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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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디도'라는 인물을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성경에 대략 열 세 번정도 언급되는 만큼 큰 비중으로 등장하고 있지는 않은듯 하지만 디도라는 인물은 바울에게 있어 야구로 치면 ‘구원투수'같은 존재였습니다. 디도는 바울을 필요로 하는 모든 교회와 사역지에 기꺼이 가서 바울의 역할을 돕는 바울의 든든한 동역자였습니다. 이런 그를 바울은 형제요 참 아들이요 동역자라고 표현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고린도교회가 사울의 사도성에 대하여 의문을 품었던 문제 그리고 또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바울이 디도를 통해 편지를 전달하는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을 책망하고자 눈물로 편지를 써서 디도에게 보냅니다. 디도는 편지를 가지고 갔다가 고린도후서 7장에 가서야 바울을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때 바울은 디도를 만남으로 말미암아서 비로소 근심을 그치고 참된 위로를 얻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려보신 적 있으십니까? 손에 일이 하나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오늘의 본문 속 함께 나눌 말씀은 바울이 디도를 애타게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디도와 같이 하나님의 또 사람의 요긴한 구원투수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이었으면, 또 여러분에게 디도와 같은 동역자들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이 변하다
바울이 변하다
12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지금 드로아에 있습니다. 바울은 어딜 가던, 항상 그리스도를 위해서 움직였습니다. 그는 늘 그러했듯이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 전도를 위하여 드로아라는 지역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문이 열리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문이 열렸으니 바울은 그저 그 주 안에서 열린 문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들판이 희어졌으되 보라 추수할 때로다 하는 때가 지금 이 때인 것입니다. 바울이 보기에 지금 드로아는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전하는 대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할 정도로 사람들이 복음에 대한 마음의 문이 열려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떨리고 설레였을까요? 그런데 바울은 그들과 작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그 이유에 대해서 자신의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바울은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 외에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 대한 반응을 가져올 디도를 만나는 일도 예정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하자 심령이 편하지 못했다고 말하며 마게도냐로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짧은 구절은 우리에게 놀라운 생각과 복음의 은혜를 누리도록 만듭니다. 여러분,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바울의 원래출신은 율법과 행위를 중시했던 바리새파였습니다. 그는 열심이라면 어디에도 꿀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관계'보다는 ‘일, 사역'을 좀 더 중요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관계 중심의 사람입니까 일 중심의 사람입니까? 저는 평소에는 관계 중심의 사람이었다가 일을 시작하게 되면 심각하게 일 중심의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누군가가 밥을 먹자고 하면 어 알았어 알았어 하며 그 일을 끝마쳐야만 다른 일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사람들 간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하나님의 일, 사역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역은 예수님께서 가셨던 길, 하셨던 일들을 좇아 가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는 99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길을 떠나는 분이셨습니다. 철저하게 사람을 세우는 ‘사람 중심의’ 일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를 믿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일 중심적인 사람인 듯 보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일 중심적인 행동 때문에 바나바와 마가를 전도여행에 데려가느냐로 말미암아서 다툼을 겪기도 합니다. 사람을 세우고 또 용서하는 것보다는 어떤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데에 효율적일까를 먼저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효율적인 것으로 사람을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랬던 바울이 드로아에서 수많은 영혼들 대신에 디도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심령이 편하지 못함으로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어떠한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는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사역하면서 점차 사역의 양식이 변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사역이 사람 중심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증거는 바울이 그의 또 다른 서신에서 마가를 보고싶다고 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이유는 다름아닌 예수님의 사역이었을 것입니다. 앞서 나누었듯이 예수님의 사역은 효율성보다는 한 사람을 세우고 또 살리는 것을 우선시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될성부른 사람들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시골 출신에 세리들과 같은 죄인들을 양육하셨습니다. 원래 바울이라는 사람은 결코 상황에 따라 사역을 먼저 내려놓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는 무조건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디도에게는 디도만의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그가 중요시했던 복음을 떨리는 마음으로 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오늘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디도를 만나기 위해서 문이 열린 드로아를 뒤로한 채 마게도냐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역을 계속하면 계속할수록 예수님의 사역방식과 마음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처음에 바울은 효율을 따졌습니다. 복음을 위한 열심을 가지고 자신과 기준이 맞는 사람들과 사역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사역을 계속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무엇이 되어서 자신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점차 그의 사역도 효율이 아닌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처럼 사람을 신경쓰고 세우고 살리는 일이 먼저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저와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이 있습니다. 맡기신 일터에서 일을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사역입니다. 여러분은 일 중심의 사람이십니까 사람 중심의 사람이십니까?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러분은 오늘 바울과 같이 효율보다, 일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을 먼저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여러분, 누군가를 어떤 ‘향'으로 기억할 때가 있으십니까? 누군가가 커피 향으로 기억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아마도 커피와 관계가 깊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음식 냄새로 기억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아마 음식과 관계가 깊을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예수님의 ‘향'이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예수님의 향으로 기억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아마도 예수와 관계가 깊을 것입니다. 그 향이 그 사람의 삶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야지만 그 사람이 그 향으로 기억됩니다. 바울은 이제 냄새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합니다.
