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병에 담긴 하나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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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출병에 담긴 하나님의 뜻/거룩한 삶이란 회복과 믿음과 구별됨이 있는 삶이다.
[서론]
스윙스의 ‘홀리'라는 곡 들어보셨나요?
노래도 들어보고 인터뷰를 보니 아버지도 목사님이고, 작은 아버지도 목사님이더라구요.
그런데 그 친구는 어릴적부터 신앙에 고민이 많았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런 고민이 들었을까요?
‘홀리'라는 제목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닷가 물은 3퍼센트의 소금이 있어 짠맛이 유지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크리스천은 20퍼센트 가까이 되는데 세상은 변화가 없거든요.
스윙스와 같이 신앙에 고민하는 사람들의 주된 질문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홀리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세상은 왜 그런 것일까?
도대체 홀리하다, 거룩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본론]
먼저 우리는 오늘 말씀의 전체적인 위치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1-5장까지 백성들이 성소에서 드리는 제사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다섯가지 제사를 통해 우리는 거룩함이란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6-9장에서는 제사에서 제사장이 해야할 일들에 대해 다뤘습니다.
그리고나서 바로 10장에서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에 잘못된 불을 드려 죽임 당한 이야기가 등장했습니다.
그 후 11장-15장까지가 부정함과 정결함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제 11-15장만 집중해서 살펴볼까요?
11장에서 다룬 게 음식의 문제였습니다.
무엇이 정결한 동물인지, 무엇이 부정한 동물인지 다뤘습니다.
부정한 동물은 먹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후 그 당시 사람들이 잘 걸리던 악성 피부병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피부에만 곰팡가 생기는 게 아니라, 옷이나 집에도 악성 곰팡이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루는 게 15장의 생식기 유출병 문제입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앞에 나온 성소에서 제사지낼 때 보여준 거룩한 모습이 일상에서의 거룩한 삶에도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사드릴 때, 즉 예배드릴 때에만 거룩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거룩한 삶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거, 심지어 매우 은밀하고 사적인 영역인 침대에서의 일까지도 거룩함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드릴 때만 거룩하면 돼.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자체가 거룩한 백성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세상 천지 어떤 종교가 생식기의 문제까지 다루는 책이 있을까요?
성경은 정말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거룩한 삶일까요?
저는 오늘 말씀이 3가지라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거룩한 삶은 회복입니다.
자, 19-24절입니다.
19   "여자가 몸에서 피를 흘릴 때에, 그것이 그 여자의 몸에서 흐르는 월경이면, 그 여자는 이레 동안 불결하다. 그 여자에게 닿는 남자는 모두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20   그 여자가 불결한 기간에 눕는 자리는 모두 부정하다. 그 여자가 앉았던 모든 자리도 부정하다.
21   그 여자의 잠자리에 닿는 남자는, 모두 옷을 빨고 물로 목욕을 하여야 한다. 그 남자는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22   그 여자가 앉았던 자리에 닿는 남자는, 누구나 옷을 빨고 물로 목욕을 하여야 한다. 그 남자는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23   그 여자가 눕는 잠자리든 앉는 자리든, 어떤 남자가 그 자리에 닿으면, 그 남자는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24   어떤 남자가 그 여자와 동침하면, 그 여자의 불결한 상태가 그 남자에게 옮아서 이레 동안 부정하고, 그 남자가 눕는 잠자리도 모두 부정하다.
이 부분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월경하는 여자는 일주일동안 부정한 상태가 됩니다.
그 여자와 닿은 남자도 저녁까지 부정해 집니다.
또한 월경하는 여자가 누웠던 곳, 앉은 곳, 침상, 그 여성과 동침한 사람도 모두 부정해집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월경하는 여자와는 일주일동안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가까이 있는 남편이 조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여러분들 마음 속에는 제일 먼저 무슨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왜 월경이 부정한 것이지?
내가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왜 일까요?
자,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
레위기에서 거룩은 생명과 관련이 있고, 부정함은 죽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이 줄어드는 것은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이기에 부정한 상태가 됩니다.
또한 성경에서 피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여성의 생식기에서 피의 유출이 일어나는 것도 생명이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에 부정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과학적이라는 말은 전혀 아닙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하는 헌혈은 다 부정해지는 것이 되버리니깐요.
지난주 설교에서도 레위기는 의학교과서가 아니라는 말을 했습니다.
단지, 종교의식적으로 부정하다는 말입니다.
또한 부정하다고 모두 죄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죄는 부정한 것이지만 부정한 것이 모두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월경도 죄를 짓는게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생명의 상징인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이런 규정을 주셨을까요?
여성에게 이건 너무 가혹한 일일까요?
월경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너무 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대 사회에서 여성은 아이를 돌보고, 가사 노동에 농사까지 여러가지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월경 기간은 부정한 상태가 되니까 아무 것도 할수 없는 것입니다.
