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보다 뛰어난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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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받을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하 5장 8–19절 말씀입니다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9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설교 제목: 열방보다 뛰어난 왕
전도사님은 연말에 하는 방송사 시상식이나 영화제 시상식을 재미있게 봐요. 일 년 동안 유행했던 드 라마, 노래,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고, 누가 시상식에서 상을 타는지 궁금하잖아요.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사람이 수상소감을 말할 때 표정을 보면 어떤 사람은 정말 뜻밖이라 말도 제대로 못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준비한 멘트가 많은데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당황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동안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가며 수상의 기쁨을 나누기도 해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수상소감을 말할 때, “가장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라고 말하는 분도 있어요. 그런 수상소감을 말하는 사람은 다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자신에게 가장 명 예롭고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그 모두를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이 참 멋집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으로는 하나님은 영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에게는 관심 없는 대상일 뿐이에요. 성경에도 하나님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많은 사람이 나와요. 그중에 서 오늘 설교 본문인 열왕기하 5장에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던 한 사람이 하나님을 인정하기에 이르는 과정의 이야기가 나와요. 이 사람은 이방인이었지만 그의 입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 신이십니다”라고 인정하고, 고백해요.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나아만이에요. 나아만은 아람이라는 이스라엘의 적대적인 나라의 군대장관이었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그에게는 병이 하나 있었는데, 나병이라는 병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한센병이라고도 불러요. 나아만 아내의 여종이었던 한 소녀가 나아만이 나병에 걸린 것을 보고 나아만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왕하 5:3)
나아만은 아내에게 여종의 말을 전해 듣고, 아람 나라의 왕에게 찾아갔어요. 아람 왕은 이스라엘에 나아만의 병을 고쳐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내면서 나아만을 고쳐달라고 했어요. 아람 왕은 나아만을 중요한 신하라고 생각했고, 이만한 선물이면 당연히 왕이 고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여종은 누가 나아만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했죠? 3절에 보면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아람 왕은 누구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죠? 5절에 보면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라고 말했어요. 나아만의 여종이 말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선지자였어요. 그런데 아람 왕은 선지자가 아니라 왕에게 보내죠. 그 이유는 당연히 선지자보다 왕이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긱했던 것이죠. 왕에게 얘기하면, 하나님도 그것을 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가요? 왕이 선지자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었나요? 왕이 이야기하면 선지자가 따라야 하고, 그 신이 하나님이 왕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하나요? 아뇨. 그렇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왕보다 더 높으시죠. 하지만 아람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왕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아람 왕이 자신에게 시키자.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선지자 엘리사가 나아만을 자신에게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배경이에요. 그렇다면 이제 엘리사가 나아만을 고치게 되는데, 여기서 질문하나 할게요. “나아만이 고침을 받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나병이죠. 그런데 실제로 나아만이 고쳐야 할 문제는 나병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여러 번 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올 때 예수님은 두 가지 차원에서 그들을 대하셨습니다. 복음서에는 중풍병자(중풍병자)가 친구를 통해 예수님께 가서 치료를 받기 위해 지붕을 통해 내려오는 곳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다가가서 “얘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감동되어 육체적 고통을 당하시고 중풍병자에게 조치를 취하셨는데 왜 그렇게 하십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얘야, 내가 여기서 너를 치유해줄게, 근데 너 진짜 마비시키는게 뭔지 알아? 당신을 정말로 죽이는 것은 사실 당신의 마음에 있는 죄야”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일반적인 고통과 문제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를 치유하는게 아니라, 마음의 진정한 문제를 다루게 될 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나아만이 엘리사 앞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나아만의 병을 치료할 수 있었어요. 맞나요? 하나님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계시죠.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어요. 나아만이 엘리사 앞에 도착했을 때, 엘리사가 나가서 나아만에게 손을 대서 고칠 수도 있었을 거에요. 신비한 일들을 경험하게 하거나 아니면 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오라고 할 수도 있었겠죠. 사실 나아만은 그렇게 고쳐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아만을 의도적으로 모욕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 9절과 10절입니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나아만은 아람의 권력자였으며, 많은 병사들을 데리고 엘리사를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값비싼 선물을 들고 찾아왔아여, 그런데 일개 선지자 나부랭이 엘리사가 당장 뛰쳐나와도 모자랄 판국에 종을 보냅니다. 이런 모욕이 없죠. 수치스럽습니다. 분노에 휩싸입니다.
