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함으로 단장하는 성도

베드로전서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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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3장)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작년 올림픽 태권도 여자 67KG 초과급 금메달 결정전 경기에서 이다빈 선수가 만디치 선수에게 7대 10으로 패하고 최종적으로 은메달을 걸었습니다. 제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사진이 더 좋을 것 같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이 경기에서 패한 이다빈 선수가 엄지 손가락을 들며 상대 선수를 인정하고 있고 이 경기에서 이긴 만디치 선수는 허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승자와 패자가 남은 것이 아니라 같은 태권도인으로서 서로에 대한 격려와 경의가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종격투기 같은 스포츠를 보면 상대방을 거의 기절시키거나 피투성이로 만듭니다. 그렇게 해서 상대를 이기면 링 위에 올라가서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을 봅니다. 쓰러지거나 다친 상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승리에 한껏 도취됩니다. 보통 스포츠가 이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진속의 이다빈, 만디치 선수의 모습은 그야말로 태권도 정신, 올림픽 정신을 잘 구현한 모습이었습니다. 승리했다고 자신의 승리에만 도취되어서 교만하지 않고 패배했다고 패배의식에 찌들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이겼다고 우쭐하지 않고 패자를 배려하고 패자라고 강자에게 한을 품지 않고 너그러움으로 축하해주는 이 장면이 온유함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올림픽에서 빛났던 이 온유한 모습은 대표적인 성도의 덕목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이 태권도 시합에서의 모습처럼 온유함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께서 그분 스스로를 온유하다고 하셨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온유함을 닮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온유함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1- 성도는 온유함과 평안함으로 단장해야 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성도는 온유함으로 단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장 3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아내들에게 하는 권면입니다. 3절에 보면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라고 하며 4절에는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4절에 숨은 사람은 우리의 인격을 이야기합니다. 겉으로 치장하고 꾸밀 수 없는 우리 본연의 모습을 말합니다. 이 내면의 인격을 온유함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뒤에 안정하다고 하는 말은 평안함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온유함과 평안함으로 단장하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것을 두고 썩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썩지 않는 것은 베드로전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 받을 유업은 썩지 않는 유업입니다. 이 썩지 않는 유업을 받는 성도들은 썩지 않는 온유함과 평안함으로 자신의 숨은 사람, 내면, 인격을 단장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도 썩을 것으로 내면을 채우는데 어떻게 썩지 않는 것을 유업으로 받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5절에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온유한 자만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썩지 않을 기업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썩지 않는 가치, 온유함과 화평함으로 단장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 온유함은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 남성들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을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왕으로 소개하셨습니다. 당시 고대사회에서 왕의 성품으로 합당하게 여겨지는 것은 용맹스러움, 카리스마 이런 것입니다. 온유함은 왕의 성품으로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의 왕들을 초월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온유함을 가지고 계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도 온유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온유한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겠습니까? 온유하다는 말 라우스의 뜻은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지 않는”, “억지로 하지 않는”, “이기적으로 우기지 않는”, “자신의 방식만 고집하지 않는” 이런 뜻입니다. 온유한 것은 그냥 성격이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삶의 방향성을 말합니다. 충분이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떤 요구를 받았을 때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고 이타적이며 때론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인정하며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에게 온유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시고 고난의 삶을 선택하셨습니다. 그것을 억지로 한 것도 아닙니다. 자신보다는 그분의 백성을 생각하셨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두려우셨지만 자신을 부인하고 결국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할 때,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뒤를 따른다고 할 때, 이 온유함으로 숨은 사람을 단장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적용)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아내들에게 온유함과 평안함으로 속사람을 단장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순종해야 할 내용입니다. 우리가 외모를 단장하는 것은 쉬울지도 모릅니다. 멋진 옷과 아름다운 악세사리를 착용하는 것은 돈만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돈이 없어서 문제긴 하지만 평범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시간을 들여 돈을 모으면 외모를 단장할 것들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속사람을 단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은 돈으로도 안 되고 시간을 쏟아 부어도 안 됩니다. 속사람을 단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 충만을 구해서 우리의 부패한 심령을 거룩하게 변화시켜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자신의 고집을 결코 꺾지 않습니다. 이걸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나의 성품을 말씀이 죽이고 성령이 새롭게 살려서 온유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의 자아가 튀어나올 때마다 자신을 부인하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나의 속사람을 단장해야 합니다.
