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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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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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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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0.01UNLIKELY
Joy
0.01UNLIKELY
Sadness
0.01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09UNLIKELY
Conscientiousness
0.14UNLIKELY
Extraversion
0.45UNLIKELY
Agreeableness
0.6LIKELY
Emotional Range
0.33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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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더 4:13-17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1. 교육 자체가 협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힘을 합치지 않아도 점수가 잘 나와요.
아니 힘을 합치지 않는 게 성적 향상에 더 도움이 되요.
냉혹하지만 현실입니다.
그러니 ‘협동’보다는, ‘각자도생’이 강조됩니다.
그나마(차라리) ‘롤’이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제가 롤을 해보지는 않았는데, 롤은 팀플레이, 그러니까 ‘협동’이 필요한 게임 아닙니까?
승리하려면 나혼자 잘해서는 안 되고,
다 같이 잘해야 하는 게임 아닙니까?
교회 교육도 마찬가지에요.
솔로 플레이입니다.
저도 이 문제를 의식해요.
그런데 어떻게 바꾸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협동학습’이라는 책을 쓴 스펜서 케이선은, 오늘날 학교에서 ‘협동학습’이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직장에서 해고 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능력해서라기보다는 인간 관계에 대한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관계가 안 되요.
협동이 안 되요.
나혼자 잘 하는 건 괜찮은데, 다같이 함께 협동하는 것은 어려워해요.
제가 만드는 공과도 그래요.
‘협동적 가치’를 가르치기가 어려워요.
다같이 잘해야 잘 되는 게 뭘까요?
그걸 가르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대학교 가도 조별 과제가 있는데, 조 안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없어요.
내가 안하면 다른 사람이 하겠지.
뭐 이런 안일한 생각?
자기가 노력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받는다는 생각을 못해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입니다.
왜요? ‘협동’을 배우지 못했으니까.
어깨동무대안학교 윤은성 교장선생님은 쓸모있는 교육이라는 책에서 서당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무학년제.
학년이 없는 거에요.
자연스레 관계와 만남, 협동이 추구되는 교육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죠.
2. 오늘 본문의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각자도생’ 그러니까 솔로플레이를 경고합니다.
13-14절 말씀입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너 혼자 살 생각하지 말아라.
너는 왕의 집에 있으니, 모든 유대인들은 죽어도, 너 혼자만큼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라.
이 때에 네가 말이 없고 조용한다면, 유대인들은 다른 방법으로 구출되겠지만,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은 망하게 될 것이다.
강하게 솔로플레이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 혼자 살 생각하지 말아라.
그게 사는 길이 아니다.
그러다가 너나 네 아버지 집도 함께 망하게 될 것이다.
진짜 사는 길을 알려줄게, 그건 다 같이 사는 거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솔로플레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나를 대신해서 살아주지 않기 때문에, 이기심을 버리고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이기적이어야 하고, 최소한 나만큼이라도 나 자신을 챙기며 살아야 하는 게 오늘날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남’을 생각하고,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겠습니까?
3. 사실 에스더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나쁜 놈은 ‘하만’이라는 정치인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자기 권력’에 취해서, 모든 사람 앞에서 높아졌는데,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인사 제대로 안했다는 이유로, 지금 유대인들을 전부 싹 잡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에스더는 잘못이 없어요.
그런데 위기가 에스더를 훈련시킵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도 되었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위기’가 에스더를 이타적인 사람으로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삶에 ‘위기’를 허락하십니다.
나의 위기 뿐만 아니라, 내 가족의 위기, 내 친구의 위기,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위기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통해 우리는 ‘협동심’을 배우고, ‘이타심’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14절에 “이 때”라는 단어가 두 번 반복되는데, 원어로 ‘에트’라고 합니다.
그리고 14절에 ‘너’와 ‘네’ 아버지 집이라고 할 때 ‘너’ ‘네’라는 단어는 ‘아트’입니다.
네가 이 때에 잠잠하여 말이 없다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은 멸망할 것이다.
네가 왕후의 자리에 닿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네가 ‘이 때’ 그러니까, 이 ‘에트’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 그러니까 ‘아트’로 지칭되는 너와 네 아버지 집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이 때에 움직이는 것이, 너 자신의 생존에도 필수적이라는 것을 워드플레이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4. 내 위기도 아닌데, 내 주변 사람들이 위기를 겪으면, 짜증이 납니다.
