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벤에셀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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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바둑의 복기
바둑 좋아하십니까? 저도 바둑은 잘 모르는데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해결은 전부 시청해본 적이 있습니다. 바둑 영화, 바둑 중계 이런 것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참 매력적인 경기인 것 같습니다.
바둑에서 대결이 끝나면 방금 둔 바둑돌을 다시 놔 보는 것을 복기라고 합니다. 프로기사들은 수백개가 넘는 바둑돌을 다시 제자리에 정확히 둡니다. 똑같은 자리에 그 수를 둡니다. 어떻게 그렇게 바둑돌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 비결은, 한 돌도 의미 없이 두지 않았기 떄문입니다. 그렇기에 다 기억하는 것이죠. 위치, 순서, 의미, 역할까지 말이죠.
바둑의 고수는 눈 앞의 한 수를 보고 돌을 두지 않습니다. 10– 20 –30수 까지 내다 보고 한 수를 놓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의미없는 돌을 두시는 분이 아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이 인생의 돌을 복기를 해보는 시간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우리 인생을 고수이신 하나님이 두시는 바둑이라고 생각해 보시고 복기 해보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에 지난 날, 아무 의미 없는 바둑돌처럼 여겨졌던 그 때, 그 위치, 그 돌... 한편 인생의 짐처럼 여겨졌던 그 돌, 내 인생의 장애물 같아 보였던 그 사건… 그 것은 창조주 하나님, 인생의 주관자되시는 하나님께서 놓으셨던 승리를 위한 디딤돌이었음을 깨닫기 원합니다.
내 인생 오히려 고통스럽고 수치였던 그 때, 하나님 왜 이 때 이런 사건을 주셨냐고 원망하고 통곡하던 그 때, 그 두셨던 그 자리, 그 돌, 그것은 그저 우연히 의미없던 놓아진 돌이 아니라 하나님이 꼭 그곳에 놓아야만 했기에 두셨던, 회복의 징검다리였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수를 다 아는 것, 앞날을 다 예측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이 오늘 여기에 그 돌을 두신 이유를 신뢰하는 마음, 그 믿음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고수, 그 분의 수를 신뢰하십시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고자 하는 본문도 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바로 에벤에셀입니다. 에벤 에셀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입니다. 라이프 성경사전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이긴 후 도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무엘이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운 기념비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사무엘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복기해 보았습니다. 그 에벤에셀 ‘도움의 돌'을 세운 , 에벤에셀이라고 이름 붙였던 승리의 땅은 어떤 땅이 었습니까?
원래 이곳은 수치의 땅이요 처절한 패배와 징계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궤를 빼앗긴 패배의 땅이었습니다. 사무엘에 처음 등장하는 전투 입니다.
사무엘 1장, 하나님이 한나를 통해 사무엘을 태어나게 하시죠, 사무엘 2장은 하나님의 노래, 감사입니다. 사무엘3장에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보게되죠. 사무엘이 엘리를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사사로, 선지자로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무엘은 3장에 이렇게 성장합니다. 삼상3: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그리고 마지막은 이렇게 써있습니다. 삼상3: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여호와의 말씀도 히귀하고 이상이 보이지 않는 이 영적 암흑의 시기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세우셨고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자기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사무엘이 있는데 삼상4장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이야기가 이제 나올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삼상4장부터 무려 오늘 본문 6장 끝까지 끝없는 패배와 처절한 수치의 역사가 기록되어 나옵니다. 바로 4장 이 첫 전투, 첫 패 배, 하나님의 언약궤를 뺏겨버린 장소가 에벤에셀이었습니다.
사무엘상 4:1–2 (NKRV)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이렇게 4천명이 죽임을 당하는 대 패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도자라고 하는 장로들의 대응이 어떤 줄 아십니까? 언약궤를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패하게 하셨는고… 이런 원망의 말이 장로입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아무 잘 못 없는데 하나님이 패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만큼 영적으로 무지하고 타락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도 삶의 만나는 문제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께 서, 하나님어찌하여…
더 비극인 것은 그 처방전으로 언약궤를 대동하는 것, 이라는 방법을 세운 것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실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와서 전쟁을 하면 우리가 이긴다.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게 하자. 무서운 말이지요.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분명 하나님은 언약궤를 앞세워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약궤 자체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했기 때문이었죠. 지금은 그저 효험있는 부적처럼 언약궤를 우상처럼 사용하려는 것이죠.
언약궤가 우리를 구원하게 하자. 하나님을 동원하자. 하나님을 이용하자. 하나님을 원수 갚는 것으로 써 먹자 … 이런 신앙이죠. 내 마음대로의 이루고자하는 것의 방법, 수단으로 사용하는 불신앙, 교만, 무지… 성경은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그결과 에벤에셀 그 곳에서 언약궤는 빼앗겨 버리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죠. 그리고 아들이 죽고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다는 그 소식을 들은 엘리는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저 죽습니다. 에벤에셀에서 언약궤가 빼앗긴 날 일어난 일입니다.
