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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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다
말씀이 육신이 되다
1. 1장 1절 - 5절.
2.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이 복음서를 기록한 사도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소개하여 놀라운 이야기의 문을 연다.
3.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4.이 태초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창세기1장1절의 그 태초이다. 창세기1장은 무엇이라고 시작되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5.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던 그 때, 이 말씀도 함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하셨는데, 이 말씀이 곧 하나님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요한복음 1 장 1절을 접하던 최초의 독자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 말씀이 무엇이기에 태초부터 있었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 시라고 말하고 있는것인가?
6.요한은 이 말씀을 단지 글자, 이야기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화시켜 말씀이라는 단어를 통해 사람이라는 존재를 떠올리게 하고 있고, 이 말씀이라는 단어를 통해 한 사람을 계속하여 떠올리도록 이끌어가고 있다.
7.말씀은 곧 사람이고, 이 사람은 곧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존재라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이 복음서의 주인공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그 말씀,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누구인가? 이 복음서가 기록되기전, 이스라엘을 돌아다니시며 병을 고치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고, 배고프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셨고,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하나님이 생명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죄는 얼마나 미워하시는지를 가르쳤던 그 분, 그래서 구원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선물로 받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가르치셨던 그 분을 가르켜주고 있다. 누구입니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8.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복음서는 예언서가 아니라 증거서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이럴거래가 아니라 복음은 이런거다!라고 확증을 시켜주는 증거서이다.
9.요한은 예수님을 부정하고 못박았던 자들, 여전히 세상의 헛된 속임수에 넘어가 예수를 부정하는 자들을 향해 이 복음서를 보내고 있다.
10.이 복음서의 주인공 예수그리스도는 어떤분인가? 2절에서 요한은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라고 말하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라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의 그 어떤 신보다도, 아니 그 어떤 신들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존재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이미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분이시다.
세상의 그 어떤 존재들보다도 먼저 계셨던 분이시고, 아예 세상이 창조되기 전인 태초부터 창조 이후인 지금까지 세상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주관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다. 라고 예수님의 존재를 소개하고 있다.
11.이 소개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 소개가 마치면 본격적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서 이루신 일들에 대한 기록들을 펼쳐나갈 것인데,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신 그 분, 창조주요 구원자가 되시는 그 분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 말씀을 접하는 태도는 달라질 것이고, 이 말씀을 통해 얻고 누리게 될 은혜의 깊이 자체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요, 이 말씀이 곧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그저 내 삶을 윤택하게 해줄 좋은 책이 아니라, 이 말씀이 곧 나의 생명으로 여기며 말씀을 더욱 의지하고 사랑해야합니다.
이 말씀을 손에 잡고 책장을 열때마다 나에게 주실 그 구원의 사랑이 온몸으로 느껴져야합니다.
12.이어서 요한은 3절에서도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것이 없느니라"라고 말하며, 세상의 모든 존재는 예수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13.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이끌어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이 땅에서 기쁨으로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은, 예수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존재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만물 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존재할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14.만약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낼 계획이 없으셨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갈 계획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믿기 전보다도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세상의 역사를 마치셨다면 오늘 우리의 존재도, 훗날 영원한 천국에서 누릴 영광도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아 만물을 창조하신분은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단지 얼마전에 갑자기 나타나신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셨고, 모든것의 통치자라는 것입니다)
15.그렇기에 만물의 창조, 특별히 우리가 이 땅에 창조되어져 살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예수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입니다.
16.그렇기에 요한은 4절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3절까지에서 예수그리스도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신분이요,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이 당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창조된 목적과 이유 그 자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땅에 피조물, 창조물로 존재하고 있는 사람은 온전히 누구를 바라보며, 누구의 통치 아래에서, 누구의 계획과 목적의 실행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바라보았을 때 여전히 사람들은 창조주가 아닌 창조물을 의지하고, 창조물된 인간 자신이 주인이 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생명이 오직 주님께 있는데, 다른 것에 생명이 있다고 말하며 헛된 신화와 헛된 사상, 헛된 존재들을 쫒아가려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소개한 후 4절에서 그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7. 이곳을 한번더 보겠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라고 말한 이후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라고 말합니다.