2- 온유함으로 단장할 때 구원의 역사를 이룬다.
(전환문장) 그러면 우리가 속사람을 단장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우리가 온유함으로 속사람을 단장할 때 구원의 역사를 이룬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실 때 아실 수 있는 것처럼 온유하라는 명령은 그냥 나온 명령이 아닙니다. 3장 1절을 보면 사도 베드로는 불신자를 남편으로 둔 그리스도인 여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감내하신 것처럼 믿지 않는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남편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더라도 아내의 행실로 인해서 구원 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행실을 위한 것이 바로 온유함이고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아름다운 옷과 금으로 장식하지 말고 온유함으로 속사람을 단장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지난 번 설교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레코로만 시대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종속된 존재입니다. 로마의 역사가 플루타르크는 당시 아내는 남편이 믿는 신 뿐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까지 남편에게 종속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내는 자기 자신만의 친구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남편의 친구만을 자신의 친구로 여겨야 합니다. 또 고대인들의 생각에는 남편이 섬기는 신을 아내가 같이 열심히 섬기지 않으면 그 신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남편이 제우스 신을 섬기면 아내도 제우스 신을 섬겨야 제우스를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기독교 신앙을 따라오는 것은 물론이고 아내의 독자적인 종교생활을 인정하는 것도 사회 풍토상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는 말이 아닌 온유한 행실로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여서 남편이 말씀을 믿도록 하라고 합니다. 속사람을 온유함으로 단장할 때 정결한 행실을 만들게 되고 이 행실을 통해 남편이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말씀을 믿게 하려면 말을 논리적으로 잘해야 할 것 같은데 말씀을 믿게 하기 위해 행동을 잘해야 하는 이 상황이 굉장히 역설적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초월한 혹은 언어를 포괄한 우리 삶 전체를 통해 구원역사를 펼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아내들의 입장은 남편에게 주도 당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주도권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주도권이 없는 아내들에게 온유함으로써 남편을 주도하라고 합니다. 당시 사회가 만든 남녀간의 권력구도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를 읽는 아내들이 온유함으로 속사람을 단장하여 불신 남편에게 순종할 때 믿음의 반열에 들어간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5절에 보면 하나님께 소망을 둔 거룩한 부녀들이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다고 말씀합니다. 6절에 보면 모범적인 인물이 나오는데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믿음의 조상의 아내였던 사라처럼 남편에게 순종하여 선을 행하고 고난 가운데에도 놀라지 않으면 사라의 딸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사라의 딸이라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이야기합니다. 믿음의 반열에 들었음을 말합니다. 불신 남편을 둔 아내들일지라도 온유함으로 남편에게 순종하면 사라의 딸이 되고 믿음의 반열에 들게 됩니다.
(증명) 우리가 잘 아는 성경 말씀에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의 길로 이끈 지도자가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모세입니다. 민수기 12:3에 보시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예전에 이 말씀을 생각하면 모세가 굉장히 자뻑이 심한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수기를 누가 기록했습니까? 모세가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 기록했지만 어떻게 자기가 자기한테 온유하다고 저렇게 말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세가 온유하다고 한 이 말이 우리 믿음 생활에 얼마나 큰 힌트를 주는지 모릅니다.
