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o in Deum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사도신경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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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앙은 무엇인가 2. 그리스도인이란 3. 신경은 무엇인가 4. 신조의 목적은 무엇인가 5. 고백해야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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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잘 지냈나요? 여러분의 삶에 넘쳐났던 불협화음들을 어떻게 흘려보내며 왔는지 궁금하네요. 오늘부터 본격적인 순모임이 시작요. 그곳에서도 함께 나누면서 더 풍성한 은혜와 교제가 가득하기를 바래요.
사실 지난 주 봄 말씀축제를 끝내고 하루 이틀 정도 멍해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그 5번의 말씀축제에 푹 빠져있었던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3주를 쉬고 설교를 했었기 때문인지, 오늘도 설교를 제가 해야한다는 사실도 잊고 멍하게 있었어요.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설교를 준비하는데 자꾸 제 마음 속에 ‘사도신경'이 떠오르는거에요.
부산에서 사역을 할 때 담임목사님께서 사도신경으로 설교를 하셨던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저는 정말 충격을 받았거든요. 사도신경. 진짜 주문처럼 외워왔던 이 사도신경을 하나씩 살펴보며 말씀을 듣다보니 지금까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고백'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기회가 되면 꼭 내가 받았던 그 은혜. 사도신경을 나누어야겠다 마음을 먹었었어요.
근데 고난주간과 부활절도 앞두고 있는 지금 꼭 이 때 사도신경을 나누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집중적으로 기도를 했어요. 그렇게 기도하면 좀 응답해주시면 좋겠는데 아무런 대답도 안해주시더라구요. 하지만 계속해서 묵상하고 생각나게 하신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생각하며 묵상하고 연구하는데 아 또 즐겁고 은혜가 되더라구요. 제가 받은 은혜가 여러분에게 잘 흘러가기를 그리고 여러분에게 더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앙이란

오늘은 본격적으로 사도신경에 들어가기에 앞서, 사도신경은 무엇이고 왜 우리가 지금 이것을 매주 고백하고 있는지 또 그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려 합니다.
한가지 질문을 할까 하는데 스스로 잘 생각해 보세요. ‘신앙'이 뭘까요? ‘신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각자 신앙에 대한 정의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신앙을 이렇게 생각해요.
“배워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붙잡는 것"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론을 내려 붙잡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난 이것을 신뢰할 수 있어. 이것을 따를 수 있어. 라는 판단이 내려졌을 때
스스로 붙잡게 되는 것. 그것이 신앙 아닐까요?
저는 덮어놓고 믿는 것은 좋지 않다 생각해요. 여러분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것에 대해 의심해야 해요. 그래야 그것이 진짜 여러분의 신앙이 될 수 있어요. 덮어 놓고 믿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덮어 놓고 믿기만 하면 누군가 내가 믿는 예수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혹은 도전을 받게 되면 그것을 변증하는 것이 어려워요. 그렇기 때문에 덮어 놓고 믿는 것을 넘어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답을 찾아가야 해요.
여러분 사도신경. 신앙고백을 왜 해왔나요? 아마 저처럼 단순히 예배의 순서라서 해왔을 가능성이 높을거라 생각해요. 이 사도신경. 신앙고백은 정말 단순한 것이 아니에요. 정말 여러분의 믿음. 그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거든요. 여러분의 신앙.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은 단순하게 우연히 생긴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생각 외로 사도신경에 무심해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지내왔어요.
여러분은 꽤 오랜 시간동안 교회에서 여러 교역자님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어요. 믿음이라는 것은요. 확실하게 안다는 것이 전제되었을 때 더 단단해져요.
우리 솔직하게 이야기해볼까요.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고 있나요? 아니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라는 그 존재를 완벽하게 확실하게 알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해요. 우린 절대 하나님을 완벽하게 파악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확실하게 잘 알지 못하는 그분을 향해,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사도신경을 외워왔어요. 오늘도 했구요. 사도신경 이 신앙고백은요. 어렴풋이 대충 알거나 덮어놓고 믿는 것을 말하는 시간이 아니에요.
