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회입니다. (묵상&소그룹 핸드북)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255 views
Notes
Transcript

1 주차 : 예배

1. 예배란 무엇인가?
누가복음 1:46–50 NKRV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에 나와 있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기 위해, 즉 예배하기 위해 존재하는 ‘호모 아도란스'입니다. 공예배나 생활예배가 진정 내 삶의 중심입니까? 이 예배의 영광에 가까운 이웃들을 동참시키려고 얼마나 애쓰고 있습니까?
예배란 무엇입니까? 마리아의 결배송에 나타나는 두 가지 특징을 찾아보고, 내가 드리는 예배와 비교해보십시오.
예배를 방해하는 요인들을 써보고,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안을 생각해보십시오.
기도 : 겸손히 주님을 경배하는 참된 에배를 통해 날마다 천국의 예고편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2. 인격적 만남이 있는 예배
요한복음 4:1–14 NKRV
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사마리아 여인을 참된 예배자로 만들기 위해, 그가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은 어떤 일들을 하셨습니까? 내가 올바른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성령께서 어떤 은혜를 주십니까?
왜 예배가 초월적인 사건인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행하신 일들을 토대로 이야기해보십시오.
사마리아 여인의 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갈증은 무엇이었습니까? 또한 내가 느끼는 갈증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기도 : 참된 예배를 통해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공급받아 인생의 목마름을 해갈하게 하옵소서.
3.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요한복음 4:19–26 NKRV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사마리아 여인이 점점 더 영적 예배의 실체에 다가가고 있다는 증거는, 예수님을 향한 호칭 변화에도 나타납니다. 나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아가고 있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 장소는 왜 중요했습니까? 나는 예배 장소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하나님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하는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내 주변에는 내 예배가 메마르고 형식에 빠질 때 지적해줄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누군가에게 이런 역할을 해준 적이 있습니까?
기도 : 겸손한 마음으로 주 앞에 나아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하옵소서.
4. 예배와 성령 충만
사도행전 6:8–15 NKRV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본문은 스데반을 어떤 사람으로 묘사합니까? 그가 누린 영적 총만의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성령 충만의 은혜가 임할 때 나타나는 세 가지 증거로 자신을 비춰보십시오. 그 증거들이 나에게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예배가 메마르면 왜 내 영성도 덩달아 메마르는 결과를 가져올까요? 영적으로 피폐해져 한동안 형식적인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까? 이후 그러한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기도 : 예수로 충만한 예배자가 되어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예수만 나타나고 증거 되게 하옵소서.
5. 예배와 기도
마태복음 6:9–11 NKRV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요한계시록 8:1–6 NKRV
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6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기도
왜 침묵이 흐르는 그 시간이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시간입니까? 돌아보니 그 시간은 하나님의 침묵이 아닌, 기도가 소리 없이 쌓이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할 만한 간증이 내게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외롭고 힘든 시간을 기도로 버틸 때,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며 자상한 손길로 함께하십니다. 나는 기도 생활 가운데 이런 위로를 경험하고 계십니까?
개인 기도나 골방기도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에서 드리는 기도나 예배 안에서 드리는 기도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기도 : 광야 같은 시간을 지날 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6. 예배자의 영적 성숙
요한복음 16:7–11 NKRV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어떤 일을 해주시는지 세 가지로 이야기해봅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세 가지 중요한 사역과 예배(또는 예배자)는 어떠한 연관이 있습니까?
성령께서 중요한 사역을 하실 떄 주시는 유익을 예배를 통해 춤만하게 받으며 누리고 있습니까? 만일 누리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도 : 성령께서 죄에 대한, 의에 대한, 심판에 대한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소그룹 1과 :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성령 충만한 예배자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보냄 받은 소명자로서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성령 충만한 예배자가 되겠습니다.
진리를 배우고 수호하는 은혜에 빚진 훈련자가 되겠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가 되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치유자가 되겠습니다.
