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06 새롭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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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라 1장 1-4절
본문 : 에스라 1장 1-4절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 그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1. 예배 드리기 싫어하는 사람을 흩으셨다.
1. 예배 드리기 싫어하는 사람을 흩으셨다.
우상숭배하지 않는 사람은 불안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으니까.
바라는 게 있는 사람이 불안한 것이다.
새학기다. 이제 시작이다. 친구를 사귀고 싶다. 바라는 것이다. 친구를 사귀는 건 좋은데, 친구를 못 사귀면 어쩌지? 이건 우상이다. 친구를 사귀든 못사귀든 상관이 없다.
친구 있으면 친구 있는 것이고, 친구 없으면 친구 없이 지내면 된다.
불안할 게 없다.
그래서 우상을 숭배하지 않으면 불안감도 사라지게 된다.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 있는가? 그것은 우상을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영혼을 망가 뜨린다.
요한복음 10장에
“10 도둑이 오는 것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라고 했다.
우리 영혼을 도둑질하는 것이 우상이다.
우리 영혼을 망가뜨리는 것이 우상이다.
공부해야 된다. 그런데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해한다면? 그건 우상이다.
공부는 우리 영혼을 살리지 못한다. 공부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지, 공부 자체가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더 읽어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평안해지고, 기쁨이 솟아오른다.
이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마음이다. 왜? 더 바랄 게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새학기를 시작하는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는지 한번 떠올려보라.
한번 써보라.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나는 무엇을 목표로 해서 한 학기를 시작하고자 하는가?
친구인가? 관계인가? 성공인가? 무엇인가?
여러분의 마음을 망가뜨리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라.
그러나 여러분의 영혼을 빼앗아갈 정도로 열심히 하지는 말아라.
그게 여러분의 하나님이 아니다.
친구도 여러분의 영혼을 빼앗아갈 정도로 사귀어서는 안 된다.
성공도 여러분의 영혼을 망칠 정도로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 무엇도 여러분의 영혼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2. 아무 것도 없는 땅에, 하나님은 진정한 예배자를 부르신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르신다.
어떤 사람들을 부르시는가?
하나님만 예배할 사람을 부르고 계신다.
1절과 2절을 읽어보자.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성전을 건축하라.
예배를 드리라.
하나님을 예배하라.
이런 명령을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입을 통해 말씀하셨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진정한 예배자를 부르고 계신다.
지금 예배 드리는 여러분이 어떤 문제 때문에 답답하고 갑갑하고 불안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부르고 계신다.
불안하고 답답하고 갑갑해하는 너희들아, 누구든지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자는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라.
지금의 자리를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예배의 땅으로 나아가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에 누가 반응하겠는가? 이미 수십 년이 지났다. 거기서도 잘 먹고 잘 산다.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굳이 떠날 이유가 있는가? 떠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불안이 복이다. 지금 당장 막막하고 답답한 게 복이다.
지금이 불편하고 불안한 게 하나님을 찾기 위한 아주 좋은 상태라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말씀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시달리고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이 오히려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에스라 시대 사람들도 말씀을 듣고 반응했다.
2장 64, 65절을 보라.
“64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65 그 외에 남종과 여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
42,360명 + 7,337명 + 200명 하면 총 49,879명이나 반응하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갔던 사람들의 숫자다.
하나님은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아브라함도 부르셨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너는 지금 있는 자리를 떠나서, 내게 지시하는 예배의 땅으로 나아가라.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갔다.
왜?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었다. 자식이 없는 고통이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였다. 그래서 그는 너무도 쉽게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었다.
가진 게 많은 사람, 할 줄 아는 게 많은 사람, 지금 사는 게 만족스러운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에배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식사 자리에 참여하지 않는다. 왜? 이미 배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지금 배부르는 자는 저주가 있을 것이다. 왜? 나중에는 굶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행복하고, 지금 만족하고, 지금 배부른 사람은 저주를 받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기독교 욕은 하고, 하나님 욕은 해도, 결코 하나님을 믿거나 따르지 못한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떤가? 우리는 어떤가?
