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어짐의 비결(골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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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오늘은 3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어느새 한 해의 4분의 1이 지나갔습니다. 우리 계신 곳에서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릴까요? 할렐루야.
한 해의 4분의 1이 지나는 시점에서 사랑하는 성도님들과 어떤 말씀을 나눌까 고민하고 또 기도하다 2022년 우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2022년을 어떻게 만들어 가신다고 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예 맞습니다. 마음과 삶의 지경을 넓혀주시는 해입니다. 여러분, 기대하시며 또 넓히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다시 한 번 이렇게 선포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삶의 지경을 넓혀주실 것입니다. 아멘.
서론
서론
오늘 함께 나눌 골로새서에서는 마음과 삶의 지경이 넓은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골로새서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던 중에 쓰인 옥중서신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살펴보면 바울은 나는 이제(지금)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는 괴로움마저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받은 고난이 무엇이었는지는 고린도 후서 11장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매를 맞고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맞이했으며 굶주림과 목마름 그리고 헐벗음과 추위에 떠는 등의 고난을 겪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는 이 고난들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며 교회를 위하여 받는 고난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받은 고난이 부족하기 때문에 바울이 그 고난을 마저 받고 있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머리와 몸의 관계로 표현하곤 합니다. 때문에 바울은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몸 된 교회를 위해 받으신 고난은 곧 몸 된 교회가 마땅히 받아야 할 고난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고 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바울은 그 몸 된 지체 중 하나로써 교회를 위해, 생명을 위해 자신도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고 고백하며 고난의 이유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 교회를 위해 받는 고난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 고난은 예수님과 함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 아픔을 잠깐 참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픔을 기뻐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쉽지 않습니다. 고난 또한 잠깐 참고 견디는 것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그 고난을 기뻐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고백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바울의 마음을 넓히시지 않으셨다면 고난을 기뻐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넓은 마음을 품은 바울의 삶의 지경을 하나님께서 넓히시고 그를 통해 행하신 일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마음과 삶의 지경이 넓어진 것일까요? 저는 오늘 여러분과 이 넓어짐의 비결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며 은혜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넓어짐의 비결은 그리스도입니다.
넓어짐의 비결은 그리스도입니다.
첫 번째 넓어짐의 비결은 ‘비밀'입니다. 25절에 바울은 자신이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으로 박해하던 청년 사울은 어떻게 하다가 교회의 일꾼이 되었을까요? 바울은 그 이유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너희 교회들을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말하면 몇몇 분들이 관심을 잃으실 수도 있습니다. ‘아 나는 직분이 없는걸.’, ‘아 나는 목회자가 아닌데. 오늘 말씀은 목회자들이나 어떤 특별한 직분을 받은 사람들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인가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이 직분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오이코노미아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경륜, 직분, 청지기 등의 뜻으로 사용되어집니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하나님께서 창조 전부터 가지고 계신 계획을 이루시는 방법을 뜻합니다. 바울의 경우, 그는 열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구원하셨고 그가 열심으로 박해하던 예수를 전하는 자인 사도의 직분을 맡기시고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이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만 이러한 오이코노미아를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향한 선하신 오이코노미아를 가지고 계십니다. 아멘이십니까? 저와 여러분이 교회를 사랑하게 된 이유 그리고 교회에서 거룩한 성도로서, 교회의 일꾼으로서 헌신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선하신 계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할 일들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이루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26절을 살펴보겠습니다.
26절에서 바울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그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감추어져 선지자들이나 예언자들을 통해서만 전해져왔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타난 그 비밀은 유대인들에게서 그치지 않고 모든 백성들에게로 더욱 풍성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 일서에서 요한은 이 말씀에 대해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나타나신바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비밀 곧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제 그 비밀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아멘.
