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드리는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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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문제제기
성도의 삶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중생과 구원의 목적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하십니다. 이는 성도의 삶이 거룩의 열매, 견인의 삶을 이루어 내도록 하신 것이 구원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성도에게 믿음으로 주신 중생은 결과적으로 거룩한 삶, 견인하는 삶을 열매맺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거룩의 열매가 나타나고 견인의 삶을 통해 주님이 주신 회복된 은혜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문제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여성들의 마음 가짐과 사역 태도에 대해 특별히 언급을 합니다. 당시 여성들이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게 하는 전통을 바울이 전해 주었던 것인데 고린도 전서의 많은 책망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가 이 부분에서 잘 순종하여 칭찬을 할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2절 말씀을 봅시다
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바울은 자신이 어떤 전통을 전해 주었다고 기록을 합니다. 이는 구원의 절대 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행정과 정치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통과 교리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성도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 가는 데 힘을 다해야 합니다. 본문 전체로 볼 때 사도 바울은 넓게는 남자와 여자, 좁게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하여 어떤 전통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공적인 기도나 예언 사역시에 여성은 머리에 무엇을 써야 한다는 규칙으로 보입니다. 사실 바울은 남자와 여자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입니다.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영적인 나라, 하나님의 나라의 영적인 측면에서 보면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는 다 동등하고 똑같음을 이미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 교회, 아직 천국을 다 이루지 못하는 이 땅의 교회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소속과 권위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전통이 이러한 차이점들을 잘 드러내어서 질서와 품위를 유지하여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구원얻고 회복된 온전함을 드러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교훈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여기에 보면 그리스도와 여자 사이에 남자를 끼워두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아내와 그리스도 사이의 중간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아니지만 교회 안에서 신앙 생활을 가운데에서는 이런 부분을 반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와 예언을 할 때 특별히 공적인 예언을 할 모든 여성들은 자신이 남편의 권위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보여주기 위해 머리에 무엇인가를 울려 두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사역에서는 남성의 권위가 여성의 머리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해결
이러한 원리는 창세기의 가르침을 잘 반영하는 것입니다. 8, 9절을 봅시다.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창세기는 여자의 기원이 남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잘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혼자 있는 남자의 선하지 못함, 즉 좋지 않은 것을 온전한 선함으로 회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9절과 같이 여자는 남편을 위해 존재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것이 결코 남자가 독재자나 자기 마음대로 권위를 행사하여 아내를 도구로만 여기도록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11, 12절입니다.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하나님은 남자가 아내없이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여자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반드시 어머니의 아들이 됩니다. 다시 말해 여자 없이 남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남자나 여자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창조와 섭리의 역사들입니다. 이런 까닭에 남자는 자신에게 주신 아내에 대한 외적 권위를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주의들을 고려하고서 바울은 여성들이 예배 시에 공적인 기도나 다른 일들을 한다면, 혹은 여성들 간의 모임을 하더라도 항상 자신이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고 남편의 권위, 남자의 권위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13, 14절입니다.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이것은 본성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냐 하는 것입니다. 남자도 긴 머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평안하더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헬라의 문화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서신을 쓰던 당시 프랑스나 독일 지역의 로마 남자들은 다 장발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까닭에 바울은 헬라의 관습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남편과 아내의 권위를 드러내고 인정하는 삶을 표현하는 전통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16절을 봅시다.
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여기 관례라는 말이 그런 뜻을 말합니다. 당시의 헬라 지역의 교회에서는 이런 관습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머리를 짧게 하거나 남성이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양심이나 본성에 거리낌 없이 살지 못했다는 것이고 공적인 모임에서도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
성도에게는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어떤 형식과 삶도 성도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율법과 양심에서, 그리고 아디아포라와 같이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 문제에서 우리는 아무런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에 바울이 지금 머리에 여성이 무엇을 쓰고 공적으로 사역하는 것에 대한 교훈을 절대적인 법으로 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다만 교회가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유하지만 우리는 자발적인 의지로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을 나의 머리로 알고 여성들이 신앙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자가 남자의 권위 아래에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갈라디아서를 통해 바울은 남자와 여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의 본질인 영의 삶 안에서 모두가 하나입니다. 그러나 삶의 외적인 질서와 주변 문화의 형편에서 교양과 존귀함이 드러나도록 성도의 신앙 생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 원리들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준 전통을 잘 지킨 고린도 교회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우리 개신교회는 여성들에게 머리에 무엇을 두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있어 남편의 권위가 분명의 아내의 머리됨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에 무엇을 두는 규칙은 교회에 두고 있지 않으나 여성도들은 항상 모든 일을 하면서 남편의 권위 아래에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천국에 가시면 모든 것이 자유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문화와 시대의 본성을 고려하여 이런 원리들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과 결단
성도의 삶은 믿음의 증거입니다. 성도에게 거룩한 삶이 있고, 견인의 삶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왜냐하면 삶은 믿음의 다른 면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삶이라는 것은 순종을 말합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순종의 삶을 사는 이들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순종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순종을 본받으려는 삶 자체가 구원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행함의 순종을 위해 성도는 자신 속에 있는 죄성과 싸워야 합니다. 그것이 견인입니다. 죄와 싸우기까지 하고 피흘리는 데 가더라도 죽기까지 하면서 우리는 견인을 이루어 갑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이고 믿음의 목적이고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내 의지를 인도해 주십니다. 구원받은 자는 성령님의 은혜로 충만한 임하심을 통해 견인을 이루어 가고, 구원의 확신을 허락해 주십니다. 아름다운 열매로 구원을 온전히 확신하고 믿음 가운데서 승리하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