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4)

다윗의 죄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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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예수님을 충만히 영접해야 우리는 성령님을 받을 수 있다.
1. 삼위일체 하느님을 향한 신앙고백
-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려면 예수님을 충만히 영접헤야 한다.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님께서 하신 일이다.
-예수님을 영접해야 성령님을 받는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의 양심(롬9:1절)을 통해 역사하신다.
2. 설교자의 회개 및 간구기도
주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지난 날, 저의 힘으로 주님을 섬기려 했던 날들을 주님 앞에 돌이키고자 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3. 설교자의 회개와 간구에 대한 말씀 묵상
4. 회중의 영적 상태
주중 사역 일지 분석 내용
상황: 코로나19 위험성 증가, 조항민 전도사 코로나19 감염, 고은이 사모 고객응대 힘들어함,
조항민 전도사: 전도하기 위해 목사가 되려고 한다. (말씀 연구에 게으름), 생각을 안하며 산다. 본능대로 움직인다.
김승연 전도사: 자기주장이 강하다.
반응:
생각: 생각을 안하고 살아도 (마음으로 믿어도 신앙생활이 된다) 사는데 문제없다. 기도 안해도...
내가 원하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는 것이다.
고통은 피한다.
동기: 나 편한대로 신앙생활 한다. 내가 믿어지는 대로
영적 어두움의 가면: 자신만의 통찰이 있다.
5. 회중을 대신 하여 주님께 바쳐 드리는 회개 기도와 간구의 기도
주님! 이 게으른 백성을 용서 하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분별 못하는 사단의 세력에 사는 백성을 용서 하 소서!
6. 주님께서 설교자를 통해 전하기 원하시는 말씀들 (메세지)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예수그리스도님을 보내주셔서
죄로 부패한 우리를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음으로
우리들을 구원해 주고 계셔서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하였으니
자녀된 우리는 자녀의 노릇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님으로 충만히 영접해야 한다.
사무엘하 7:14 NKSV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이 저의 자식을 매로 때리거나 채찍으로 치듯이, 나도 그를 징계하겠다.
예수님을 충만히 영접해야 우리는 성령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성령님의 역사와 충만함을 무시했다.
7. 본문 선택
사무엘하 11:1–4 NKSV
그 다음 해 봄에, 왕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에게 자기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의 군인들을 맡겨서 출전시켰다. 그들은 암몬 사람을 무찌르고, 랍바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왕궁의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었다. 그 때에 그는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 보았다. 그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다. 다윗은 신하를 보내서,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 보게 하였다. 다녀온 신하가,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로서,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데려왔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그 여인과 정을 통하였다. (그 여인은 마침 부정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난 다음이었다.) 그런 다음에 밧세바는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8. 본문 석의
9. 설교문 작성
김경수 교수님,
왜, 용감하고 고통받은 다윗은 주님의 약속을 소홀히 하며 무시하는 죄(밧세바와의 간음, 우리야 살인)를 지은 것일까?
다윗의 상황)
사무엘상 15장 - 다읫은 왕이 되다. (사무엘이 기름부음) 하지만, 인간 나라에서는 아직 추앙을 받지 못함.
그는 기름부음을 받아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삼상17장
사울의 사위가 되고 삼상 18장,
19장에서 사울이 악한 영에 사로잡혀 창을 던지지만 피하게 된다.
20장, 요나단이 툴출을 도와준다. 하지만 20:30절, 죽이지 못함을 분통을 터트린다.
21장에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간다.
22장, 아둘람 굴속에 몸을 피한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그알라 주민을 구원해 주신다.
다윗은 광야의 산성을 찾아다니면 숨어서 살았다. 23:14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추격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살게된다.
24장 다윗은 사울을 살려준다. 또 사려준다. 26장
27장, 주님의 은혜로 시글락을 받게 된다.
사울이 무당을 찾아간다. 28장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에게 약탈당한 것을 모두 찾는다. 주님의 은혜로 30:18
그리고 사울이 죽고
삼하 2장, 유다의 왕으로 등극한다.
많은 후궁과 아들들을 소유하며 번영한다. 6장
5장, 다윗이 북이스라엘까지 유다 포함,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7장, 나단의 예언
사무엘하 7:3 NKSV
나단이 왕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슨 일이든지 계획하신 대로 하십시오.”
사무엘하 7:10–13 NKSV
이제 내가 한 곳을 정하여, 거기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심어, 그들이 자기의 땅에서 자리잡고 살면서, 다시는 옮겨 다닐 필요가 없도록 하고, 이전과 같이 악한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는 일도 없도록 하겠다. 이전에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사들을 세워 준 때와는 달리, 내가 너를 너의 모든 원수로부터 보호하여서, 평안히 살게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나 주가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겠다는 것을 이제 나 주가 너에게 선언한다.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바로 그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
다윗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윗의 반응)
8장, 블레셋의 사람을 친다. 사울의 핏줄을 환대하며 10장, 암몬을 무찌른다.
그리고 11장에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탐하여 간음 죄를 짓는다.