이 그리스도가 오늘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첫 번째 넓어짐의 비의 정체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다시 25절로 돌아가 말씀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답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이룬다는 것은, 나타난 비결이신 그리스도를 알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창세전부터 선하신 오이코노미아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의 일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역할을 부여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일꾼인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이것을 알리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자마다 그가 우리 안에 계심으로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유일한 영광의 소망이 되십니다. 아멘.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알려야 할 복음이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왜 우리에게 넓어짐의 비이 되는 것일까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어디에 계십니까? 이제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네!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계십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아멘.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니 당연히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시지요? 당연히 여러분은 어디에서나 섬기는 자세로 살아가시지요?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주 그렇지 못한 채로 삶을 살아갑니다. 왜일까요? 그럼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안 계신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본질 상 진노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은혜는 우리가 살아서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계셔서 우리를 이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서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죄에 빠져 죽어가던 우리를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려 말씀이 이끄는 삶으로 데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은 그 말씀이 예수님이시라고 증언합니다. 때문에 그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잊으면, 우리는 그 말씀을 이루며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우리보다 큰 문제들과 상황들을 맞닥뜨립니다. 그 때에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작게 생각하고 그 문제로 우리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바로 그 생각이 우리의 마음과 삶의 지경을 작게 만듭니다. 하지만 바울이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 그가 교회의 일꾼이 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였습니다. 내 상황과 환경보다 그리스도께서 더 크시고 나의 모든 상황과 환경은 그리스도의 주권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열심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위하여 일하고 또 고통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살아계신 말씀은 우리 안에서 우리의 마음을 넓어지게 하고 또한 우리의 삶의 지경을 넓혀줍니다.
넓어지는 첫 번째 비결이 그리스도인 이유를 정리하면 우리의 마음과 삶의 지경은 우리가 넓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께서 살리십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서 영광으로 풍성히 역사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좁은 마음과 좁은 삶이었던 사울의 마음과 삶을 버리고 생명과 소망을 얻어 고난을 기쁨으로 여기는 데까지 나아가 교회의 일꾼으로, 복음의 일꾼으로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넓어진 마음과 삶의 지경을 저와 여러분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넓어짐의 비결은 복음입니다.
넓어짐의 비결은 복음입니다.
28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방법과 목적에 대해서 말합니다. 전파하는 방법은 권하고 또 모든 지혜로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목적은 이렇습니다.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바울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 하셨던 일들의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통하여서 사람들을 권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서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는 곧 바울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은혜이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복음을 통하여서 완전한 자로 성숙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경험한 대로, 예수님을 전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역을 통하여서 점차 마음을 넓혔습니다. 사람을 죽이러 다니던 그는 사람을 살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복음을 통해 바울은 많은 전도여행들을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교회를 개척하는 지경이 넓어진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넓히고 또 우리의 삶의 지경을 넓히는 두 번째 비결은 바로 복음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 복음을 맛보아 알 때에 또 복음을 전파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가 됨으로 복음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복음을 마음껏 누리고 또 전파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본문에서 찾을 수 있는 은혜를 하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방법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설교가 있을 것입니다. 또 전도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말과 행동들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자리에 서 있는 저는 지금 여러분들께 설교를 하고 있고 매주 함께 전도도 나갑니다. 또 마땅히 저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복음을 자주 전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달하는 입장에서 저는 이 말씀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권하는 것은 말을 하면 되고 가르치는 것은 공부를 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각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은 제가 먼저 완전한 자로 서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면서도 저는 부족함을 느낍니다. 삶의 순간에서 상황과 환경에 눌려서 예수님을 잊어버리기도 하는 연약함이 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넓은 마음과 넓은 삶의 지경을 꿈꾸지만 간장 종지 같은 좁은 마음을 마주할 때도 있고 아직은 너무 작은 것 같은 내 삶의 지경을 보며 실망하기도 합니다. 항상 설교를 준비할 때, 복음을 전할 때에 돌아서서 내 삶을 돌아보면 그렇지 못한데 하는 마음에 항상 자격 없음과 함께 부담감을 느낍니다.
