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계신 나의 친구
위에 계신 나의 친구
[요 15:12-요 15:17]
(12)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14)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17)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일본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메인 스타디움을 수리하기 위해서 건설업자들이 지은 지3년 된 이 스타디움의 지붕을 뜯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붕 밑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어서 세상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인부들이 발견한 그 놀라운 장면이란 지붕 안쪽의 벽면에 못이 박힌 채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도마뱀의 모습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모습은 3년 전 이 스타디움을 지을 때 이 도마뱀이 못에 찔려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못에 박힌 채 3년을 살아왔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신기해서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한 동안 그 도마뱀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 와서 먹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친구의 도움으로 이 도마뱀은 3년동안 못에 박힌 상태에서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도마뱀도 이렇게 사는데... 우리 인간은 옆에 있는 친구를 위하여 어떻게 도우며, 또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림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진정한 친구가 있습니까? 목숨까지도 버려도 아깝지 않은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참 가치있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의 성장 과정 속에서 조금씩 달라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더욱 깨닫게 되는 것은 참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어린시절, 또 중고등학교 시절, 아무런 이해 타산없이 아무런 목적없이 그저 좋아서 만나던 친구들도 결혼하고 분주한 삶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잘 보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단 한 사람의 참된 친구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크나큰 행복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우정의 친구를 만나기를 원한다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먼저 우정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희생하고 우정을 보여주지 않는 한 진정한 우정의 친구를 사귀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종종 사람들은 깡패 세계나 어떤 패거리 문화에서 말하는 값싼 의리를 진정한 우정과 혼동하기도 합니다. 친구가 잘못 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뻔히 보고도, 그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그 잘못을 쉬쉬하고 덮어주기에 급급하다면 그것은 진정한 친구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경이 말하는 우정이 무엇인지, 진정한 친구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나의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친구가 되실 때 우리의 목마름은 비로소 해갈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땅에서 어떻게 진정한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요?
오늘 보시는 본문은 예수님과 믿는 자들의 상호관계를 친구관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요한복음 15장은 우리가 잘 아는 포도나무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예수님, 제자들,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를 설명하시기 위하여 이 비유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인 12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은 우리 믿는 자들이 어떻게 서로 관계를 이루어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믿는 자들의 관계 속에서 믿는 자들 상호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먼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살펴보고, 그 안에서, 첫째는 왜 우리가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둘째는 그러면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인가? 우리가 어떤 친구와 가까이 하여야 하는가?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과 믿는 자의 관계: 친구
그러면 먼저 믿는 자들의 상호관계는 어떤 관계이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친구 관계인 것과 마찬가지로, 믿는 자와 믿는 자의 관계를 친구관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서로가 친구관계라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만일 믿는 자와 믿는 자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곧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그저 개인적인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먼저 분명히 인식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간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1. 그리스도의 몸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의 몸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래서 그 지체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믿는 자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2. 믿는 자들의 친교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섬기고 나누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의 문제는 그 섬김과 나눔을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3. 믿는 자들의 증거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의 문제는 곧 하나님 말씀에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증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4. 하나님을 찾는 인간의 영혼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 상호간에 문제가 있다면, 교회를 찾아온 새 신자들이 발 붙을 곳이 없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믿는 자들의 상호관계가 바로 서야 함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자기중심적, 분리주의적인 행동만큼 예수님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 상호간의 관계를 매우 중시하셨습니다.
그러면 믿는 자들 상호관계에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덕목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무엇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랑이지요.
[요 13:34-요 13:35]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최고의 계명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란 어떤 사랑입니까?
12절을 보십시다.
(12)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13절에서는
(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사랑하는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친구 사랑은 목숨 걸고 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목숨을 내놓고 친구를 사랑합니까? 목숨을 내놓고 믿는 자들 상호간에 사랑합니까?
우리가 친구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면 먼저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여러분의 친구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14절을 보십시다. 간단합니다.
