 되는지, 올바른 성례가 시행되는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좋은 교회와 안 좋은 교회가 구별됩니다. 절대로 교회의 크기, 성도의 숫자, 교회가 가진 프로그램이 교회의 좋고 나쁨을 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도 커졌으면 좋겠다. 우리 자녀는 큰 교회에서 신앙생활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성경과 전혀 무관한 세상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예소망교회에 올바른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가? 올바른 성례가 시행되고 있는가? 우리의 힘으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세워져가는 교회인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 기준으로 보았을 때 우리 예소망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교회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흥회 전까지 은혜의 방편 중 하나인 말씀에 대한 설교 여러번 들었습니다.
은혜의 방편 : 말씀
1.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자는 신앙고백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대언해야 한다.
설교자는 강대상에서 자기의 말을 하는 자가 아닙니다. 설교자의 역할을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후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설교자는 믿음의 주관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오직 말씀의 종이요. 주인이 시킨대로 그대로 행하는 청지기이며, 설교자는 강대상에서 예수님이 값비싼 진주임을, 생명의 떡이심을, 하늘의 광채이심을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 한분만으로 기뻐할 수 있도록 섬기는 자라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듣는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2. 22년 2월 13일 주일 말씀 “말씀을 듣는 자세”
1. 함께 모일 때 은혜를 받습니다.
2. 사모하며 기다릴 때 은혜를 받습니다.
3. 겸손할 때 은혜를 받습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은혜를 받습니다.
이렇게 올바른 말씀을 선포하고, 올바르게 말씀을 받을 때 은혜의 방편인 말씀이 잘 이행되는 것인데, 우리 예소망교회에는 이 은혜의 방편이 잘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최근에 한 청년과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넬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2월 13일에 있었던 주일 말씀 “말씀을 듣는 자세”에서 받았던 은혜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 예소망교회에 올바른 복음이 선포되고, 말씀을 올바르게 받으니, 은혜가 있고, 깨달음이 있고, 그로 인해 믿음의 성장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렇기에 저는 예소망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교회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찬을 통해 은혜를 누리는 방법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말씀 뿐만 아니라 성찬식에도 올바르게 참여하여 하나님께 칭찬받는 예소망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방편 두번째 : 성찬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는 올바른 방법은 먼저 성찬에 대한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예수님은 유월절을 기념하시면서 성찬을 재정하셨습니다.
유월절이 무엇입니까?
[출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유월절 사건은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은 성령이 유월하셔서 집에 재앙을 내리지 않은 사건입니다. 그리고 문설주에 바른 피는 바로 바로 어린 양의 피였습니다. 유월절에 사용된 어린 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고전5:7]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예수님은 이것을 기억하도록 하시기 위해 유월절에 성찬식을 재정하시면서 이렇게 하라고 몸소 보여주십니다.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은 이것은 내 몸이니라, 이것은 내 피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자신의 죽음과 연결하십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할 때 은혜를 생각하며 성찬식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찬식에 참여할 때 분병되는 떡과 분잔되는 포도주를 보면서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1) 성육신의 은혜
먼저 분병되는 떡을 보면서 우리의 창조주 되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죽을 것을 다 아시면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피조물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2) 십자가의 은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겟세마네에서 이렇게 기도를 하셨습니다.
[눅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우리와 같은 인간이신 예수님은 그 십자가지기 전날 밤 그 사명이 너무나 두려워 그 잔을 옮겨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때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내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하며,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3) 버림받음의 은혜
[마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 때문에 소리 지르신 것이 아닙니다. 이 고통은 육체의 아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음의 고통입니다.
이 고통의 부르짖음은 예수님 자신이 버림받음으로써 그분이 사랑하시는 인류가 구원받게 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4) 보혈의 은혜
우리는 또한 분잔되는 그 포도주를 보면서 유월절에 문설주에 발린 어린 양의 피를 통해 구원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주님이 이 흘리신 이 보혈로 인해 구원받을 수 없던 내가 구원을 받았구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던 자가 이 보혈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구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던 자가 이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이 은혜를 생각하며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모습들이죠.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만 성찬을 참여한다면 우리는 사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반쪽밖에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성찬재정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으로 재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성찬식이 진행 될 때 한국교회 분위기는 굉장히 엄숙하고, 무겁습니다. 성찬을 집례하는 자들도 흰색 장갑을 끼고 마치 장례식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성찬시에 연주되는 찬양들도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 달려 죽은 십자가 같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관련된 찬양들을 주로 연주합니다.
