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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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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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 지난번 우리는 두아디라 교회의 장점과 칭찬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비를 베풀고 환대를 베푸는 그들의 사랑과 믿음, 인내의 사업은 나날이 풍성해져만 갔습니다.
그들의 눈은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돕고 찾는 눈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은 주님의 눈이었고, 그들의 일은 주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하루하루는 주님의 일에 신실하였습니다.
오늘에 충성하고, 오늘에 사랑하고, 오늘의 경건한 나날이 더 풍성한 나중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 경건한 하루, 풍성한 하루를 보내셨나요?
우리의 나중이 오늘보다 더 풍성해지길 소망합니다.
도입 : 루터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새가 머리에 앉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둥지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어려움과 유혹에 대해서는 우리가 막을 수 없지만,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인이 박히고, 삶이 되는 것은 우리가 막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수많은 유혹이 찾아옵니다.
세상의 가치는 우리를 흔들 만큼 달콤하고, 보암직 합니다.
이러한 유혹이 우리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지만, 우리는 이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결단이 필요합니다.
유혹과 용납은 다른 문제입니다.
코칭 : 여러분은 삶에 다가오는 유혹과 타협의 문제에 어떻게 반응하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삶에 포기할 수 없는 유혹의 문제가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포기하실 수 있으신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에 틀어진 유혹의 둥지를 흔들어 부실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계신가요?
또한 여러분은 이러한 유혹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어떻게 권면하고 계신가요?
두아디라 교회가 이러한 질문과 문제를 가지고 있는 교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적당한 믿음과 타협의 가르침이 교회 안에 만연한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교회에 책망하시며 돌이키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왜 이러한 책망을 받았던 것일까요?
왜냐하면 그들이 자칭 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을 용납했기 때문입니다.
서론 : 두아디라 교회의 칭찬은 그들이 받은 칭찬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어떠한 선지자의 가르침을 용납하여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돈과 물질에 타협하며 세상과 자신을 섞는 행위를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섞지 말라).
그들은 왜 이런 문제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1)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20절)
두아디라 교회는 책망을 받습니다.
“20절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세벨의 가르침을 용납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사람은 이세벨에 아닙니다.
버가모 교회에 발람처럼 성도들을 꾀는 니골라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세벨은 누구입니까?
그녀는 교회에 홀연히 들어온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주의해 볼 것은 그녀가 자칭 선지자라는데 있습니다.
자칭 선지자는 하나님은 말씀하시지 않으셨는데, 자신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이와 같습니다.
그녀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들을 미혹하였습니다.
그녀는 모두가 흠모할 만하게 화려한 외모를 갖춘 듯 싶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음란한 길드에 참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고위층을 많이 아는 화려한 인맥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뛰어난 언변을 가졌던 인물로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랑과 믿음의 사업에 열중하던 교회의 교인의 많은 수가 그녀의 가르침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녀를 내쫓을 정도로 아까운 존재로 보입니다.
예화 : 우리 사회에서도 뛰어난 얼굴과 인맥, 언변으로 연예인들과 정치인들을 속인 사기꾼 수산업자의 이야기가 사회를 시끄럽게 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뛰어난 인맥을 자랑했기에 사람들은 그를 의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속이고 속이다보니 인맥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수천-수억의 돈을 투자했지만, 결국 그는 사기꾼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투자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를 통해 보여지는 너무나도 좋은 조건때문에 이 사람이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풍성하게 해주겠지라는 믿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외면적인 것과 진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교회의 문제, 성도가 겪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여인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와 화려한 인맥과 언변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위로를 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전한 것은 화려함 속에 있는 죽음의 숨결이었습니다.
그녀는 좁은 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세상과 타협하고 음행과 우상숭배의 교훈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칭 선지자로 사람들 위에 세워졌고, 교회의 교사가 되었습니다.
선지자의 가르침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성도들을 위로하며, 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삶에 문제에 대해 말씀을 가르쳐 우리를 위로하고 바른 삶을 알려줍니다.
때로는 죄의 자각과 아픔을 줄 수 있지만, 그 아픔은 곧 우리의 위로가 됩니다.
이처럼 가르침/선지자가 중요합니다.
바나바를 예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바나바의 이름은 뜻은 ‘위로의 아들’입니다.
그의 이름을 분해해 보면 ‘선지자의 아들’로 볼 수가 있습니다.
바나바는 말에 능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사람들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많은 백성들이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수천이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아팠지만 바른 하나님의 말씀은 백성들을 위로하고 옳은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백성의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필수적입니다.
성도들에게 삶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유혹의 문제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찾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며, 바른 길을 찾아 교회에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칭 선지자인 그녀의 행동과 가르침은 니골라의 행위와 같았습니다.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함” 그녀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우상과 음란의 제사를 떠나는 가르침이 아닌 타협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 모습이 마치 구약 시대의 이세벨과 같아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 같습니다.