그런데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 제가 발견한 은혜가 하나 있습니다. 그 은혜가 무엇이냐면 복음은 완전하며 그 복음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부족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는 불완전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은 완전합니다. 저는 길을 제시할 수 없고 생명을 줄 수 없지만 복음은 올바르게 전하기만 하면 길을 제시할 수 있고 생명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삶과 능력으로 사람을 세우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복음의 힘과 능력으로 사람을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큰 위로가 되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늘도 부족함을 안고 있지만, 당당하게 복음을 붙잡고 그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도 삶의 자리에서 당당히 복음을 전파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조금씩 완전해져 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과 삶의 지경이 넓어지는, 그 놀라운 은혜를 함께 경험해 나갈 것입니다.
넓어짐의 비결은 수고입니다.
넓어짐의 비결은 수고입니다.
세 번째 비결은 상급입니다. 저는 요리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요리를 할 때에 냉장고에서 요리재료들을 꺼내 도마에 올려서 칼로 요리재료들을 손질합니다. 그리고 냄비나 프라이팬 혹은 웍에 재료들을 올리고 불로 요리를 합니다. 그리고 그릇들에 예쁘게 담아놓습니다. 이 요리를 마치고 나면 예쁘게 사진을 찍어서 SNS스토리에 올리곤 합니다. 여러분, 제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이 요리는 누가 한 것일까요?
아무도 이 요리가 도마나 칼, 냄비나 프라이팬이 했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들은 요리를 하는데 쓰인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했을 때에 쓰인 도구는 우리가 쓰기 전까지는 아무 쓸모가 없는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는 앞서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누었습니다. 바울 자신도 29절을 통해 복음을 위한 수고를 말하면서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서 힘을 다해 수고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제가 요리를 할 때 사용한 칼과 조리도구들처럼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이처럼 우리가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다는 것은 사실상 우리가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으셔야 할 말인 것 같습니다. 수고는 도구가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여 그 일을 한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로 창세전부터 복음을 위하여서 계속해서 수고하시고 계신 분이십니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복음을 위해서 이뤄 온 모든 것이 자신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수차례 전도여행을 떠났고 교회를 세웠으며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박해받기까지 수고를 다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수고를 모두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울이 사람이 자신의 힘과 능력 그리고 지식으로 하는 수고는 모두 헛되다는 것을 누구보다 몸소 체험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청년의 때에 헛된 수고를 누구보다 더 열심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열심으로 그리스도를 박해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요 공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고 오히려 박해하는 잘못된 열심이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는 수고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깨달은 진리는 내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해 수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마땅히 복음을 위해 우리 안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을 따라 힘을 다해 수고해야 마땅합니다. 교회의 일꾼으로 그리스도를 알리고 복음을 권하고 가르쳐 사람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 열심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고를 통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교회의 사역의 지경이 넓어지고 또한 교회가 부흥될 것입니다. 아멘.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때에 이 일들이 우리의 영광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 공로가 우리게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영광과 공로는 우리를 통해 역사하신 성삼위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또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넓어짐의 비결과 은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럴 필요가 없으신 분 이신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행한 일들을 우리의 공로로 삼아주시며 우리를 통하여서 영광을 받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사역에 동참시켜 주시고 또 수고를 기억하시고 또 인정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고를 상급으로 주십니다. 그 상급은 많은 것이 있겠지만 바울을 통해 보았을 때 그중 하나는 고난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는 넓은 마음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삶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에 수고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수고를 기억해주시는 하나님께 이러한 상급을 얻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결론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바울을 통해 넓어짐의 비결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루고 또 전하고 수고함으로 말미암아 이전과는 더욱 넓은 마음과 삶을 살게 되었음을 봅니다.
2022년 4월을 맞이할 저와 여러분의 마음과 삶이 오늘 바울과 같이 넓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과 삶이 살아계셔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나고 더욱 넓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또 그리스도를 전파할 때에 여러분이 전파하는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더욱 완전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역사를 따라 일하는 모든 수고를 기억하시고 그것에 상급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