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의 찬송이 된 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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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다의 실패 2. 악을 선으로(하나님의 섭리) 3. 찬송이 된 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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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예수님에 관한 책입니다. 눅24 26-27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구약 성경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수 있다. 모세오경, 선지서, 성문서 3부분인데 이 구약 전체에서 예수님을 발견해야 구원의 길이 열리고, 행복의 길이 열리며, 고난의 의미가 이해되고, 예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우리가 누리게 됨.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어느 부분을 읽더라도 예수님께 기도해야 이 말씀에서 주님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세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모든 성경의 길은 예수님께로 통합니다. 아무리 작은 동네 시골길도 왕이 사는 도시로 이어진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도 그렇다. 우리의 왕, 만물의 왕이신 예수님께로 이어진다. 골1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만물이 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그러니 성경의 모든 이야기도 인물들도 다 예수님을 위해 존재한다. 모든 성경에서 예수님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해야 한다.
소년부에서는 창세기 본문을 계속 살피고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지난주와 이번주는 요셉 이야기를 살폈다. 요셉의 순종과 고난, 요셉의 총리등극과 가족 구원의 역사를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떤 드라마보다 더 실감나며, 눈물나는 감동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창세기를 읽으며 주의해야 할 것은 요셉이 등장하는 37장부터는 요셉이 주인공 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창 37 2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즉 37장부터 요셉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사실 요셉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야곱의 족보 즉 야곱의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다. 창세기는 영어로 genensis , 헬라어로 게네시스인데 계보, 족보, 출생 이란 뜻입니다. 창세기는 족보에 관한 책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에서 부터 , 셈, 노아, 데라, 이삭, 에서, 야곱 등의 족보가 이야기 중간 중간에 핵심적으로 등장. 족보(히, 톨레도트)라는 말이 13 번 나오는데 바로 야곱의 관한 족보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그래서 37장 요셉 이후에 유다 이야기가 38장에 길게 소개됩니다.
오후 찬양 예배 말씀을 준비하면서 찬양예배 어떤 말씀이 좋을까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찬양에 관한 말씀을 전하면 좋겠다 생각. 찬양예배로 주일을 마무리하면 한주간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 수 있음. 그러다가 유다가 떠오르게 하심. 마침 주일설교 말씀도 미리 계획한 것처럼, 고후1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위로의 아버지를 찬송하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찬양과 찬송 받기를 원하심을 느낀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로 찬송 또는 찬양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의 첫번째 아내 레아는 남편에게 미움 받았지만 아들 넷을 연속으로 낳고 그 넷째 이름을 유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의 사랑을 못받는 그녀을 불쌍히 여기셨고, 결국 그녀의 입에서 찬송이 나올 때까지 그녀에게 자녀를 주셨음.
창29 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창29 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창29 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창29 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레위는 join 이라는 뜻. 남편의 사랑을 지극히 갈망함. 애타는 여인의 마음. 사랑 못 받는 아내의 원통한 마음. 하나님께서 여기서 멈추지 않으심.
창 29 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신앙고백적으로 터져나온 이름이 바로 유다이다. 남편의 사랑을 갈망하고 의지했던 레아는 넷째 유다를 낳고 드디어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찬송이 되십니다. 남편이 내 찬송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찬송이십니다. 그 어떤 무엇이 내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 만이 내 도움입니다. 하나님만이 내원통함을 푸실 분 입니다. 지금껏 남편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 바라보고 살렵니다! 신앙고백이 터져나옴.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의 입에서 찬송을 나올때까지 하나님께서 끌고 가십니다. 입에서 유다, 여후다! 찬송이란 말이 나올때까지 이끌어가십니다. 우리가 의지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으로 이끌어가십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첫째 찬미, 찬양 찬수를 태워 차를 타고 오면서 오늘 전할 설교 원고를 열심히 이어폰 꽂고 들으면서 왔음. 그런데 주차를 새로 오신 분들이 가까운 곳에 할 수 있도록 비워줘야 하는데, 습관을 따라 교회당 밑 까지 오게됨. 주차 안내복 입은 송수영 집사님을 보자 아차 생각이 됨. 그래서 애들을 내려주고 다시 차를 돌려 주차하고 옴. 송집사님께 그리고 성도님들께 목사님께 하나님게 죄송한 마음이 듬. 교역자가 이거 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듬. 주차하고 와서 8시 사역자/교사 기도모임 참석하려고 올라가는데 아이들이 알아서 갔다는 생각이 남. 원래 내가 데려다 주면 셋째 찬수가 나를 계속 따라옴. 기도하는 곳까지 따라옴. 그런데 아이들끼리 올려보내고 나니 오히려 기도모임 에 홀가분하게 참석. 우리의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됨.