불안하고 근심하고 있지 않은가? 불만스럽고 원통하고 억울하지 않은가?
이런 상태가 저주 같은가? 아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 나라가 너희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다.
내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찾았을까?
내가 고통당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찾았을까?
내가 불행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찾았을까?
하나님은 가장 탁월한 환경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세상을 잃을지라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환경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가 사랑하는 자녀는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구원하실 것이다.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에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목자의 마음이 나오지 않는가?
100마리 중에 단 한 마리만 잃어버려도, 그 목자는 99마리가 남아있을지라도 찾아낼 때까지 찾아다닌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3. 말씀을 마친다.
오늘 하나님은 이방 황제 고레스를 통하여 성전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예배할 자는 지금 있는 자리를 떠나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라.
여러분은 어디로 갈 것인가?
지금 있는 자리, 만족스러운 자리, 괜찮은 삶을 그대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한번 찾아보겠는가?
하나님에 대해서 한번 배워보겠는가?
다음주부터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류에게 주신 성경,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양육반을 진행하려고 한다.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갈급한 자에게는 누구보다 행복한 시간일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 바로 양육받는 자리, 하나님 말씀 듣는 자리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돈 없이 와서 생수를 마시라고 하신다.
누구든지 말씀을 배우고 싶은 자는 주중 양육을 신청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고 계신다.
쉬고 싶은 시간이고, 주말에 밀린 학원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고 계신다.
신청하라고.
우상숭배하지 말고, 하나님을 예배하자고 부르고 계신다.
이 부르심에 반응하자.
친구들끼리 짝을 지어서 신청하도록 하자.
그래서 말씀이 주는 은혜를 풍성히 누리도록 하자.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 그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사역
1 첫째 해에, 고레스의, 파라스(페르시아) 왕, 여호와의 다바르를 칼라(멈추다, 끝내다, 완결하다) 하기 위하여, 예레미야의 입으로부터, 여호와께서 우르(깨우다, 일어나게 하다, 흥분시키다, 격동시키다)하였다. 고레스의 루아흐(호흡, 생기, 생각)을, 바사 왕.
그리고 그가 콜(소리, 음성, 메시지)를 아바르(넘어가다, 건너가다)하게 하였다, 그의 모든 말쿠트(나라, 왕국) 안에, 그리고 역시(감) 미크탑(기록, 문서)도 말하도록.
*하나님은 고레스의 통치 원년에, 예레미야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고레스의 생각을 일깨우셨다. 하나님은 이방 왕의 생각도 움직이시는 분이시다. 그러자 고레스는 그가 다스리는 왕국 전역에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고토로 복귀하게 되는 중요한 기회였다.
2 그래서 바사 왕 고레스가 말하였다. 모든 나라, 땅의, 그가 주었다. 나에게. 여호와 하늘의 하나님이,
그리고 그가 파카드(방문하다, 명령하다) 하셨다. 나의 위에, 예루살렘 안에 바이트를 만들기 위하여, 유다 안에,
*하나님은 땅의 모든 나라를 고레스에게 주었다. 모든 권세를 맡기신 것이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님은 이방 왕의 권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을 지휘하신다.
*하나님은 고레스 위에 임재하셨고, 그에게 명령하셨다. 왜냐하면 유다 예루살렘 안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지상 거처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성전’을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열정은 쉬지 않으신다. 그리고 진정한 성전은 예수님의 몸된 교회이다.
** ‘성전’이라는 개념을 연구하자.
3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모두, 그의 백성인 자는,
그는 하나님이시다(미완료 / 희구법 / 3남단). 그와 함께,
그리고 그가 올라가리라(완료 / 희구법 / 3남단), 예루살렘 안으로, 유다의,
그리고 그가 만드시리라(완료 / 희구법 / 3남단),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바이트를,
그는 하나님이시다, 예루살렘의.
