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13 울면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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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느헤미야 1:1-11
본문:느헤미야 1:1-11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성경은 고통의 원인을 ‘죄’라고 말한다.
아담이 범죄하여 죄를 지었다. 그러자 어떤 고통이 왔는가?
여자는 임신하여 출산하는 고통, 남자는 평생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는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고통의 시작은 죄이다.
죄가 없었을 때에는 고통이 없었다. 그러나 죄를 짓자 고통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고통의 원인은 죄이다.
성경은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고통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고,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고통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2. 오늘 본문에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2-3절 말씀을 보자.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형편이 좋지 않다. 그들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큰 환난이라는 말은 ‘악’이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악을 경험하고 있었다.
여러분은 학교에 다니는 게 악 아닌가? 학교 생활 자체가 혹시 악 아닌가?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 하는 것 자체가 악 아닌가? 아무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큰 환란, 악을 경험하고 있었다.
욕도 먹고 있었다.
부끄러움, 수치, 욕이라는 뜻의 능욕을 경험하고 있었다.
친구들한테 놀림 당하고, 부끄러움 당하고, 따돌림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주변에는 다 적들 뿐이다. 그러니까 부끄러움을 당하고 놀림을 당했다.
나라가 무너졌으니까, 나라가 파괴되고, 정부가 사라졌으니까, 아무도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에 관하여
주제와 관련없는 이야기인데,
정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물론 천국에는 정부가 있을까? 거기에도 정치는 있다. 하나님의 정치가 있다. 그러나, 인간적인 정부는 없다. 거기에는 정부가 필요 없다. 왜냐? 악이 없고, 죄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정치의 가장 기본 목적은 선을 장려하고, 악을 제어하는 데에 있다.
교통 법규가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통 질서를 장려하고, 무법 천지가 되는 것을 제어하는 것이 목적 아닌가? 그래서 정치는 타락한 세상에서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는 타락 세상에서 천국을 이루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권력을 이용해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한다. 그것을 우리는 인본주의적 정치철학이라고 한다.
사람의 힘과 능력, 선함을 믿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듣기에는 굉장히 좋은 정치철학인데, 알고 보면 반성경적이다.
왜? 성경은 사람의 능력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다 죄인이다. 누구보다 여러분 자신을 보라. 단 한 마디의 말이라도 제대로 끝까지 지킬 수 있는가? 지킬 수 없다. 우리는 생각은 굉장히 이상적으로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이상적으로 사는가?
나는 이번 학기 때 몸무게를 3kg 빼겠다. 생각은 굉장히 이상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날마다 야식이다.
사람은 결코 자기가 한 말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
그래서 공산주의 정치체제가 실패하는 것이다. 계급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겠다. 자본가가 사라지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 그러면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권력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독재정치가 되는 것이다. 자본가를 압제할 수 있는 강력한 독재권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행복한가? 유토피아가 만들어졌는가?
정치를 통해서는 유토피아를 이룰 수 없다. 오직 복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유토피아를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 천국이다. 천국을 사람이 만드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다. 그것이 성경의 믿음이다. 정치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인본주의적 유토피아이다. 반성경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필요하다. 정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정치는 선을 장려하고 악을 제어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정치는 과도하게 모든 민생의 일을 다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강한 정부가 성경적이지는 않다. 정부는 정부의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정부가 종교적 역할을 하려고 할 때, 정부는 괴물이 되는 것이다.
아무튼
아무튼
정부가 없으니까, 예루살렘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했겠는가?
지금 우크라이나 정부가 있고, 대통령이 살아있는데도, 러시아가 쳐들어오니까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가 전쟁을 멈추고, 러시아 군인들이 이 전쟁에서 합당한 명분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아무런 명분이 없다. 무슨 명분으로 전쟁을 해야 하는가? 단지 군사전략적/경제적 이득 때문에 하는 전쟁 아닌가? 이런 전쟁은 빨리 멈추어야 한다.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가?
느헤미야는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6절부터 7절까지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6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한다고 되어 있다.
또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였다고 되어 있다.
7절에서도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였다고 되어 있고,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다고 되어 있다.
한 마디로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라고 느헤미야가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 인생이 고통스러운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27살 여자가 고백한 이야기이다. 그 자매는 24시간 중에서 20시간을 잔다고 이야기하면서 고통을 털어놓았다.