빛. 빛은 인간이 인간답게 무엇인가를 행하며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오늘날에는 우리가 얼마든지 편하게 빛을 사용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이 빛이라는 것은 낮의 태양과 밤에는 등불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빛이 없으면 일상생활은 완전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 빛과 같은 분, 밤길을 걸어가야 할 때 길을 찾게 하는 도구요,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방향을 설정해 주는 도구인 빛, 이 빛은 사람들을 위한 빛인데 이 빛을 통해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18.요한은 예수님이 생명이요, 예수님이 곧 우리를 위한 빛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19.하지만 요한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던 것,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현실이 있었죠. 5절의 내용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빛을 깨닫지 못하더라"
20.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하셨고, 만물의 창조주요, 창조된 모든 것의 이유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어둠을 비추기 위해 빛으로 오셨지만 깨닫지 못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1.이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번역된 이 말씀은 어둠이 영접하지 않더라, 빛을 알지 못하더라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22.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직접 예수님을 만난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3.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압도하다 혹은 굴복시키다라는 의미입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치매 어두움이 능히 이기지 못하더라"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데 이것은 죄로 인해 무너지고, 어둠에 잠식되어 절망과도 같은 세상에 예수님이 오셨고 결국 예수님은 어두움을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깊이 묵상해야하는 이유는, 요한은 어두임이 빛을 이기지 못했던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현장을 목격했던 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음을 당하신 그 때, 마치 어두움이 온 세상을 뒤덮은 것 같은 절망을 느꼈습니다. 약속을 믿고 의지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까지의 3일은 깊은 절망가운데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못박은 어둠의 세력들이 자신들의 승리를 외치고 있던 그 현장에서의 삶은 혼란과 좌절뿐이었을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죽으신지 3일만에 부활하셨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결코 거짓되지 않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결코 빛이 어두움을 이길 수 없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소개한 요한은 뒤이어 6절에서는 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땅에 전하러 온 한 선지자를 소개합니다.
(사람들은 도리어 예수를 선지자중 하나로, 사람으로만 여겼으며 도리어 세례요한을 신적인 존재로 여기는 자들도 있었지만 사도요한은 세례요한이 어떠한 사명을 감당하는 자였는지를 소개한다)
**요한복음1:6-10
1.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소개한 뒤, 이 놀라운 사실을 전파하고 증거하러 이 땅에 보냄을 받은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바로 요한입니다.
하나님께로 보냄을 받은 그 요한이 행한 사명에 대해 이렇게 소개합니다.
7절입니다.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비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2.요한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보냄을 받은 이유는 증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증언했던 것은 빛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믿게 하도록 하기 위해 복음의 전파를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3.사도요한의 이 증언은 단지 세례요한이 누구인지만을 소개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이 복음서의 메시지를 듣게될 믿음이 없는 자들 만이 아닌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도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무엇입니까?
4.6절,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자, 7절 그는 증언하러 왔으니라고 기록된 내용을 종합하면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자는 예수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냄을 받은 자의 입에서는 빛이 증거되어야하고, 그의 전인격적에서는 빛이 드러남으로 그를 보는 모든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마음의 동의, 결단이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5.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이 메시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보냄을 받은 것은 단지 우리의 유익과 만족, 우리의 기쁨, 우리의 행복한 삶, 남들보다 더 나은 것을 얻고 누리고 자랑하기 위해 살라고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 보냄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믿는 자로서 이 미국땅에(또는 한국땅에, 또는 열방에)보내신 이유는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입니다.
6.이 말씀을 기록한 사도요한은 자신에게도 이 사명이 있음을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요한복음20장30절에서, 성령께서 감동함을 주셔서 이 복음서의 메시지를 기록하게 하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림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라고 ㅎ말합니다.
7.모든 사람을 믿게 하는 것, 그것이 복음서의 목적이자 이유요, 이것을 기록한 제자들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주신 이유,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우리의 사명은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8.이러한 사명을 붙들고 있었던 세례 요한에 대해 사도는 또 다시 설명을 합니다 .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비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저는 이 구절을 읽으며 우리의 위치가 어디에 있어야하는지를 확실하게 구분지어주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기록하던 때, 많은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정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가 아닌 자신들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내리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철학자(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지혜를 가진 존재라고 스스로를 추겨세웠습니다. 혹은 뛰어난 지식을 가진 철학자들을 추총하며 그들을 신처럼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사도요한은 그런 잘못된 사상과 신앙을 가진 자들을 향해 세례요한을 소개하며 이렇게 분명하게 선을 그어줍니다.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사람은 빛이 아니다. 사람은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여야 한다. 그것은 자신도, 세례요한도 동일함을 이야기 합니다.
