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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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문(안식, 상급, 부활) - 위로예배
본문 : 요한계시록 14:13
찬송가 : 606-610 / 607(내 본향 가는 길), 493(하늘 가는 밝은 길이), 489(저 요단강 건너편에 찬란하게), 479(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492(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서론>
오늘 우리는 소천하신 이정임 권사님을 기억하며, 가족, 친지, 성도님들과 함께 위로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권사님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위로를 나누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권사님을 기억하고 돌보고 계시다는 위로가 오늘 예배를 통해 임하게 되시기를 바라면서, 이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믿지 않는 자의 죽음은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심판이지만,
믿는 자의 죽음은 영원한 기쁨으로 향하는 천국의 입구입니다.
잠언 14: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아멘.
시편 116: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아멘.
우리 믿는 자들의 죽음은 소망 없는 죽음이 아닙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소망으로 향하는 죽음입니다.
또한 우리 믿는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의 눈에 ‘보석’같은 죽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위로예배를 드림에 있어, 소망을 모르는 자 같이, 또는 허무한 죽음을 보는 것 같이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 14장 13절은, 죽음에 대해서 2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죽음은 안식으로 향하는 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 가운데 살아갑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하고, 악합니다. 자기 자신의 약함, 다른 사람의 약함으로 인해 고난을 받습니다.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세상에서 실패하고 넘어집니다.
자신의 약함으로 인해 질병에 노출되고, 마음의 고통과 병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죽음으로써 이 모든 질병과 고통, 연약함에서 해방되어 참 구원의 완성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은 젊은 평생 애굽에서 노예와 죄수가 되어 고통받는 인생을 살았고, 전도서를 쓴 전도자 역시 해 아래에서 사는 삶의 허무함과 고통스러움을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죽음으로써 이 모든 학대와 멸시, 천대,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 안에서 편히 쉬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이 지금 들리는 이 소리를 기록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후로,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자들은 복되도다, 행복하도다!
왜냐하면 그들이 수많은 고난과 아픔과 수고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안식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기록하라는 것은, 이 약속이 확실하다는 의미입니다.
기록된 것을 바꿀 수 없으니, 주님 안에서 죽는 자들은 확실히 참된 안식과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죽음은 영원한 보상을 향하는 문입니다.
뒤이은 구절을 보십시오.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누구나 죽음 이후에는, 그들이 살아오면서 한 말과 행실들이 그 사람의 뒤를 따르게 됩니다.
믿지 않는 자도 그가 살아오면서 했던 모든 삶과 행위들이 그를 따라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믿는 자 역시 그가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행실들이 그를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오늘의 삶에서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의 후회스러운 모든 삶이 우리의 뒤를 따라와, 우리 자신의 악행과 불신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이며,
반대로 누구든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며, 이웃과 교회를 섬기는 삶을 살았다면, 아무리 비참하고 천대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천국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뒤를 따라오는 이 행실들이, 우리의 믿음과 충성스러움을 하나님 앞에서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권사님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유가족, 친히,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자들의 죽음은 결코 불행하거나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보석’처럼 바라보시는 죽음이며, 영원한 안식과 그 수고에 뒤 따르는 부활과 영생의 보상을 누리는 희망찬 죽음인 것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적인 슬픔과 아픔을 잠시 내려놓고, 하늘로부터 들리는 소리가 기록하라고 하신 이 말씀이 주는 위로 안에 거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눈에도, 우리 유가족과 성도들의 눈에도 ‘보석’같이 존귀한 이정임 권사님, 권사님의 소천으로 함께 예배하면서, 이 말씀이 주는 위로가 모든 예배하는 심령 위에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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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사역
그리고 내가 들었다, 소리를, 하늘로부터,
말하기를, 너는 그라포(쓰다, 기록하다 / 명령) 하라.
마카리오스(복된, 행복한, 행운의), 네크로스(죽은)한 자들, 퀴리오스(주님) 안에서 아포스네스코(죽다)한 자들,
아르티(지금, 바로, 즉시, 이제부터).
나이(예, 그렇다, 옳다), 프뉴마(성령, 영혼)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아나파우오(생기를 되찾다, 쉬다, 조용히 머무르다 / 미래 수동태)될 것이다, 코포스(노력, 수고, 고난)으로부터 벗어나(에크), 그들이,
왜냐하면, 그들의 에르곤(행위, 행실, 일)들이 아콜루세오(따르다, 뒤좇다)하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메타 / 후에, 다음에, 뒤에)
요한이 하늘로부터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말하기를, ‘너는 기록하여라’
‘지금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되도다’
그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들이 그들의 노력과 고난으로부터 벗어나 쉼을 얻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 그들의 뒤를 따르기 때문이다.’
요한은 성도들에게 신실하게 살 것을 격려한 뒤에 이제 14-20절에서 최후시만의 주제를 재개한다. 그는 농경은유를 동원하여 최후심판을 ‘마지막 추수’로 비유한다. 요한은 환상 중에 흰 구름 위에 인자 같은 이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머리에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진” 분이었다.
믿는 자들의 선행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선행이다. 그래서 그들의 삶(행위, 행실)이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들리는 소리는 ‘종말론적 안도감’을 준다.