*번역을 보면 “이스라엘”에게 올라가서 만들라고 한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하나님이 올라가시고, 하나님이 만드시리라’는 의미로 보인다. 왜냐하면 동사가 3인칭 남성 단수이기 때문이다. ‘그’를 지칭하고 있다.
*이 번역이 맞다면,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친히 올라가시고, 하나님이 친히 지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건축 행위에 동행하는 것뿐이다.
남성적인 단수 대명사는 남성과 여성 모두 모든 유대인을 지칭하기 위해 집합적으로 사용됩니다.
그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하라: 고레스는 백성들에게 바빌로니아로망명을 떠나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으로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들은 명령을 받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되었다(에스라 4:3과는 대조적으로). 이것은 많은 유대인 망명자들이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키루스의 정책은 바빌로니아에 있는 여러민족의 망명자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신전을 재건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는 먼 국경에서 제국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을 얻었다.
예루살렘이 언덕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은 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람은 누구나 주변 시골에서 오르막길을걸었다. 올라가는 것은 또한 일반적으로 신성한 장소로 여행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나여기서는 예루살렘 방향으로 유프라테스 강을 경유하여 바빌로니아에서 북쪽으로 여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책들은 성전이 어떻게 재건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키로스의 칙령에서 재건을 번역하는 것은 또한 그가 성전 파괴의 역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며, 이것은 망명자들이 그들의 종교적 관습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그의 정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4 그리고 모든, 남겨진 자는, 구르(머무르다, 거주하다, 살다)하는 모든 지역에서, 거기의 사람들을 나싸(들어올리다, 쳐들다, 주다, 제공하다, 옮기다 / 희구법, 미완료)해주기를 바란다. 그의 마콤(지역, 땅, 지방)의.
은과 금 그리고 레쿠쉬(소유, 재물, 도구, 재산) 그리고 가축으로,
네다바(자원, 자원제 예물)과 함께, 하나님의 바이트를 위하여, 예루살렘에 세울,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는 자들은 은과 금, 여러 재물들과 가축을 자원하는 예물과 함께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제공해주기를 바란다.
*직접 가든 가지 않든지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동참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을 목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비신자들에게서 듣는다면 어떨까? ‘당연히 교회 세워야 하지 않냐? 그리고 안가면 돈으로라도 지원해주어야 하지 않겠냐?’ 라고 말이다.
*레쿠쉬 : 이 단어는 종종 길들여진 동물들, 양떼들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네바다 : 자유롭게 제공하다, 적극적으로 행하다, 자원하는 선물, 자유로운 성향, 관대한 사람, 사람의 행동이나 말의 내적인 동기를 묘사하는 말이다. 출애굽기에서 성막 건축이 가능했던 것은 여호와의 초청(출 35:29)에 따라 백성들이 자유롭게 선물을 주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선물이 첫 번째 성전 건축에서도 나타났다(역대하31:14).
*자유의 제물은 여호와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드려지기도 하고, 구원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 주어지기도 하였다. 이 제물은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성지에서만 바칠 수 있었다.
*그리고 ‘네바다’는 관대하고 고귀한 성격을 소유한 사람을 묘사하기도 한다(이사야 32:8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또한 성막과 성전이 건축될 때 자유롭게 준 사람들이 가진 관대하고 기꺼이 드리는 고귀한 마음을 묘사하기도 한다.
*반대로 어리석은 자는 품성의 고귀함이 결여되어 있고 야비하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반대하고 심지어 경멸로 그를 부끄럽게 하신다.