사도신경의 한구절 한구절은요. 하나님이 누구인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성령님이 누구인지!를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있어요. 짧게 지나가는 그 한 구절 한 구절 안에 정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요.
우리가 사도신경을 나누고 의미들을 파악하기 시작하면요. 그래서 이 사도신경이 예전부터 내려왔던 한 주술과 같은 구절이 아니라, 나의 선포가 된다면요.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에 대한 앎이 훨씬 더 깊어지고 커지게 될 거에요. 믿음은 정확하게 아는 지식 위에 단단하게 세워지거든요.
사도신경은 평생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려줄거에요.

그리스도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라고 하죠. 각자가 믿고 따르는 신에 따라 불자. 힌두인. 무슬림 등 그를 지칭하는 단어가 달라요.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에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드린 사람이죠.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드렸다. 바로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말하겠죠. 나의 주인이 예수님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이죠. 그 분이 정말 나의 주인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에게 충성을 하며 살아가야 해요. 하지만 예수님께 충성하며 살아가는 것은 절대 쉽지 않죠.
사도신경이 만들어지게 되었던 그 당시 배경을 잠시 설명하자면요. 그 때 사람들은 오직 한 분에게만 충성을 맹세하고, 그 분을 위해 살도록 강요 받았어요. 바로 로마 황제에요. 그들의 생명을 쥐고 있는 사람이 로마 황제였어요. 황제의 말 한마디면 나와 내 모든 가족들 그리고 나와 교류하지 않았던 친척들까지 다 죽었어요. 삶과 경제 그리고 문화의 중심은 오직 로마 황제였어요. 로마 황제가 싫어도 겉으로는 따르는 척을 해야 했어요.
모두가 로마 황제. 모두가 Yes. 하던 그 때에 “NO”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로마 황제를 따르지 않겠다! 라고 호기롭게 외치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따르지 않는다. 라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죽을 위협이 가득했음에도 “나는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 섬긴다.”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었어요.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든 가족 친척이 죽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이 때는 그 말 한마디의 여파가 엄청 컸어요.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사람들은 로마 황제가 아닌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선포했어요. 그냥 조용히 숨어서 맹세하면서 고백한게 아니에요. 당당하게 모두 앞에서 선포 했어요.
어떻게 선포를 했냐면 사도신경이면 좋겠지만, 그 전에 세례를 통해서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선포했어요. 정말 상당히 위험한 고백이에요. 감옥에 갇히거나 고난과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고 심하면 목이 땅에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고백이에요.
당시는 모두가 볼 수 있는 강에서 세례. 침례를 했어요. 정말 오픈 된 장소죠. 그 곳에서 그는 죽음을 무릎쓰고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님을 믿는다! 라는 고백을 했어요. 절대 쉬운 고백이 아니에요. 모두가 쳐다보는, 모두가 주목하는 그 순간 ‘로마 황제가 아닌’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모두 앞에서 선포하는거에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라 당당하게 선포했어요. 죽을 각오를 하고 고백했어요. 이렇게 고백한 사람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 것 같아요? 그들은 선포의 댓가를 치뤄야 했어요.
저는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녀는 그 고백 때문에 정말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신앙을 계속해서 고백했어요.
제가 인도에서 수업을 듣게 되었을 때에요. 특이하게 한달 동안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매 시간마다 갖더라구요. 그 때 한 여자 친구가 앞에 나왔어요. 일반적으로 자기 소개 하면 “안녕. 나는 누구야. 나는 어디에서 왔어" 등으로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이 친구의 첫 마디는 일반적이지 않았어요. 그녀의 첫 마디는 “안녕 나는 그리스도인이야.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 너희도 그 예수님을 믿었으면 좋겠어. 너희도 구원받기를 기도하고 있어.” 였어요.
순간 적막이 흘렀어요. 그리고 한 남자애가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어요. “다시는 예수에 대해 말하지 마라" 그런데 그 여자 친구는 그 다음 시간에도, 그 다음 날도 똑같이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소개했어요. 그럴 때마다 적막이 흘렀죠.
