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교제를 깨는 죄를 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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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물은 성막 안에서 잡으라 2. 피를 먹지 말라 3. 사냥 or 자연사 짐승 처리법 4. 성막 밖에서 하면 안되는 이유 5. 하나님께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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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백성이 저지르기 쉬운 죄

지난 3월 익숙하지 않은 본문이었던 레위기를 살펴보느라 아마 여러 고충들이 있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이 들어보지 못했던 각종 제사들의 이름과 제물들. 그리고 다 비슷해 보이는 내용들로 인해 묵상하는 것 역시 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다들 괜찮으셨을 수 있지만 저는 한달이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레위기 아직 많이 남았구나 하며 아주 살짝 마음이 힘들었는데, 세상에 내일부터는 다른 본문이 시작되더라구요. 혹시 저처럼 레위기로 인해 마음에 아주 조금의 어려움이 있으셨던 분이 계셨다면 조금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이 다 소중하고 중요하기에 레위기도 우리에게 많은 도전과 은혜를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나누게 될 본문 레위기 17장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분명한 은혜와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실 것을 함께 기대하며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일반 백성이 저지르기 쉬운 죄에 대한 본문입니다. 먼저 3-7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광야에서 살아가던 이스라엘에게 있어 고기는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들이 키우던 수많은 짐승들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것을 아무때나 잡아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고기를 먹으려면 4-5절처럼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야 했습니다.
자신이 기르던 짐승이던 혹은 들에서 사냥하여 잡은 짐승이던지 먼저 성막으로 갖고 와서 제사장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그 짐승을 들고 5-6절의 내용처럼 정해진 방법. 화목제로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난 후에 남은 고기를 받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성막으로 가져가서 그 곳에서 잡아서 화목제로 드리고 난 후에서야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상당히 번거롭고 또 귀찮은 일입니다. 화목제는 우리가 지난 시간동안 여러 목사님들을 통해 나눴던 것처럼,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고 이웃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시간이었습니다. 나 혼자 고기를 먹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죠. 고기를 자주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같이 먹어야 했습니다. 고기는 광야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그들에게 힘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최고급 음식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막 안에서 무조건 고기를 잡아서 먹어야 하는 이 규례는 광야에 있을 때만 허용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정착을 하게 되면 자유롭게 고기를 먹게 하셨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삶은 성막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성막 근처에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착한 이후의 이스라엘은 집을 지금처럼 이동할 수 없고 고정되어 있는 장소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성전으로 짐승을 들고 오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정착한 이후에는 고기를 광야 때보다 좀 더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무조건 지켜야하는 그런 강압적인 규례가 아닌 상황에 따라 하나님께서 사랑의 표현을 달리하시면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3-7절은 단순히 고기를 먹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말씀은 아닙니다. 3-4절을 함께 볼까요? “이스라엘의 집의 모든 사람이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자는"
소, 어린 양, 염소를 잡으려면 일단 먼저 회막 문을 통과 해 여호와의 성막 앞에 먼저 예물로 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막 안을 제외하고 어디서든 짐승을 절대로 잡아서는 안된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를 위한 제물로 바치는 것을 제외한 세속적인 목적의 도살을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고기를 먹으려는 사람들은 화목제로 먼저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 고기를 먹는 세속적인 도살을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인가? 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단순히 고기를 먹기 위한 세속적 도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7절을 보면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라는 한 우상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염소 모양을 하고 있는 우상인데요. 광야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중 몰래 이스라엘 진영을 빠져나가 염소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일 수도 있고 혹은 애굽에서 나올 때 함께 빠져나온 잡족, 이방인들이었을 수도 있고 이스라엘, 이방인 둘다 함께 나가서 우상 숭배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섬겼던 염소 우상은 ‘풍요를 내리는 신'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 광야에서 풍요를 내리는 신을 찾아 그에게 제물을 바치고 있었던 것이죠. 음란하게 섬기던 이라는 말은 은밀하게 마귀를 숭배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중 제 1계명을 어기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배교행위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에 성막이 있고 모든 삶이 성막을 중심으로, 즉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 중에서도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않고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것이죠. 이스라엘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모든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우상 숭배하는 이들을 그대로 둔다면 그것은 집에 피었던 곰팡이처럼 조금씩 공동체를 어지럽히고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막 안을 제외하고 어디서도 짐승을 잡아서는 안되며, 특히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도 다시는 제사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동일한 죄를 반복한다면 정말 가장 큰 형벌을 받게 된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4절입니다.