안녕하세요. 27살 올해 대학 졸업을 하고 취업준비생이 된 여자입니다. 최근 진로를 바꾸면서 좀 아득하고 불안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극적으로 부정적이진 않았습니다. 새 출발에 대한 설렘으로 관련 서적도 여러 권 사고 그랬거든요. 근데 2-3주 전부터 급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왔습니다. 주변에 힘들게 노력해서 대기업 취직한 친구들을 봐도 그들의 삶이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았거든요. 그 때부터 아 취업해서 뭐하나, 난 왜 뭘 위해 살아야 하나, 행복은 도대체 언제 찾아오나 등 고민이 이어지며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패턴도 이틀 깨어있고 이틀 자고 이랬던 것 같아요. 이번 주는 거의 밥 한 끼 먹는 시간 빼고는 침대에서 자는 것 같아요. 너무 무기력해서 차마 씻을 힘도 의지도 없고요.무엇보다 그냥 긍정적인 기분이 안 들어 힘이 듭니다. 위의 고민들 조차 이젠 무기력해서 안 하게 되었어요. 이런 무기력해진 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나가야할까요? 약물치료가 필요할까요?
이 사람은 지금 죽음의 문제 앞에서 인생의 허무감을 느끼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할 수 없는 인생, 자기 주변의 친구들을 보아도, 노력해서 대기업에 취직해서 부러운 삶을 살고 있는데도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으니, 이 친구는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도대체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게 뭐가 원인인가? 파편화된 세상, 자본주의가 원인인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인간이 부품화되는 현상이 문제인가? 그런 것도 문제이지만, 성경은 뭐가 문제라고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에서 무언가를 찾아보려고 하는 죄가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공부하면서 허무감이 찾아오거나, 우울감이 찾아오는 것은,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부모님 때문이 아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아까 찬양시간에 ‘우물 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이라고 찬양했다. 자꾸 헛되고 헛된 것들만 찾는 여러분의 죄가, 여러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말씀을 정리한다.
말씀을 정리한다.
느헤미야는 이제 해답을 제시한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게 무엇인가?
8-9절 말씀을 보자.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않았기 때문이니까,
그 해결책 역시 무엇이겠는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지킨다면, 하나님은 하늘 끝까지 버려진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이 거기서부터 그들을 불러 모아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말씀 아니겠는가?
우리 인생의 문제는 정치로 해결할 수 없다. 정치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자꾸만 인본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러나, 아무리 계급없는 사회를 만들려고 하고, 금수저가 사라지고, 흙수저도 사라진 세상을 만들려고 해도, 그 안에서 다시 죄는 싹을 틔운다.
그러므로 정치를 기대하지 말라.
헛된 것을 꿈꾸지 말아라.
천국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붙드는 것 뿐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고, 종속적이게 하고, 의존적이게 한다고 비판한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세상을 이긴다. 세상에 지배 당하지 않는다. 세상을 의존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을 믿어야지, 세상을 믿으면 안 된다.
하나님을 믿어야지, 공부를 믿으면 안 된다. 공부를 잘 하면 잘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공부를 잘 해도 별로 일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공부를 못해도 더 많이 잘 되고 성공할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지, 다른 것을 믿으면 안 된다.
여러분 인생은 하나님이 해결하신다. 여러분 고통의 문제도 하나님이 해결하신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예배를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기도를 가까이 해야 한다. 뻔한 답이지만, 이게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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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신앙 부흥 을 일으킨 때로부터 13년이 지난 어느 날, 페르시아 제국의 고위 관료였던 느헤미야는 형제들의 입을 통해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성읍곳곳이 파괴되어 있었고, 백성들 역시 매우 피폐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가나안에 거주하고 있던 이방인들의 방해와 핍박 때문일 것입니다. 이때 느헤미야가 보인 태도는 여러모로 귀감이 됩니다. 첫째,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자마자 즉각 기도합니다. 대 제국 페르시아의 고위 관료라는 자신의 권력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둘째, 눈물로 회개합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 자기 자신과 이스라엘의 죄에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셋째, ‘공로’가 아니라 ‘언약’에 근거하여 기도합니다. 9절에 기록된 기도는 신명기 언약의 일부입니다(신30:4) 느헤미야는 기도 응답의 근거가 우리의 공로가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음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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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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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동족의 끔직한 아픔의 소식을 들었다.
무감각하지 않았다.
그는 슬퍼했다.