모세는 애굽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낸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기적을 일으킨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체험하고도 광야에서 끊임없이 불평했습니다. 반란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불신앙이 가득하니까 하나님의 기적이고 말씀이고 뭐고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온유하다고 한 이 본문의 배경은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 때문에, 그러니까 미디안 광야에서 십보라와 결혼 한 것 때문에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고 반란을 일으키려는 상황입니다. 모세가 고생 고생 해서 출애굽 시켜놨더만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모세는 이 때 논리적으로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미리암에게 벌로 나병을 내리셨지만 온유한 사람 모세는 하나님께 징벌을 받은 아론과 미리암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낼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이나 모세의 지도력 이런 것을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지만 모세의 온유함도 큰 몫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도 불평불만하고 모세의 리더십을 의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금 언약의 땅으로 가도록 독려한 것은 모세의 온유함입니다. 모세는 온유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분노와 원망을 받아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온유함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옮기시며 구원 사역을 지속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엄청난 광야의 기적만큼 모세의 온유함이 능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적용) 온유함으로 잃어버린 백성을 돌아오게 하는 이 진리는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 시대에는 언어가 너무 많습니다. 논리가 너무 많습니다. 언어로 치고 받고 언어로 뒤범벅이 된 세상입니다. 말 속에 파묻혀 사는 시대입니다. 말로 자신을 포장하고 상대를 공격하고 말로 권력을 얻고 잃어버리고 위트 있는 언어로 인기를 얻습니다. 어떤 이는 말로 사랑을 얻기도 합니다. 저는 대학 다닐 때 아내를 만나서 신대원 다닐 때 결혼을 했는데 요즘 신학생들은 결혼 시장에서 인기가 좋지 않습니다. 제가 돈이 많습니까? 외모가 뛰어납니까? 오로지 언어로 승부했습니다.
어쨌든 어느 순간 언어에는 진실 된 모습 보다는 욕망을 위한 수단의 모습이 더 많이 보입니다. 언어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언어의 무게는 한 없이 가벼워집니다. 언어의 진중함, 언어의 밀도 보다는 언어의 부피만 팽창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렇게 언어가 난무하는 시대에 복음을 언어로 전달하는 것에 회의감이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 언어가 너무 많아서 복음의 언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입니다. 또 언어가 이렇게 넘쳐나는 시대에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입장은 어떻겠습니까? 어떤 이는 복음의 언어를 듣고 바로 돌아오겠지만 어떤 이는 그저 상투적인 종교 언어로 치부할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오늘 본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속사람을 온유함으로 단장할 때 말로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이 우리의 행실을 보고 말씀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이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시대에 아내는 절대 남편을 주장할 수 없는 을의 입장에서도 온유함으로 행실로 남편을 돌아오게 했어야 합니다. 지금은 약간 다른 구도에서 비슷한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말로는 절대 돌아오게 할 수 없는 사람들, 언어의 잔치에 파묻혀 웬만큼 자극적인 언어가 아니고서는 듣지 않는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말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온유한 행실로 말씀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당시 사회의 아내들에게 한 교훈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됩니다. 때론 온유함이 논리정연한 말보다 더 큰 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좋은 것으로 겉을 단장하는 것보다 우리 내면의 속사람을 온유함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온유함은 성격이 좋거나 매너 있는 것을 뛰어넘은 삶의 방향성입니다.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지 않고 억지로 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우기지 않고, 자신의 방식만 고집하지 않는 삶의 태도입니다. 마치 그리스도의 삶을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온유함으로 속사람을 단장할 때 우리의 정결한 행실을 통해서 말씀으로 설득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저와 성도님들께 일어나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1- 말씀 들은 것을 통해서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온유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본성이 이걸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더 악해지고 더 차가워지고 더 냉정해져야 내 자존심도 살리고 내 이익도 챙길 수 있다고 그렇게 우리를 설득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 되고자하는 천국 시민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도로서, 복음의 능력을 구하는 전도자로서 우리는 온유해져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다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2- 직분자를 위한 기도
그 다음으로 직분자와 셀리더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어려운 시기에 목회하실 때에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더욱 부어주시어서 당평교회가 이 지역의 복음화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당회 장로님들의 섬김으로 당평교회가 더욱 든든히 서가도록 기도합시다. 권사님, 집사님들께 은혜를 더하여 교회의 사역이 더욱 은혜 충만하도록 기도합시다. 원로목사님, 원로, 은퇴장로님, 은퇴권사님들께서 기도의 사명을 잘 감당하셔서 당평교회에 기도의 능력이 끊이지 않도록 다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3- 다음세대를 위한 기도
다음세대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다음세대가 말씀과 기도로 훈련되는 다음세대 되도록 기도합시다. 세상 속에서 세상을 닮지 않고 세상을 이기는 다음세대로 세워지도록 기도합시다. 이번 주 교사기도회가 있고 다음 주 교사 강습회가 있습니다. 교사 기도회와 강습회를 통하여서 교역자, 교사, 셀리더가 어떻게 하면 다음세대를 더 잘 세울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생각을 나누며 우리 당평교회가 다음세대를 더욱 잘 세우는교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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