지금 하나님과 엘리사는 나아만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모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나아만에게 “나아만아, 네 몸의 나병보다, 너를 삼키는 네 마음의 나병이 있다. 그 교만한 마음을 치료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죠.
나아만은 권력과 힘과 돈이면 될 줄 알았습니다. 아람 왕이 써준 편지라면 알아서 고쳐줄거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군대 장관인데, 내가 데리고 간 병사들을 보면, 무서워서 고쳐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간 돈과 선물을 보면, 고쳐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뭐에요. 권력과 힘과 돈으로 되지 않았습니다. 될거라 생각했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자, 나아만은 분노합니다. 11절에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니, 분노하게 되요.
지금 나아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분노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아만의 병을 고칠 수 있을까요? 진정한 치료법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나아만을 모욕하고 그의 교만을 무너뜨리는 일을 하십니다. 이것이 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치료가 시작되는 방법입니다. 교만함을 드러내고 무너트리며, 복음이 나아만에게 찾아 옵니다.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이 말에 나아만은 분노합니다. “그냥 씻으세요.” 나아만이 기대했던 것은 감동적이고, 신비하며, 극적인 무언가를 기대했습니다. 그가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판타지처럼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내 삶에 엄청난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씻는 거 너무 간단하다는 것이에요.
나아만은 자신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들을 다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낫기만 한다면, 선지자가 더 큰 일을 하라고 했어도 했을거에요. 구원을 얻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을거에요. 13절에 그의 종들이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고 했더면 하지 않았을거 아닙니까? 그런데 구원 받기 위해서는 내가 할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어요. 내가 나의 구원을 위해서 할만한게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냥 씻기만 해라. 이것은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아요. 자신처럼 큰 능력을 가지지 않아도, 초등학생들도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 바보도 할 거에요. 그래서 나아만은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종의 이야기를 듣고 바뀌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였어요. 이것이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의 사자가 명령한대로 물 속에 들어가죠. 그가 물 속에 들어간다고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합니다. 복음이 통한 것이죠. 그가 물 속에 내려갔다고 올라왔을 때, 그의 피부는 깨끗하고 흠이 없는 소년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온 천하를 전쟁하느라 다녀봤는데, 온 천하에 모든 신보다 하나님이 뛰어나시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선포하는 말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15절 후반부에 당신의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는 선포입니다. 지금까지는 제일가는 권력자였습니다. 종이 아니라 다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종 됨을 고백합니다. 권력을 포기합니다. 돈과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하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엘리사에게 주려고 합니다.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돈은 가지고 있으면 더 가지고 싶어요. 하지만 그것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17절에 흙을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겠다는 것이었어요. 내가 이제는 하나님을 향한 제단을 만들고 이제는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다른 신에게는 예배드리지 않겠어요. 그리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앞으로 하나님만 예배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상황 때문에, 내 주인, 내가 섬기는 왕이 다른 신을 섬기기에 제가 그곳에 가서 몸을 굽힙니다. 그러나 나는 그 신을 섬기지 않습니다. 나는 오로지 하나님만 예배하겠습니다! 그러자 19절에 엘리야가 너는 평안히 가라.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는 메세지를 듣습니다.
나아만은 단순히 자신의 나병만 고침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습니다. 권력과 힘과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내가 온갖 나라와 전쟁하며 돌아다녔지만, 하나님이 유일하신 신이십니다. 앞으로 주님만 예배하겠습니다. 나를 다스리던 왕도 이제는 나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왕을 따라 다니지만, 하나님이 나의 왕이십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과정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까발리십니다. 그리고 복음을 주시죠. 그 복음 안에는 나의 어떠함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나의 선행과 나의 착함과 나의 능력이 들어가지 않죠. 힘과 권력과 돈이 우리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을지언정 구원의 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들을 향해 달려갑니다. 하지만 이제는 멈춰서서 고백하길 원합니다. 나는 더이상 다른 우상을 예배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세상 속에 살아가야 하지만, 그리고 그 세상 속에서 공부하며 살아가지만, 그 공부가 나의 우상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 돈과 권력이 내 목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로지 나의 목표입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오늘 우리 청소년부 되길 소망합니다.
1. 열방보다 뛰어난 주님을 경험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2. 내 주변 이웃에게 주님을 전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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