그는 수일 동안 슬퍼하였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슬퍼하였다.
그는 ‘하늘’의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며 슬퍼하였다.
그는 ‘긍휼’을 의지하며 기도하였다.
긍휼(헤세드) : 인자, 충성, 은혜로움
8.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밤낮으로 기도하며,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고백’하였다. 6절과 7절에서 고백하고 있다.
9. 느헤미야는 ‘동족들의 고통’을 성경 말씀을 가지고 해석하고 있다. 그게 8절이다. 느헤미야는 ‘원망’이나 ‘불평’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동족들에게 벌어진 사건을 해석한다. ‘자신의 죄’를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게 된다.
죄를 깨달은 느헤미야가 보기에 동족들과 자신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진 것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였다.
10.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하였다. 느헤미야의 회개기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성벽을 회복하는 일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하는 것이 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최종 목적이었다.
11. 그래서 느헤미야는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예루살렘이 파괴된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9절 말씀이다.
12. 그 후에 느헤미야는 이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것을, 당시 최고 권력자의 허락을 맡는 것으로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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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청소년들이 큰 환란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닌가?
이들은 ‘보호장치’(예루살렘 성)이 사라지고, ‘방어벽’(성문)이 사라진 상태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날 아이들이 냉담-무정서하고, ‘무감각’한 이유가, 혹시 ‘보호장치’가 사라져서 그런 것은 아닌가?
여기에 대해서 어른들은 슬퍼하고 있는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그렇지 않고 마냥 다그치거나 바꾸라고 야단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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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문제가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우리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죽어계시는 게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시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두렵고 떨림으로 반응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인본주의’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가장 중요한 존재로 여기고, 인간을 마치 신인양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추앙하는 시대가 정말 행복한가? 가장 대단하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이, 오히려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는가?
인간은 누구나 다 ‘죄인’(즉 악인)이다. 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환경의 문제가 핵심이 아니다. 바로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악’이다. 우리는 나 자신이 ‘악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싫어하는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회개’이다. 회개가 되어야 드디어 말씀대로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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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 궁 : 수산 궁은 좋은 곳이다. 편안한 곳이다. 자기 편안함을 누리면 된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편안한 곳에서 동족들의 아픔을 느낀다.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 :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백성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형편이 좋지 않다.
큰 환난 : ‘라아’ 악이다. 악을 경험하고 있었다.
능욕 : ‘헤르파’ 수치, 부끄러움, 욕
그들은 욕을 먹고 있었다.
허물어지고 : ‘파라쯔’ 분열되다, 찢어지다.
예루살렘 성은 찢어져 있었다.
이 말을 듣고 앉아서 : 느헤미야는 ‘슬픔의 자리’에 그대로 앉았다. 우리는 슬픔을 피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앉아 있을 필요가 있다.
그 고통을 그대로 겪을 필요가 있다.
수일 동안 슬퍼하며 : ‘아바르’ : 느헤미야는 애곡하며 슬퍼하였다.
그는 고통을 그대로 느끼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기도는 : 하나님의 개입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중재하시고, 하나님이 개입하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팔랄’ 심판하다, 중재하다 - 하나님이 판단하시기를 바라는 것이 기도이다.
아하브, 샤마르 - 샤마르, 헤세드 : 하나님을 ‘아하브’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샤마르’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도 그의 언약을 ‘샤마르’하시고, 그들에게 ‘헤세드’를 베푸신다.
크게 악을 행하여 : ‘하발’ ‘하발’, 범죄하고 범죄하였다.
‘샤마르’ 하는 자에게 ‘샤마르’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느헤미야는 자신과, 자신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법을 ‘샤마르’ 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이는 느헤미야가 그들이 당하는 고통이 당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범죄하면,
- 흩을 것이다
다시 돌아와 계명을 ‘샤마르’ 하면,
- 다시 모아 돌아오게 할 것이다.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 : 예루살렘이다.
