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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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예수님을 만난 기억
[Intro] 예수님을 만난 기억
[2분 30초]
여러분은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기억이 생생하신가요? 어떤 분은 전도 집회 때 예수님을 만나셨을 것이요, 어떤 분은 모태신앙이라 큰 체험 없이 예배 때 예수님을 만난 분도 계실 거에요.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다’라고 할 때, 사람마다 와닿는 느낌이 조금씩 다를 겁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아마 이 자리에 계신 전도사님들은 예수님을 조금 진하게 만난 분들이실 겁니다. 맞겠죠? 그 만남, 그 사귐을 통해 깊은 사랑을 받았고, 그 깊은 사랑에 메여 오늘 이 자리까지 오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섬기고 있는 영혼들은 어떨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세종시에 있는 한 개척교회에서 2-3명의 애들과 씨름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제도 비대면으로 애들 불러놓고 성경읽기 하면서 씨름했는데, 참 쉽지가 않더라고요ㅎㅎ 이 애들이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간절해요. 전도사님들께 맡겨진 영혼들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예수님을 만난 영혼들도 있을 것이고, 아직 만나지 못한 영혼들도 있을 겁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 사마리아의 여인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이 이 여인을 ‘만나주셨죠’. 이 시간 우리가 예수님과 발맞춰 사마리아 우물가로 예수님과 함께 나아가보면 좋겠습니다.
A. 은혜로 찾아오신 주님
A. 은혜로 찾아오신 주님
[7분 30초]
3절: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주해 A]
지금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죠. 아무도 예상을 못했을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당시 사마리아인은 혼혈민족이었고, 그래서 유대인이 매우 멸시를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상식적으로는, 이 불결한 민족과 접촉 자체를 피하려고, 보통은 사마리아를 피해서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구지 사마리아를 향해 나아가고 계십니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도 분명 이 자리에 있었을 거에요. 그래서 당시 사마리아를 향해 나아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했고, 그래서 그 모습을 4절 서두에 ‘데이’, 즉 ‘~해야 한다, 합당하다’라는 단어를 통해 드러내고 있습니다.
4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에서 ‘하겠는지라’가 바로 이 단어입니다. 요한은 분명 현장에서, 사마리아를 향한 주님의 강한 의지를 보았고. 그 모습을 분명히 기억했고, 그 모습을 이 단어로 풀어놓은 것이 분명합니다. 모두가 불결하다고 여기고, 피하고자 했던 사마리아를, 우리 주님은 마치 ‘그 불결하다 여겨지는 곳’에 가는 것이 ‘합당하고’, 또 반드시 ‘가야만 한다고 여기시는 듯’합니다.
사실,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이 ‘합당하다, 데이'라는 단어 안에 함축되어 있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사마리아 땅에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그곳으로 나아가셨고, 또 우리에게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일까요?
[윈리화 A _예정의 은혜]
시도는 이 복음서를 시작할 때, 장대한 선포로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우리 주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로고스, 즉 그분으로 말마암아 만물이 창조되었고, 만물이 그 생명을 유지합니다.
사도는 1장에서 계속 증언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1-13)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찾아가시기 ‘합당하게 여기셨던 이유’, 우리를 찾아오신 이유가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전적으로 타락하여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을 ‘합당하다'고 여기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죠? 혈통 때문인가요? 사람의 뜻인가요? 사도는 분명하게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예정' 때문입니다. 이 은혜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되었고,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더럽고 추악한 우리를 찾아오시기 ‘합당하게' 여기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난 것, 또한 주님께서 허락하신 영혼들이 주님을 만나는 것, 이 모든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예정’에 따른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항할 수 없는 은혜이고 감격스러운 은혜입니다.
[적용 A]
[적용 A]
사역자로 준비되어지는 때에, 우리가 잊기 쉬운 것이 바로 이 전적인 은혜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날마다 말씀을 연구하고, 양들에게 꼴을 먹이려 힘쓰지만, 때로는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1) 정작 ‘합당하지 않은 자’가 ‘합당하게 여김’을 받아 누리는 은혜, 예수님이 먼저 찾아오신 이 예정의 은혜를 우리는 얼마나 가슴 속에 품으며 살아가는지요.