(14)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수님과 친구가 되는 방편은 간단합니다. 그저 주님의 명하심을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그 명하심이란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친구된 우리들 목숨까지도 내놓는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미국 남북 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일인데요, 북군에서 전쟁에 나갈 군인이 모자라서 징발을 했습니다. 징발의 방법은 제비를 뽑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제비를 뽑았는데 가족도 많고 노부모도 계시고 전쟁에 나가면 그 가족을 전혀 부양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 뽑혔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친구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아직 결혼도 하지 아니했으니 자신이 대신해서 전쟁터로 가겠다고 자원을 했습니다.
친구를 대신 전쟁터에 보내고, 이 청년은 자기 가족들을 부양하며, 늘 이 친구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신문을 보면 먼저 전쟁 뉴스부터 보고, 특별히 어떤 곳에 격전이 있다고 하면 거기 혹 자기 친구가 들지 않았는가 그것부터 살펴보고, 또 이따금 전쟁에서 죽은 사망자 명단이 나게 되면 행여 자기 친구가 전사하지 않았나 제일 먼저 살폈습니다.
마지막으로 큰 격전이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친구는 전쟁터에서 날아오는 파편에 맞아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습니다. 그 격전은 자세히 신문에 보도되었고, 사망자 명단에는 그 친구의 이름이 났습니다.
친구를 떠나보내고 매일 매일 전쟁의 소식을 기다리는 남아있던 청년은 신문을 움켜쥐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그 싸움터로 가서 자기 대신 죽은 그 친구의 시체를 고히 모셔다가 자기 가족 공동 묘지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묘비를 세웠습니다. 그 묘비에는 한 줄의 간단한, 그러나 그 친구의 모든 슬픔과 추억이 감긴 추모사가 새겨졌습니다.
'그는 나를 위하여 죽으시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목숨까지도 내어놓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이 땅에서 진정한 친구가 되고 또 진정한 친구를 사귀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권면하고 있는 참된 친구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어떤 친구를 성경은 참된 친구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친구란 ‘서로 관계하고 교통하며, 함께 나누고, 서로에게 반응하고, 함께 기뻐하고 또 함께 슬퍼하고, 서로의 어려움에 서로 서로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이 친구 사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진정으로 우리게 필요한 친구는 어떤 친구입니까?
세상적인 친구입니까? 만나서 밥먹고 함께 놀고 세상적 쾌락들을 함께 즐기고, 물론 우리에게 휴식도 필요하고 재충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는 그 이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까?
성경의 친구 선택에 대한 기준은 무엇입니까?
참된 친구란,
첫째로, 믿음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잠 27:5-잠 27:6]
(5)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6)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친구를 위한 책망은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거나 멀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결정적인 잘못을 보고도 그저 지나쳐버리는 것은 믿음의 친구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안에서의 친구가 아니죠. 싸구려 뒷골목의 값싼 의리와 같은 것입니다.
본문은 친구의 잘못을 보고도 책망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 ‘숨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숨어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주님을 의지하도록 서로에게 충고하는 관계여야 합니다. 세상적 방법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권면하며, 함께 신앙적 성장을 이루어 내는 관계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는 주안에서 함께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친구가 지녀야 할 방향인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편지로 구혼을 해왔습니다. 그 처녀의 아버지는 며칠 뒤 확답을 주겠다고 말하고는 그 청년을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약속한 날짜가 되어서 아버지는 그 청년에게 거부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 청년은 화가 나서 처녀의 아버지를 만나서 이렇게 따졌습니다.
"아니 도대체 당사자인 나를 만나지도 않고 무엇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그 처녀의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난 며칠동안 자네의 친구들을 만나보았지. 그 친구들은 하나같이 불량하거나 하나님을 알고 있지 못했어. 믿음을 가진 친구를 단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네. 난 자네의 친구들을 통해서 이미 자네를 충분히 보았기 때문에 거절한 것이네. 믿음의 친구 단 한 명만 있었어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을 것일세"
그렇습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아는 것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믿음의 친구입니다. 토요일날 술병들고 찾아오는 그런 친구가 아니라 믿음안에서 함께 하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입니다.