온 성도가 하나 되는 화해자가 되겠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소명자가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한누리 공동체가 되겠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며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난미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 ‘영적 기억상실증'에 걸려 존재의 목적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지어졌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도 하나님과 원수가 된 반역자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는 은혜 받은 자의 첫 반응이자 그리스도인의 삶의 토대이고 중심입니다(롬 12:1-2). 예배는 오직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고백이며, 더 이상 우상의 노예, 세상의 포로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니 무기력하고 답답하고 타협적인 신앙생활을 자책히기보다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자로 서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신앙의 회복은 예배의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예배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 실패합니다.” 이 말은 예배의 위기에서 신앙의 위기, 인생의 위기가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경제보다 먼저 회복해야할 것은 경건이고 예배입니다. 그런데도 예배가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배를 방해하는 외적, 내적 요인이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이사야 1:12-17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이사야59:2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말 1:13 “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시 106:21 “21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
2. 예수님은 한낮에 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인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리십니다. 그 속의 근ㄴ본적인 갈증을 ㅎ일깨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여인이 자신의 죄에 눈을 뜬 뒤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 여인은 예배에 대해서 그릇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편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 4:19-26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3. 예배는 만남의 시간입니다.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찾는 예배자가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 만남은 변화를 낳습니다. 예배 전과 후, 내 생각과 마음과 삶은 달라지고 도 달라져야 합니다. 예배에 참석하면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갈망,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말씀해주실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까? 예배를 통해 얻는 영적 유익이나 은혜를 구체적으로 나눠봅시다.
요 4:28-30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사 40:31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느 8:10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니, 진리 안에 거하는 자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그분의 다스리심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이들의 예배가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성령 안에서 진리가 신실하게 선포될 때, 예배 가운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행 2:37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골 3:16-18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엡 5:18-21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5. 주님은 정교하고 화려한 예배 행위보다,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며 자기 죄에 애통하는 예배자를 더 기쁘게 받으십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나 자신을 먼저 드려야,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십니다. 더 비우고 더 낮아진 마음, 주의 인자와 긍휼만을 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지 않는 예배는 ‘마당만 밟는' 외식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예배하는 자에게 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준비된 예배란 어떤 것일까요?
시 51:17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전 5:1-2 “1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레 1:10 “10 만일 그 예물이 가축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히 10:22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6. 하나님은 제물보다 마음을, 제사보다 순종을 더 기뻐하십니다. ‘말씀'에 귀를 막으면서 드리는 제사는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만든 하나님(우상)’을 향한 제사일 뿐입니다. 순종 없는 예배는 현실 도피로, 예배 없는 순종은 율법적인 맹종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찬양에 어울리는 순종이 있습니까? 예배가 순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내 순종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삼상15:22-23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요 14:23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변화를 위한 나의 결단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성령 충만한 예배자'가 되기 위한 당신의 결단을 적어 보세요.
삶의 열매를 거두며
예배는 축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체험하는 성령 충만한 축제의 시간입니다. 성령은 날마다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주시고, 우리를 은혜와 진리 가운데 거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진리로 인도하실 때 그 길을 따라 걷는 것 자체가 예배입니다. 그때의 고백이, 찬양이, 순종이 예배입니다. 예배의 자리는 ‘영적인 수원지’와 같습니다. 척박한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치열한 하루를, 한 주간을 살아갈 하늘의 은혜와 기쁨과 능력을 힘입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예배는 결코 멈출 수도,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최고의 가치이고 은혜이고 특권입니다. 우리는 어떤 도건과 환경에도 매이지 않는 성령 충만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 성령 충만한 참된 예배 공동체가 되기를 함께 기도합시다.

2 주차 : 훈련

1. 복음의 그릇을 준비하는 훈련
마태복음 3:13–17 NKRV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죄와 허물이 없는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심으로, 우리가 하난미의 의를 얻게 된 사건이 복음이라는데 동의하십니까? 나는 이 복음을 인격적으로 경험했습니까?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 나서도 왜 훈련을 받아야 할까요? 신자에게 영적 훈련이 필요한 이유를 작 ㅣ말로 정리해봅시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과 해야 할 사역을 확고히 인식하셨습니다. 우리도 훈련을 통해 우리가 하난미의 자녀요, 그분이 친히 기르시는 양이며 돌보시는 백성임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나의 훈련 여전을 일기처럼 적어봅시다. 훈련을 받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 보람을 느낀 점, 크게 변화된 점, 아직 고민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는 부분을 적고 기도합시다.
기도 : 예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깨닫고, 훈련을 통해 이에 걸맞은 삶을 살게 하옵소서.
2.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훈련
마가복음 3:13–19 NKRV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제자훈련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우리를 어떤 제자로 만들기 위합입니까? 우리의 인격과 삶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예수님 당시의 종교 제도자들은 높은 수준의 성경 지식과 경건을 자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었을까요? 이들은 결국 자신의 무엇에 갇혀서 예수님을 판단해버리고 말았습니까? 혹시 내게 바리새인과 같은 성향이 있진 않습니까?