예화 및 적용 : 목회자의 죄는 성도들에게 그대로 흘러갑니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짓는 죄를 자기 입으로 성도들에게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이 없는데, 명확한 가르침이 없는데 어떻게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죄악의 길에서 벗어나겠습니까?
가르치지 못할 때, 자기 자신이 옳지 못할 때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성도들과 세상의 관계까지 흘러갑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세상에서 거룩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세상을 거룩하라 외치며 죄를 없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따라야 합니다.
거룩의 문제는 목회자와 성도 뿐만 아니라 세상까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1) 이세벨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이세벨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이세벨은 악명이 높은 이름이었습니다.
그녀는 시돈왕 엣바알의 공주로 아합의 아내가 된 사람입니다.
아합은 북이스라엘 오므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녀는 왕을 충동하여 북이스라엘을 죄악으로 이끈 여인이었습니다.
나라에 온갖 우상을 들여왔고, 바알 선지자와 백성들로 우상숭배를 하도록 독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탐심으로 왕을 충동하였습니다.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고 싶어하자 그녀는 왕을 충동하여 거짓 증인을 세워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갖게 하였습니다.
본래 땅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선조들에게 주신 지파의 땅이었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 따위는 따르지 않았습니다.
아합은 자신의 탐심을 위해 이세벨의 말을 듣고 욕심에 타협하며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이 탐심의 충동은 모든 백성들에게도 흘러들어와 북이스라엘의 모든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고, 메마른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2) 이세벨을 용납했다.
한 사람의 충동이 모든 나라를 흔들었듯이 하나님의 나라, 교회를 와해시키는 여인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세벨과 같이 성도에게 탐심을 따르게 하고, 세상과 신앙을 섞게 하는 거짓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따르지 않은 성도들도 있었지만, 문제는 그녀의 자녀들/ 그녀의 가르침을 용납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는데 있습니다.
초반에 나누었던 새가 날아오고, 앉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둥지를 트는 것을 막아야 했지만, 그들은 그녀의 가르침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가르침은 우상의 재물을 먹게하고, 행음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상숭배를 해야 하는 길드에 들지 못해 상업활동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세상과 타협이 가능하다는 그녀의 가르침은 꿀송이와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녀의 말은 모든 사람들을 설득하기에 유창하고 논리적으로 대단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코칭 및 적용 : 사람들은 그녀의 가르침이 거짓 가르침인 줄 알면서 너무나도 듣기가 좋고, 따르기 쉬워서 그녀의 가르침을 용납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듣고 싶은 것을 듣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교묘히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사단은 우리를 꾀는 존재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만국을 미혹하게해서 사람들로 취하게 하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가르침을 따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거짓 가르침이 가르쳐 졌을 때 이것을 용납하지 않으실 수 있으신가요?
그렇기 위해서는 명확한 진리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까이하지 않음이 중요합니다.
“계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우리의 탐심을 조장하는 번영의 가르침에 대해, 우리의 탐심에 대해, 우리의 죄에 대해 자신을 지키고, 멀리합시다.
주님을 가까이 합시다.
타협하지 않는 목사님에 대한 예화 : 이세벨은 두아디라 교회에서 모두가 좋아하는 가르침 때문에 포기하며 내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뛰어난 영향력과 뛰어난 외모와 두터운 인맥이 두아디라에 사는 성도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을 용납하지 않고, 내어 쫓는 요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용납과 관용은 병든세포/ 암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겪은 교회가 있습니다.
현대의 유명한 윌로크릭 교회입니다.
이 교회의 유명하고 탁월한 찬양인도자가 있었습니다.
이 인도자는 은혜로운 찬양인도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교회의 중요한 창립 맴버입니다.
그런데 이 리더에게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가 찬양단원과 불륜을 저지른 것입니다.
빌하이벨스는 고민하였습니다.
중요한 인도자이며 사역자인 찬양 리더가 나간다면 교회는 큰 손실을 겪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감당할 교회의 문제 또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거룩함을 위해 리더에게 충고하였고, 죄에 대한 회개와 합당한 행동을 요구하였습니다.
이 리더는 이 소리를 듣더니 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화를 내었고, 교회를 분열시켰고,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거룩함에 대한 빌하이벨스 목사님의 거룩함을 귀하게 보셨는지, 교회에 또 다른 기쁨과 부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교회는 더욱 안정되어 갔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에게 잠시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교회는 이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을 쫓았던 것입니다.
코칭 : 이러한 문제가 우리에게도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택의 문제 앞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용납과 관용은 어디까지여야 하는 것일까요?
썩어져 가는 살을 도려내어 새살을 기다려야 할까요? 그냥 두어야 할까요? 그냥 둔다면 건강한 살까지 썩어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희생을 치루실 수 있으신가요?
우리처럼 두아디라 교회는 이 문제에 큰 몸살을 안고 있던 것입니다.
2) 회개하라, 행위대로 갚아주겠다.(22-23절)
하나님께서는 두아디라를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모두 보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폐부를 모두 보고 계시며,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행위가 선한 것인지, 욕심에서 나온 것인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이러한 사실 앞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경외의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완전하지 못함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의한 심판자가 아니십니다.