남편도 가까이 하면 안되니까 정말 공식적으로 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성에게 부정해지는 기간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쉼을 갖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피를 많이 흘리니 육체적으로도 약해지고, 면역력도 떨어지니까 쉬게 하신 것입니다.
요즘도 회사나 학교에서 생리휴가를 주지만 하루나 이틀밖에 안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그 휴가기간이 일주일입니다.
얼마나 여성을 배려한 말씀입니까?
얼마나 여성의 생명을 중시하고 보호해 주시려는 말씀입니까?
한가지 이유를 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어떤 여자가 월경하고 있는 지 남자들이 알 수 있을까요?
너무 사적인 일이라서 절대로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남자들의 성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게 남편이든, 누구든 부정한 기간에는 그 여성에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부정해진 사람은 자신이 누운 잠자리도 부정해지니까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주일동안 예배도 드릴 수 없고, 사람을 제대로 만날 수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아마도 남편이 제일 조심해야겠죠.
그러니 이 말씀은 역설적으로 여성을 보호하는 규정이 된 것입니다.
그럼 만약 의도적으로 월경중인 여성과 동침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레위기 후반부에 나오지만 더 큰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끊어지는 벌을 받게 됩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내용을 들으니 어떤가요?
그러니까 월경중인 여성을 부정하다고 진단하는 진정한 목적은 회복에 있는 것이지, 그들을 소외시키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성의 생명력이 회복되기를 바라시는 우리 하나님 너무 멋지지 않나요?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생명력을 잃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쟁에 치어 사회에서 소외된 청년들, 갑질에 고통받는 사람들, 삶이 고통스러워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 장애우를 둔 가족들 등등..
어제 뉴스를 보니 젊은 청년들 사이에도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고독사한 한 청년의 메모를 보니 살아보려 애쓴 흔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취업정보를 빼곡히 적어놓았고, 밥 잘 챙겨먹기, 말 실수 줄이기 등 잘 살아보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바로 오늘 말씀처럼 자기 잘못도 아닌데 생명의 유출이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레위기는 이렇게 생명력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회복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레위기 말씀의 근본 정신입니다.
종교적으로 거룩하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보는 것, 교회 열심히 다니는 것 이게 거룩의 전부가 아닙니다.
나의 생명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생명에도 관심을 갖는 것.
그들의 회복을 위해 작은 관심과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거룩은 인간의 생명력이 회복되는 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거룩함의 근본정신은 생명의 회복입니다.
둘째, 거룩한 삶은 믿음입니다.
25-27절입니다.
25   어떤 여자가 자기 몸이 월경 기간이 아닌데도, 여러 날 동안 줄곧 피를 흘리거나, 월경 기간이 끝났는데도, 줄곧 피를 흘리면, 피가 흐르는 그 기간 동안 그 여자는 부정하다. 몸이 불결한 때와 같이, 이 기간에도 그 여자는 부정하다.
26   그 여자가 피를 흘리는 동안 눕는 잠자리는 모두, 월경 기간에 눕는 잠자리와 마찬가지로 부정하고, 그 여자가 앉는 자리도, 월경 기간에 앉는 자리가 부정하듯이, 모두 부정하다.
27   누구나 이런 것들에 닿으면 부정하다. 그는 옷을 빨고 물로 목욕을 하여야 한다. 그는 저녁때까지 부정하다.
이번에는 여성이 월경기간도 아닌데 하혈을 하는 경우입니다.
혈루증에 걸린 여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성적으로 피를 쏟는 경우 그 사람은 피가 나오는 기간 동안 부정해집니다.
그래서 그 여성이 눕는 잠자리, 앉은 자리 모두 부정해집니다.
이런 것에 닿는 사람도 모두 부정해집니다.
요즘에는 이렇게 하혈을 해도 그것을 고칠 병원도 있고, 도움받을 보조기구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런게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하혈하는 여성들은 큰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에게도 수치와 조롱, 소외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여성들은 어떻게 부정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28-30절입니다.
28   그러나 흐르던 피가 멎고 나서도 정하게 되려면, 그 여자는 이레 동안 기다려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정하게 된다.
29   여드레째 되는 날에, 그 여자는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회막 어귀의 제사장에게로 가져 와야 한다.
30   그러면 제사장은 그것들을 받아서, 하나는 속죄제로 드리고, 나머지 하나는 번제로 드린다. 제사장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 여자가 피를 흘려 부정하게 된 것을 주 앞에서 속하여 준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먼저 피의 유출이 멈추면 일주일동안 기다렸다가 8일째 되는 날 비둘기 두 마리를 잡습니다.
한마리는 속죄제로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번제로 드리면 됩니다.