주께서 자격이 없는 사람들(당시 공공의 적이었던 세리 마태), 성경이 모난 사람들(우레의 아들이라 불린 요한과 야고보), 스캔들과 괜한 시비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열혈당원 시몬)을 부르셨다는 말씀에서 주님의 어떤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까? 이러한 주님의 마음이 내게 주는 약속과 위안은 무엇입니까?
기도 : 자격 없는 자를 불러 제자로 삼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이제 소명자로서의 역할도 감당하게 하옵소서.
3. 훈련이 필요한 세 영역
마태복음 13:31–33 NKRV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13:45–46 NKRV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훈련을 시작하면서 저마다 마음속에 열며나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겨자씨처럼 작은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비유의 말씀이 훈련에 임하는 내게 어떤 약속과 위로를 줍니까?
훈련의 세 가지 영역 중 내가 가장 취약한 영역은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인격 훈련 가운데서도 ‘섬김'이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의 섬김을 1에서 10까지 점수로 환산한다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요? 교회 봉사에서 섬김의 정신이 결여될 때 나타날 ㅅ ㅜ있는 부정적인 현상은 무엇일까요?
기도 :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가 되게 하시며, 덜 중요한 것을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포기할 수 있는 지혜로움을 주옵소서.
4. 자기 부인을 위한 훈련
빌립보서 3:7–12 NKRV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오늘 말씀을 이끄는 접속사 ‘그러나'는 무엇에 대한 반전입니까? 3장 1-6을 관찰한 후 대답해봅시다. 아울러 나는 이 ‘그러나'를 통과한 사람인지 자문해봅시다.
내가 복음을 통해 또는 제자훈련을 통해 통과한 ‘그러나'의 대반전을 세 가지만 생각해봅시다. “나는 이전에 ____________였다. ‘그러나' 이제는 ____________이다.
훈련을 통해 내가 궁극적으로 이뤄야 할 목표는 무엇입니까? 특히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을 위해 더 은혜를 구해야 할 영역이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기도 : 교만과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자기 죽음을 통해 진정한 부활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5. 온전함에 이르게 하는 훈련
누가복음 9:23–26 NKRV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골로새서 1:28–29 NKRV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제자훈련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전파하는 방법 외에 또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 1:28). 이 구절에서 말하는 완전함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습니까? 완전함을 이루기 위해 주님과 내가 각기 감당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온전함의 다섯 가지 영역을 살펴본 후, 각 부분에서 현재 자신의 상태를 진단해봅시다.
기도 : 예수님처럼 되고 예수님처럼 살게 하시고,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 값을 치르는 삶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기도 : 예수님처럼 되고 , 예수님처럼 살게하시고, 온점함을 이루기 위해 값을 치르는 삶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6. 영원한 가치를 캐내는 훈련
요한1서 2:15–17 NKRV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모든 사람을 죄 가운데로 유혹하는 세 가지 요소는 무엇이며, 심지어 예수님의 시험에 어떻게 이것이 되풀이되어 나타나는지 실펴봅시다. 또한 이 세 가지가 나의 영성과 훈련을 어떻게 방해하고 있는지 점검해봅시다.
이 세 가지 유혹 앞에서 번번히 패할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요일 2:17)의 약속은 큰 힘이 됩니다. 특별히 ‘거하느니라'라는 매우 견고하고 강력한 단어를 사용하여, 시험 앞에서도 우리가 요동치 않을 수 있는 길을 보여줍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영원한 것은 무엇밖에 없습니까? 이 영원한 것을 어떻게 붙잡고 살 수 있습니까?
기도 :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죄의 유혹을 능히 이겨내고, 남은 삶 동안 영원을위해 트자하며 살게 하옵소서.

소그룹 2과 : 진리를 배우고 수호하는 은혜에 빚진 훈련자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보냄 받은 소명자로서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성령 충만한 예배자가 되겠습니다.
진리를 배우고 수호하는 은혜에 빚진 훈련자가 되겠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가 되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치유자가 되겠습니다.