내가 참견할 필요 없고, 나는 그냥 조용히 모르는 체 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내 친구의 불행도 남의 일이고,
내 가족의 불행도 남의 일입니다.
나는 그냥 솔로 플레이가 답이라고 믿고, 신경 안 쓰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어이 에스더에게 참견하라고 합니다.
네가 만일 이때에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잠자는 에스더의 이타심을 건드립니다.
에스더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생존보다 유대인 전체의 생존을 위해 움직이기로 결심합니다.
15-16절을 읽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내가 반드시 죽겠다.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말은, 내가 반드시 죽어버리겠다.
라는 결심의 말입니다.
내가 죽어버릴 테니, 당신은 밤낮 삼일 동안 나를 위해 금식하십시오.
그리고나서 나는 죽음을 무릅쓰고 왕께 나아가서,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원해 보겠습니다.
5. 말씀을 맺는데요.
여러분 우리는 지독하게도 이타적이지 않습니다.
협동학습보다는 개인 플레이, 솔로 플레이를 더 많이 합니다.
같이 일할 필요를 못 느껴요.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 때에 네가 솔로 플레이 하면 망한다.
네가 이때에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은 다 구원받겠지만, 너와 네 아버지 집은 장담을 못하겠다.
멸망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경고합니다.
꿈은 바로 옆에 있습니다.
진로와 비전은 항상 곁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솔로플레이 하며, 그 길을 못 찾지만, 진로는 항상 여러분 곁에 있어요.
에스더가 할 일이 뭡니까?
지금 당장 내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유대인들을 돕는 일 아닙니까?
진로와 비전이 뭡니까?
나에게 보여주시는 어려움 당한 친구들, 사람들을 돕는 게 비전아닙니까?
항상 그런식입니다.
하나님은 다 보여주시지 않아요.
작은 것부터 하라고 하세요.
지금 당장, 곁에, 내 도움이 필요한,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 그것부터 하라고 하세요.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 곁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여주시는 하나님,
그런데 솔로플레이 하느라, 하나님의 싸인을 알아채지 못하는 우둔한 저입니다.
은혜 주세요.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세요.
이미 우리에게 꿈과 진로, 비전을 주셨는데도, 보지 못하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세요.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내용 구조
13 모르드개가 대답함
14 모르드개가 말한 내용
A 네가 말이 없으면
B 유다인은 다른 방법으로 구원 받을 것이다
B’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 할 것이다
A’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은
15 에스더가 대답함
16 에스더가 말한 내용
A 당신은 모든 유다인을 모으고 금식하라
A’ 나도 나의 시녀와 함께 금식할 것이다
B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겠다.
B’ 나는 반드시 죽는다.
17 모르드개가 에스더의 말대로 행함
사역
13 그리고 모르드개가 말하기를, 슈브(돌아가다)하기 위해, 에스더에게
너는 다마(비슷하다, 유사하다, 비교하다, 기대하다, 믿다 / 미완료)하지 말 것이다.
너의 네페쉬가, 말라트(도망하다, 피하다, 벗어나다)될 줄로, 멜레크(왕)의 바이트(거처, 궁)에서,
모든 유다인들로부터 벗어나,
*에스더에게 돌려보내는 말을 하였다.
너는 기대하지 말아라.
믿지 말아라.
너의 생명이 도망칠 수 있을 줄로,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들과는 다르게.
14 만약에 잠잠하여(하라그), 네가 하라그(귀먹다, 잠잠하다 / 미완료)한다면, 이 에트(시간, 기회)에,
레바흐(넓이, 공간, 휴식, 해방)와 핫찰라(구원, 해방)은 아마드(서다, 확고히 서도록 하다, 일으키다 / 미완료)할 것이다.
유다인들을 위한, 아헤르(다른) 마콤(지역, 자리)으로 말미암아.
그러나 아트(아람어/너)와 아트(너)의 아브(아버지)의 바이트(집)은, 아바드(망하다, 죽게 되다, 멸망하다 / 미완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누가 야다(알다, 깨닫다) 알겠느냐?
이 에트(시간, 기회)를 위하여, 네가 나가드(닿다, 만지다, 때리다)된 것이, 말쿠트(나라, 왕위)로 가까이.
*네가 잠잠하여 못 들은 체 한다면, 유다인들은 다른 방법으로 말미암아 해방과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와 너의 집은 멸망하게 될 것이다.
누가 알겠느냐?
네가 왕위에 닿게 된 것이 이 때를 위함인지.