그리고 며칠 후 사건이 터졌어요. 수업을 들으러 교실을 가는데 한쪽이 너무 시끄러운거에요. 그 여자친구에게 소리를 질렀던 남자애와 다른 애들이 그 여자애를 한쪽에 몰아세워놓고 소리를 지르고 위협하며 때리고 있었어요. 아무도 말리지 않더라구요. 저는 보자마자 그 사이로 뛰어 들어갔어요. 그리고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왔어요. 그러면서 물어봤어요.
“너 이렇게 될줄 알았잖아. 그런데 왜 자꾸 그리스도인이라 말했어? 한번쯤 안해도 되잖아.”
“나는 계속해서 말할거야. 나는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지만 저 친구들은 아니잖아. 저 친구들도 예수님을 만나야 해. 구원 받아야 해.”
모두의 앞에서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거에요.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고 상처 받을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신앙을 고백했어요.
그들의 앞에는 가시밭길 밖에 없어요. 여러분의 삶에 불협화음이 생겨나는 것처럼 이들의 삶도 똑같아요. 이제 편하게 살 수 없어요. 모두가 그 얼굴을 봤거든요. 모두가 그 사람의 집안을 알거든요. 이제 그들의 삶은 힘들어져요. 절대 안정적일 수 없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괴롭히고 지켜보고 그들이 믿는 예수에 대해 의심해요. 끊임없이 도전해요.
그것처럼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완전히 부셔버리려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괴롭혀요.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을뿐인데 그들의 삶이 더 힘들어졌어요. 그 믿음을 지키는 것이 정말 어려워졌어요. 그런 삶이 계속 지속되던 중 지도자들이 모여, 사도신경을 만들어가기 시작해요.

사도신경

그럼 사도신경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도신경은 ‘나는 믿는다'라는 12개의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구원의 계획을 세우신 성부 하나님을 믿는다! 는 고백 한가지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성자 예수님을 믿는다! 는 고백 여섯가지
구원을 완성 시켜주신 성령 하나님을 믿는다! 는 고백 한가지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믿음의 고백 네가지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관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정말 탁월하게 요약해둔 것이 바로 사도신경이에요. 당시 그리스도를 믿어 자신이 믿던 신을 버리고 개종한 사람들은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새가족 교육을 받고 나면 사도신경을 암송했어요. 단순하게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요. 하나님의 질문에 대한 ‘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진거에요.
여러분 사도신경 처음에 어떻게 외웠어요? 저는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불러주시면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외웠던 것 같거든요? 아마 여러분도 비슷하게 외웠겠죠? 뜻도 잘 모른체로 일단 외우고 봤을거에요. 교회오면 다들 눈감고 외우는데 나는 못외워서 뻘쭘하고 하니까 전능하사 asd12fasfa9f 아멘. 하다가 외운 사람도 있을거구요.
이 당시 사람들은 사도신경을 그렇게 외우지 않았어요. 그 뜻을 알아가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외워갔어요. 이런식으로 사도신경을 외웠어요.
“하나님을 누구라 믿습니까?” “나를 구원하려 계획을 세우신 성부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누구라 믿습니까?” “구원의 길을 열러주러 오신 성자 예수님을 믿습니다."
“성령님을 누구라 믿습니까?” “구원을 완성 시켜주신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하며 사도신경을 외웠어요. 그 후 그들은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이 질문과 고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 것이죠. 세례를 받을 때 이 내용들을 고백했어요. 그러니 이 고백은 그들에게 있어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돌아보도록 하는 역할을 한 것이죠.
사실 사도신경과 똑같이 기록된 내용은 성경에 없어요. 하지만 사도신경은 성경적인 가르침의 주된 요점들을 요약하고 꾹꾹 눌러서 함축 시켜놓았어요. 여러분 만약 성경에 대해 잘 알고 싶고, 성경의 흐름과 내용들을 잘 알고 싶다면요. 사도신경을 잘 봐야 해요. 주술처럼 외우지 말고 사도신경의 내용들을 잘 봐야 해요.