온 성도가 하나 되는 화해자가 되겠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소명자가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한누리 공동체가 되겠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며
기독교 변증가이자 복음주의 작가인 필립 얀시는 기독교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용어로 “은혜”를 꼽았습니다. 지금도 분초마다 수천 수만의 말들이 쏟아지며 활자화되지만, “은혜"가 이 시대 최고의 단어인 이유는 은혜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삶은 ‘은혜'로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 여정의 시작도 마지막도 은혜입니다. 그 은혜에는 사명이 뒤따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은혜의 수혜자인 동시에 시혜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죄의 폭정 아래에서 신음하는 자들이 그 속박에서 벗어나 은혜의 지배 아래로 들어오도록 복음의 신실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소에서 일상으로, 골방에서 열방으로, 교회에서 세상으로 흘러넘치는 은혜의 역사에 우리는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 어떤 준비와 결단이 필요할까요?
말씀의 씨를 뿌리며
하나님이 먼저 은혜로 다가오시지 않았다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은혜가 없었다면, 아무도 구원에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에 대해 우리가 자랑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늘 우리에게 사랑받을 만한 이유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세상과 하나님의 은혜를 비교해보십시오. 이 은혜를 받기 전 나의 모습과, 그런 나를 찾아와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해봅시다.
딛 2:11-14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3:3-6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엡 2:1-7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2. 성도는 은혜로 구원받은 자요, 은혜로 사는 사입니다. 은혜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은혜에 대한 기억은 우리를 겸손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그분의 은혜를 깨달은 만큼 찬양은 풍성해지고 묵상은 깊어질 것입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이 은혜를 발견할 수 없다면, 우리 신앙과 삶은 메마르고 편협해질 것입니다. 한 주간 내 삶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서로 고백해봅시다. 오늘 내가 찬송으로 기억해야 할 내 삶속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고후 1:3-4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3.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벧후 3:18). 신앙은 한 번 은혜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나의 신앙이 살아 있늠을 증명하고, 또 받은 사명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 성숙은 연륜보다는 연단과 훈련에서 비롯됩니다. 성숙한 성도, 복음의 신실한 일꾼이 되기 위해 내게 필요한 신앙 훈련은 무엇입니까? 그동안 받은 훈련은 무엇인지, 그 훈련을 받은 동기와 결과에 대해 나눠봅시다.
딤전 4:6-8 “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벧후 1:5-7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4. 은혜는 섬김으로 표현되고, 그 섬김은 훈련을 통해 온전해집니다. 진리를 배우고 수호하며 전하고 가르치는 일은 온 성도가 예수님을 알고 믿는 일에 하나가 될 때까지, 미숙한 신앙에서 벗어나 성숙한 신앙인이 될 때까지 그리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영적 성숙이란 무엇일까요? 그 성숙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5. 교회 안팎에서 은혜에 빚진 훈련자로 아름답게 섬기는 모범적인 사례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나눠봅시다.
6. 자녀들은 현존하는 미래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의 위기는 곧 우리 미래의 위기입니다. 사사 시대 이스라엘의 실패도 결국 다음 세대의 실패 때문이었습니다. 땅은 물려주었지만 신앙은 계승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음 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세우기 위한 제자훈련에도 ‘골든타임'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선대가 남긴 훌륭한 신앙 전통과 유산을 지키며 후대를 키우는 수선대후(수선대후)의 정신을 회복할 때입니다. 나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이야기(은혜)를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편 78편)은 그 가이드라인을 제공합니다. 함께 찾아보고, 서로 나누어봅시다.
시 78:1-8 “1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2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3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4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6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7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8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변화를 위한 나의 결단
진리를 배우고 수호하는 은혜에 빚진 훈련자가 되기 위한 당신의 결단을 적어보세요.
삶의 열매를 거두며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언제나 은혜 안에서 자라야 합니다. 묵상과 기도, 배움과 훈련은 은혜의 기억을 일깨우고, 그 기억은 거룩한 신앙 여정에 선한 자극과 동력이 됩니다.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크고 영광스러운지를 안다면 우리는 세상 정욕에 굴복하여 썩어질 것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며, 섬기고 봉사하라고 주신 직분이 권력이나 명례를 얻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진리를 배우고 전하며, 진리대로 사는 일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과 소통하는 우리를 통해 은혜와 진리와 생명이 사해와 같은 세상 속으로 흘러가기를 원하십니다(겔 47:1-12). 은혜와 훈련이 선순환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자녀와 교회가 믿음 안에서 더욱 건강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3주차 : 전도

1. 전도는 하나님의 초대이다.