청소년의 불안과 우울의 증상을 유발하는 원인을 살펴보면 개인적, 가정적, 학교 및 사회적 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청소년기 불안과 우울의 개인적 원인으로는 비합리적 이고 역기능적인 사고, 자기 비난이나 반추사고를 들 수 있다. 특히 타인의 평가나 반응에 대해 민감하거나 취약한 경우, 사회불안이 높으며 자신이나 미래, 주변 환경 등에 대한 부정적인 인 식이 높거나 왜곡이 심할수록 우울이 높다. 또한 기억 회상에서 긍정적 기억보다는 부정적 사건을 과일반화 하여 떠올리게 되면서 우울하게 된다. 둘째, 가정적 원인에서는 부모-자녀 관계가 친밀감 과 존경이 낮거나 부모를 엄격하다고 지각할 경우, 부모의 양육 태도가 비일관적이고 처벌적 이며, 과잉기대가 높은 경우에 청소년의 불안 및 우울이 높다고 보고되고 있다. 또한 부모가 불안이나 우울감이 높거나 이혼 또는 갈등이 있 는 경우 가정이 경 제적으로 어려운 경우 불안 및 우울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학교 및 사회적 원인에서는 높은 학업 스트레스, 낮은 학업 성취나 만족 정도는 시험불안이나 우울을 증가시키며 교사와의 부적응 관계는 우울과 높은 상관을 보였다. 또한 또래 애착과 친밀감의 수준은 우울감에 영향을 미치며 또래 관계에서 따돌림을 경험한 청소년들은 경험하지 않은 집단에 비해 사회불안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한 청소년들은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개인적 관계망이 부재하고, 적어도 한 명 이상 의 중요한 사람과의 의미 있는 상호작용 경험이 우울증 극복에 중요하다.
불안․우울의 원인
1) 대인관계 문제
2) 가족환경 문제
(3) 학교생활 및 학업의 어려움
(4) 자신에 대한 불만
보호자원
1) 가족과 학교선생님의지지
(2) 긍정적 또래관계
(3) 개인적 특성 : 긍정적 특성 및 회복 의지, 청소년들의 개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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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과보호적 양육태도와 청소년 불안의 관계에서 부정적 인지의 매개 효과 - 신민진, 하은혜
어머니는 ‘불안’하니까, 아이들을 ‘과보호적 양육태도’로 양육하게 되고,
아이들은 어머니의 ‘과보호적 양육태도’ 안에 내재된 ‘불안’을 흡수하여, 불안한 아이가 된다.
불안은 인간이면 누구나 느끼는 기본정서로 미래의 위험이나 불행을 미리 걱정하고 염려 함으로써 생기는 반응이다.
불안은 우리로 하 여금 미래를 미리 계획하고, 잘못될 수 있는 일을 예견하여 후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문 제를 잘 다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적응적인 정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불안 이 과하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부정적인 상 황이나 사건을 미리 두려워하게 되어 부적응 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불안의 기원에 관한 많은 경험적 연구들이 수행되어 왔는데, 특히 불안에 영향 을 미치는 다양한 환경적 요인들 중에서도 부 모의 양육태도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과보호가 부모 와 자녀의 관계에서 서로 과잉된 기대와 간섭 을 갖게 함으로써 갈등을 일으킬 여지가 많은 양육방식으로 인식하였다.
과보호적 양육태도가 아동을 안전하게 만들기 보다는 예상 가능한 위험을 경계하고 스스로 취약하다고 믿게 만 들어 위협에 대한 인지적 편견을 가지게 한다
어머니의 과보호적 양육태도는 자녀 로 하여금 자신을 취약하다고 믿게 만들어 의 존심을 불러일으키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부정적인 상황이나 사건을 미리 두려워하게 되는 불안의 부적응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어머니의 과보호적 양육태도를 많이 경험하는 것이 자녀의 정신 건강에 역기능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특히 자 녀의 불안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18살인데 사람들이랑 대화하는게 넘 부담스럽고 무서워요