하늘의 소리는 이것을 ‘기록하라’고 명령하였다. 왜냐하면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며,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약속이기 때문이다.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짐승을 숭배하는 박해자들과 타협하는 자들은 이생에서 ‘평안한 안전’을 찾지만, 다음 생에서는 찾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억압과 혹독한 노동을 견디는 그리스도인은 나중에 ‘평안한 안전의 복’을 찾게 될 것이다.
1. 안식의 문
1) 죽음은 우리가 노동으로부터 쉬는 문이다. 직장에서의 소진, 피곤한 수고, 삶의 어려움과 실망, 질병들로부터 우리는 사게 될 것이다.
2) 죽음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안식의 문이다. 짐을 내려놓고 쉴 때가 온다. 여기서 ‘쉼’이라는 단어, 아나파우오는 ‘생기를 되찾다, 쉬다, 조용히 머무르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삶의 고통과 시련의 종말을 의미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28-30)
이 고난의 세상에서도 우리는 안식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과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 죽음의 문을 통과할 때 우리는 더 크고 완전한 안식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 모든 짐을 내려 놓고 함께 하는 신자들의 축하를 받게 될 것이다.
고통
창세기 1–3장을 보면, 악이 유혹과 타락을 통해 세상에 들어왔다. 그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와 인간 상호간의 소외, 깨어진 관계들, 육체적 고통과 정서적 고통, 고된 일, 죽음이었다. 그래서 성경 정경의 초반부는 고통을 낙원의 불법 침입자로 묘사한다.
토라는 전형적인 고통의 이야기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요셉이 학대받는 것이나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한 것이 그렇다.
시편은 자주 수치, 두려움, 비탄, 심적 고통, 내적 불안을 묘사한다. 시편의 삼분의 일이 애가이고, 애가에는 고통에 대한 생생한 묘사들이 포함될 수 있다(예, 시 22편).
전도서는 “해 아래에서의” 삶의 헛됨을 살펴보면서(전 8:14) 인간의 고통을 포함시킨다. 이런 틀에서 전도서 설교자는 우리가 그저 “먹고 마시며 즐거워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전 2:24; 8:15. 그러나 12:13–14과 비교하라). 욥기에서 주인공 욥은 고통의 문제와 씨름하고 왜 하나님이 의인이 고통당하는 것을 허락하시는지에 대한 설명을 구한다.
선지서는 자주 고통을 개인들과 나라들에 대한 형벌이나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징벌로 묘사한다.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애가는 국가적 고난에 대한 생생한 광경을 제공한다(참고, 렘 9:17–26). 그러나 하나님은 고통 속에 계시며, 그분은 징벌을 내리실 때조차 상한 마음을 가진 애통하는 자이시다.
복음서들(특히 공관복음)은 고난이 자신의 사역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라고 선언했던 예수의 고통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고통을 겪었고(눅 13:34), “깊이 동정”하면서(요 11:33 NASB) 눈물을 흘렸다. 지복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에게 복을 준다(마 5:10–12). 버림받음을 경험하기까지 했던 그리스도의 수난은 괴로움과 고통의 중심이었다(마 27:46).
2. 보상(상급)을 위한 문
13절에서 요한은 “그들의 행위가 그들의 뒤를 따른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땅에서 우리 삶을 기록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기록을 영원으로 가지고 간다.
우리의 삶, 우리의 말, 우리의 행위는 하늘의 보물로 보상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살마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섬길 때에,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우리의 일과 사랑의 수고를 잊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우리의 일은 우리의 뒤를 따른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 자신을 증언하게 된다.
이 심판의 목적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운명 속에서 우리의 상급을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으며, 그 은혜에 힘입어 행한 행위에 대해서도 은혜로운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3. 부활을 위한 문
계시록 14:13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고린도전서 15:20-22에는 부활이 약속되어 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0-22)
성경은 사람의 영혼의 불멸이나 생존 그 이상을 말한다. 성경은 육체의 부활을 가르친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사람드른 즉시 주님과 함께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죽은 몸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 몸은 새롭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같을 것이다.
그분의 몸은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 역시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의 몸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하였기에, 우리의 몸도 이 세상의 한계에 굴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분의 몸은 더 이상 질병과 부패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의 몸 역시 불멸의 몸이 될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몸이다.
謹弔(근조)​- 고인의 죽음에 슬픈 마음을 나타냄
召天(소천) -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哀悼(애도)-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
弔意(조의) - 고인에 대한 슬퍼하는 마음
追悼(추도)​- 고인을 생각하며 슬퍼함
弔悼(조도) - 조문하고 추도함
기독교 근조 화환 문구
1.천국소망 2.하나님 품에 평안히 안식하소서 3.주님의 위로와 기도가 함께 하시길 ... 4.주님의 품에서 평안히 ... 5.주님의 품에서 편히 쉬소서!
​ 6.주님의 위로와 소망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7.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8.고귀한 희생과 공헌에 감사드립니다. 9.召天을 哀悼합니다[소천을 애도합니다] 10.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 11.삼가 조의를 표하오며 고인의 명복을 기도합니다. 12.謹弔(근조) 13.천국에서 편히 쉬소서! 14.召天(소천) 15.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 16.昇天을 哀悼합니다[승천을 애도합니다.] 17.천국에서 행복하세요! 18.주님의 위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19.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20.주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 21.예수님 품에 편히 쉬소서! 22.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소서! 23.천국에서 영원히 안식하소서! 24,고인의 희생과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5.천국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잠언 14: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아멘.
시편 116: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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