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선한일을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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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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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께 선한 일을 하십시오.
1. 함께 선한 일을 하십시오.
1절에서 “형제들아"라고 시작합니다. 형제의 다른 명사는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에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나이로는 갓난아이부터 노인까지, 역할로는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교회가 함께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1절 상반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사람이 무슨 잘 못을 저지르면 온유한 마음으로 그러한 잘 못한 사람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1절 상반절에서 형제를 다른 말로 부릅니다. 무엇이라 부릅니까? “신령한 너희"라고 부릅니다. 신령한 너희란 “성령으로 살고 또한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즉 형제, 곧 교회는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성령으로 살고, 또 성령으로 행하고 있습니까? 그럼 도대체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한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갈라디아서 22절과 23절에서 성령으로 살고 행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교회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소위 말하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타나야 하지요. 사실은 이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는 열매가 9개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의 열매에 9가지 성질이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열매는 단 하나 입니다. 이 하나의 열매에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신령한 형제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성령으로 사는 교회는 범죄하는 사람들을 바로 잡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범죄하는 것일까요? 바로 성령을 거스려서 행하는 일이 바로 범죄 입니다. 바울은 성령을 거슬려서 하는 행위를 육체의 일이라 말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일은 성령의 일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육체가 하는 일이란 명백합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성적인 범죄와 우상숭배와 주술을 하고 시기과 분열하며, 방탕한 삶을 사는 일들입니다. 이러한 범죄에 대해서 성령을 따라 사는 교회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고칠려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
세상은 명백한 잘 못을 보고 눈 감고 방관할 때, 교회는 그러한 세상을 바로 잡으려 해야 합니다. 세상이 성적으로 범죄할 때 교회는 잘 못했다 말하고, 세상이 순결하도록 하려고 해야 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이 아닌 주술을 의지할 때, 교회는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해야 합니다. 세상이 분열하고 시기하고 질투할 때, 화합하고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이 술 취하고 방탕할 때, 교회는 바른 정신으로 바른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을 따라 사는 교회가 해야 할 의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러한 교회의 의무를 좋은 것, 착한 일이라 말합니다.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교회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을 향하여 무엇이 올바른 삶인지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착한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렇게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을 가르칠 때, 착각하지 말고, 조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2. 선한 일을 행하고 교만하지 마십시오.
2. 선한 일을 행하고 교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나도 육체를 따라 살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6장 1절 하반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그렇습니다. 교회가 가장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은 잘 지적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소위 말하는 성령 충만하다 하는 사람들이 늘 세상에서 말썽입니다. 자신은 세상 정직하게 살듯이 다른 사람의 잘못은 잘도 지적하면서, 정작 자신의 삶은 객관적으로 놓고 살펴보지 못합니다.
아마도 전 지구에서 가장 말이 많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 다른 사람의 잘 못을 맹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독교 인일 것입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도덕을 지적하면, 상대적으로 자신은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사람이 바로 오늘 날 교회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을 비난한다고 내가 성령을 쫓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이에 대해서 4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라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남의 잘 못을 지적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자기의 선함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 자신 스스로 성령을 따라 살아야지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각각 우리 자신의 일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육체를 따라 사는지 여부를 보고 나를 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과연 성령을 따라 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내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교회는 공동체로 세상을 향해서 잘 못을 지적하고 바로 잡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을 쫓아 사는 삶입니다.
반면에 이 교회 공동체 속한 우리 개인들은 자기 자신이 언제나 육체를 쫓아 살수 있는 있는 연약한 사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늘 나 자신을 살펴보고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성령을 쫓아 사는 사람인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로서 함께 범죄한 세상을 고쳐 나가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성령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