*여기서 ‘에트’(시간, 기회)와 ‘아트’(너)의 발음이 비슷하게 나타난다.
이 때를 놓치고 잠잠하게 되는 것은 곧, 너와 너의 집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15 그리고 에스더가 말하기를, 슈브(돌아가다)하기 위하여, 모르드개에게
*이제 대화가 모르드개에서 에스더로 바뀐다.
16 당신은 할라크(가다, 명령)하라.
당신은 카나쓰(모으다, 집합시키다 / 명령)하라, 모든 유다인을, 수산에서 마짜(찾다, 발견하다)되는,
그리고 당신은 춤(금식하다)하라, 나를 따라서(위하여)
그리고 당신은 아칼(먹다 / 미완료)하지 말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샤타(마시다 / 미완료)하지 말 것이다, 낮밤 3일을,
감(역시) 나도 그리고 나의 나아라(여자 종)들도, 춤(금식하다 / 1단, 미완료)할 것이다, 그와 같이(켄)
그리고 켄(그와 같이), 나도 보(나오다 / 미완료)할 것이다, 멜레크(왕)을 향하여, 다트(율법, 규례)가 아니지만,
그리고 나는 아바드(멸망하다)하였고, 아바드(멸망하다)하였다.
*에스더의 마음이 급하다.
당신은 당장 가라
당신은 당장 수산에서 발견되는 모든 유다인들을 집합시키라.
그리고 당신은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낮밤 3일을 먹지 말고 마시지 말 것이다.
나 역시 나의 여종들과 그와 같이 금식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법을 어기고, 왕에게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반드시 멸망한다.
*아바드의 반복을 ‘반드시 멸망한다.’고
해석해보았다.
17 그리고 모르드개가 아바르(넘어가다)하였다, 그리고 그가 모두 아싸(하다)하였다,
에스더가 그에게 차바(명령하다, 맡기다)한 대로,
*모르드개는 즉시로 에스더의 명령에 순종한다.
그는 자기 민족의 운명을 하나님과 에스더에게 맡긴다.
묵상
에스더 뿐만 아니라 모르드개 역시 죽기를 각오하였다.
4:1-3에서 ‘모르드개’와 각 지방의 ‘유다인’들이 애통하며 금식하고 울고 있었다.
4:4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베 옷만큼은 벗기려고 하였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이를 거부하였다.
4:5-9 에스더는 내시 하닥을 통해, 모르드개가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게 하였다.
4:10-12 에스더는 하닥을 통하여 모르드개에게 말을 전했다.
자신은 30일 동안 부름받지 못했고, 부름받음 없이 왕에게 나아가는 것은 불법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4:13-17이 오늘 본문이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지금 잠잠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자기 자신과 유다인 전체가 사는 길이라고 에스더를 설득하고, 에스더는 그 말에 따라 움직인다.
이제 에스더 역시 ‘금식’에 동참한다.
하나님은 에스더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황 가운데 에스더가 지혜로운 선택을 하도록 도우신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돌봄을 받았고, 모르드개는 유다인들을 위해 슬퍼하고 있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관계가, 에스더로 하여금 유다인들의 절망을 자기 일로 여기게 이끌었다.
하나님은 왜 ‘교회’가 망하는 상황을 허락하셨을까?
이스라엘 민족이다.
그들은 범죄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런데 거기서 악한 하만의 공격을 당한다.
그래서 그들은 멸망할 위기에 처한다.
아무튼 이 일을 통해, 유다인들의 지도자가 등극한다.
또한 이 일을 통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원수가 멸망한다.
교회가 망하는 상황은, 교회를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새로운 일꾼을 세우게 하며, 더욱 일치단결하게 한다.
또한 악의를 가지고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을 멸망시킨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허락하시는 ‘고난’은 무의미하지 않다.
믿음으로 잘 이겨내면 더 나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에스더
- 교회 안에서도,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신가?
처음에 에스더는 그 일에 관여하길 거부하였다. 그녀는 사촌과 함께 애도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왕에게 그런 문제를 꺼내어 왕의 일을 간섭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마침내 모르드개의 다음과 같은 간청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位)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4:14).