주께서 일직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 이것은 ‘출애굽’을 떠올리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종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그들을 구속하여 ‘하나님의 종’으로 삼으셨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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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중 거의 20시간을 자요
안녕하세요. 27살 올해 대학 졸업을 하고 취업준비생이 된 여자입니다. 최근 진로를 바꾸면서 좀 아득하고 불안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극적으로 부정적이진 않았습니다. 새 출발에 대한 설렘으로 관련 서적도 여러권 사고 그랬거든요. 근데 2-3주 전부터 급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왔습니다. 주변에 힘들게 노력해서 대기업 취직한 친구들을 봐도 그들의 삶이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았거든요. 그 때부터 아 취업해서 뭐하나, 난 왜 뭘 위해 살아야 하나, 행복은 도대체 언제 찾아오나 등 고민이 이어지며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패턴도 이틀 깨어있고 이틀 자고 이랬던 것 같아요. 이번 주는 거의 밥 한 끼 먹는 시간 빼고는 침대에서 자는 것 같아요. 너무 무기력해서 차마 씻을 힘도 의지도 없고요.무엇보다 그냥 긍정적인 기분이 안 들어 힘이 듭니다. 위의 고민들 조차 이젠 무기력해서 안 하게 되었어요. 이런 무기력해진 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나가야할까요? 약물치료가 필요할까요?
현재 마카님의 사연을 토대로 봤을 때 일상 기능에 영향을 줄 정도로 에너지 저하 수준이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여져요. 상담을 받던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만들던, 어떤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약물의 도움으로 에너지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아직 두렵다고 느껴지시면, 먼저 상담을 시작해보고 상담 선생님과 같이 경과를 지켜보면서 상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을 것 같네요. 어떤 방법이든, 현재 상황을 혼자 감당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2. 우울이 증폭된 이유 이해해보기 > 사실 취업준비 때 우울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건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느껴져요. 그러나 2-3주 전부터 급격하게 더 우울해지셨고 그 이유를 알아야 그에 따른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어요. 2-3주 전부터 우울해졌다면, 그 때 어떤 일이 있었고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설렘이 컸었다면, 난 무엇을 기대하고 꿈꿨는지? 무엇을 가지거나 이루는 게 나에게 행복인건지? 등등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나의 우울을 이해해보는 게 도움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해하게 된다면 그걸 스스로 공감해주고 다독여주세요. > 그러나 우울해진 이유를 이해해보는 과정도 상당한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니 에너지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는 너무 힘들 수 있어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걸 권장합니다. 3. 날 돌보는 작은 행동부터 시작하기 > 나를 돌보고, 나의 기분을 환기시킬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이 어떤 게 있을까요? 일어나고나서 이불을 개는 것, 세수를 하는 것, 답답할 때 잠깐 집 앞에 나가보는 것, 좋아하는 꽃이나 장식품을 보는 것, 좋아하는 향이 나는 샴푸나 바디워시로 샤워를 하는 것,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는 것 등등. 지금 생각나는 정도는 이 정도네요. 이 밖에도 마카님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마카님의 기분을 환기시키고 돌보는 걸 찾아보고 실천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이 상담에서 해결 방법은 : 1) 약물을 사용하는 것, 2) 우울이 증폭된 이유를 이해해보는 것, 3) 기분을 전환할 수 있도록 나를 돌보아 주는 것이다.
우울이 증폭된 이유는 한정된 세상에서 ‘무한한 행복’을 기대하는 ‘종교심’이 있기 때문이다. ‘우울한 이유’가 무엇인가? ‘최선의 행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있는 ‘종교심’이다. 그러나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우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공감
제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 건지 설명이 안돼요