이사야 55:1–3 NKRV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하나님이 초대하신 사람들은 목마르고 돈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사 55:1). 나는 어떤 삶의 자리와 상황에서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 나아왔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가 물(생명을 살리는 물), 젖(삶에 필요한 자양분), 포도주(유쾌함과 즐거움)라는 세 가지 음료로 언급되어 있습니다(사 55:1). 나는 이 음료들을 마시며 신앙 안에서 자유와 기쁨 가운데 풍성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까?
전도는 일종의 ‘초대'입니다. 이 초대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초대장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떠올려보십시오. 더 미루지 말고 오늘이라도 당장 초청의 손길을 내밀지 않겠습니까?
기도 : 하나님의 초대를 통해 누리게 된 자유와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나누게 하옵소서.
2. 목자의 심정을 지닌 전도자
마태복음 9:35–38 NKRV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묵상과 삶을 위한 질문
예수님의 전도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편협한 민족주의에 일대 지각변동을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워 전도의 기회를 미루거나 번번히 놓치고 있진 않습니까? 내가 전도할 때 영혼이 흔들리고 불신이 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며 나아가십시오.
믿지 않는 영혼에게 다가가려면 먼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나는 어떠한 시선으로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이사야나 바울이 열방의 구원을 꿈꾸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역시 이 꿈에 힘써 동참할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기도 : 목자의 마음과 눈을 대신한 일꾼이자, 복음의 밭을 떠나지 않는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3.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전도자
사도행전 1:6–14 NKRV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삶을 증인의 흔적이 나타나야 함을 말합니다. 나에게는 어떤 증거가 있습니까?
전도는 때가 되면 연중행자가 아닌,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사명입니다. 전도가 사명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다가옵니까? 혹시 부담으로 다가온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도는 우리 힘만으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증인 된 삶은 성령의 능력이 전적으로 필요한 사명입니다. 평소 내 마음과 생각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지금 내 삶에는 성령께서 기름 부으실 수 있는 정서적, 시공간적인 여지가 있습니까?
기도 : 선입견과 가치관을 내려놓고 성령의 능력으로 증인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4. 전도는 예수 나눔이다.
행 10:23-26,36-37,39-48
사도행전 10:23–26 NKRV
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24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사도행전 10:36–37 NKRV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사도행전 10:39–48 NKRV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왜 전도는 불같은 열정만이 아니라 겸손함으로 감당해야 할 일입니까? 혹시 지나친 자기 열정으로 전도에 나섰다가 오히려 논쟁이 벌어져 마음만 상한 적은 없습니까?
전도할 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을 사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 즉 우리의 모든 짐을 아시고 우리를 깊이 이해하시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에 대해서 충분히 묵상해봅시오. 묵상하면서 떠오른 내용이 있다면 이를 적어보고, 예수님을 전할 때 사용해보십시오.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화평의 복음이 더없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화평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나와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기도 : 이 땅에 오신 것만도 감사한데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뤄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게 하옵소서.
5. 전도는 성령의 역사이다.
사도행전 13:1–5 NKRV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성령은 계층을 초월하여 팀워크를 이루시고, 계층을 초월하여 영혼들을 구원하십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내가 초월해야 할 영역은 무엇입니까? 모든 오해와 편견을 뚫고 전도자의 대열에 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안디옥 교회는 선교사 파송을 앞두고 금식하며 선교를 준비했습니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전도할 때 성령의 주권과 우리의 책임이 조화를 이루어 결실을 맺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떠넘기거나, 반대로 내 열심만으로 해보려는 우를 범하진 않았는지 점검해보십시오.
기도 : 모든 오해와 편견을 다 내려놓고 때때로 금식하며 성령의 선교 동역자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6. 전도는 영광과 고난의 협주곡이다.
사도행전 14:8–15 NKRV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사도행전 14:19 NKRV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묵상과 실천을 위한 질문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은혜와 영광을 얻기도 하지만, 반대로 고난과 고통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요?
한 벌밖에 없는 옷을 찢을 정도로 바울과 바나바는 개인숭배를 거절했습니다. 두 전도자의 모습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영광을 사모하는 사람은 복음으로 말미암은 고난도 기꺼이 감내할 줄 압니다. 복음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은 어떻습니까? 영광만 있는 줄 알았다가 고난을 발견하고는 그 앞에서 주춤거리게 되진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바르게 서야 복음도 바르게 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기도 : 성공의 계절에도, 실패의 골짜기에서도, 우리의 인격이 주님을 닮아가게 하셔서, 더욱 신실한 복음의 도구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소그룹 3과 :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보냄 받은 소명자로서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성령 충만한 예배자가 되겠습니다.