성막을 제외한 곳에서 잡은 모든 짐승은 영적 음행.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는 행위로 여기겠다. 또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가짜 신들에게 너 자신을 팔아 넘긴 것으로 알겠다. 너는 너의 가족에게서 이제 끊어질 것이다. 너에게서 너의 가문은 끝날 것이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처벌하실만큼 중대한 사건으로 보고 계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은 단순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8-9절입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살아가는 거류민도 지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인이 아니지만 그들이 지켜야하는 까닭은 그들로 인해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가 깨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곳에 살면서 이스라엘처럼 행동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도 안식일과 속죄일을 지켜야 했으며, 우상 숭배를 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자신들이 믿어왔던 모든 이방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어야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 숭배를 한다면 이스라엘과 똑같은 처벌을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백성이 아닌 다른 이방 민족에게도 구원의 길을 열어주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키고 믿기만 하면 이스라엘처럼 약속의 땅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다음은 10-12절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저는 선지를 참 좋아합니다. 제가 선지국을 먹는 것을 보고 아는 분께서 어떻게 성경에서 먹지 말라고 한 피를 먹느냐고 물어보셨던 적이 있습니다. 정말 피를 먹지 말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피를 먹지 말라고 하셨던 이유는, 당시 피의 고유 역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피는 속죄의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피가 있어야 할 장소는 반드시 속죄를 위한 곳이어야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제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전달했고, 제사장은 그 죄를 이어받은 짐승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죄가 용서 받아졌습니다.
11절에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피의 역할은 생명이었습니다. 짐승이던 사람이던 피가 빠지면 죽습니다. 피가 다 빠졌는데 살아있을 수 있는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나의 죄를 전가한 짐승이 나를 대신 해 죽습니다. 그 짐승이 나를 대신 해 피를 흘렸습니다. 그 제물의 피와 죽음을 보며, 짐승을 바친 사람은 마치 내가 죽은 것과 같다.라 받아드리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피를 먹지 말라. 라고 하셨던 것은 그 피가 나의 죄를 용서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규례는 이제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제물에 나의 죄를 전가하여 대신 피를 빼고 죽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규정은 더 이상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규정이 지금도 우리에게 적용이 된다면,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을 제물을 계속해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일회성. 단 한번만 우리의 죄를 사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는 영원성. 지속성이 있기에 이 규례는 현재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3-16절입니다. 사냥을 나가서 잡은 들짐승 혹은 자연사로 죽었거나 다른 짐승에게 공격받아 죽은 시체를 발견한 경우에도 먹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일단 그 시체들에게서 피가 완전히 다 빠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회막 문으로 들고 들어와서 제사장에게 주고 제사장이 화목제로 바칠 수도 없었습니다.
물론 사냥해서 잡아 먹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피를 흘리지 않고 산채로 포획해서 가져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냥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피와 관련된 것들을 먹을 수 없었고, 또 사냥하다 죽은 짐승의 시체를 만지는 경우 부정해졌기에 몸을 씻고 옷을 빨아 또 부정을 제거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피에 대해 강조하시며, 피를 왜 먹지 말아야 하는지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들이 피를 소중하게 여겨야 했던 이유는 ‘피가 있어야 할 분명한 자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피의 역할은 속죄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주는 그 자리에 피가 있어야 합니다. 그 곳에 피가 있어야 나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어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허락해주신 삶의 자리가 정말 다양합니다. 우리는 그 삶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그 자리를 지켜내는 것도 정말 잘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심 역시 신뢰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한숨만 나오는 그런 상황이라 해도, 그 상황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믿어야 우리에게 회복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17장을 통해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라. 나에게 충성하라 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은 앞으로 광야 생활 동안 사냥을 하지 않아도 또 짐승을 잡아 성막으로 데려가 여러 절차를 거친 후에 고기를 먹지 않아도 될만큼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고기를 먹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를 믿고 따르라. 모든 필요를 내가 알고 있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단순히 고기를 금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위해 넘치는 고기를 준비하셨고, 피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도 넘치는 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는 것들을 분명히 준비하셨고 줄 준비까지 마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나의 삶의 자리에서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는지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그 복이 무엇인지 기대하는 하루 되시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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