23살 졸업을 앞두고 있는 여자입니다 말 그대로에요 감정을 느끼는 부분이 고장났나 싶을 정도로 타인의 일에도 공감이 잘 안 되고 매사에 별 감정이 안 느껴져요 예를 들어서 올해 초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별 생각이 안 들더라구요. 아 그렇구나. 이 정도? 근데 또 장례식장에서 발인 했을 때는 어른 분들이 다 우시니까 그 상황이 저에게는 충격적이어서 울었어요. 제가 슬프다기 보다요. 그리고 아빠가 불쌍하다 딱 이 두 가지 때문에 울었어요. 보통은 누군가 돌아가시면 슬퍼야 하지 않나요? 할아버지는 좋은 분이셨기 때문에 제가 슬퍼하지 않을 이유도 없구요. 이것 외에도 일상에서 친구들이게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그 상황에 적절한 반응을 의식적으로 하지 진심으로 공감 해 본적은 거의 없는 거 같아요. 마찬가지로 아 그렇구나 이게 끝이에요. 제가 원래 먹은 걸 좋아했었는데 어느순간 부터 뭘 먹어도 감흥이 없어요. 살면서 기대되는 것도 별로 없는 거 같구요. 이런 상태가 된지 꽤 됐는데 아 인생이 좀 무료하다 심심하다 답답하다 이 정도였지 할아버지 일이 있고 난 후 와 내가 진짜 어디 고장났나 싶은 생각이 계속 드네요 그리고 눈물을 흘리게 되는 일이 있잖아요. 눈물은 나는데 제가 왜 우는지를 모르겠어요. 원래 감정이라는게 이렇게 설명이 어려운건가요?? 또 제가 유아들을 대해야 하는 직업을 가질 예정인데 갈등중재를 할 때 제일 우선시 하는 게 감정읽기거든요? 근데 저는 그게 잘 안돼요. 얘가 지금 화가났구나 짜증이 났구나는 알겠는데 아이들은 표현하는게 다가 아니기 때문에 내면의 감정을 읽어주어야 하잖아요. 오은영 박사님 처럼요. 이게 스킬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위에서 말했듯이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정서 #둔화 #무감각 #공감
[공개사연 고민요약]
마카님께서 다른 사람의 상황과 감정에 공감하는 일이 좀 어려우시군요. 올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슬퍼서 울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카님께 걱정스러운 일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전반적인 상황에서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고, 앞으로의 진로에서도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대해야 하는 부분이 걱정되어 여기 글 써주신 것 같습니다.
[고민과 관련된 원인 분석]
마카님께서 정서적으로 무뎌진 상태에서 유아 관련 진로를 앞두시며 더욱 걱정이 크실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들에 대해서 세심하게 바라보고, 정서적으로 반응하며 돌려주는 것들이 필요하지요. 마카님께서 정서적인 공감과 접촉을 원래부터 어려워하셨을까요? 아니면 지금 더 어려워진 부분이 되었는가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파악이 좀 필요할 듯 싶습니다. 마카님께서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무뎌지신 상태로 보여집니다. 전반적인 일상에서 무료하고 무감하다 느끼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고 먹는 걸 좋아하던 마카님이 먹는 것에도 별 감흥이 없어졌네요. 삶에 대한 기대감도 잘 없고요. 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보통은 감정을 느끼며 경험을 받아들일 만큼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많이 소진되었을 경우에 감정이 둔감해지곤 합니다. 혹은 우울로 이어지는 상태이실 수도 있겠고요. 마카님께서 현재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보다 객관적인 검사를 통한 진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타인의 죽음을 앞에 두고 충분히 슬퍼하지 않는 스스로에 걱정을 가지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 대상이 가족이었던 경우에는 더더욱, 충분하다고 생각될 만큼의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내가 비 인간적인 것은 아닌지 걱정되지요. 하지만 사실, 죽음을 경험하고 바라보는 태도는 모두가 다릅니다. 실제로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혹은 덤덤하듯 받아들였지만 몇 년이 지나 억눌러왔던 상실감이 터져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별을 경험하며 그 자리에서 목 놓아 울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죽음을, 이별을 마주하는 자세는 모두가 다 다릅니다. 그래서 충분히 적절한 반응이라는 것을 상정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그리고 마카님께서는, 할아버지가 떠나가셨다는 자체보다 아버지가 안타깝다는 마음, 어른들이 함께 우는 모습에 눈물을 터뜨리셨군요. 상황에 대한 복합적인 정서가 함께 드러난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떠나간 대상과 나의 친밀감의 정도도 정서적 반응에 영향을 미치겠지요.
[해결방안과 대처에 대한 방향 제시]
타인에 대한 공감이 어렵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는 마카님께서 정서적으로 둔화된 이후부터 더 심화된 상황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어려우셨는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혹시 최근 들어서 더 정서가 둔해진 느낌이라면 이는 특정한 상황 하에서의 문제가 있지는 않았는지 조망하며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합니다. 본래부터 관계에서의 공감이 어려웠다면 이는 훈련을 통해서 자라날 수 있는 영역입니다.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기 앞서, 우선은 내 감정부터 느끼고 파악하는 것부터 우선 되어야 합니다. 내가 느끼는 생각과 감각, 감정들이 무엇인지 바라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훈련을 해 나가시는 것이 도움이 될 겁니다. 순간 순간 알아차리고 자각하는 거지요. 내가 나의 내면을 잘 이해하고 느끼게 된다면, 상대의 것에 접촉하는 것도 조금씩 더 발달되어갈 겁니다.
