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03 사무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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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으로 구원을 만드시는 하나님

우리는 성경 66권을 구속사의 관점으로 한권 한권씩 보고 있다. 구속사의 관점으로 성경을 본다는 것은 모든 성경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경 드라마의 내용이 세상 구속 프로젝트라는 것을 기억하며, 66권을 한권처럼 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은 창출레민신수삿룻 에 이은 9번째 책인 사무엘상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당장 눈에 안보이시는 하나님 대신 끊임없이 우상과 사람을 자신의 왕으로 모시며 살고자 했다. 우리가 이전에 읽었던 사사기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사사로도 백성들이 반복적으로 죄악에 빠진 모습이 나온다.
은혜를 쉽게 잊고 곧잘 완고해지는 이스라엘 백성,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사람에게 위임해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 솔로몬이 바로 이렇게 세워진 왕들이다. 이제 이스라엘의 운명은 하나님 대신 나라를 통치할 왕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가에 달려있게 됐다.
이 왕들의 시대를 담은 성경의 시작이 바로 사무엘상이다.
사무엘상은, 오늘 우리가 볼 1장에 등장하는 아기의 이름이자 이 책을 쓰기도 한 선지자 사무엘의 이름을 따 쓰여졌다. 사무엘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사사 시대의 문을 닫고, 손수 사울과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정시대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사의 큰 전환기를 담은 사무엘상 이야기의 시작은, 불임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한 여인을 향해 포커스를 맞춘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엘가나에게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다. 한나와 브닌나. 엘가나는 한나에게 제물의 분깃을 브닌나와 자녀들에게 준 총합보다 갑절을 더 줄만큼 그녀를 더욱 사랑했다.
성경에서는 ‘그러나'라는 단어가 참 중요한 것 같다. 5절 보면, ‘여호와께서 한나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라고 나와있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없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자식의 유무가 상당히 중요했다. 한나에겐 자식없음이 큰 결핍이자 기도제목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둘째부인 브닌나가 한나를 매우 격분하게 한다.
여기에서 격분은 물론 분노인데, 근심과 초조함을 동반하는 감정이다. 누군가 나를 장난으로 약올리거나 업신여겨서 순간 욱하는 마음이 치밀어올라 하는 분노 정도가 아니다. 그런 분노는 보복심을 불러일으키긴 해도 근심과 초조함을 주지는 않는다.
정말 심각한 분노는, ‘나로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통제 밖의 일’ ‘내 자신이 생각해도 컴플렉스'인 그 치부를 상대방이 지속적으로 들출 때이다. 그런 사람이 있나. 내 결점을 콕 집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그 때 불어닥치는 분노는 상대방을 향한 보복심뿐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연민과 근심을 함께 가지고 온다. 이 상황이야말로 인생에서 마주할 수 있는 큰 고난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브닌나는 왜 한나의 가장 심각한 고민을 가지고 그녀를 흔들었을까. 남편인 엘가나에게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질의 결핍보다 더욱 치명적인 독은, 사랑의 결핍이다. 6절보면 브닌나를 ‘한나의 적수'라고 묘사하고 있다. 사랑의 결핍은, 사랑받는 사람을 향해 적이 되게 한다.
오늘날 일어나는 살인, 마약, 극단적인 거식증, 따돌림 등의 사회현상을 잘 파헤쳐보면 그 뿌리에 사랑의 결핍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랑이 없는 곳은 적과 폭력이 따를 따름이다. 정치와 경제, 사회제도개선을 통해 편리하고 조금 더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참 사랑이 없는 제도는 결국 사람을 구원해낼 수 없으며, 또다른 폭력과 분열을 낳는 도구가 될 뿐이다.
오늘 본문과 같이, 사랑때문에 가족도 ‘적수'가 되는 세상이다. 참 사랑이 없는 세상에 참 사랑이신 예수님만이 갈라지고 오해하며 다투는 세상을 치유하고 구원할 이름이다. 우리 성도부터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전히 누리고 보여줄 수만 있다면, 교회를 통해 세상의 물근원은 분명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이다.
본문 이어서 보겠다. 치부를 들춰내 자기를 격분하게 한 브닌나를 향해 한나는 어떻게 보복했을까. 놀랍게도 한나는 브닌나에게 나아가지 않았다. 먼저는 개인의 공간에서 식음을 전폐하며 울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나아갔다.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하나님을 알고 사랑을 아는 사람은, 헤치고 가르며 때리는 세상에 보복하지 않고, 먼저는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리고 기도하고 통곡한다. 오늘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분들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 또한 때론 힘에 부치는 문제를 만나곤 한다. 어떤 면에선 한나의 삶을 우리 또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나가 드린 이 통곡의 기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이 기도가 결국 한나를 살리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을 지탱하며, 예수그리스도의 나시는 탄생하실 족보를 준비하는 구속의 기도였기 때문이다.