오늘 개학하는 고2 학생입니다 어떤 사건 이후 매일 자책하고 중2 새로운 반에서 사람,친구들이 말 걸면 목소리도 잘 안 나오고 부담스럽고 더 이상 말실수하는 게 너무 무섭고 반 애들이 속으론 저랑 친하게 지내는 거 싫어할 까봐 그래서 반 애들이 저 챙겨주고 친하게 지내주려고 말 걸어주면 그냥 딱 쓸데없는 말없이 대답만 하게 되고.. 그것마저도 떨리고 친구들이 계속 계속 다가와 주는데 솔직히 저도 친해지지 싶긴 한데 못 친해지니깐 더 슬프고 ㅜ 중3 돼서는 친해지려 노력했는데 어색한 게 싫고 어차피 안 될 거 같아서 몇 번 리액션 잘 해주다 다시 급 우울해져서 말 제대로 못하고.. 고등학교 입학하고서는 더 노력해서 친구 사귀고 좀 친하게 지냈는데 어색하고 점점 저가 말이 없어지고 제 리액션도 너무 오버하는 거 같다 생각할 거 같고 말실수할까 봐 그동안 최대한 할 말만 짧게 해왔다 보니 옛날엔 이렇게 되기 전에 어떻게 대화했나 싶은데 생각도 안 나고 제 성격이 옛날과 달라진 걸 느낄 때마다 힘들어요 옛날엔 친구가 말 한마디만 걸어주면 바로 친해질 수 있었고 초등 고학년부턴 저가 먼저 다가가서 친구 만드는 것도 좋고 친구들이랑 매일 놀았는데.. ㅜㅜ 작년 10월부터는 SNS,게임 으로는 다시 대화하는 거에 옛날보단 아니지만 괜찮아졌는데 또 최근 어떤 곳에서 누가 저한테 친근하게 말 걸어줬는데 저가 실수할까 봐 심장 두근두근하고 무서운데 빨리 답해줘야 하니깐 떨리고 그냥 밖에 뛰쳐내리고싶더라고요ㅜㅜㅜ 이후 아까 제가 했던 말과 아까 상황에 너무 불안해요.. 근데 방학등으로 학교 안 가고 시간 지날수록 괜찮아지긴하는데 오늘 개학인데 이런 저가 또 새로운 반 가서는 잘 할 수 있을까요 이미 새로운 반에서 세 번이나 친구를 못 만들었으니 더는 안 될 거 같단 생각만 들어서요.. 저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 외에 길 걷는데 사람 지나가는 것도 긴장되고 싫고 저도 사람들이랑 친하게 잘 지내고 싶은 맘이 있어서 대화, 대답이 더 부담스러워요..ㅜ 그냥 차라리 저가 단답만 하고 끝이라면 괜찮은데 상대가 친하게 지내려고 말 건 거고 저도 친해지려면 단답 말고 더 좋은 대답으로 노력해서 말해야 하잖아요ㅜㅜ
답변
실수해도 괜찮아
혹시 '사회 불안'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사회적 상황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짐작하며 두려워하는 것을 '사회 불안'이라고 불러요. 누구나 어느 정도의 사회 불안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지나칠 경우 사람들을 피하느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수가 있어요. 마카님의 경우, 사회불안으로 인해 새로운 친구들과 대화를 이어가는 게 부담스럽고 버거운 것 같아요. 그래서 최대한 실수하지 않도록 필요한 말만 하고, 친구가 다가오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사회불안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마카님께서 서두에 잠깐 언급한 '어떤 사건'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어요. 자세한 내용을 몰라 조심스럽지만, 만약 그 사건 당시 어떤 대상으로부터 큰 거절이나 비난을 경험하셨고 그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으셨다면, 사람들을 대할 때 더 신중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라도 그 일이 되풀이될까봐, 내가 혹여 실수하진 않았는지, 상대방이 날 싫어하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검열하고 대비하게 되는거죠. 만약 그 사람이 왜 날 거절했는지 이유를 모르는 상태라면 더더욱 불안해하면서 검열하게 될 것 같아요. 다시 말해, 마카님의 사회불안은 그 사건과 같은 아픔으로부터 마카님을 보호해주려는 내면의 노력일 가능성이 높아요.
감동시키다
우르. 깰지어다, 격동시키다, 일어나다
하나님이 하신 일
1. 말씀을 이루려고 하심
2.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심
사람이 해야 하는 일
1.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
2. 유다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는 일
3. 성전 건축을 위한 예물을 드리는 일
1. 언제든 역전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하신다.
2.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신다. 하나님은 이방 왕 고레스를 통해 그의 일을 시작하신다.
3.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