그러나 성찬은 장례식과 관련된 단어가 아닙니다.
우리말로는 거룩한 식사
영어로는 The Lord’s Supper(왕이신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식사)
헬라어로는 ευχαριστια(유카리스티아) 감사하는 마음
저는 성찬식을 할 때 성육하신 그리스도의 은혜, 우리를 위해 흘리신 보혈에 감사하는 것 역시 너무나 귀한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한국교회가 자주 놓치고 있는 주의 만찬, 식사라는 뜻에서 오는 성찬의 은혜를 한 가지 더 살펴보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성찬을 십자가로 바라본다면 감사와 은혜
성찬을 식사로 바라본다면 기대와 소망
우리가 성찬을 십자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감사와 은혜라는 측면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찬을 식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기대와 소망이라는 측면도 함께 누릴 수 있게 됩니다.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성찬을 재정하시다가 갑자기 하나님 나라에 너희가 오기 전까지 앞으로는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십자가라는 관점으로만 보면 이해할 수 없지만, 성찬을 식사라는 관점으로 보면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천국에서 우리를 맞이할 잔치를 준비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천국에 와서 잔치에 참여하기 전까지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준비하신 잔치는 무슨 잔치입니까? 바로 혼인 잔치입니다. 신랑되시는 예수님과 신부되는 우리가, 지금은 비록 떨어져 있지만 언젠가 본향에가서 우리의 신랑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을 기대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성찬을 십자가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엄숙하고 무겁고, 죽은 이를 추모하는 것이 되겠지만, 우리가 성찬을 주님께서 주시는 만찬의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는 우리가 갈 본향 천국에서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과 먹고 마시면서 즐기는 영적인 잔치의 은혜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송구영신예배때 너무 기뻤습니다. 원래 송구영신예배 때 성찬식을 진행하지 않기록 계획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찬식을 진행하기로 당회에서 결정이 났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너무 기대가 되었습니다.
성찬식 때 분병되는 그 떡과 분잔되는 그 포도주를 보면서 내가 가게 될 본향에서 나의 신랑되시는 예수님과 혼인 잔치를 열어 그 곳에서 먹고 마시며 즐기게 될 것을 상상하니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습니다. 그리고 성찬식에 참여하였을 때 그 기쁨이 너무 커서 당장 일어나서 춤이라도 추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찬을 재정하신 진정한 의미이며,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방편입니다.
성도님들은 성찬에 참여하실 때 어떤 마음과 어떤 기대로 성찬에 참여하시나요?
교회는 성찬식이 있는 2주전이나 한 주전에 주보에 광고를 실습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님들이 이번주에 성찬식을 하는 지도 모르는 상태로 주일에 교회에 옵니다. 그리고 어?! 오늘 성찬식하네? 그리고 아무 뜻도, 기대도, 의미도 없이, 주변 사람들이 애통해하고 슬퍼하니 그 감정에 휩쓸려서 어영부영 성찬식에 참여합니다.
하나님은 성찬을 통해 은혜를 주시기 원하는데, 그 은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면서 우리 교회에 뭐가 없어서, 뭐가 부족해서, 그렇다 판단하고 모든 것들이 갖추어져 있는 대형교회를 가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신적이 없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88문
질문 :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혜택을 전달하시는 외적 방편(은혜의 방편)은 무엇입니까?
답 :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혜택을 전달하는 외적인 방편은 특별히 말씀과 성례와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자훈련을 통해서, 가정 교회를 통해서, 토요학교를 통해서, 좋은 프로그램과 전문성을 가진 교역자의 능력을 통해서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례와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한지 3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목사 탓하고 교회 탓하고, 교인들 탓하는 성도들 중에서 이 은혜의 방편을 제대로 누리는 성도를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 은혜의 방편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니 자꾸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다른 곳에 시선을 두다보니 세상의 사상들을 교회에 가지고 들어와 그것을 통해 은혜를 받으려는 것이죠.
그곳은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저 인간 눈에만 좋게 보이는 교회의 껍데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에 무엇입니까?
1. 올바른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가 있고,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성도가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2. 성찬에 참여하여 성육신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 버림받음의 은혜, 보혈의 은혜를 누리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3. 성찬에 참여하여 우리 신랑되신 예수님과의 혼인 잔치를 기대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예소망교회가 다른 것에 시선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방편에 관심을 두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들어쓰시는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