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우리의 친구

고난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64 views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F
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View more →
빌1 27-3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최익두 선교사님] [오후 12:53] 현장에서 선교하면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으니 잘하고 싶은 마음이 참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하나님은 사역을 잘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나를 열심히 찾고 만나러 오라라고 하시네요.
그래서 사역이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공동체적으로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에 성공하면 사역에 관련된 많은 부분들을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열어가시는 것을 느끼게 하시네요.
'말씀에, 기도에, 예배에 모든 것을 걸면 되겠구나' 하는 마음을 다시금 확정해 주시는 것 같아요. 이것을 지켜 나가는 시간 가운데 사단의 영적공격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아마 그것이 우리의 삶에 고난으로 오는 것 같아요. 감사한 것은 그것마저도 저는 이길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이길 힘을 주시고 이기게 하셔서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인지 모르겠어요.
말씀에 순종했는데 받는 고난이 있다. 말씀에 순종해서 자녀를 낳았는데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고난의 연속이다.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그 길에 고난이 계속된다. 고난이 계속되면 이 고난은 무엇을 위한 고난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빌1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2가지 선물주심. 하나는 믿음을 주셨고, 둘째는 고난 입니다. 첫번째 선물만 받았으면 좋겠는데, 두번째 선물도 주신다. 주일설교 말씀에서 욥은 고난을 통과하여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욥42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즉 고난을 통과해야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고난을 바울의 고난, 예수님의 고난, 빌립보 교회의 고난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함.
먼저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삶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빌립보 교회에게 보내는 이편지도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고난을 겪으면서 쓰고 있는 것. 빌1 12-13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그는 복음때문에 감옥에 매여있다. 그런데 이러한 때에 그는 예수님을 가장 가깝게 느끼고 있다. 빌1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삶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그러니 죽는것이 더유익하다고 말한다. 빌1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말한다. 고난의 한 복판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가장 가깝게 느끼고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빌1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자신을 질투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리스도만 전파된다면 자신은 얼마든지 기쁘다는 것이다. 바울에게 고난은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는 좋은 방편이 되었다. 그러한 고난 중에 깨달은 진리를 오늘 본문과 같이 성령의 감동을로 설파한다. 빌1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는 자신이 받는 고난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라는 사실을 생각했다. 자신의 삶의 목표가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고, 나머지는 다 배설물로 여겨왔는데,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를 얻는 다면,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도 삶에서 이러 저러한 고난을 겪는다. 질병, 자녀, 가정, 재정, 학업, 직장, 관계, 사업, 재난 등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는다. 그런데 이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라면 하나님의 선물이요, 우리의 영광이된다. 그리스도를 가장 가까이 모실 기회이다. 아들이 팔이 부러지고, 아내가 장염으로 설사, 열, 아이들도 설사 열 나니 당황스러움. 때로 마음이 찢어진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주심을 생각해본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설교 예화를 주시는 구나! 복음을 성도들에게 더욱 살갑게 전하라고 고난을 주시는 구나! 생각하게 된다. 아, 결국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주시는 구나! 할렐루야! 설교자의 심령에 예수님을 가까이 모시지 않으면 어찌 설교에 힘이 있을 수 있겠는가! 미사여구, 찬란한 논리는 있을 지언정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고난이 하나님이 선물이된다.
이제 예수님의 고난을 살펴볼 차례이다. 오늘 본문은 빌1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왜 우리가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우리의 고난이 필요하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 할때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고난이 꼭 필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주 만물이 창조주요, 주인으로서 우리의 고난이 없으셔도 얼마든지 복음의 역사를 이뤄가실 수 있다. 성경은 벧전2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를 위해 고난을 받으라고 말한다. 그가 우리를 생각하고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를 생각하고 고난을 받으라는 것이다. 히2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고난을 당할 이유가 전혀 없으신 분이다. 인류가 타락했으면 돌들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창조세계를 통해 주님의 일을 이뤄가실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 빌2 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의 삶은 그 탄생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고난을 친구삼아 사셨다. 가장 거룩하신 분이 죄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1분 1초를 사는 것 자체가 그분에게는 고난이다. 가족들도 그를 알아주지 못했다. 요7 2-5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가난한 목수 가정의 첫째 아들로서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고난을 겪으셨다. 가는 곳마다 그를 못죽여서 안달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생명의 떡을 나누어주니 외면하는 사람들을 늘 마주해야 했다. 요6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눅17 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예수님의 고난의 절정은 십자가 입니다. 자기 제자들도 자기를 다 버렸지만 끝까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의 잔을 그 찌꺼기까지 다 받으신 것입니다. 마26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히5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를 위한 것이었음을 깊이 생각하는 만큼 우리는 주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만큼 우리도 주님의 고난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것이 고난의 신비입니다. 지구촌 교회 조봉희 목사님 설교중에도 가장 훌륭한 의사는 같은 병을 앓아본 의사라는 말씀을 주셨는데, 참으로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셔서 우리의 고통을 너무 잘 아십니다. 동시에 우리도 그를 위해 고난을 받음으로서 주님의 마음을 더 알게 되고 품게 됩니다. 이것이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은혜입니다.