새벽에는 말씀준비하느라 평소처럼 산후조리중인 아내 대신 아침식사 준비를 못함. 아내가 준비하고 아이들 챙기는데, 둘째 갈때 즘 찬양이가 교회가기 싫다고 함. 방에서 듣는데 안타까움. 기도가 절로 나옴. 그런데 찬양이가 갑자기 엄마도 같이 가요. 하게 됨. 요즘 계속 기도 제목. 아내가 속히 회복되어 현장예배 나오도록 기도샜음. 몸이 아직 덜 회복되었으니 강요는 못하고 기도만 하고 있는데, 아내 입에서 이제 곧 나갈거야. 엄마가 찬양이랑 곧 같이 갈거야! 엄마도 빨리 예배가고 싶어! 고백을 하게 하심. 찬양이의 악을 통해 가정에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심. 간절한 기도로 바꿔주심. 악을 선으로 바꾸사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심. 할렐루야! 우리의 인생을 찬양의 인생으로 이끄심. 찬양할 수 밖에 없도록 이끄심.
결국 유다 찬양이란 그 이름이 바로 예수님이 속한 지파가 되었다. 예수님이 유다지파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찬송이 되시고자 우리의 구원이 되시고자 유다지파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요4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왜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유대인으로 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유다지파의 후손 즉 유대인으로 오시기 때문임.
그렇다면 유다는 정말 그 이름 찬송과 찬양의 삶을 살았는가 살펴보겠습니다. 유다는 그가 태어날 때 그 어머니에게서 그러한 신앙고백적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아버지 야곱이 죽음을 앞두고 아들들을 축복하면서 창49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말함. 그는 야곱의 축복대로, 그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대로 형제들이 그를 찬송하는 복을 누립니다.
그는 어떻게 그런 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까? 사실 그는 그런 복을 누릴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먼저 그는 자신의 동생을 돈주고 판 자입니다. 창37 26-27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죽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형제인 요셉을 판 일에 앞장서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는 온 세계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가정이 유일한 때에 구약 교회인 야곱 집안에서 가족들을 멀리하고 혼자 떠납니다. 창38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그리고 믿지 않는 여자와 결혼도 합니다. 창38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신앙생활에서 정말 위험한 것이 혼자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무리를 떠나 있는 자를 마귀는 참 좋아합니다. 삼키려고 합니다. 벧전5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맹수는 늘 무리에서 떨어진 연약한 자들을 노립니다. 그러니 뭉쳐야 합니다. 시133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예배의 아름다움. 하나님이 그렇게 보심. 기쁜마음으로 찬양예배 참여하세요! 전4 9-10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혼자 신앙생활하다 넘어지면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그러나 함께 하면 은혜를 나눌 수 있다. 이렇게 찬양예배로 함께 모여 은혜를 나누며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2주전에 어려움을 겪었음. 아내가 전염성 장염 바이러스로 아파서 수액 맞아야 할 상황. 담임목사님게 말씀드리자 예배 드리고 가면 어떠냐고 권면. 순종했음. 아무일 없음. 오히려 그주부터 가정의 회복을 경험했음. 가족들의 건강이 회복되었고, 아이들도 크리스찬 선생님들이 계신 어린이집에서 잘 적응함. 둘째 찬양이 팔도 핀 뽑고 잘 해결됨. 무리에서 떨어지지 말라. 예배의 자리를 목숨처럼 사수하시라! 주께서 은혜를 주신다.
혼자 떨어진 유다는 죄악 가운데 살면서 온갖 비참함을 다 겪습니다. 두 아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먼저 죽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자신도 인생의 의미가 없으니 방탕한 생활에 빠져 아내가 죽고 난 후 창녀를 위장한 며느리와 성관계를 갖게 됩니다. 막장 드라마의 한장면처럼 인생의 멸망을 향해 달려갑니다. 교회에서 떨어진 인생, 예배의 자리에서 벗어난 인생 얼마나 비참합니까! 얼마나 한탄 스럽습니까?
이렇게 유다는 찬양과 찬송에 합당한 삶을 살 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이 반전이 일어납니다. 자식들이 죄를 지어 둘이 죽고 셋째 마져 잃게 될 걱정이 생기자 그는 며느리에게 행해야 할 의무를 회피합니다. 며느리에게 셋째 아들을 주지 않고 둘러내며 그녀를 친정으로 멀리 보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가 막장 드라마의 한장면처럼 창녀로 위장해서 자신의 몸을 던져 시아버지와 성관계를 갖고 쌍둥이를 낳게 됩니다. 그러면서 유다는 고백합니다. 창38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녀)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는 자신의 죄악에도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심을 보았습니다. 이방여인 자신의 며느리가 오히려 자신보다 믿음의 가정의 축복을 누리려고 자신의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본 것입니다.
