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믿습니다. 고난 당하심을

사도신경 시리즈 10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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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생각하면 먼저 무엇이 떠오릅니까? 예수님이라는 분을 생각했을 때 여러분에 머리에 딱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인생을 한번 찬찬히 살펴본 적이 있습니까? 복음서를 전체적으로 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 능력, 병 고침, 기적처럼 예수님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인생을 단, 한 단어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셔야합니다. 그것은 바로 ‘고난’입니다.

Ⅰ. 예수님의 고난

1. 그의 인생은?
물론 예수님이 때때로 기뻐하셨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 전체를 한마디로 표현해라고 한다면 ‘고난’이라는 단어만큼 잘 설명해주는 단어가 없다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님의 고난은 때때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임하실 그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즉 그의 인생 전체가 고난이었다고 말해야 합당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인생은 고난입니다. 그는 죄가 없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처럼 이땅에서 우리와 같은 고통을 당하실 이유가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체를 입어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이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죄를 지닌 인생이 당해야하는 육체적인 한계를 당하셔야했습니다. 좀더 쉽게 설명한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잖습니까? 예수님은 신입니다. 그런데 그가 배가 고플 수 있습니까? 목마를 수 있습니까? 그분이 피곤하면 잠을 주무십니까?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예수님이 배탈이 났다? 웃긴 이야기아닙니까? 그러나 저는 배탈이 그의 인생에 한번은 있었을 것이다고 조심스럽게 상상해봅니다. 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당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은 인간이 되시는 것을 통해 육체적 고난을 당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이땅에서 여러 고난을 실제로 당한 것을 떠나서 그분이 이 땅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예수님은 고난 당하셨고, 고난 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은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난을 완전하게 들어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고난 당하셨습니다. 배고프고, 잠 잘 곳도 없고, 잠도 잘 주무시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에 시기와 질투로 어려운 일을 당하셨지요.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의 고난에 한 부분만을 말해줍니다.
2. 육체적 고난을 넘어 영적 고난으로
예수님이 고난 당하셨다는 것이 아주 잘 드러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특히 생의 마지막 시기’입니다. 그분의 마지막 시기를 보면 그분이 얼마나 고난 당하셨는지를 올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유심히 봐야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라는 곳에서 기도하시는 사건을 말하는 본문들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에 이런 기도를 하십니다.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막 14:34-36) 여러분 지금 매우 진진한 이야기 같지만 생각을 조금만 비틀면 이 본문은 조금 이상한 이야기가 됩니다.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로마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핍박이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을 그들을 잡아서 물었습니다. “예수 믿으면 죽는다. 예수 안믿는가다고 말하면 살려준다.” 그리고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원형경기장에서 불에 태워지거나, 사자에 밥이 되어 놀림감이 되기도 하고, 검투사에게 목숨을 빼았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역사를 보면 그들이 이 물음에 두려워 떠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맞이 할 때고 담대했습니다. 아주 담대하고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맞이 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예수님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좀 과격한 표현으로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분은 죽기를 두려워합니다. 조금 웃긴 이야기아닙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죽으로 오셨는데, 겁쟁이처럼 벌벌 떤다는 것이 어찌보면 초대 그리스도인들만큼에 믿음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눈을 똑바로 뜨고 우리는 이 본문을 보아야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단순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죽음 그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훨씬 더 크고 놀라운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떠시는 것입니다.