종교적이고 관습적인 기도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생명이 흐르는 기도였다. 통곡하는 기도. 기도할 때 울라는 것 만은 아닐 것이다. 이 기도의 핵심이 15절에 나온다.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한나는 하나님께 마음을 ‘통했다'고 말한다. ‘Pour out’ 마음을 하나님께 다 쏟아냈다는 것이다.
첫 번째 한나의 통곡하는 기도의 비결은, 쏟아내는 것이다. 마음을 쏟아내는 기도. 억눌리고 분하며 나를 근심하게 하는 것들을 양동이 물 털어내듯 하나님께 붓는 기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휩쌓일 때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도.
어려움을 만날 때 우리가 가장 쉽게 겪는 현상은 ‘경직'이다. 15절을 보면 ‘슬픈 여자'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슬픔은 ‘opressed’ 억압받아 마음이 딱딱해진 것을 뜻한다. 궁지에 몰리면 어찌할 줄 몰라 마음이 굳을 때가 있다. 무리해서 근육이 뭉치고 담에 걸리듯, 우리의 마음도 무리한 상황을 만나면 딱딱하게 굳고 감정과 생각이 마비된다. 이걸 잘 마사지 하지 않으면 몸의 병, 마음의 병에 무너진다.
한나가 딱 그랬다. 그 때 한나는 회피하거나, 괜찮다고 말하거나, 자기를 그렇게 만든 대상에게 달려가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쏟아냈다.
이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자 자세여야 하지 않을까.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내 것을 쏟아내는 것에 이은 두 번째 비결은, 11절에 나온다.
여기에서 ‘나를 기억하사'라는 한나의 기도에 쓰인 히브리어는 ‘자카르’이다. remember.
임신하지 못해 브닌나에게 조롱당한 한나. 그녀가 하나님께 구한 것은 ‘아들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도를 자세히 보면 어쩌면 못지않게 강조된 간구, 앞선 간구가 있다. 바로 ‘기억해달라'는 것이다.
‘하나님 저를 기억해주세요.’ ‘하나님 저를 잊지 마세요.’
과연 하나님은 한나를 기억하셨을까.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다(זכר, 자카르)는 단어의 히브리어가 한나의 기도에 담긴 ‘자카르’이다. 한나가 기도할 때 쓴 단어, 한나의 존재를 싸그리 기억하고 주목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와 우리의 존재를 기억하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들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자카르 -기억하다는 말에 하나님이 주어가 되시면, 이 기억은 ‘remember’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redeemer’ 구원이 된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기억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담신 사람을 기필코 구원하시겠다는 결심과 열심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쏟아놓으며, 모든 간구 위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간구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 저를 좀 기억해주세요.’
우리를 기억하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모르실까. 가장 중요한 간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해주시길 소원하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 우크라이나를 기억해주세요. 코로나로 고통받는 세계를, 교회를 기억해주세요. 이 성도를 기억해주세요.’
우리의 간구에 주목하셔서 기억하심으로 구원하심에 이르게 하실 하나님을 찬양한다.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20절 보면,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임신으로 이어졌고, 사무엘의 출생에 이르른다. 사무엘의 이름 뜻은 본문을 보면 알다시피 ‘여호와께서 그를 구하였다.’라는 구원의 뜻이다. (한나는 분한 마음, 위축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다 쏟아냈다. ‘하나님 저를 좀 기억해주세요.’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기억하셨다. 그리고 들어주셨다. 구원해주셨다.)
하나님의 생각하심은 ‘염두, 마음씀'의 정도가 아니다. 구원이다. 하나님이 나를 생각해주신다는 것은 내 인생을 기필코 구원해주시겠다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이다.
그래서 사실, 하나님의 기도응답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개인의 차원으로 그치지 않는다.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모두 귀 기울이시고 모으셔, 결국은 세계의 복음화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구속사를 만들어가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분노와 초조함, 위축에 사로잡혀 마음이 괴로웠던 한나가 그 마음에 평안을 되찾게 된 시기이다. 임신했을 때, 출산했을 때 한나의 마음이 역전되었을까.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기도와 축복을 통해 한나는 근심을 거둘 수 있었다. 상황이 바뀌어서 평안을 얻은게 아니다. 마음을 쏟아놓는 기도와, 그 기도를 아는 이의 축복을 통해 한나의 삶에 하나님 나라의 샬롬이 임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기도응답은 그 뒤였다.
예수를 믿는 성도가 평안할 수 있는 이유는 상황이 해결되거나 기도가 응답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평안할 수 있다. 이 것이야말로 세상이 절대 알 수 없는 성도와 교회의 엄청난 특권이다.
말씀 마친다. pour out, 온갖 고난과 풍파에 굳어지고 격분한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놓자. 내 원통함을 쏟아놓는 기도의 신음을 신뢰할만한 누군가에게 털어놓아 중보의 삼겹줄을 이루자.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실 상황을 초월한 평안을 누리자. 그 샬롬의 그릇 위에 더하여주실 기도응답의 열매를 보며 함께 기뻐하는 성도들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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