사도신경을 보물지도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여러분에게 보물지도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진짜 보물이 숨겨져 있는 보물지도. 100%에요. 그럼 그 보물을 캐내기 위해서 작업을 하겠죠.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빚을 낼것이고, 진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정보를 공유해서 같이 그 보물을 캐러 가겠죠? 사도신경이 그래요. 100% 아니 10000% 얻을 수 있는 은혜와 복이 숨겨져 있어요. 아직 그 누구도 넘어가보지 않은 지도에요.
보물지도를 가진 사람은 그 것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거에요. 도전할거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사도신경을 하나씩 알아보는 시간은요. 여러분에게 있어 미지의 영역에 발을 내딛는 것과 같은 희열과 깨달음을 줄거에요. 여러분의 신앙에 있어 정말 유익한 도전이 될 것이에요.

신조의 목적

사도신경이 만들어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어요.
1. 우리가 믿는 이 하나님. 기독교 신앙을 간결하게 요약하기 위해서에요.
여러분의 마음 속에 계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하게 표현하고 고백하기 위해서에요. 각자가 생각하고 느끼고 만나는 하나님의 모습이 달라요. 그래서 우리는 한 하나님을 믿지만 다양한 삶의 고백과 간증이 나오는거에요.
만약 하나님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다 붙잡고 한사람 한사람 물어본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 소개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누구냐 묻는다면 아마 우리 대부분은 이렇게 대답할거에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음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어. 그래서 내 죄를 용서해주신 분이야.. 등?
이렇게 비슷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이유는요. 여러분도 몰랐겠지만 사도신경 때문이에요.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자리잡은 신앙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사도신경이거든요. 우리가 믿는 신앙의 중요한 점을 적절하게 요약한 것을 매주 외웠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비슷한 대답을 할 수 있는거에요.
만약 우리가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았다면 복음에 대해 간결하게 정리된 이 것을 외우지 않았다면요. 사람들이 물어보았을 때 어떻게 대답했을 것 같아요? 질문자는 원하는 답을 찾지 못했을 거에요.
제가 인도에서 여행을 하던 중 우체국을 찾아가야 했어요. 그래서 지나가던 착해보이는 아저씨에게 우체국 어떻게 가냐고 물어봤어요. 그 아저씨가 저한테 우체국 가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는데요. 갑자기 동네사람들이 몰려 들었어요. 7-8명정도 되는 사람이 우체국 가는 방법을 서로 알려주겠다고 하는데요. 그들이 가르치는 방향이 다 달라요. 그들이 틀린게 아니에요. 다만 각자가 우체국을 찾아가는 길과 방법이 달랐던거에요.
사도신경은 우리에게 그리고 처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믿는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하고 아주 간결하게 알려주는 거에요. 그래서 다 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비슷한 똑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죠.
2. 이단 때문이에요.
지금도 그렇지만 이 당시에도 이단이 진짜 엄청 많았어요. 원래 진짜가 있으면 가짜가 있는 법이잖아요. 진짜를 이기기 위해 가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잖아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단들도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사람들의 믿음을 뒤흔드는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했어요. 그래서 사도신경이 만들어졌어요. 온전치 못한 형태. 그러니까 성경을 막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 가르치는 속에 빠져 정신을 못차리던 사람들에게, 너가 믿어야 하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분이야! 라는 것을 사도신경을 통해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만들어진 이 사도신경이 계속 몇세기동안 내려왔어요. 지금 우리가 외우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후손들도 사도신경을 통해 하나님을 고백하게 될거에요. 바로 믿음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죠. 2천년전에 갑자기 나타나 3년간 사역을 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은 한 위대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예수님. 그 분에 대한 이야기와 믿음의 고백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거에요.
3. 진짜 믿음을 갖기 위해서에요.
이 때나 지금이나 ’믿는다’라는 말은 같은 의미를 갖고 있어요. 무엇인가를 믿는다. 그것은 같은 것. 동일한 무엇인가를 믿는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을 의미해요.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라 믿어요. 구세주로 받아드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이렇게 모여 한 분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있게 된거에요.