진리를 배우고 수호하는 은혜에 빚진 훈련자가 되겠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가 되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치유자가 되겠습니다.
온 성도가 하나 되는 화해자가 되겠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소명자가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한누리 공동체가 되겠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며
‘복음 전도'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가장 긴급하고 막중한 사명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는 마주하기를 꺼리는 단어가 되어버렸습니다. 구령에 대한 열의와 열정이 식으면서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내향화(나르시시즘의 영성) 되었습니다. 갈수록 기독교에 적대적인 세상 문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복음에 대한 확신과 복음과 관련된 결정적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보다 “당신은 복음을 경험하고 있는가"가 우성되어야 합니다. 제자의 또 다른 이름은 ‘증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증인이어야 합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좋은 성도'가 될 수는 있어도 ‘좋은 제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복음 전도는 모든 신자의 소명입니다. 은사를 받은 자의 몫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를 입은 모든 성도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그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되는 그리스도인의 책무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은사가 아니라 소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행 1: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전 9:16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딤후 4:1-2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2. 성경은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주님과 만난 뒤 삶이 바뀝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대낮에 우물을 찾은 여인은 이제 제 발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대낮에 우물을 찾은 여인은 이제 제 발로 사람들 속에 들어가 망설임 없이 “메시야를 만났으니 와서 보라"라고 전합니다(요 4:25, 29). 주님과의 만남이 가져온 내 인생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복음(은혜)에 대한 감격이 감사와 전도로 이어진 경험이 있다면 서로 나눠봅시다.
3. 복음이 늘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환대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이 고향에서 경험하신 것처럼 거절과 배척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하다가 거절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신자들이 복음 전하기를 꺼리는 이유를 생각해보고, 왜 전도의 장벽이 점점 더 높아지는지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이야기해봅시다.
기독교나 기독교인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
복음 전도를 위한 열의나 준비 부족
현재 모범이 되지 못하는 삶
상대의 반응이나 결과에 대한 두려움
후속 양육에 대한 부담감
4. 월터 A. 헨릭슨(Walter A. Henrichsen)은 그의 저서 <훈련으로 되는 제자>에서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만들어진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제자훈련뿐만 아니라 ‘전도'에도 적용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시기 전에 어떤 준비를 시켰는지 찾아봅시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봅시다.
마 9:35-10:1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롬 1:16-17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5.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명령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행 1:8).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입니다(마 28:19). 내 관심의 영역과 전도의 대상을 넓혀봅시다. 늘 곁에 있지만 무심했던 ‘예루살렘', 오해와 편견으로 배제했던 ‘사마리아', 여전히 미답지인 ‘땅끝'은 누구이고, 어디일까요? 혹자는 “가족이나 이웃, 혹은 국내 전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무슨 세계 선교를 하느냐"라며 세계 선교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말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루살렘
사마리아
땅 끝
6. 사도행전은 성령이 주도하시는 하나님 나라 확장의 역사입니다. 최초의 이방 교회인 안디옥 교회는 ‘출신과 인종적 배경과 신분이 다른 다양한 일꾼들이 모든 차이를 넘어 오직 복음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같은 비전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를 섬겨 금식하는 중에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즉시 순종했습니다. (사도행전 1:1-3)에 제시된 선교의 중요한 원리를 찾아봅시다. 이 원리가 우리 공동체에는 어떻게 적용되고 있습니까? 또 나는 이 일에 어떻게 동참하고 있습니까?
행 13:1-3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변화를 위한 나의 결단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사"가 되기 위한 당신의 결단을 적어보세요.
삶의 열매를 거두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라는 선포로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지상명령을 남기셨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생태적, 본질적으로 ‘선교적인 교회'가 되어야 하며, 우리는 복음 전도적인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전도와 선교는 특별한 헌신이 아닙니다. 당연한 의무이자 특권이며 사명입니다. 더 나아가 전도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동참하는 일이요, 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하늘 아버지의 기쁨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전도는 어떠한 상황을 만나도 결코 굴복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어떤 장애와 방해도 복음을 전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나와 우리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전초기지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다 함께 응답합시다.

4주차 : 치유

전인격적인 치유
닫힌 마음을 여는 치유
공동체와 함께하는 위로
사랑이라는 치유의 묘약
이웃을 아픔을 함께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
영혼에서 영원에 이르는 치유

소그룹 4과 :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치유자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보냄 받은 소명자로서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성령 충만한 예배자가 되겠습니다.