10.그러면서 사도요한은 9절에서 기록합니다. “참 빛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너희들이 소망을 찾고 구원을 찾고 있지? 너희가 찾는 진정한 소망과 구원의 빛이 이미 이 땅에 존재했었다.라고 말하며 세상으로 향해있던(혹은 소위 성인, 우상) 사람들의 시선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나갑니다. 사도 요한은 그 시선을 이곳으로 집중시킵니다.
11.10절입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2.요한은 독자의 시선을 구원의 빛으로 집중시킵니다. 여러분들이 그토록 바라던 메시아,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 죄와 사망의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빛으로 오신 메시아, 그분은 이미 세상에 계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성령으로서 세상에 계심을 말하기 이전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너희가 바라던 그 바람이 현실이 되어 너희를 만나주셨는데, 너희 곁에 계셨었는데 우리가 그를 알지 못했다고,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3.여기서 요한은 단지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음만을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다. 10절을 한번더 보겠습니다. 요한복음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세상이 알지못한 두가지를 지적합니다. 1)하나는 조금전에 살펴번 세상에 계셨음을 알지 못한 것이고, 두번째는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태초에 계신 그분, 세상의 모든 만물을 지으신 그분이 이 땅에 오셨는데 세상은 그를 창조주로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믿지 않음을 넘어 부정하고 조롱하였습니다.
14.우리는 어떠합니까?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분이심을, 그리고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있습니까? 그 주님께서 나와 우리, 온세상의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요, 주인되심을 믿으십니까? ㅇ
이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세상은 어떠했습니까?
15.요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5.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자기 땅에 오셨으나 백성들이 주인으로 믿고 맞이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이 있스빈다. 단순히 믿지 않고 인정만 하지 않은 것이 아니죠. 이 땅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것이요, 구원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것인데 백성일뿐인 우리가 도리어 주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단순히 예수님을 알지 못한 세상의 무지와 죄를 지적하고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들이 주인노릇하려 했던 죄악됨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것입니다. 구원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그 사실에 무지했던 자들을 향해, 그리고 여전히 그 사실을 거부하고 있던 자들을 향해 요한은 다시 한번 복음의 진리를 선포합니다.
16.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복음의 진리는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것입니다.
영접하다는 것은 맞이하고 대접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에 기록된 언어로 해석하고 적용하면, 우리의 삶이 주인되시는 예수님께 경배와 찬송을 드리는 삶, 우리의 전인격을 통해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나의 주인으로 맞이하여,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득채워넣어 그 말씀을 의지하여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17.영접의 삶이 없는 것은 곧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은 곧 영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우리의 생명이 되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18.그러한 삶이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태초부터 계셨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단지 우리의 신이 아닌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당시 헛된 신화와 우상에 빠져 살아가던 자들에게 신화속의 신들이 너희를 보호할 것이라는 사상을 뛰어넘는, 신의 자녀가 된다라는 선포는 획기전인 선포였습니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19.철없던 어린시절, 저는 이런 꿈을 꾸었던 적도 있습니다. 제가 짜장면을 정말 좋아했고, 오락실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근데 공교롭게도 제 동네 친구들중 짜장면집 아들과 오락실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짜장면집 아들은 학교 끝나고 집에가면 매일 짜장면을 먹는 것입니다. 저희집은 졸업식이나 아버지 월급날정도가 되어야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을 매일 먹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탕수육까지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정말 부러웠고, 짜장면집 아들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또 저는 오락실을 참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오락실을 가면 제 친구는 오락실에서 공짜로 게임을 하고 심지어 오락실에서 밥까지 먹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공짜로 오락을 하고, 오락실에서 밥도 먹다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정말 부러웠고 오락실집 아들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20.그런데 제가 시간이 지나고, 또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짜장면집 아들이 되고 싶다, 오락실 주인집 아들이 되고 싶다 이것은 어린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일때만 감히 상상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음을 말입니다.( 오락실 주인 짜장면집 사장님을 무시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
그것은 정말 아이만이, 세상많은 것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만이, 자기 아버지를 사랑할 줄 모르는 철없는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상상이었죠.