내면의 문제를 혼자서 다뤄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훈련 받은 전문가와 함께 마카님의 정서를, 관계를 보아가는 것이 도움 될 수 있을 것 같아 심리 상담을 적극 권유 드립니다.
기억력
초인적 기억력을 가진 사람에 대한 신경심리학적 분석을 담은 최초의 보고는 1987년 러시아의 신경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루리야 박사가 발표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라는 책이다. 루리야 박사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을 지닌 ‘에스’(S)라는 남자를 30여년 동안 관찰하고 분석했는데, ‘에스’는 아무리 많은 단어, 숫자, 사물도 빠르게 기억할 수 있었으며 한번 기억한 것은 수십년이 지나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기억력이 비범했던 또 다른 인물로는 2006년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의 제임스 맥고프 박사 연구팀이 보고한 ‘에이제이’(AJ)라는 여자가 있다. 그는 일생 동안 특정 날짜에 일어난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그날 날씨와 뉴스, 그리고 그때 느낀 감정까지 기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여러 보고를 보면 ‘기억술’을 훈련한 사람들 중 일부는 인구 수십만명 규모 도시의 지도를 외우고, 책을 한두번 읽고 그 내용을 거의 모두 암기하는 등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준다. 어떻게 그들은 남들보다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되었을까?
영국 런던대 엘리너 매과이어 연구팀은 해마다 열리는 세계기억력대회(WMC)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인 10명을 대상으로 인지·신경심리 검사와 뇌영상 측정 등을 통해 뛰어난 기억 능력이 뇌의 어느 부분에서 비롯하는지를 찾고자 했다. 연구 결과에서 그들의 지능은 일반인과 비슷했고 뇌 구조에도 특별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은 기억 과제를 처리할 때 두정엽, 해마 같은 특정 뇌 부위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위는 시각 정보 처리나 공간 학습이 이뤄지는 동안에 특히 활성화되는 것으로 알려진 뇌 영역들이다.
시각 정보와 공간 학습이 초인적 기억술과 관련이 있는 걸까? 뛰어난 기억술을 지닌 이들은 주로 ‘장소 기억법’(method of loci)이라는 고전적인 기억 증강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법은 2500여년 전 고대 그리스의 시모니데스(기원전 556~468)라는 시인이 자신이 강연하던 연회장의 청중을 그들이 앉아 있던 장소와 연계해 모두 기억해낼 수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이 기억법은 기억하고자 하는 정보들을 자신이 익숙한 가상의 ‘장소’에 배치하고 그 장소의 이미지와 결합함으로써, 빠르고 효과적으로 그 정보들을 떠올리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장소 기억법을 사용하면 시각 이미지와 공간 기억을 처리하는 뇌 부위의 활성이 일반인보다 높게 측정되는 게 당연할 것이다.
루리야가 보고한 ‘에스’도 기억술을 배우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그의 두뇌는 비슷한 전략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에스’는 기억하고자 하는 정보들을 시각화하는 것을 선호했으며, 어떠한 가상의 ‘길’을 만들고 그 길의 여러곳에 기억할 정보들을 배치하고서, 나중에는 그 길을 걸어가듯이 기억된 정보들을 떠올리곤 했다. 그의 또 다른 능력은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들을 공감각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음악 소리를 들으면 음악에서 얻어지는 청각 정보뿐만 아니라 시각, 촉각, 미각적 이미지를 함께 느끼면서, 특정 음악을 ‘말랑하고 노란색의 달콤한 노래’라는 식의 정보로 기억해 나중에 그 음악을 쉽게 연상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억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기억하고자 하는 것을 자신에게 이미 익숙한 정보들과 연합해 머리에 저장하고 이를 이용해 쉽게 끄집어내는 듯하다.
