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레위기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86 views
Notes
Transcript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거룩과 순종에서 나온다.
[서론]
여러분 소개팅이나 미팅 해보셨나요?
저는 대학교 1학년때 한주에 2번씩은 미팅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주선자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항상 주선자에게 확인하는 게 있었습니다.
이번에 진짜 괜찮은 애들 나오는거 맞냐?
그러면 주선자는 100프로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주선자를 믿고 나가는 거죠.
때로는 실패를 많이 경험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주선자의 말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미팅에서도 주선자가 중요합니다.
요즘은 결혼할 남녀를 만나게 해주는 앱이나 회사들도 많습니다.
그렇게 도와주는 사람들을 커플매니저라고 합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커플 매니저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그 다리 역할을 하도록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을 제사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약의 제사장을 마치 목회자만 가르키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제사장이 평생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목회자도 그렇기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절대 제사장을 목회자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을 좀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1-7장까지 구약의 제사법에 대해서 오랜 시간 다루었습니다.
이제 8장부터는 제사장의 위임식이 등장합니다.
위임식은 제사장 임명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최초의 제사장이 되는 순간인 것입니다.
제사장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백성들의 만남을 잘 주선해야 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조그마한 부정이나 죄가 있어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죽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사장이 대신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제사장은 백성들의 대표인 셈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백성들의 대표로서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철저히 되어 있어야 합니다.
[본론]
그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장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첫번째, 제사장은 거룩한 일꾼입니다.
23,24절입니다.
23   모세는 그 제물을 잡고, 그 피를 얼마 받아서, 아론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발랐다.
24   모세는 또 아론의 아들들을 오게 하여, 그 피를 오른쪽 귓불 끝과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발랐다. 모세는 남은 피를 제단 둘레에 뿌린 다음에,
앞서 제사장이 목욕을 하고 제사장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관유라고 불리는 거룩한 기름을 부었습니다.
성막 기물들에게도 기름을 발라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도구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제사를 드립니다.
먼저, 속죄제를 드리고, 그 다음 번제를 드립니다.
자신들의 죄를 없애고 깨끗하게 한 후, 주님께 헌신의 마음으로 번제를 드리는 것이죠.
그 다음에 드리는 마지막 제사가 바로 화목제입니다.
제사장의 위임식에 나온 화목제는 일반 화목제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통 화목제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숫양을 잡아 그 피를 신체 일부에 바르고 있습니다.
오른쪽 귓볼, 오른쪽 엄지손가락,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릅니다.
이 부분들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부분을 통해 전체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체의 대표적인 몇군데에 피를 발라 몸 전체가 깨끗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에 더러워진 것을 깨끗하게 하는 효력이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표시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소유된 일꾼이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내꺼로 만들었다고 말할 때 ‘침 발랐다’는 표현을 하잖아요.
하나님이 제사장들에게 침바르신게 이런 피를 바른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몸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는데 특히, 귀와 손, 발에 피를 발랐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귀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손과 발로는 하나님의 성막을 바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지위에 오르는 게 아니라 특별한 섬김의 자리로 부름받은 것입니다.
이번에 대통령선거에서 모든 후보들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국민을 잘 섬기는 국민의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대통령이 되고나면 종이 아니라 왕이 되려고 합니다.
제사장도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평생 하나님과 백성들을 섬기는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우리는 어디에서 이런 피를 묻힐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묻어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귓볼, 손과 발에 그 피가 묻어있습니다.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죄의 종이던 우리들을 자신의 죽음으로 값을 치루시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치르신 피값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만 섬기는 제사장, 일꾼이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하고, 우리의 손과 발은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귀와 손과 발에 묻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또한 30절을 보십시오.
30   또 모세는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과 제단에 있는 피를 가져다가, 아론 곧 제사장 예복을 입은 아론에게 뿌렸다. 그는 또 아론의 아들들 곧 제사장 예복을 입은 그의 아들들에게도 뿌렸다. 이렇게 하여 모세는, 아론과 그의 옷 및 그의 아들들과 그들의 옷을 거룩하게 구별하였다.
이제 제사장들의 옷에다가 기름과 피를 뿌리고 있습니다.
원래는 성막 기구들을 거룩하게 하기위해 기름과 피를 뿌리는 것인데 제사장의 옷에도 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사장들의 몸뿐만 아니라 입는 옷조차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몸에 피를 바르는 것과 옷에 기름과 피를 뿌리는 것을 이렇게 비유해볼 수 있습니다.
앞서 숫양의 피를 몸에 찍어 바르는 것이 화장품이라고 본다면, 기름과 피를 옷에 뿌리는 것은 향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름과 피가 현재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제 숫양의 기름과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2장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말입니다.
죄와 죽음의 썩은내가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생명의 향기를 풍기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옷은 근사하게 입었을 지라도 입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들이 완전히 썩은내가 진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만하고, 예의도 없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좀 허름해보여도 말과 태도에서 너무나 품격이 드러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면에서부터 그리스도의 향기, 즉 그리스도의 성품이 드러나야 합니다.
