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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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많은 사람들이 열등감을 가지고 삽니다.
이 열등감, 왜 생기는 걸까요?
열등감이 생기는 것은 외적인 환경과 조건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듯이 마음속의 염려는 문제거리로 인식하고 걱정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생기는거에요.
속사람이 문제고, 삶의 태도가 문제인거에요.
조금 어렵게 말하면,
자아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자아정체성이란 자신의 본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나의 본질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이것이 자아정체성인데, 이것을 모르고 방황하는 것입니다.
같은 의미에서 “교회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이 정체성을 확실하게 가져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그 정체성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보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 혹은 ‘몸 된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리고 ‘세상’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어두운 세상’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또는 교회 정체성을 보여주는 거에요.
쉽게 말해, 어두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누구이며, 교회는 왜 존재하는가를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할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죠.
먼저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요?
1.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소금이요, 빛입니다.
말씀을 잘 보세요.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셨을까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나요?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예수님은 ‘소금이 되라’고 하시지 않고 이미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소금이 되라’고 하셨다면, 이어서 소금이 되는 비결, 짠맛을 내는 비결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미 소금인 자로서 짠 맛을 잃어버리는 위험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거에요.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우리는 이미 소금이지만, 그 짠 맛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아무 짝에도 쓸데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맛을 잃은 소금 덩이를 평평한 지붕 위에 뿌립니다.
이 소금 때문에 지붕 위에 흙은 더 단단해집니다. 그 평평한 지붕이 기도실이나 공공집회의 장소로 쓰입니다. 그래서 소금이 사람들에게 밟히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이미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님 믿은 지가 얼마 안 되었다고요? 믿음이 부족하다고요? 그래도 소금이요, 빛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안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요한복음 1장 말씀을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참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기에, 빛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어두움이었던 우리가 빛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엡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우리가 예수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 되었습니다.
이제 본질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치 물과 기름이 다르고 빛과 어둠이 다른 것과 같이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빛의 자녀이기 때문에
빛의 자녀처럼 행동해야 하는거에요.
이제부터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입니다.
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맛 잃은 소금처럼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됩니다.
부끄럽게 되는 것이고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여러분 보고 “예수 믿는 것들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똑같아” “예수 믿는 것들이 더해.” 라는 말을 한적이 있나요? 혹은 그런 말을 들어본적이 있어요?
소금 맛을 잃으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될까 두려워해야합니다. 이렇게 버림받을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자신이 이렇게 버림을 받을까를 두려워했습니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이것은 그가 구원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소금처럼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까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항상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킨 거에요.
세상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정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육신을 쳐 복종시켰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몸을 쳐 복종시켜야 합니다. 날마다 육의 사람을 죽이고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야 해요.
악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금으로, 빛으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2.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더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금이로되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소금으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할 곳이 어디인가?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살아가는 현장이 바다이듯이,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현장은 ‘이 세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세상과 분리되어 살 수 없는거죠.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미워하고 정죄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죄악 된 세상을 정죄하지 않고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소금된 우리는, 빛 된 우리는, 이제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일터입니다.
세상은 선교현장이요, 전도현장입니다.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전도대상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잘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더 잘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가족이 있다면 그들에게 더 잘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소금이 소금부대 안에서만 짜면 뭐해요?
소금부대에서 나와서 생선에 뿌려지고 음식에 뿌려져야 합니다.
소금부대에 소금이 가득 하다고 생선이 저절로 썩지 않아요? 아니죠~
소금자루에서 소금이 나와서 배추에 뿌려지고, 생선에 뿌려져야 김치가 간이 되고 생선이 썩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소금인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만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먼저 교회에서 잘 가르침을 받아서, 세상에 나가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야합니다.
세상은 점점 부패하고 썩어가고 있어요. 소금된 우리가 이것을 막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회 구석에 들어가서 방부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소금이 소금되기 위한 조건은 소금의 맛입니다. 소금은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맛이 중요해요. 맛이 그리스도인의 생명력이요, 영향력인거에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짠맛을 내야합니다.
소금이 짠맛을 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녹는 희생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봉사와 희생정신인거에요.
예수님은 인류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자기 생명까지 내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희생하고 봉사하는가?
스스로 희생하지 않으려해요, 녹지 않으려해요. 그러니까 맛 잃은 소금이지요. 우리는 이런 소금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인은 빛을 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빛을 발해야 합니다.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가는 세상 가운데에 빛을 비출 수 있어야 해요.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빛은 더 밝게 빛날 거에요.
여러분들이 그런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밤이 아무리 어두워도 아침에 태양이 뜨면 어두움은 소리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어두침침한 지하실에 촛불 하나만 있어도 어두움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겐 이렇게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는거에요.
4. 변화된 그리스도인을 통해 세상이 변하고 구원도 받습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의 역사를 사도행전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 누구도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유무상통하였습니다. 기쁨으로 떡을 떼는 하나 된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행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이런 변화된 모습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변화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반드시 세상을 이깁니다.
초대교회 당시 기독교 인구가 불과 2.7%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박해 가운데에서도 빛의 역할을 감당했어요. 그래서 로마제국을 복음으로 정복했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십자가 앞에 자신의 왕관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습니다.
소금은 결코 썩지 않습니다. 빛은 결코 어둠에게 패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구원합니다.
다음주 부터 개학을 해서 학교에 가시죠?
1학년 친구들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2,3학년 친구들은 새로운 반에 편성되서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날거에요.
여러분, 새학기를 맞이해서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하시기 바라요.
여러분들이 이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세요.
수 많은 친구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잖아요. 그 친구들에게 가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어두움에 빠져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빛으로 인도하시고,
죄로 인해 썩어져가는 친구들이 있다면, 소금의 역할로, 그들에게 다가가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그들을 변화시키시고,
여러분들이 나아가는 현장을 밝혀 주실 거에요.
그렇게 하나님의 도구로서 쓰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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