그렇다면 장기 강화 현상을 인위적으로 증강하면 기억력도 높아지지 않을까? 1999년 당시 미국 프린스턴대에 있던 조 첸 박사 연구팀은 장기 강화에 필수인 특정 단백질이 신경세포들에 더 많이 발현하도록 유전자 변형 생쥐를 만들어 그런 실험을 했다. 놀랍게도 기억력을 측정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행동 시험에서 이 동물들의 기억력이 증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2005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의 알시노 실바 박사 연구팀은 세포 성장을 촉진하는 특정 단백질(Ras)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생쥐한테서도 높은 기억력과 신경세포 간의 연결성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실험동물의 인위적 기억력 증강에는 종종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뒤따랐다. 유전자 조작으로 기억이 증가한 생쥐들은 정상 생쥐들보다 고통을 더 잘 느꼈으며(하필 기억 저장과 만성 통증은 그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비슷한데, 통증을 느낄 때도 뇌에서 장기 강화 현상이 벌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세포 성장이 과도하게 증가하는 바람에 암 발생률이 높아질 수도 있었다. 현재까지 동물실험을 한 과학자들이 얻은 교훈은 기억만을 증가시키고 다른 생리적 현상은 정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초인적인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 데 뛰어난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뛰어난 기억력에 따른 부작용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앞서 소개한 ‘에이제이’는 자신의 일생을 마치 영화를 보는 것같이 뚜렷하게 기억했지만, 의외로 자신이 갖고 다니는 여러 열쇠가 각각 어느 용도인지 잘 몰랐고, 심지어 최근에 자신을 인터뷰한 사람의 옷차림도 잘 떠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인물 ‘에스’에게도 그의 기억술이 빛을 발하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는 함축적이고 추상적인 글을 읽을 때 글을 구성하는 개별 단어의 세세한 정보에 집착해 전체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모든 것의 디테일을 기억할 수는 있지만 이들을 활용한 종합적 사고가 어려워진 그는, 결국 말년에 몇분 전에 들은 이야기와 몇년 전에 들은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래도 기억력을 키우고 싶다면
하지만 일반적인 기억 저장 능력을 갖추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부럽다. 일반인에게 현재로서는 ‘장소 기억법’ 등과 같은 기억술을 익히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의 유명한 저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담긴 기억 관련 환자들의 사례를 보면, 약간 다른 관점에서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기억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색스 박사의 환자들 중 갑자기 예전에 들었던 음악들이 무작위로 떠올라서 일상생활이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전체적인 인지 기능과 뇌 기능에서 정상이었으나 자꾸 머릿속에서 불편할 정도로 큰 소리로 특정 음악이 계속 들린다고 했다. 그 소리는 누군가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듣던 익숙한 노래의 일부이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별로 인상 깊지 않았던 음악이거나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웅성거리며 섞여 들리는 것이기도 했다.
검사 결과 그 원인은 뇌혈관이 혈전으로 막혀서 청각 기억을 관장하는 뇌 부위의 활성도가 발작적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이미 저장되어 있던 음악 기억이 원치 않게 계속 재생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혈전을 제거하자 환자들에게는 더 이상 노래가 들리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환자들의 머릿속 음악들이 정말 무작위적인 것인지 약간의 의미라도 갖는 것인지 분석했더니 오래전부터 무의식적으로나마 흥얼거리거나 머릿속을 맴돌던 것들이었다고 한다. 즉, 정보는 반복적으로 학습될수록 기억하기 쉽다는 것이다.
초인적인 사람의 것이든 나의 것이든 간에 정보가 머리에 기억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지 뛰어난 기억력을 타고난 사람이나 평범한 사람 모두 어떤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 자신에게 맞고 편리한 방식을 사용했을 뿐이다. 세계기억력대회에서 우수한 기억력을 선보인 참가자들도 정상인과 비교했을 때 사람 얼굴을 기억하거나 추상적인 형태를 지닌 물건 등을 기억하는 능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초인적인 기억력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정보에만 특화된 능력일 가능성이 높다. 초인적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친숙한 정보와 빠르게 연합시키는 전략을 자연스럽게 취했고, 보통 수준의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은 스쳐가는 많은 정보 중 자주 접하고 인출되고 다시 저장되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머릿속에 넣는 방향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뇌에는 어떤 전략이 적당한가?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신경생물학)
리더십. 책임감.
지도자란 최종적인 책임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이든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새로운 업무를 받아들이기 전에, “내가 꼭 해야 할 일인가?”라는 질문에 답해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나 외에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어떤 일을 내가 해야 할까?” 하고 자문해야 한다. 그 일이 어떤 것이든, 당신은 그것을 우선 순위 중 상위에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당신은 해고될 수도 있다.
당신은 직책을 가짐으로써 여러 종류의 책임을 지게 된다. 그 중에서도 당신을 필요로 하는 몇 가지 일에 책임 이행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이 해야 할 일”과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할 일”을 잘 구분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