사무엘하 11:2 NKSV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왕궁의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었다. 그 때에 그는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 보았다. 그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다.
사무엘하 11:5 NKSV
얼마 뒤에 그 여인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자기가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사무엘하 11:14–16 NKSV
다음날 아침에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편에 보냈다. 다윗은 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너희는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아갔다가, 너희만 그의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서 죽게 하여라.” 요압은 적의 성을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알고 있는 대로 적의 저항 세력이 가장 강한 곳에 우리야를 배치하였다.
살인의 계획을 요압에게 전달한다.
그 결과,
사무엘하 11:17 NKSV
그 성의 사람들이 나가서 요압의 군인들과 싸우는 동안에, 다윗의 부하들 쪽에서 군인 몇 사람이 쓰러져서 죽었고, 그 때에 헷 사람 우리야도 전사하였다.
다윗의 생각)
다윗이 가진 생각은 무엇인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윗의 생각 )
사무엘하 12:15–18 NKSV
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께서, 우리야의 아내와 다윗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치시니, 그 아이가 몹시 앓았다. 다윗이 그 어린 아이를 살리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서 금식하였다. 그는 왕궁으로 돌아와서도 밤을 새웠으며, 맨 땅에 누워서 잠을 잤다. 다윗 왕궁에 있는 늙은 신하들이 그에게로 가까이 가서, 그를 땅바닥에서 일으켜 세우려고 하였으나, 그는 일어나려고 하지도 않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레째 되는 날에 그 아이가 죽었다.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은,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다윗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하였다. “어린 왕자가 살아 계실 때에도 우리가 드리는 말씀을 듣지 않으셨는데, 왕자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우리가 어떻게 전하여 드릴 수 있겠소? 그런 소식은 임금님의 몸에 해로울지도 모르오.”
다윗은 아이를 살릴려고 간절히 1)기도하고 2)금식을 했다.
밤을 새워 기도했다. 엎드려 누워 잠을 잤을 정도이다.
신하들이 다윗의 아이가 죽은 것을 알리는 것을 두려워했다.
다윗의 간구의 모습이 너무나 간절해서 무슨일이 생길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너무나 의연했다.
사무엘하 12:22–23 NKSV
다윗이 대답하였다. “아이가 살아 있을 때에 내가 금식하면서 운 것은, 혹시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그 아이를 살려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오. 그러나 이제는 그 아이가 죽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계속 금식하겠소? 내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가 있겠소? 나는 그에게로 갈 수 있지만, 그는 나에게로 올 수가 없소.”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 하셨는데도
나단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을 분명히 전달하셨다!
사무엘하 12:14 NKSV
그러나 임금님은 이번 일로 주님의 원수들에게 우리를 비방할 빌미를 주셨으므로, 밧세바와 임금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죽을 것입니다.”
사무엘하 7:14 NKSV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이 저의 자식을 매로 때리거나 채찍으로 치듯이, 나도 그를 징계하겠다.
끝까지, 자신의 통찰을 믿었다. 다윗의 통찰(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은
그의 과거사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는 사울과의 관계 속에서 죽음을 피해 늘 달아다녔고,
그때마다 기도를 할때에 주님께서 그를 지켜 주셨고, 보호해 주셨다.
이제는 그것이 다윗에게는 영적 신앙 생활의 모든 것이 되었다.
한마디로 울고 불며 떼쓰는 식의 아이 신앙이다.
울며 떼스면 아버지께서는 그 자식을 외면하지는 않으신다.
하지만,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책임을 , 곧 자녀 노릇하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다윗의 동기)
주님은 어려움이 있을때에 간절히 간구하면, 반드시 도와주신다는
맹목적인 신앙의 소유자였다.
주님은 내편이다! 이라는 맹목적인 사랑을 갈구하며
주님과의 약속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것이 맞다는 통찰을 가지고 있었다.
다윗은 자의적인 해석으로 주님의 약속을 하였다.
주님께서 사무엘하 12:9-10
사무엘하 12:9–10 NKSV
그런데도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너는 헷 사람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사람의 칼에 맞아서 죽게 하였다.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하여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다가 네 아내로 삼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9절에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1)가볍게 여기고2)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3)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하여
다윗은 주님의 말씀(약속)을 소홀히 생각하고, 악한 죄를 지어 주님의 약속을 무시하였다.
주님과 다윗과의 약속
사무엘하 7:10–13 NKSV
이제 내가 한 곳을 정하여, 거기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심어, 그들이 자기의 땅에서 자리잡고 살면서, 다시는 옮겨 다닐 필요가 없도록 하고, 이전과 같이 악한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는 일도 없도록 하겠다. 이전에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사들을 세워 준 때와는 달리, 내가 너를 너의 모든 원수로부터 보호하여서, 평안히 살게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나 주가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겠다는 것을 이제 나 주가 너에게 선언한다.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바로 그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
하지만, 주님의 약속, 즉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소홀히 한것은?
사무엘하 7:14 NKSV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이 저의 자식을 매로 때리거나 채찍으로 치듯이, 나도 그를 징계하겠다.