진리를 배우고 수호하는 은혜에 빚진 훈련자가 되겠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가 되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치유자가 되겠습니다.
온 성도가 하나 되는 화해자가 되겠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소명자가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한누리 공동체가 되겠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며
고개숙인 사람들, 스마튼폰 시대가 낳은 지하철의 풍경이고 이 시대의 자화상입니다. 쉴 새 없이 접속하면서도 끊임없이 차단하는 이 사회의 모순을 어떤 학자는 ‘단속사회’라고 명명합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하루가 다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오히려 오히려 사람들은 갈수록 마음의 문을 닫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간에도 의미 있는 대화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회는 이런 단절의 이유로 소통의 부재를 말하지만 성경은 그 밑바닥에 웅크린 죄를 직시합니다. 죄 때문에 끊어진 관계, 그로 인한 아픔과 상처는 예수님의 사랑으로만 온전히 회복되고 치유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위대한 치유자입니다. 그분의 몸인 교회는 치유받은 공동체이자, 동시에 치유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형제와 이웃의 아픔에 진정한 마음으로 함께하는 온전한 치유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말씀의 시를 뿌리며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가장 불행하고 안타까운 현실 중 하나가 바로 ‘이웃의 부재'입니다. 소유의 부족보다 이웃의 부재가 더 뼈아픈 상황입니다. 내 인생의 여정에서 기억나는 ‘선한 이웃'이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그를 통해 받은 도움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눠봅시다. 기억나지 않는다면, 선한 이웃이 드문 이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봅시다.
잠 27 10 “10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막 7 21-23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딤후 3:1-4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2.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는 율법사의 질문에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라고 되물으십니다. 이 두 질문이 보여주는 ‘관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눅 10:29-37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3. 예수님은 강도 만난 자를 향한 사마리아인의 마음과 행동을 자세히 묘사하십니다. ‘동사'를 중심으로 찾아봅시다(눅 10:33-35). 사마리아인의 모습은 우리에게 선한 이웃의 길, 온전한 치유자가 되는 길을 보여줍니다. 나는 선한 이웃으로 인정받을 만큼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고 있습니까? 교회 안의 지체 혹은 우리 사회의 약자나 소외된 자 가운데 나를 형제로, 이웃으로 인정해줄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지금 내가 수고하고 베풀며 도와야 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4. 죄의 가장 큰 특징인 ‘자기중심성'입니다. 따라서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나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나를 부인하고 남을 섬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지독하고 집요한 자기중심성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하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즉 나 중심의 신앙을 탈피하여 타인 중심의 신앙으로 성장해갈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해봅시다.
요일 4:9-11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5. “사랑의 크기가 우리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사랑의 수준이 우리의 생애와 교회의 장래를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주님의 희생적인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섬기면 하나가 될 수 있고, 사랑하면 세상을 살리는 향기가 될 수 있습니다. ‘선한 이웃, 선한 교회'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또 그렇게 되지 않도록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벧전 4:7-10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잠 10:12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6. “교회는 경찰차가 아니라 구급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의 책임과 역할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담긴 의미를 내가 이해한 대로 설명해봅시다. 또 지금까지 지체와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내 역할은 어떠했는지 솔직하게 나눠봅시다.
변화를 위한 나의 결단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치유자'가 되기 위한 당신의 결단을 적어보세요.
삶의 열매를 거두며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는 과정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져내신 예수님의 삶과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셔서 우리 인생의 치유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롬 12:15)"치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게 이익이 되는 사람들만 이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웃의 경계를 마음대로 정할 수 없습니다.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참사랑의 섬김과 실천은 우리에게 더 많은 하늘 가족을 안겨줄 것입니다. 나와 우리 교회가 먼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사랑'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5주차 : 화해

하나님의 화해 프로젝트
화목을 심는 사람들
중보기도를 통한 화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사랑으로 완성되는 화목
온유함으로 일궈낸 화평

소그룹 5과 : 온 성도가 하나 되는 화해자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보냄 받은 소명자로서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성령 충만한 예배자가 되겠습니다.
진리를 배우고 수호하는 은혜에 빚진 훈련자가 되겠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가 되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치유자가 되겠습니다.
