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를 절제하는 사역
고린도 전서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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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문제제기
문제제기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예배 생활에 대하여 11장부터 14장까지 길게 지도를 합니다. 여성들이 예배 중에 공적 기도를 할 때는 머리에 무언가를 써서 자신이 남편의 권위 아래 있는 자임을 나타내도록 했습니다. 애찬과 겸하여 성찬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지에 대해 나누었고, 은사들과 이들을 예배 시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도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예배 시의 예언 선포와 방언으로의 설교와 기도에 대해 질서를 가지도록 가르칩니다. 특별이 사도는 자신의 은사가 교회의 복음 전파에 유익한 방향으로 절제되고 질서있게 사용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본문의 문제
본문의 문제
고린도 교회는 방언의 과도한 오용이 문제가 된 듯 합니다. 당시 초대 교회는 방언이 성령님의 임재로 인해 새롭게 주어진 은사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방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예배 시 기도나 말씀 선포에서 방언을 사용하는 경우가 생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표 기도와 설교 시에 방언으로 말씀을 전하게 되었을 때 생기는 문제들은 쉽게 확인이 됩니다. 통역이 없는 방언은 곧 외국어 같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 듣지 못할 뿐더러 처음 교회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큰 시험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먼저 방언하는 이들은 꼬고 통역을 위해 기도하라고 강조합니다. 13, 14절을 봅시다.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사도는 방언이 영의 기도임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성 즉 마음에는 열매가 없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이런 방언의 사용은 지극히 개인적이어야하고 공적인 것이 될 때는 반드시 통역이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시 일부 성도들은 다른 사람을 축복하면서도 방언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16, 17절입니다.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사도 바울 역시도 많은 방언의 은사를 가졌으나 교회 안에서의 사역을 위해서는 이성을 따른 소통가능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8, 19절입니다.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물론 방언의 은사를 금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39절에서 사도는 이렇게 교훈합니다.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억지로 금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방언이 남용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방언으로 설교하고, 기도하고, 다른 사람에게 축복하는 것은 통역이 없다면 절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개인이 기도하는 일이라면 방언은 얼마든지 좋은 것입니다. 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은 행복하고 좋은 일입니다. 다만 기도 시에도 혹시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조심하는 것은 성도의 성숙입니다.
본문의 해결
본문의 해결
사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언에 힘을 쓸 것을 강조합니다. 예언은 자국어로 말하는 것이기에 예배 중에 이 은사를 사용하여 사역하는 것이 해가 되지 않습니다. 특별히 믿지 않는 자를 위해서는 방언이 유익하지만 모든 성도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예언이 더 효과적입니다. 22절을 봅시다.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당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해 시작된 사도들의 방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이 신앙 생활을 시작하여 교회를 이루게 되었기에 이제 부터는 자신 안에 있는 숨은 죄를 드러내는 말씀의 사역이 더 중요합니다. 예언의 사역이 보다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방언의 은사를 통해 복음을 듣는 것보다는 예언적 지도가 더 영적으로 유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동시에 처음 교회에 오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측면이 있습니다. 24, 25절을 봅시다.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처음 교회에 온 사람들도 말씀을 통해, 에언의 사역을 통해 죄가 드러나고 숨기운 것들이 나타나게 되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영적인 돌이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언을 듣게 되면 이들은 교회를 이상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23절을 봅시다.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처럼 방언은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사역에 분명 유익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행하는 것이기에 기도나 설교, 축복의 말씀을 전하는 좋은 예언적 사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통역을 두었을 경우를 말합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설교하고 대표 기도하고, 나아가 축복하여 교회를 찾은 사람들이 오해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절제하여 방언을 통역과 같이 사용하고 예언에 보다 힘을 써 말씀 앞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도록 세우는 일에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문제 해결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문제 해결
성도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천국의 백성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으로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선지자요 왕이신 직무를 수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많은 은사들을 성령의 기름을 통해 자기 백성들에게 부어 주십니다. 각자의 유익을 위해, 그리고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 많은 은사들이 교회 안에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는 특별한 은사들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사를 사용하여 섬길 때는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질서와 덕을 세우는 일을 위해 우리는 자신의 은사를 사용도 하되 절제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은사는 주님이 주신 선물이기에 나쁜 것이 아니지만 이것이 내게서 오용되거나 남용이 되면 교회를 해롭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름부으심을 통해 주신 선물들이 도리어 성도나 교회에 해가 된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성도의 자유가 이런 문제에서도 기인한다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자유하되 다른 이의 양심과 복음을 위해 절제하고 질서와 교양을 가지는 것이 은사 사용에 중요한 것임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적용과 결단
적용과 결단
성도의 섬김은 자신을 위하거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특별히 이를 위해 주신 그리스도의 은사들은 내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사용해야 할 것들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방언의 은사가 가지는 놀라운 능력과 힘을 경험하고는 이를 예배나 공적 기도, 혹은 서로 축복하는 교제 가운데 과도하게 많이 적용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복음 전파에 걸림이 되고 새로 믿는 자들에게는 많은 오해를 가져오게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에 사도는 질서 있는 방언 사용과 함께 예배 시에 예언의 사용을 보다 더 강조합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들도 주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을 섬기면서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은사이기에 전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삶과 복음에 유익하게 사용되는 지를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귀한 은사나 재능이 혹시 복음을 가리지 않는 지 잘 돌아보시고 공적인 사역을 절제하며 신중하게 행하여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