주님이 아버지 되시고, 아버지의 아들이 아들 노릇을 못하면, 죄를 지으면, 자식을 매로 때리거나, 채찍을 치듯이 징계하신 다는 사실.
우리도 각자 어려운 상황과 고난 속에서
주님의 은혜로 이 자리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주님의 약속에 응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반대로, 게으른 것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 언급할 조차 필요없다.
다윗은 주님과의 약속을 위해 전쟁을 열심히 해서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으로만 여겼다.
그것이 그의 신앙을 도식화하였다.
그것이 다윗 자신만이 가진 결론 이었고 통찰이었다.
다윗은 자신만의 퉁찰이 완벽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주님과의 약속을 무시함으로 간음과 살인이라는 죄를 짓고도
그저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하면 주님께서 자신의 자녀를 살려주시리라는
헛된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신앙 해석의 문제는 (자신만의 통찰이 있다는 영적 어두운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상식이 붕괴되어도 자신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무서운 결과이다. 더 경악 스러운 모습은
사무엘하 12:22–23 NKSV
다윗이 대답하였다. “아이가 살아 있을 때에 내가 금식하면서 운 것은, 혹시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그 아이를 살려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오. 그러나 이제는 그 아이가 죽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계속 금식하겠소? 내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가 있겠소? 나는 그에게로 갈 수 있지만, 그는 나에게로 올 수가 없소.”
“내가 금식하며 운 것은.... 불쌍히 여겨 그 아이를 살려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울에 의해 매번 쫓겨 다니며 자신을 보호애 주었던 그동안의 신앙 패턴을 분석한 결과이지만, 잘못된 왜곡된 해석이다.
우리도 다윗과 비슷한 왜곡된 신앙 해석을 하며 살아간다.
자신만의 통찰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예를 들어, 전도를 위해 목사가 되려는 생각들, 항민이
고린도전서 12:3 NKSV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을 힘입지 않고서는, 즉 성령님 충만이 안되면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전할 수 없다.
천부적인 은사나 육신적 힘으로는 하느님께서 받으실만한 종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사도들은 행1:4
사도행전 1:4 NKSV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잡수실 때에 그들에게 이렇게 분부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성령님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그 다음에 하느님의 능력을 입고 그리스도님의 증인이 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도, 봉사할 수 있도록 거룩 한 능력을 구비하는 일이 단 한가지가 있는데, 곧 성령님으로 능하게 되는 것이다.
성령님 충만, 성령님 세례로 목회 사역은 가능한 것이다.
예: 예수님께서도 마3장 인간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성령님이 임하셨다.
물론, 각자가 살아가는 세상의 삶 속에서도 성령님 충만, 성령님 세례를 통해
주님의 사역이 전도, 봉사 등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맹목적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 것, 질병을 나아 주시리라는 것, 물질의 회복, 목사안수, 손님 응대에 대한 등 많은 고통을 이겨 달라는 기도를 하며, 이를 믿는 것이 주님의 뜻이고 무조건 받아 주시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
다윗은 주님을 충만히 영접하지 못하고(주님과의 약속 소홀, 무시),
자신의 자신만의 통찰(그간의 고통 분석)을 확신했고, 그것을 우상숭배했다.
어려운 고통 가운데, 기도하면 지켜주시고 보상해 주시라는 맹목적인 믿음, 자신만의 이러한 결론이 통찰이 맞다는 확신!
우리는 구약 시대와 다르게
예수 그리스도님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님을 충만히 영접하면,
성령님의 역사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님께 의존하며 살아 가야 한다. (그 무한하신 능력 공급 받아야 한다) 그 무한하신 능력은 세례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다.
예수님 때문에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세례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이다.
사무엘하 7:14 NKSV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이 저의 자식을 매로 때리거나 채찍으로 치듯이, 나도 그를 징계하겠다.
우리는 예수님을 충만히 영접해야 우리는 성령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성령님의 역사와 충만함을 무시했다. 주님의 약속을 소홀히 여기며 무시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예수그리스도님을 보내주셔서
죄로 부패한 우리를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음으로
우리들을 구원해 주고 계셔서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하였으니
자녀된 우리는 자녀의 노릇을 해야 한다.
다윗은 자녀노릇해야 함을 무시했다.
여러분도 자녀노릇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 노릇하기 위해 예수님을 그리스도님으로 충만히 영접해야 한다.
그때에, 성령님 충만, 성령님 세례가 임함으로
우리의 고통 속에 주님께 드리는 기도가 자신만의 통찰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정 예수님을 그리스도님으로 믿는 올바른 신앙으로
올바른 믿음으로 주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충만히 영접해야 우리는 성령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을과의 관계 속에서 늘 핍박을 받아왔고, 그 어려움들을 항상 주님께 매달리며 기도해왔다.
그리고 그 긍휼 하심에 의해 늘 보호받았고 응답 받았다.
이것이 다윗이 생각하는 주님이었다. 주님을 한정짓는 신앙이었다. 자신만의 경험으로 주님을 한정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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