온 성도가 하나 되는 화해자가 되겠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소명자가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한누리 공동체가 되겠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며
“화해"는 성경의 핵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화래'는 세상의 화해와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가해자가 먼저 용서를 구하고 상처를 입한 자가 먼저 화해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관계를 회복하고자 자신을 외면한 인류에게 먼저 찾아오시고(창 3:9), 예수님도 먼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써 죄인에게 화해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화목의 은총을 아는 성도라면 ‘화목의 사람(고후 5:18)’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반대로 다툼과 분열은 만물을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요, 그리스도의 십다가를 부끄럽게 하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공동체를 힘써 지키는 것이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합당한 태도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랑과 섬김의 일치를 통해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의 지체가 된 우리는 영적인 가족이요, 영원한 가족이요, 영원한 생명을 함께 누릴 가족입니다. 하늘 아버지와 교제하고 형제들과 연합하여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요, 우리에게 주시려는 영생의 복입니다(시 133:1-3). 그럼에도 왜 이런 소중한 정체성과 공동체(지체)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것일까요?
엡 2:19-20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시 133:1-3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요일 1:1-3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2. 교회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미완의 존재입니다. 기초가 놓이고 골조는 세웠지만 아직 완공되지 않은 건물과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서로를 향한 ‘느리고 긴 시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정답을 알기에 상대를 너무 쉽게 정죄하는 바리새인의 눈매가 있습니다. 교회 내의 갈등은 ‘복음의 옷을 입고 있지만, 율법의 마음을 가진 자'로 인해 생겨난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이 그런 함정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봅시다.
눅 6:42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행 15:1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여호수아 22:10-12, 수 22:21-27
여호수아 22:10–12 NKRV
10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는데 보기에 큰 제단이었더라 11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12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여호수아 22:21–27 NKRV
2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22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 23 우리가 제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또는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또는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거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24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25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느니라 하여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26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27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번제와 우리의 다른 제사와 우리의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들이 후일에 우리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3. 몸 안에 다양한 지체들이 많이 있어서 서로 도우며 온전한 몸을 이루어가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협력하여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여전히 다름이 주는 불편을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집단을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공동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면에서 나와 다른 사람이 내가 속한 그룹에 들어왔을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을 솔직하게 나눠봅시다. 성도들이 동질 집단에 집착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일까요?
고전 1:12-13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고전 12:12-25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4. 몸에 문제가 생길 때 지체들은 서로 돕고 채워 건강하고 온전해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중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과도한 자기방어가 몸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이런 영적 ‘자가면역질환'에 걸리면 서로를 비난하고 지체의 아픔을 외면하는 증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영적 자가면역질환의 예방책과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엡 6:12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고린도전서 10:23–24 NKRV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린도전서 10:31 NKRV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1:1 NKRV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14:40 NKRV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5.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갈등이 없는 공동체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태도입니다. 교회 내의 갈등이 표면화될 때 네 가지 방식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도피입니다. 하지만 도망간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는 회피입니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셋째는 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싸움은 더 큰 화를 키울 뿐입니다. 넷째는 온유와 겸손으로 대면하는 것입니다. 도피하거나 회피하거나 싸우지 않고 그 문제를 대면하여 도리어 그 문제를 통해 공동체가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모습입니까? 성령으로 충만한 초대교회에도 갈등은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행 6:1-7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빌 4:2-3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6. 제자는 화해자입니다(마 5:9). 갈등 유발자(troublemaker)에서 진정한 화해의 중재자(peacemaker)가 되는 것이 제자훈련의 목표이자 성패를 가늠하는 시금석입니다. 지금 우리 공동체 안에서 개인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주 안에서 이 갈등을 잘 해결하고 더욱 온전한 나, 더욱 성숙한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나는 ‘화해자의 역할'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화해자로서 내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고후 5:18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눅 6:41-42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마 5:22-24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변화를 위한 나의 결단
‘온 성도가 하나 되는 화해자'가 되기 위한 당신의 결단을 적어보세요.
삶의 열매를 거두며
교회는 ‘영적인 가족'이기에 모든 성도는 주 안에서 하나 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진정한 화해의 중재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화해자의 길은 ‘화목케 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합니다. 그저 인간적으로 자신을 억누르고 참고 견기는 것만으로는 상처를 더 깊게 할 뿐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용서와 화해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형제를 실족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찢으면서까지 지켜야 할 숭고한 가치는 없습니다.

6주차 : 소명

소명에 붙들린 삶
소명자의 정체성
소명과 섬김의 모범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명자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소명자
세상을 회복시키는 소명자
소그룹 6과 :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소명자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