이제 빌립보 교회의 고난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빌1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합니다. 생활하라라고 번역된 이말뜻은 시민노릇하라 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니 천국 시민으로서 합당하게 시민의 의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시민생활에 합당한 삶을 3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빌1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라고 말합니다. 둘째는 빌1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세째는 빌1 28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빌립보 교회는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움에 처할 위기에 있습니다.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어떻게 빌립보 교회를 세우게 되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마게도니아 환상을 보았고, 건너가서 루디아를 만났고, 그녀가 강권하여 교회의 거처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다가 한 귀신들린 여종을 만납니다. 행16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러자 바울이 행16 17-19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그리고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빌립보 교회는 이러한 고난을 보았고, 또한 그러한 고난에 처해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빌1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빌립보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천국시민으로서 합당하게 생활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고난을 감당할 힘을 주십니다. 고난 속에서 믿음으로 버티게 하셔서 그들의 구원의 증거를 드러내십니다. 빌1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결국 빌립보 교회가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결국 빌립보 교회가 당한 고난은 바울의 상황처럼 복음전파에 진전을 이루게 됩니다. 빌1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당한 고난은 복음 전파를 위해 정말 유익하다. 요셉이 그렇지 않았는가? 고난을 당해 종으로 팔리고,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바로의 꿈 해몽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야곱과 그 가족들을 구원할 총리의 위치에 설 수 있었겠는가? 시105 17-19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그는 고난을 받은 것이다. 바울도 빌립보 감옥에서 그랬다. 바울이 고난을 당해 빌립보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어찌 간수장을 만나 가족 구원을 위해 생명의 말씀 빌16 31”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라는 말씀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믿음을 주셨고, 동시에 그를 위한 고난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고난을 통과하는 우리를 통해 구원의 증거를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이 고난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를 위한 고난을 통해 예수님을 더 가깝게 모시게 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 받으신 고난을 더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고난중에 그 예수님을 가까이 모셨습니다. 자신의 고난 가운데 예수님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빌1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고난을 보았고 또한 듣고 있는 빌립보 교회와 우리도 이 말씀에서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게 주신 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입니다. 늘 친구처럼 따라다니면서 주를 바라보도록 도와줍니다. 부담스러운 친구지만 결국 우리에게 유익을 줍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면 우리가 그를 위해 당하는 고난은 영광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통해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
설교후 찬송 :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찬484장)
주기도문 으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6장)
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 응할때까지 우리는 고난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하는데, 그 마음을 품으려면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을 경험해야 한다.
고난이 있으니 고난의 시기에 붙들었던 그 말씀을 전하고 싶은 강렬한 열망에 사로 잡힌다.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를 통해 고난의 현장에서 구원의 증거를 드러내게 하십니다. 빌1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를 주신 것은 고난을 감당하게 하심입니다. 주를 위해 고난을 감당하게 하심입니다.
고난 예수님은 모든 삶이 고난의 연속, 예수님을 우리를 친구로 불러주셨고, 따라서 우리의 삶도 예수님처럼 고난의 연속이다.
마트, 상점, 거리, 결혼식 모든 것이 성도에게 고난
예수님은 무통증 환자가 아니다.
예수님의 능동적 순종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가되는가? 또 정말 그 완전한 의로 우리의 성화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가?
종은 자기를 낮춰야, 예수님이 자기를 비워 낮추었다. 우리가 종이다. 빌1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