끝까지 죄인이 회개하며 돌아오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완전하지 않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이러한 사랑하며 기다리시는 심판의 주님께서 자칭 선지자 이세벨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그녀가 당한 징벌은 그녀를 침상에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침상은 그녀를 질병에 빠지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병에 걸려 죽게 하시는 징벌입니다.
또한 그녀를 따르는, 그녀의 가르침을 받은 그녀의 자녀들까지 모두 환란과 질병에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입니다.
또한 이 침상은 그녀가 계속해서 음행하고, 사람들을 죄에 빠지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녀를 찾아 하나님과 우상과 섞어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그대로 유기하셔서 큰 환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계속 두셔서 심판하시도록 유기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화 : 하나님은 멈추도록 신호를 보내신다.
어떤 한 성도님이 삶에서 반복적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 죄가 너무나 달콤해서 그 성도님은 나쁜 습관을 끊지 못하고 계속해서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반복적으로 죄에서 돌이키도록 양심으로 문을 두드리시고, 교회의 강단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찔렸지만 이윽고 마음이 편해져서 다시 즐겁게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성도님에게 병으로 이 죄를 짓지 않게 하셨습니다.
병이 걸리자 마음에 충격을 받은 이 성도님은 잠시간은 이 죄를 짓지 아니하였습니다.
다시 마음이 동하여 나쁜 습관으로 돌아간 이 성도님은 다시 죄를 지었습니다.
더 심하고 더 교묘하게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가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하게 목숨을 거둬 가셨습니다.
예화가 너무나도 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인 원리는 사실이고, 모두가 겪고 있는 하나님의 징벌-징계입니다.
하나님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우리가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회개의 기회를 이세벨과 두아디라 성도들에게 주셨지만 그들의 결과는 어떠합니까?
23절의 말씀과 같이 그들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그의 자녀들을 죽이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왕하 10:6-7에서 비롯된 말씀입니다.
“6 예후가 다시 그들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너희가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가지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왕자 칠십 명이 그 성읍의 귀족들, 곧 그들을 양육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7 편지가 그들에게 이르매 그들이 왕자 칠십 명을 붙잡아 죽이고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 아합과 이세벨의 자녀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세벨은 개가 먹어 죽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은 무서운 칼과 같이 우리를 향해 올 것입니다.
적용1 : 그러므로 성도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죄에 대해서 징벌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보고 계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마음까지도 살피시는, 폐부를 살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하나님 없는 행위, 세상의 가치과 겸하여 믿는 행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를 끝내 돌이키지 않는다면 우리를 침상에 던지시던지, 죽음에 이르게 하시던지 죄의 징벌은 우리에게 찾아 올 것입니다.
적용2 : 하나님의 심판도 무서운 것이지만, 죄 자체가 우리를 망가트립니다.
그리고 작은 죄는 우리로 더 큰 죄로 이끄는 도화선이 됩니다.
우리의 삶에 있는 작은 죄의 습관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망가트립니다.
매일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는 몸에 무리가 가서 몸이 망가지게 될 것입니다.
가룟 유다에게는 반복되는 죄가 있었습니다.
그는 성도들이 헌금하는 헌금함에 손을 대는 반복되는 죄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는 탐심은 예수님을 파는 큰 죄에 사용되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반복되는 죄는 더 큰 죄를 틈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의 삶과 마음에 탐욕과 죄의 문제가 있지 않으신가요?
여러분 주님께로 돌아오십시오.
3) 너희에게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24-25절)
두아디라 교회에 타협하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을까요?
하나님은 언제나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남은 자들을 남겨 놓으십니다.
두아디라 교회에는 신실한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칭 선지자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습니다.
유혹에 대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경건한 오늘을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24절 너희에게 지울 다른 짐이 없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금도 잘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님께서는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긴다는 것은 군사적인 용어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전투를 하며, 끝까지 싸우는 자, 전투에서 승리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는 모든 교회가 영적 전투 가운데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단의 공격에 우리가 만신창이가 될지라도 성도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끝까지 주님을 붙드는 그,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자”에게 주님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 새벽별”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께서 권세와 새벽별을 주심은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셔서 교회를 지키시고, 주권을 상징하는 새벽별을 주심으로 주님이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고 계심을 그들로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적용 1 : 두아디라 교회의 문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쉬운 길, 편한 길을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엄중하게 밝혀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삶에는 불이익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중간 지대는 없기 때문입니다.
적용2 :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주님이 주신 은혜와 말씀을 굳게 잡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종일 죽임을 당하며 고난을 당할 지라도, 환란이 가득하고, 곤고가 있을 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하며, 이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다른 말씀을 주시기 않습니다.
잘했다.
다른 것이 없다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주님을 믿는 믿음이 세상에 타협하며, 세상과 신앙을 섞는 사람들의 마음-질그릇은 깨트리는 철막대기-철장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롬 8:37-39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은혜를 다시금 굳게 붙잡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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