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29새벽] 칠전팔기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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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276 [아버지여 이 죄인을]
본문 잠 24:15-16

서론 : 칠전팔기

한 장수가 있었다. 전쟁에서 패하게 되어 도망하다가 눈 앞에 몸 하나 숨길만한 동굴을 발견한다. 그렇게 작은 동굴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거미 한마리가 나타나더니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치는게 아닌가. 누가 자기를 쫓아오는지 계속해서 바깥 동태를 살펴야 하는데, 거미줄이 쳐지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그래서 거미줄을 일곱 번이나 흩어버렸는데 거미는 묵묵히 여덟 번째 거미줄을 치는 것이다. 그때 마침 적병의 수색대가 동굴 입구에 도착한다. 그런데 동굴 입구가 거미줄로 막혀 있는 것을 보고, 이 굴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으니 수색할 필요가 없다며 동료들을 이끌고 돌아가버린다. 일곱 번 집 짓기를 실패했지만 여덟 번째 도전하는, 포기하지 않은 거미의 모습을 ‘칠전팔기’ 라고 부른다.
우리들의 삶을 돌이켜 보면 실패한 일들, 넘어졌던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던가? 사업이 실패하기도 하고, 어떤 목표에 실패하기도 하며, 소일거리로 가꾸던 텃밭 작물도 실패하는 경우들이 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매번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 결단을 하지만 쉽게 실패하거나 넘어지는 일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게 되면 점차 우리의 신앙이 주눅이 들고, 도전정신이 사라지며, 결국에는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내려 어떠한 도전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신앙상태가 되어버린다.

누가 의인인가?

그러나, 오늘 함께 봉독한 말씀을 보면 칠전팔기의 사람이 나온다. 본문 16절을 보라.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의인에게 이러한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그러면 누가 의인인가?” 의인은 반드시 다시 일어나게 되리라 하시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의인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서의 의인은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누가 의인인가? 위대한 업적을 이룬 자들, 예를 들어 충무공 이순신이나 세종대왕과 같은 자들을 의인이라 말할 수 있는가? 그들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이라고 부를 수는 있겠지만,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의인인가? 생활적인 면에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 예를 들어 간디와 같은 자들을 의인이라 할 수 있나? 그들 역시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일 뿐이다.
따라서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의인이란 도덕적으로 죄가 전혀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씀하시는 의인은 누구인가? ‘의인’은 ‘의로운 자’를 의미하는데, 이는 재판 용어이다. 재판을 통해 이 사람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아주 명확히 판단하고 죄없음의 판결을 받은 자를 의인이라 한다.
그렇다면 누가 의인인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나의 죄인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이다. 예수믿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다. 내가 받은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깨달아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의 의인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은 “7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 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람도 넘어진다

​여기서 일곱번 이라는 것은 단지 횟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 가운데 딱 일곱번 만 넘어지고 마지막 여덟 번째에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의 7은 완전수이다. 이는 그가 수없이 넘어졌다는 말이다. 이미 셀 수 없이 많이 넘어졌다. 여러 문제들로 인해 넘어질 만큼 넘어졌고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양한 문제들로 넘어질 것이다. 그럴지라도 의인은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럴지라도 그는 마지막에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라. 신자들이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분명 인생 가운데 넘어질 일들이 있다. 실패하는 일들이 있다. 낙심하고 좌절할만한 일들은 있다. 그러나 의인들은 어떠한가? 7번 넘어질지언정 다시 일어선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이 자리의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은혜가 있길 축원한다. 자꾸 넘어진다고 좌절하지 않고, 자꾸 실패한다고 낙망하지 말고, 계속해서 넘어진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란다. 일곱 번 실패하고 넘어져도 주님 주시는 은혜로 다시 일어나는, 다시 회복하는, 다시 달려가는 은혜가 있길 소망한다.
성경 속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도 넘어졌다. 때로 그 연약함으로 인하여 유혹을 받아 넘어지고, 물질의 어려움 때문에,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넘어진다. 하나님의 고귀한 형상으로 지음받았고, 직접 하나님을 대면하였던 아담과 하와 조차도 사탄의 유혹을 받아 넘어졌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목도했던 노아 역시도 그의 무절제함으로 넘어졌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수백명을 상대했던 엘리야 역시도 이세벨의 박해 속에서 로뎀 나무 아래 낙심하여 죽기를 바랬다. 위대한 신앙을 고백했던 베드로 역시도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며 실족하지 않았던가.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어쩌면 넘어진 자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넘어짐의 유익

