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시민권으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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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입
돕입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라는 말의 정확한 번역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민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대한 민국의 시민이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그리스도 복음의 시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오늘 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민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1. 한 마음으로 협력하십시오.
1. 한 마음으로 협력하십시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여기서 한마음이란 영어로 one spirit 으로 번역되는 것이입니다. 즉 한 성령님 이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이 한 성령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한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우리말 성경에 또 한 마음이 등장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여기서의 한 마음이란 same mind 혹은 same soulr 즉, 하나의 정신, 영혼정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one spririt 이나 one Soul 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 정도 입니다. 그래서 우리 말 성경에서는 그냥 “한 마음"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따라서 갈라디아서의 성령으로 행하다와 에베소서의 한 성령이 빌립보서에서는 한 마음으로 나타 납니다. 그렇다면, 빌립보서의 한 마음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 까요? 그것은 빌립보서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앞 부분의 “마음을 같이 하여”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마음"이란 “생각"을 의합니다. 즉, 생각을 같이 하는 것이 한 마음을 품는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생각을 같이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을 본문에서 찾기 위해서 “마음”이란 단어를 본문에서 다시 찾으면 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렇습니다. 한 마음을 품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한 성령으로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아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셨습니까? 저 하늘의 영광의 자리에서 기꺼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2장 8절처럼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한 성령으로 복음으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행복하고, 너무 좋고, 아무 문제 없이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대적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까? 그리고 정말로 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대적들을 두려워 했습니까?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이 두려워서 피하려고 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시민권으로 사는 것은 대적들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도 포함 됩니다.
2. 대적을 두려워 하지 마세요.
2. 대적을 두려워 하지 마세요.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렇습니다.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들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살 때, 얼마나 많은 대적들이 우리를 공격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도 그 대적들과 어느 정도 타협을 했다면,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몸의 안락을 위해서 이 땅에서 사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고자 오신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이 땅의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고자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1장 27절에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살면, 반드시 대적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대적을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복음의 시민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대적이란 누구일까요? 오늘 날 이 한국 땅에서 복음을 전한다고 대 놓고 대적하는 그런 경우가 있나요? 물론 있지요. 그런데, 더 교묘하고 심각한 대적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여기서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고 합니다. 그 십자가의 원수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구절이 19절입니다. 그들의 신은 배라는 말은 유대인들의 음식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코셔라 해서 그들의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먹지 말아야 할 음식과 먹을 음식을 가려서 먹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이란 유대인들이 하는 할례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반드시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음식법과 할례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대적했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완성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러한 종교적인 행위가 믿음의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우리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음식법과 할례를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소위 율법주의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민권자로서의 그리스도안에서 자유를 누리기 보다, 더 종교적으로 행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누구보다 많이 한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몇 독 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기 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종교적 교만이라 합니다. 그러한 종교적 교만이 우리를 대적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년수가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더욱 더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보이는 신아이
그렇습니다. 오늘 날 우리 복음에서 가장 큰 적은 누구 입니까? 바로 고난 받지 않고, 편안히 살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복음을 위해서 살다가 생활이 힘들어지면 어떻할까 하는 두려운 마음, 그것이 우리들의 가장 큰 대적입니다.
그리스도의 시민권자입니까? 그러면, 먹고사는 문제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먹고 사는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는 다는 것이 복음을 위해서 살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1장 29절과 30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도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믿음과 고난이 공존하는 이러한 상황을 30절에서 바울은 “그와 같은 싸움"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시민은 늘 믿음과 현실의 고난 사이에서 끝없는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이 대한 민국의 시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민입니다. 물론 대한 민국의 시민으로 서 의무를 다하며, 책임을 지면서 권리도 누려야 합니다. 동시에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민으로서 은혜받은 자 답게 살아야 합니다. 은혜받은 자 답게 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굳건히 믿고 그 복음을 전파하며 살면서 동시에 나의 이 땅의 삶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살고, 이 땅의 고난을 두려워하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