이 간청에도 역시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음이 사실이다.(외경에
있는 에스더의 기도문에서 그녀는 자신의 높은 위치를 조금도 즐거워하지 않으며 호화로운 상에서 식사를 하고 고급 술을 마시는 것 또한 즐기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는 점을 기억하라).그렇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왕국이 이 대화의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르드개가 “이 (같은) 때”라고 말했을 때, 그는 주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결정적인 계기를 만드신 시기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이스라엘의 문제였다. 하나님께서 일을 다 준비해 놓았므므로 에스더는 이제 그녀의 민족을 위해 거리낌없이 왕 앞으로 간언하러 나아갈 수 있었다.
(2)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도전하다(4:12–14)
에스더에 대한 모르드개의 반응은 세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첫째, 에스더 자신의 생명도 위태하다.
둘째, 유대인들은 에스더와 상관없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셋째, 에스더의 인생의 목적 자체가 위험하다.
비록 모르드개의 말이 때때로 은폐된 것으로서 또는 공개된 위협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그는 에스더에게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 행동하는 것이 더 낫다는 충고자의 역할에 충실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에스더는 적어도 자기-생존의 가능성을 보장받게 된다.
달리 말하면 모르드개는 여전히 에스더의 보호자로 행동하고 있다.
그는 역시 에스더가 8절 끝에서 했던 강조를 반복하면서 에스더야 말로 유대인의 뿌리임을 두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다(13–14절).
모르드개는 만일 에스더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유대인을 위한 “놓임과 구원”이 다른 데서 올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간섭할 것이라는 그의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모르드개의 이런 생각은 에스더가 하나님을 그의 백성 이야기로부터 분리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이 문구는 에스더가 만일 그의 백성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누군가 다른 사람을 세우실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언급 부재에 대하여 신학적 관점을 덧붙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캄(Bauckham)의 설명이 유익하다.
모르드개의 말은 에스더가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의 구원은 에스더의 개입이나 어떤 방식이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는 문구는 회의주의도 아니고 예언을 확신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희망적인 가설이다.
저자는 이렇게 모르드개의 가장 중요한 말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언급을 삼가는 고충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말 속에 하나님을 포함시키는 것보다 배제하는 것이 더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을 포함시킨다는 것은 저자의 결정적인 목적과 갈등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66 페이지 이후와 4:3의 주석을 보라).
분명한 것은 모르드개의 말은 감동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심각한 당혹함이나 그녀의 잠재적인 구원 능력을 저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에스더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동기부여를 하고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
(3)      에스더가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다(4:15–17)
〈15–16〉 지금 에스더는 주저 없이 그 도전을 받아들인다.
에스더는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인생 여정을 예상하고 동시에 인생의 목적을 수용한다.
이런 배경 아래 에스더의 결단(자신의 운명이라기보다는)이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문구로 표현되어 있다.
극적인 긴장감이 그 의도를 담은 이 문장으로 점차 고조되고 있다.
에스더는 마치 이 위기를 받아들임으로써 유대 백성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처럼 그녀는 다시 금식을 통해 자신과 유대 백성을 동일시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에스더는 더 이상 주변 환경에 대해 무지하지 않는데, 이제 그들과 함께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스더는 유대인들의 생존을 위해 자신이 앞으로의 계획에서 중심이 될 것을 말하면서 모르드개에게 모든 유대인들이 “자신을 위한”(NRSV, NIV “for me”) 금식을 위해 수산 성에 모일 것을 지시한다.
금식은 밤낮 없이 3일 동안(단 하루가 아니라)이나 지속되는 등 예상 수준을 뛰어넘는다.
금식의 엄격함은 상황의 긴박성과 맞물려 있고, 그녀가 유대 백성과 그들의 대표와의 연대를 강조하려는 것이다.
비록 헬라 사본은 금식과 기도가 함께 동반되었다고 하지만 금식의 종교적인 의미를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17〉 4장은 에스더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위기의 순간에 유대 백성을 위해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분명한 의지로 마무리되고 있다.
앞의 경우(2:20)와 확연하게 다른 것은 이제 모르드개가 에스더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의미
희망 없는 자를 위한 희망이 용기있고 지혜로운 젊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다.
안타깝게도 에스더는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아직 숲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나 희미한 빛을 보고 있다.
당혹스럽게도 하나님은 그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 듯한 4장에서 가장 현존해 계시며 동시에 가장 부재하고 계시다.
운명에 관한 질문들에 대답해야 하는 이런 위태로운 장면에서 저자는 이야기로부터 하나님을 말해야 하는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다(Berlin, 2001: 44).
모르드개는 궁궐 주변을 떠나고, 에스더는 무대 중앙으로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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