만약 여러분들의 자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자기 아버지로 삼겠다고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 아버지는 필요없다고 말한다면 기분이 어떠시겠습니까?
21.이러한 철없는 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우리이지만, 하나나님은 이렇게 우리의 요청에 응답해주셨습니다. “나의 자녀로 삼아줄게”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짜장면 주인도 되실 수 있고, 오락실 주인도 되실 수 있고, 필요하면 내가 그러한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겠다는 것은 태초에 말씀으로 창조된 모든 만물의 소유를 우리에게도 맡겨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단지 이 땅에서 내가 원하는 작은 것에 눈이 멀어 하나님을 떠난다면 우리는 말그대로 소탐대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22.요한은 세상의 작은 것에 눈이 멀어 하나님을 떠난 던 자들을 향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자들은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될 것이라"고 복음의 진리를 선포합니다.
23.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자들 중에 이런 질문과 반문을 하던 자들이 존재 했습니다.
“어떻게 인간 따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느냐,?” 다른 한편에서는 유대인이 아닌 자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라고 반문을 하며 예수님의 복음을 믿지 않으려 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때로 우리 마음가운데 사단은 이렇게 유혹하기도 합니다. “매일 죄를 짓는 너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냐?”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내스스로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혈통도 아니고, 육신의 선한 행동과 노력으로 얻어지는 율법주의 적인 것도 아니며, 사람이 저 사람은 천국 갈 사람이야, 혹은 종교지도자가 너는 천국에 갈 수 있다라는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사를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어 요한은 우리가 영접해야 할 그 분에 대해 14절에서 다시 이야기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우리가 영접해야 할 그분은 누구인가? 세례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이미 거하신 분이라 소개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들 가운데 거하셨던 분.
얼마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았고, 병든 자를 살리시고 죽은자를 살리셨던 그 분, 혹시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형 선고를 받고 죽으셨던 그분? 그분이 증거하고 전하였던 메시지가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사도요한은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하셨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다시 한번 증언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곧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는 증언을 통해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보이셨고, 가르셨고, 선포하셨던 모든 메시지가 곧 하나님의 메시지요, 진리의 메시지라는 것을 확언합니다.
이 메시지를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들에게 이후에 증거되는 모든 말씀은 충격이요, 은혜이고, 감사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본격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증거하기 전, 그 메시지의 주인되시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소개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소개하며, 사도요한 자신뿐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이 땅에 보냄을 받고, 그 사역을 감당한 세례 요한의 사역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요한복음 1:15 (NKRV)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이 땅의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그 은혜의 약속, 구원의 약속을, 복음의 진리를 선포했던 그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성육신 하신 예수그리스도가 이미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셨다. 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어떻게 오셨으며 육신의 몸으로 오셔서 무슨 사역을 하셨는지, 이후로부터 본격적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복음서의 메시지는 곧 그의 영광을 보는 것이며,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한 것이며, 예수그리스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며, 구원으로 나아가는 진리의 내용임을 소개합니다.
또 한편에서는 “세상에 좋은것이 얼마나 많은데, 하나님 자녀로 살며 고생하려고 하느냐"라고 유혹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과 적절히 타협하고, 세상의 것들을 누리며 살면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살며 엔조이하며 살 수 있습니다. 먹고 싶은것 마음껏 먹고, 좋은 집에서 안락한 삶을 살며, 좋은 차를 타고, 내가 가고 싶은곳 마음껏 여행하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여가를 즐기며 사는 것 정말 행복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마치 제가 어린 시절에 짜장면집 아들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정말 꿈이 작은 아이에 불과한 꿈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이 땅에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더 많은 영광을 맛보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13.하나님께로부
구원의 빛이 세상에 왔음을 말하며 시
세상이 알지 못하고, 무시하고 조롱하며 십자가에 못박았던 그분,
8절,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예수님이 세상에 나아가 구원으로 나아가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그 주님만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그리스도
17.요한은 증거합니다.
17.
13.이 만물을 지으신 예수그리스도안에는 새명이 있는데 이 생명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