2) 또한 우리가 섬기는 영혼들이 주님을 만나는 것이, 사람의 노력이나 그 사람의 성격, 배경에 달려있지 않고, 정말 말씀 가운데 역사하는 성령의 은혜임을 분명히 믿고, 그 믿음으로 말씀을 말씀답게 전하는 것에 매진하고, 성령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에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돌이켜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한 영혼이 주님을 만나는 것이, 단순한 교회 프로그램을 통해 성도들이 웃고 즐거워하는 종교활동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믿습니다. 정말 말씀을 말씀답게 전할 때 성령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고, 그 가운데 영혼들이 주님을 만나게 됨을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강력히 증거하시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한 영혼의 죄악된 자아가 무너지고, 그 무너진 자아 가운데 참된 회심이 일어나고, 그 회심 가운데 참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께서 그 영혼을 찾아가심을 우리가 굳게 믿고, 이 믿음을 우리 삶으로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먼저 은혜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답게 선포하는 이 일에 우리의 전 생애를 걸어야 합니다.
B. 삶의 현장으로 찾아오신 예수님
B. 삶의 현장으로 찾아오신 예수님
[4분]
6절: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주해 B]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수가라 하는 동네로 들어가십니다. 정오가 되었고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행길이 고되셨던지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셨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 한 낮에, 한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옵니다.
우리 주님은 그 여인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을 한 잔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의 그 눈빛은 어떤 눈빛이었을까요? 아마,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깊은 긍휼의 눈빛이었을 것입니다. 이미 이 여인은 남편 다섯 명이나 있었고 지금은 6번째 남자와 사는 부끄러운 여인임을 아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러한 주님의 속을 알았을까요? 당연히 몰랐을 겁니다. 단지 걷으로 드러난 주님의 모습을 보고, 유대인이 어찌하여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지 의아해하고 있습니다.
[원리화 B _삶의 ‘은밀한 영역’으로 찾아오시는 주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곳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사마리아 여인의 삶에, 어찌보면 가장 은밀한 곳에 깊숙히 들어와 계십니다. 자신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햇볓 따가운 정오에 물을 길으러 왔는데, 우리 주님은 바로 그 시각, 그 장소에 먼저 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 1장 14절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1:14) 주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 가운데 오셨지만, 자기 백성과 동떨어진 곳에 머물러있지 않으셨습니다. 성육신 하신 우리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삶의 한 가운데, 가장 은밀한 곳으로 직접 찾아오셔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이 여인을 만나주고 계십니다.
[ 적용 B ]
주님은 지금도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삶의 현장 깊숙히 찾아오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아간 것 같지만, 우리가 교회를 나가고,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고 기도를 한 것 같지만, 사실 주님께서,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 삶 깊숙한 곳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영혼들이 주님을 만나는 것도 이와 동일합니다. 주님께서 말씀이 선포되는 현장에서,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 가운데, 오늘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그 영혼들을 만나주십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이 말씀이 성령의 은혜 가운데 영혼들의 삶을 요동치고, 그 삶 가운데 체험을 부어주시는데, 이 체험 가운데, 우리 주님은 그 영혼들의 삶의 현장에서 바로 그 시각, 그 장소로 먼저 오셔서 그 영혼들을 만나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선포하는 말씀을 통해 영혼들을 만나주시는데, 그 만남 가운데 그 영혼들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과 제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혼들이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C.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C.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3분 _C+결론]
1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절: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리는 흔히 ‘영생’을 단순히 끝없이 지속되는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 자신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시고, 그 주님을 통해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 결론 ]
[ 결론 ]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전도사님들, 우리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날마다 마시며, 성령 안에서 솟아나는 생명력을 말씀과 기도 가운데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아무도 찾지 않는 사마리아에 나아가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주님의 마음을 품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유일한 길, 이 은혜의 복된 소식을 신실하게 전하길 소원합니다.
시대가 아무리 악해도, 우리 주님께서는 아직 재림하시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은혜의 때입니다. 지존자의 공의 앞에 철저히 심판 받아야 할 더러운 죄인인 우리를, 미리 사랑하셨고, 그 사랑을 2000년 전에 이루셨으며, 또한 그 사랑을 인치시고, 신실하게 이뤄가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아무도 ‘합당하게' 여기지 않는 그 사람에게, 아무도 ’합당하게‘ 여기지 않는 그 지역을 향해, 우리가 담대히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맡겨주신 영혼들을 영생의 복된 길로 바르게 인도하는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여, 우리도 그 생명을 누리고, 또한 우리를 통하여 창세 전에 미리 아신바 된 아직도 남은 그 영혼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여, 그들도 이 영생의 물을 마시고 주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자로 변화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주님께 내어드리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생명의 근원되신 주님을 날마다 가까이 하시길 바랍니다. 이 영원한 생명이 날마다 솟아나는 샘물처럼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그 가운데, 이 생명의 충만함 가운데 우리가 누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복된 주의 사역자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