레위기에 따르면 거룩함에도 등급이 있고, 부정함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약간 부정한 것은 목욕하고 하루만 지나면 부정함이 사라집니다.
좀 더 심각하게 부정한 것은 옷을 빨고 목욕하고, 하루만 지나면 부정함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가장 심각할 때는 옷을 빨고, 목욕하고, 제사까지 드려야만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속죄제와 번제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속죄제는 죄를 없애는 게 아니라 부정함을 없애는 것입니다.
번제는 회복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자신을 헌신하는 제사입니다.
그럼 이런 정결법이 현재 우리에게도 적용될까요?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12년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등장합니다.
마가복음 5:25-34절입니다.
25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아 온 여자가 있었다.
26   여러 의사에게 보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없앴으나, 아무 효력이 없었고,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27   이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뒤에서 무리 가운데로 끼여 들어와서는,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그 여자는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터인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29   그래서 곧 출혈의 근원이 마르니, 그 여자는 몸이 나은 것을 느꼈다.
30   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아서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제자들이 예수께 "무리가 선생님을 에워싸고 떠밀고 있는데,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십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32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셨다.
33   그 여자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므로, 두려워하여 떨면서, 예수께로 나아와 엎드려서 사실대로 다 말하였다.
34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이 여인은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무리들 사이를 파고들었습니다.
오늘 말씀 레위기에 따르면 그 여인에게 닿는 사람들은 모두 부정해지기 때문에 원래 사람들 사이에 나서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만나기로 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기필코 예수님의 옷을 만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혈루증이 나았습니다.
레위기에 따르면 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졌기 때문에 예수님도 부정해져야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여인의 병이 나았고, 그 여인이 정결해졌습니다.
예수님을 닿았으니 그 여인은 거룩해졌습니다.
예수님은 부정한 혈루증 여인만 만나신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정한 사람으로 인식되던 세리, 창녀들과도 함께 하시고, 식사하셨습니다.
부정한 자로 인식되어 동네 바깥에 격리되어있던 문둥병자에게도 손을 내미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도 시체라서 부정한 상태인데도 직접 만지셨습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접촉을 통해 부정함이 예수님께 전염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거룩함이 부정한 곳에 전염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함의 능력이 나타나 부정함을 흡수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때문에 이제 더이상 육체적으로 부정해지는 시대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제 부정함은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고, 죄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우리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그 삶이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혈루증 여인처럼 주님의 옷자락을 붙드는 삶이 거룩한 삶입니다.
나를 통해 예수님의 거룩한 능력이 세상 곳곳에 퍼져나가게 하는 것이 거룩한 삶입니다.
이처럼 거룩한 삶은 믿음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셋째, 거룩한 삶은 구별입니다.
이제 마지막 31-33절입니다.
15장 전체 유출병에 대한 결론입니다.
31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부정을 타지 않도록 하여라. 그들 가운데 있는 나의 성막을 부정하게 하였다가는, 그것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32   위에서 말한 것은, 남자가 성기에서 고름을 흘리거나 정액을 흘려서 부정하게 되었을 때에 지킬 규례로서,
33   몸이 월경 상태에 있는 여자와, 부정한 것을 흘리는 남녀와, 그리고 월경 상태에 있는 여자와 동침한 남자가 지켜야 할 규례이다.
여기서 부정을 타지 않도록 하라는 말은 원래 부정함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정함에 노출되면 하나님의 성막을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계신 가장 거룩한 곳으로 구별되어야 하는데 부정한 몸으로 들어가면 백성들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를 구별하여 죽음을 피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거룩은 스스로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10장에 나온 아론의 아들들은 구별되지 않는 불을 제사때 드렸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15장 18절에 보면 부부간의 관계를 가져도 하루동안 부정해진다고 말합니다.
부정해지면 성막에서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부부관계 자체를 부정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남성의 생식기에서 유출이 일어나기 때문에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에도 구별됨의 목적이 숨겨져 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의 민족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신전에서 성행위를 하곤 했습니다.
그 당시 신의 목적은 풍요와 번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을 자극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신전에 있던 창기들과 자신들의 신 앞에서 성행위를 벌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음란한 문화들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별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막에서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방지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큐티를 하고 싶어하지만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의 시간과 장소, 마음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큐티의 뜻은 Quite Time이거든요.
조용한 시간을 따로 떼어내고, 장소도 조용한 곳을 정하고, 마음도 떼어놓고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도 나의 시간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도전하십니다.
거룩한 삶은 회복이며, 믿음이고, 구별입니다.
스윙스가 궁금해하던 홀리는 단지 기도 많이하고, 예배 잘드리고, 교회 열심히 다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먹고, 입고, 자는 일상에서부터 생명을 중시하며,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드리는 게 거룩한 삶입니다.
저와 우리 다카포 식구들 모두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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