에벤에셀은 수치의 장소였습니다. 다시는 회복 될 것같지 않은 패배의 장소였습니다.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에벤에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일어나게 하십니다. 블레셋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여기까지 도우셔서 언약궤를 뺏아간 블레셋 민족의 원수를 갚고 승리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지경을 회복한 이 곳,
언약궤를 빼앗긴 이스라엘, 철저히 20년간 잃어버린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 하나님을 우상으로 여겼다.
그 때 사무엘을 통해 미스바에서 회개 운동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도우시는 하나님, 회복의 하나님을 만난다.
여호와께 돌아오기 위해서, 참된 영적 회복을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1) 이방신과 아스다롯 제거하고(7:3)
2) 그만을 섬기라 = 마음을 여호와꼐 향하여
이방 신을 겸하여 섬기던 문화
언약궤의 우상화
ㄱ (4:1)에벤에셀에서 언약궤를 뺏김 - 불신앙이 궤와 있는다고?- 삼만명 죽음
ㄴ (5:2)블레셋 사람들이 다곤신전에 둠 - 종기 재앙 -> 가드로 옮김 ->에그론(저주)
ㄷ (6:19 벧세메스사람 70명)
똑같은 모습 - 언약궤에 능력이 있다고 생각, 무지이자 우상.
인격적인 하나님을 비인격적으로 치부
그 결과- 두려움, 어찌 할 바를 모른다.
우리에게 지금 보이는 우상 없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우상있다. 하나님을 우상화 한다. 인격적인 하나님과 관계 없이 예배 드린다.
ㄱ 마음을 여호와께 향하는 것 없이 언약궤만 있으면 이긴다, 나의 소원에 하나님을 끌어 당긴다. 나의 소원, 원함을 이루는 도구. 나의 전쟁에서 경쟁에서 승리하는 도구.
ㄴ 잘 못되었을 때, 책망, 하나님의 징계 앞에서 장소만 옮기려고 합니다. 교회 옮긴다. 목회자 옮긴다. 봉사 옮긴다. 블레셋 신앙 (6:3)거져보내지 말고 (무지신앙)
ㄷ 궁금한 신앙 - 들여다 보는 것, 그저 이상, 기적, 호기심.
2. 온전한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미스바 - 모을 길어 붓고, 종일 금식, 범죄하였다. -> 결과 블레셋 전쟁
1. 두려워했다. 온전한 예배가 아니었다는 것.
2. 대리자를 찾는다. 사무엘 , 쉬지 말고 부르짖어 달라. 내가 회개하고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대신… 아직 우상숭배가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를 위해여, 우리하나님, 우리를 ....) 아직도 하나님이 조종당하는 존재로 여긴다)
기도하는 목사님, 설교… 비교… 교회 비교…
잘못된 예- 이미 방법은 다 나와있다. 는 사람을 의지한다. 사람을 기대한다. (우리를 위하여) / 부모에게 사랑받는 방법이미 말했다. 꼭 딴 짓하다가 타협이 안되니 엄마한테 간다. (게임) -> 우상버리고 마음, 그것은 없고 당신이 대신. 기독교는 본인의 일을 대신 하는 일을 대신 하는 것 없다. 대신 기도하는 것, 대신 없다. 같이 기도하고 같이 연합하는 것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안하고 너가 대신… 이것은 우상이다. 목회자를 우상처럼 바라보시면 안됩니다.
사무엘, 온전한 번제를 드린다. -> 시끌 벅적한 제사 아니었다. 젖 먹는 어린 양 하나.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
이것이 온전한 예배, 하나님께서 도우심, 하나님이 실패의 장소에서 회복의 장소로 바뀌주심. 기억하라. 이 곳을, 도움의 돌
여기까지 도우셨다.
젖 먹는 어린 양 하나. -> 이상하다. 너무 작고 초라하다. 온 종일 금식, 부르짖음과 다르다. 그런데 온전한 번제… 그 어린양 하나가 죄를 대신 진 것이다.
예수님이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 모두의 죄를 속죄하심을 나타낸다.
온전한 예배가 뭔가? 정말 내안에 십자가 예수가 죽으시는 예배, 십자가 죽음 대속의 피흘림이 내 안에 깨달아 지는 예배.
구원받을 자격 하나 없는 우상 덩어리인 나를 위해… 믿음도 자체가 우상숭배, 기도도 우상숭배, 그 속엔 그저 나의 원함과 나를 위한 것 뿐임에도 그런 나를 위해 젖 먹는 어린 양 되셔서 번제물 되신 예수를 깨닫는 예배.. 그 런 예배가 드려질 때… 진정한 영적인 회복이 시작됩니다.
하루종일 금식, 물을 붓고… 어떤 형식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쏟길 원하신다. 마음을 향하길 원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