믿음. 그것은 진정한 친구에게 가장 값진 것입니다. 그 믿음이 주안에서 이루어져서 더욱 값진 것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그래서 주안에서 함께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것이 참된 친구가 지녀야 할 올바른 방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의 친구였고 이방인의 친구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그들의 친구를 사랑하였고 그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믿음의 친구가 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두번 째로, 참된 친구는 기쁜 일과 슬픈 일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3) 잠17:17 어려울 때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17)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잠언 17:17 (p.928) –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사랑이 한결 같은 것이 친구입니다. 어려울 때 돕는 것이 친구입니다. 기쁠 때나 슬픈 일에- 함께 하는 것이 친구입니다. 놀 때만, 즐길 때만 함께 하는 것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어려운 순간, 힘든 순간, 거기 그 자리에 여러분들이 있어야 합니다. 위로하고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두 친구가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곰이 나타나자 한 친구는 급히 길가에 있는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곰이 나타났을 때 미처 피하지 못한 다른 한 친구는 곰에게 잡혀 먹힐 거라는 것을 알고는 땅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 마냥 숨을 내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곰은 죽은 시체는 먹지 않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엎드린 친구의 곁에 다가온 곰은 코로 귀와 어깨 부위의 냄새를 맡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엎드려 있던 친구는 전혀 숨을 내쉬지 않았기 때문에 곰은 그를 죽은 시체로 간주하고 그대로 떠나버렸습니다. 곰이 가버린 후 나무 위에 있던 친구가 나무에서 내려와 친구에게 곰이 귀에다 대고 뭐라고 하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엎드려 있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곰이 그러더군. 앞으로는 친구를 위험 속에 혼자 내버려두는 사람하고는 절대로 함께 다니지 말라고 말이야!"
엄밀한 의미에서 한결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어려운 순간, 힘든 순간,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요. 죽음의 문턱에서 인간은 결국 혼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여렵고 힘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고통의 자리에 우리는 있어야 합니다. 위로하고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 오늘 주안에서 친구인 우리들의 과제입니다. 여려운 순간, 힘든 순간, 그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주안에서의 진정한 친구가 됩시다.
세 번째로 참된 친구는 격려하는 친구입니다.
2) 잠27:17 자신을 성장시키는 친구
(17)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4) 잠18:24 충고해 줄 수 있는 친구께
(24)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에게 위로를 주고 지혜를 주고 믿음을 주는 친구. 격려하며 새로운 희망 속에 살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입니다. 실의에 빠진 친구, 상심하고 있는 이웃, 시험에 빠져 있는 우리의 동료들이 있습니까? 그들에게 다가 가십시오. 그리고 진정을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그들을 격려하십시오. 그 때 우리는 참된 친구가 되는 것이고, 그때 우리는 진정한 친구를 얻는 것입니다.
독일의 수상을 지냈던 비스마르크가 젊었을 때 친구와 사냥을 나갔습니다. 사냥하던 중에 친구가 그만 발을 헛디뎌서 수렁에 빠졌습니다. 근처는 늪지대였기 때문에 악어가 들실거리고 있어서 빨리 빠져나오지 않으면 온 몸을 물려서 고통속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친구는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으나 오히려 비스마르크는 엽총을 겨눈 후 "친구여 내 우정을 잊지 말게"하면서 그 친구의 머리를 겨냥했습니다. 극한 상황에 이른 친구는 최후의 힘을 다해 수렁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마침내 뭍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비스마르크는 손을 내밀어 건져준 후 친구에게 명언을 남겼습니다. "나는 자네의 머리에 총을 겨눈 것이 아니라 포기하려는 자네의 생각에 총을 겨눈 것이라네."
진정한 친구는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진심으로 격려하는 친구입니다.
마지막으로 참된 친구, 영원한 친구의 모델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게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능가하는 친구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진정한 친구가 되십시오. 주님의 진정한 친구가 되시고 주님께서 바로 우리의 영원하신 친구임을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정말 주안에서 참된 친구가 되어,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아끼며, 섬기는 진정한 우정을 키워갑시다.
우리 주위사람들에게, 우리 이웃에게, 우리가 진정한 친구가 되어줄 때, 그들은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찾게 되지 않겠습니까?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함께 하는 친구, 그것이 진정한 친구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진정한 친구는 누구입니까?
진정한 친구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사랑을 실천합니다. 이 세상의 삭막한 현실, 서로를 증오하고 배반하는 현실을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세상의 헛된 우정에 속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한 사랑과 우정을 실천하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