Ⅱ. 우리 대신 재판과 저주받음

1. 재판받다.
우리는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난의 특징을 잘 파악해야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단순한 고난이 아닙니다. 그분의 죽음, 그분의 고난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 특히 생애 마지막에 나타나는 고난의 특징은 재판으로서의 고난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씻는 것이라면 예수님은 어떤 형태로든 죽으시면됩니다. 예를 들어 암살당하거나, 급작스럽게 죽을 수도 있습니다. 심장마비로 죽으실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방금 말한 것처럼 반대새력에 의해 암살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죽지않고 그 당시 최고의 재판권을 지니고 있던 본디오 빌라도의 재판에 의해 죽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정말 치밀합니다. 결코 단순한 역사를 시간적으로 나열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의 작은 본문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죽든, 맞아 죽든, 뭐 어찌 죽든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아니요.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본디오 빌라도의 재판으로 죽습니다. 왜 그렇게 죽으셔야합니까?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은 이를 아주 잘표현합니다. 38문과 답은 이렇게 말합니다. “38문: 그분은 왜 재판장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답:그리스도는 죄가 없지만, 세상의 재판관에게 정죄를 받으셨으며, 이로써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여러분 무슨 말을 지금하고 있는 것입니까? 요리문답은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웃긴 이야기 아닙니까?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셨는데, 그 재판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십자가 형입니다. 그분이 재판을 당하시고, 그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는 길에서 무엇을 당하십니까? 수치와 모욕을 당하십니다. 채찍에 맞으시고, 주먹질을 당하십니다. “생애 마지막 기간에” 선명하게 주님이 고난 당하신 사실이 들어납니다. 그런데 그 고난을 당하는, 재판을 통해 벌을 받고 있는, 벌을 받는데, 십자가로 인한 처형이라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고 있는 예수님에게 없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없습니까? 죄가 없습니다. 코미디입니다. 이렇게 웃긴 이야기가 어디있습니까? 죄가 없는데, 당시 최고의 형벌을 받고, 수치와 모욕, 매맞음과 찔림을 당하십니다. 왜, 도데체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세상 재판관에게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형선고는 언제, 누가 받아야하는 것입니까? 눈을 크게 뜨고 보십시오. 누가 재판받아 죽어마땅합니까? ‘죄인’이 죽어야합니다. 누가 죽어야합니까? ‘내’가 죽어야합니다. 그 예수님의 재판은 사실 누가 받아야합니까? 내가 받아야하며,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형선고를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이 세상 재판관과는 비교도 안되는 매서운 눈으로 우리의 마음 속을 꿰둘어 보시며 우리를 재판할 분이 계십니다. 그분에게 우리는 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형벌을 받게 될까요? 무한한 진노를 받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합당한 처벌인 사망을 형벌로 받아야합니다. 영원한 고통고 형벌, 그것이 우리에게 합당한 벌입니다. 이제 마지막 우리의 처지였지요. 그런데 그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미리 예수님께서 빌라도를 통해 받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형벌과 고난을 그분이 대신, 우리 대신 받으시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그 마지막 재판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Ⅲ. 겟세마네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한 이유입니다. 그분의 고난은 단순한 죽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의 고난은 죄 없는 분이 우리가 당해야할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당하시고, 우리가 받아야할 하나님의 저주를 그분이 대신 받으시는 것을 감당하셔야하는 고난입니다. 그래서 이토록 두려워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적인 고난을 넘어 고난의 본질인 영적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벌벌 떨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맛보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분이 장차당 할 고난, 바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하나님 진노와 저주를 당해야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죽지 않아도 되는 분, 정확한 말로는 도저히 죽을 수 없는 분이 죽어야하는 고난입니다. 또 어떤 고난입니까? 죄를 알지도 못하기에 죄로 인한 형벌을 받을 필요가 없는 분이, 죄로 인한 형벌을 받아야하는 고난, 그리고 진짜 고난, 말할 수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들 하나님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원전부터 하나셨지만 죄로 인해 분리될 수 밖에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더 큰 고난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아들 하나님을 버리시는 고난, 그 사랑하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당해야만 하는 고난, 이 모든 고난을 맛보았을 때 예수님은 두려워 떨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Ⅳ. 결론 - 잠자는 우리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정리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고난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들아 너는 이사야의 예언처럼 고난의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이제 너는 진정한 고난을 맞이해야한다. 그 고난은 모든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과 저주를 받는 것,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나와 너의 사이에 분리가 있는 것, 내가 너를 버릴 것, 그것이 니가 받을 고난이다.” 어떻습니까? 이 고난 견디기 쉽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외쳤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예수님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너무나 예수님을 괴롭게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힘써 이 문제를 두고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예수님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하시고 잠시 쉬기 위해 예수님께서 걸어내려와 제자들이 있는 곳에 왔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잠자고 있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씻기 위해, 말할 수 없는 고난을 어떻게 이겨낼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계십니다. 진정한 풍랑, 인생의 모든 문제의 근원인 죄의 풍랑 속으로 자신이 던져지는 문제로 씨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사랑한다고 입으로 그렇게 떠들어대던 자신의 제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잡니다. 이들이 어떤 존재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선생님을 위해 잠시도 기도하지 못하는 존재, 의지라고는 좀처럼 없는 존재, 오늘 다짐하면 내일 모든 것을 상실하는 존재,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의지적으로 연약한 존재, 여전히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감싸져 있는 존재, 바로 우리같은 존재아닙니까? 이들이 누굽니까? 우리 아닙니까? 이것이 우리지요. 이것이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이지요. 주님은 우리를 위해 할량없는 은혜를 주셨고,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았고, 우리를 위해 전부를 주신 분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습니까? 근데 놀라운 것이 이 장면에 나타난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그 잠자는 인생들, 무엇이 깨어있는지도 모르고, 자신의 인생에 함몰되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는 예수님를 위해 잠시도 기도하지 못하는 인생을 위해 그분이 무엇을 하십니까? 하나님이 겟세마네에서 묻습니다. “아들아 저들을 위해 죽고자 하느냐? 너를 위해, 니가 하고 있는 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위해서 잠시도 너를 위해 기도하나도 못하는 저들을 위해 너는 죽고자 하느냐?” 그때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대답하십니다. “예! 제가 그 고난의 폭풍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전혀 구할 가치없어 보이는 이들을 위해 저는 그 폭풍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아버지” 이분이 우리의 구주입니다. 우리를 고난에서 건지기 위해 자신을 고난의 바다로 던지신 이분이 나의 주, 우리의 주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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