사랑과 정의, 긍휼이 드러나는 삶이 바로 생명의 향기를 풍기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두번째, 제사장은 화목케하는 일꾼입니다.
31절입니다.
31   모세는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에게 일렀다. "회막 어귀에서 고기를 삶아서, 위임식 제물로 바친 바구니에 담긴 빵과 함께 거기에서 먹도록 하십시오. 주님께서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 그것을 먹어야 한다고 나에게 명하셨습니다.
제사장의 위임식에 등장하는 마지막 제사가 화목제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화목제는 기름과 콩팥, 제물의 일부는 태워드리고, 일부는 제사장과 제사를 드린 사람이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 점이 다른 제사와 달리 특이한 점입니다.
여기서는 나머지 제물의 고기를 삶아서 제물로 드렸던 빵과 함께 제사장들이 성막 앞에서 나눠 먹습니다.
화목제는 제사드리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제물을 함께 나눠먹는 것으로 끝을 맺어야 합니다.
제사장들이 회막앞에서 먹는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식탁에 초대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만큼 주님과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식사는 교제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도 친밀한 교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사람들이 화해하고 친밀해집니까?
아니면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분열되고 갈등하게 됩니까?
날마다 화목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그 끝이 이웃과의 화평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매주 드리는 주일예배가 바로 화목제사입니다.
주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며 함께 식사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데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좋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엉망인데 하나님과 사이가 좋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내게 관계의 어려움이 있다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 분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다리를 놓으신 분입니다.
죄가 가로막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장벽을 예수님이 자신의 몸으로 깨뜨리신 것입니다.
그 분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다리이시기에 우리는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그 분의 화목제사로 인해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몸을 다함께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마치 제사장들이 성막 앞에서 함께 제물을 나눠 먹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성찬식입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부활절 전에 40일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건하게 묵상하며 지내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동안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다리가 되고, 하나님과 화목케하는 화목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어 내가 속해 있는 어떤 곳이든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지막 세번째, 제사장은 순종하는 일꾼입니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36절입니다.
36   그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명하신 것을 모두 그대로 하였다.
이러한 제사장 위임식은 7일간 지속되었는데 그들은 그 기간동안 성막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7이란 숫자는 성경에서 완전수입니다.
그들의 삶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암시적으로 나타낸 숫자가 바로 7입니다.
또한 그들은 철저한 순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36절에서 중요한 것은 ‘명하신 것을 모두 그대로’하였다는 것입니다.
철저히 순종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신부가 되는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습니다.
거기보니까 십자가 앞에 나가서 그 앞에 완전히 몸을 엎드립니다.
자신의 몸 전체를 주님께 바치겠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온전한 일꾼, 종이 되겠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나를 죽이고 주님의 뜻만 따르겠다는 의미입니다.
왜 이렇게 철저한 순종이 요구되었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다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을 통해 온 세상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드러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철저한 순종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은 구약의 역사 속에서 보여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고, 결국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노력으로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내 힘과 능력을 내려놓고 주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최근에 내 안에 복장터질 것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너무 짜증나서 밤새 잠을 못 이룰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하는데 그 일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삶에 좋은 자극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저도 아직 나를 부인하고 주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조금씩 배워나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저보다 훨씬 더 잘 배우실 줄 믿습니다.
자기 고집을 꺾는 게 죽는 것보다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아닌 줄 알았는데 저도 그런 사람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면서도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내 삶에 개입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 분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기까지 순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분은 인간적인 뜻을 꺾고 하나님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따라야할 순종의 모델이십니다.
여기까지 말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너무 많은 헌신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지 모르겠습니다.
제사장들이야 평생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니 가능할 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잖아.
내가 사역자도 아니고 말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역시 주님의 제사장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우리가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하나님으로 인해 사는 삶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이 되어갑니다.
그 분을 통해 내가 유익을 누리기를 원하는 삶이 아닌 나로 인해 주님이 유익을 누리시기를 원하는 삶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그런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를까요?
바로 제자입니다.
제자는 주님을 위해 내 삶을 평생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사역자만 그런게 아니라 내가 가진 직업과 능력, 소유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아직은 그런 제자라고 말하기 어려울지라도 그런 삶을 소망해야 하지 않을까요?
[결론]
제사장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그 능력은 거룩함과 온전하고 철저한 순종에서 나옵니다.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삶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서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룩함을 고리타분한 것이라 여깁니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거룩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이렇게 많은데 왜 이렇게 세상은 변화되지 않을까요?
교회가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의 능력, 순종의 능력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분별하며 세상의 유행을 좇지 않는 거룩한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로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나 아직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어느 수준인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너무 큰 것을 원하시는 게 아닙니다.
순교하기를 원하시는 게 아닙니다.
작은 순종이면 충분합니다.
작은 희생이면 충분합니다.
위로의 말 한마디, 누군가를 위한 꾸준한 기도, 적은 돈일지라도 섬기려는 마음 모두 기뻐하십니다.
이러한 작은 순종들이 모여 어느 순간 우리는 진정한 제자로서 성장해갈 수 있습니다.
이번주에 여러분들은 어떤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그 순종을 통해 주님은 일하실 것입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