굳이 성경을 찾지 않고 우리의 인생만 보아도 그렇다. 우리의 인생은 넘어짐의 연속이다. 누구라도 넘어진다. 이 세상에 넘어짐을 겪지 않은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넘어짐도 유익이 있다. 아기들이 수천번 넘어지면서 걸음마를 배우고, 걷고, 마침내 뛰어 다니게 된다. 아기들이 넘어지면서 자라나듯이, 우리 인생은 넘어지면서 성숙해 진다. 이를 두고 시인 도종환은 이렇게 표현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너무나 기가 막힌 표현이 아닌가.
미국 메이저 리그, 홈런 왕, 베이브 루스 714번 홈런을 쳤다. 그러나 1,330번의 스트라이크 아웃되었다. 삼진이 무서워서 풀 스윙을 못했더라면 홈런 왕도 못되었을 것이다. 다이빙 선수가 다이빙대에서 점프하여 물속으로 들어가기까지 길어야 2초 미만이 걸린다. 선수는 그 짧은 시간동안 움직임을 완벽하게 하기 위하여 수백수천번을 실패한다. 단 한번 완벽한 공연을 위해 줄기차게 오르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여러분, 만약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항상 성공만 있다면 어떠할까? 누구도 마음먹은대로 다 성공한다면 그것이 정말 우리에게 복을까? 만일 그러하다면 그 누구도 간절하게 하나님을 붙들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우리의 구속자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겸손히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이다. 인생 가운데 때로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넘어질 때도 있고, 그래서 까지거나 다칠 때가 있기에 우리는 인생을 배우게 되고, 또한 겸손을 배우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인생의 여러 풍파를 겪으며 나의 모난 부분들이 다듬어지고, 비바람으로 인해 더욱 강해지고 또 생각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넘어짐을 두려워하지 말고, 넘어졌다고 실망하지 말라. 넘어짐 자체가 인생의 실패가 아니다. 넘어질 것을 염려하여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실패자이고, 몇 번 넘어졌다고 인생이 끝난 줄로 생각하는 것이 진정 어리석은 자이다.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

특별히 본문에서 말하는 의인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받은 우리도 넘어질 때가 있지만, 그럴지라도 완전히 낙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실패의 순간, 참 견디기 힘들고 아프고 괴롭지만 그럼에도 다시 힘을 내어 일어서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시37:24 말씀에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그렇다.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전능자의 손이 붙잡아 주시기 때문이다. 7번 넘어졌어도 8번째 다시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손이 있다. 세상 어떠한 힘과 권세로도 감히 끊어내지 못하는 자비의 하나님이 계시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신자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세상 무엇으로도 감히 제한할 수 없는 전능하신 손이 바로 저와 여러분을 붙잡아 주시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자는 넘어져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다시 일어선다. 엘리야는 영적 무기력증에 죽기를 바랬으나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일어나 사명을 감당한다. 이스라엘의 선왕이라 하는 다윗을 보라. 그는 간음 죄를 짓고, 실패 했으나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으로 인하여 회개하고 다시 일어섰다. 놀라운 신앙을 고백했던 베드로를 보라. 그는 예수님을 3번 부인했으나 하나님의 자비하신 손길로 인하여 회개하여 죽기까지 주님을 증언하는 제자가 되지 않던가. 누가 인생의 성공자인가? 1번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수없이 넘어졌을 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는 자이다. 누가 실패자인가?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지 않는 자이다.

결론

성도 여러분, 넘어진 분들이 계신가?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계속해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다시 일어서길 축복한다. 계속해서 사탄 마귀는 우리의 마음 가운데 유혹한다. “그렇게 실패하고도 너가 하나님의 자녀야? 하나님은 더이상 너 같은 사람을 붙들어 주시지 않아. 하나님은 너에게 실망하시고 너를 버리셨어" 그러나 이러한 사탄 마귀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변함없이 자기를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라. 우리의 모든 실패보다, 우리의 모든 넘어짐보다 하나님의 은혜는 훨씬 더 크다. 그러므로 사탄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와서 부르짖어, 칠전팔기처럼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을 경험하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자.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여덟 번 일으키시는 은혜가 나에게 필요합니다. 여호와의 손으로 붙들어 주시사 다시금 일으켜주시는 은혜가 이 시간 나에게 필요합니다. 주여, 우리의 손을 붙들고 가 주옵소서. 우리를 일으켜 주옵소서. 고난과 실패 속에도 낙심치 않게 하시고 전능하신 주님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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