그 뒤로 그의 태도는 성경에서 완전히 달라집니다.
야곱이 자신이 사랑하는 둘째 아내 라헬에게서 난 마지막 남은 아들 벤야민을 절대로 위험한 곳으로 보내려고 하지 않자 유다가 용기 있게 나섭니다. 오늘 본문 창43 3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야곱이 계속 반대하자 담대하게 자신이 그 아이 밴야민 대신 담보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창43 8-9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이복 동생 대신 자기가 대신 죄를 감당하겠다는 것. 예수님 모습이 보인다.
총리 요셉이 형제들의 죄를 추궁하는 장면에서도 그는 용기있게 책임있게 나서서 말합니다. 창44 30-32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결국 이러한 유다의 감동적인 고백 뒤에 요셉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게 됩니다. 더이상 형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하지 않을 수 없게됨. 창45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총리 요셉은 드디어 유다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제들도 변화시켜주셨구나! 참된 회개에 이르게 하셨구나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 신앙고백 앞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창45 2-3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유다는 너무나 감동적으로 동생을 대신하여 붙잡히겠다는 희생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을 미리 보여주고 있씁니다. 예수님의 조상 유다는 자신이 동생 벤냐민을 대신하겠다고 합니다. 책임지고 그를 보호하고 영원한 죄를 감당하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담대함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바로 우리의 모든 악이라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경험하면 우리의 삶은 뒤집어집니다. 어떤 어려움도 돌파해나갈 힘을 얻습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이찬송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그의 담대한 용기에 결국 아버지 야곱은 설득됩니다.가져갈 선물을 잔득 챙겨주고, 돈도 두배로주고 , 벤냐민도 보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전능하신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창43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 고백은 마치 에스더의 고백과 같습니다. 내가 죽으면 죽으리로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 나는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 옳다. 선하다. 는 신앙고백적 순종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거룩한 결단입니다. 이러한 결단이 바로 유다의 용기에서 비롯되었씁니다.
이것은 마치 요셉의 순종이 예수님의 순종을 미리 보여준 것 같습니다. 형들이 평안한지 살펴보고 오라는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고, 세겜에 형들이 없자 도단까지 올라가는 수고 마다하지 않고 끝까지 순종함으로서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순종한 것을 미리 보여줍니다. 또한 요셉의 고난도 예수님의 고난을 미리 보여줍니다. 형들에 의해 돈 받고 노예로 팔리고, 억울하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지만 이것은 그 형제들과 가족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고, 동시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우리의 큰 형로서 먼저 고난의 길 십자가를 지셔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게 됨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셉의 총리등극 또한 고난의 끝에 주어질 왕이신 예수님 그리스도의 영광을 미리 보여줍니다.
요셉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유다의 삶도 예수님을 미리 보여줍니다. 그는 결국 형제들을 이끄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창46 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유다 지파는 출애굽기에서 늘 대열의 앞에 서게 됩니다. 민 10:14. 선두로 유다 자손의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들이 그들의 진영별로 행진하였으니 유다 군대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이끌었고”
유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고, 더이상 뒤로 물러서는 인생을 살지 않았씁니다. 앞서 행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려움도 뚫고 나가는 힘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다 자손으로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시고 그가 그가 구원할 수많은 형제들을 위하여 앞서 가십니다. 눅19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십자가를 향해 돌진하십니다. 우리의 군대대장 예수께서 인간의 모든 악이 쏟아질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고 전진하십니다. 인간의 죄악을 향한 하나님의 모든 진노가 쏟아질 십자가를 향해 앞서 가십니다. 왜? 그 형제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서 앞서 가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모든 형제들의 찬송이 되셨습니다. 그를 믿는 모든 그의 가족들의 찬송이 되셨습니다. 한국, 미국, 일본, 러시아, 우크라이나 온세계 에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형제들의 찬송이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길을 변화된 유다가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은혜를 경험한 유다는 자신의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됩니다. 형제들의 찬송이 됩니다. 그의 자손에게서 예수님이 나오게 됩니다. 그의 자손 때문에 그는 형제들로부터 찬송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삶을 드러냄으로 그들이 주님을 찬송하도록 이끌게 될 것입니다. 모든 고난의 현장에 앞서 가셨던 예수님처럼, 오늘 만나게된 유다처럼 용기있게 앞서 나감으로서 어려움을 짊어짐으로서 우리 주님이 찬송받게 할 것입니다. 이번 한주도 삶의 도전과 어려움 앞에 예수님을 기억하고 용기있게 앞서 행하시며 찬송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찬송: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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