바울은 이 냄새라는 후각적인 단어를 시각적인 것으로 바꿉니다. 14절에서 바울이 하는 이야기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당시 로마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큰 전투에서 싸워 이긴 군대를 환영하는 개선행진이라는 예식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개념을 사용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개선행진은 사실 로마에서 전쟁의 신에게 드리는 일종의 제사의 성격이 강하였습니다. 전쟁을 이기게 한 로마의 신을 향해서 향기로운 향을 피웠고 거리를 가득채운 그 향의 냄새가 구경꾼들과 행진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감돌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향기가 나는 곳 어디에서나 로마 군대가 승리했고 개선행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4절의 이긴다라는 단어가 바로 로마 제국에서 개선행진에 쓰였던 단어입니다. 이 개선행진의 행렬은 이렇습니다. 전투를 지휘한 장군이 가장 앞에 있고 그 뒤에 병사들이 뒤따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전리품들과 전쟁의 포로들이 따라갑니다.
이 개념을 잘 생각하면서 말씀을 살펴보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몇몇 번역본에는 14절을 그리스도의 개선행진에 우리를 끼워주신다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서 보았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싸워 이기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싸우시는 대상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승리는 곧 우리의 썩어질 자아의 패배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은혜는 이 썩어질 우리의 자아의 패배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에 참여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에 깊이 누릴 수 있습니다. 개선행렬의 맨 뒷줄에는 전리품이나 전쟁포로들이 뒤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원래 개념은 실패자들이며 패배자들이지만, 복음의 은혜는 본래 포로가 되어야 할 우리를 예수님께서 높다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기신 하나님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이 본문에 대해서 몇몇 사람들이 우리를 이기게 하신다, 우리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게 하신다는 말을 잘못 적용하는 경우를 봅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겨야 한다. 세상에서 큰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은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되어 향기를 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적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승리주의적인 접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승리를 얻었는가입니다. 우리를 이기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죄를 이기셨으며 죄악 가운데 물들어있는 우리를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란, 십자가를 알고 또 십자가를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뻐하며 그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쌓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바울의 사역을 통해 널리 퍼지는 향기가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였습니다. 그리고 이 냄새가 저와 여러분을 통해 널리 퍼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여러분, 앞서 로마의 개선행진에 앞열과 뒷열에 누가 있었는지를 기억하십니까? 앞열에는 로마의 군대가 있었고 뒷열에는 전리품들과 전쟁에서 붙잡은 포로들, 노예들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개선행렬에서 가득히 풍기는 향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의 군대에게는 승리를 의미하는 긍정적인 의미였을 것이고 붙잡힌 포로들과 노예들에게 있어서는 패배와 죽음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의미였을 것입니다. 한 가지 향인데 두 가지 의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싸워 이기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저와 여러분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승리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푹 젖어서 사는 우리를 보며 또 그리스도를 전하는 우리를 보며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개선행진에서 풍기는 향이 승리한 로마의 군대에게나 패배한 전쟁포로들에게나 동일한 향이었던 것 같이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 향은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일 것이요,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게 하는 냄새인 것입니다. 여러분, 향기된 우리가 전파하는 것은 ‘복음'입니다. 나를 위하여 나와 싸워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언제나 두 가지 냄새를 퍼트립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 안에 있었던 죄의 패배와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또한 이것은 믿는 자에게는 생명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죽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전도는,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냄새요,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냄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전도는 생명을 다루는 아주 무거운 일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 무거운 일, 누군가의 생명을 다루는 일에 여러분은 자격이 있으십니까? 제게 자격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이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바울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항상 나누었듯, 우리가 자격이 있거나 우리가 완전하거나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데 효율적이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이 자격이 있고 그 복음이 완전하고 그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과 나를 변화시키고 세워가기 때문에 그것을 경험하고 또 그것을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안타깝게도 그 복음이 많이 혼잡된 세상 속에 우리는 살아갑니다. 이단들과 세상의 소리들이 복음을 혼잡하게 합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너무 쉬운 것으로 만들고 말씀을 통해 개인의 유익을 챙기려고 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복음은 세상으로부터 돌아서고 승리하기 위한 것이지 세상을 더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복음,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성경입니다. 그 순전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마땅합니다. 향기의 역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연상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향기라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드러내야 할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또 설교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동서울 광염교회가 또 나아가 한국교회가 또 나아가 전 세계의 모든 교회가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