우리는 지금 여기에 모여서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을 확인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확인하고 있는거에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을, 그 믿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나요? 어떤 믿음을 이 시간 고백하고 있어요?
쉬어랏
사도신경은요. 내가 믿는 이 분에 대한 나의 신앙이 올바른 것인지 혹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확인해주는 역할을 해요. 여러분은 사도신경을 통해 매주 매주 나의 믿음을 확인하고 있었어요. ‘내가 믿습니다!’라 시작하는 이 고백을 나는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저 허공에다 대고 중얼중얼 거렸나요? 믿음은요. 소리내어 나의 입으로 시인 고백하는 것이에요.
로마서 10장 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아멘.”
이제 오늘부터 우리 사도신경을 의미없이 외우지 말아요. 나의 믿음을 소리내어 고백하고 선포한다! 생각하며 외쳐야 해요.
사도신경이 만들어진 이유도 알았고, 또 이것이 당시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당시 사람들은 새가족 교육 후 그리고 세례를 받기 전에 외웠다고 쳐요. 그럼 우리는 왜 지금 외우고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들 중 아마 대부분이 새가족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을거에요. 저도 받아본 적 없어요. 그럼 이건 패스. 세례 받기 전에 사도신경 외워서 검사 받은 사람? 없죠. 그럼 이것도 패스.
사도신경을 이전에는 이렇게 활용했는데 지금은 새가족교육 혹은 세례를 위해 외우고 있지 않죠. 그럼 우리는 사도신경 안외워도 되는 것 아닌가요? 목적과 다르잖아요. 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사도신경이 생긴 목적이 많이 달라졌다 해도 바뀌지 않는 것이 하나 있어요. 그것은 바로 사도신경이 담고 있는 뜻. 메시지에요.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고백하는 이유

1. 하나되기 위해서에요.
저와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에요. 각자 다르게 살아가던 우리를 한 공동체로 한 가족으로 불러주신 그 사랑 앞에. 지금도 여전히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으나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신앙을 고백해야 해요.
저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가 무엇이겠어요. 서로를 한번 돌아봐주세요. 얼굴을 보고 눈웃음을 한번 지어주세요. 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에요. 서로 돌아보고 사랑해주고 선행을 격려하는 것 그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함을 표현하는 최소한의 도리에요.
그렇게 서로 돌아보고 사랑하며 격려하는 저와 여러분이 하는 이 신앙 고백은요. 놀랍게도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작년에 부산에 있었고 여러분은 인천에 있었어요. 우리는 서로 모르던 사이였어요. 하지만 저와 여러분은 이미 한 가족이었어요. 상황과 여건 삶의 자리가 완전히 다른 저와 여러분이었지만요. 이미 한 가족이었어요.
오늘 본문 5절을 볼까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 마음을 품으래요. 이 마음은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어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거에요. 하나가 되었으니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함께 생활하라. 서로를 사랑하고 섬겨주며 최선을 다한다는 그 마음을 기억하라! 라는 것이에요.
각자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우린 같은 신앙을 고백해왔거든요. 여기에 새로온 청년들 그리고 학교를 인천으로 오게 되면서 온 청년들도 마찬가지에요. 우린 이미 같은 신앙을 고백해왔던 한 공동체 한 가족이었어요.
2. 우리가 고백해야 하는 이유는 영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에요.
지난 주 제가 나눴던 말씀 혹시 기억하나요? 우리가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록 그리고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여러분에게 수많은 불협화음이 일어날 것이라 나눴던 것 기억하죠.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고, 내가 믿는 것을 강하게 선포하면 할수록, 우리가 그 의미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이요. 우리 공동체에도 불협화음이 울릴거에요.
공동체에 울리는 불협화음은요. 우리 개개인이 듣고 있는 것과 차원이 달라요.
여러분이 그 소리가 들려도 버티고 버티면서, 그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삶의 화음으로 바꿔주실 날을 기다리면서 버티면요. 마귀는 바로 전략을 바꿀거에요. 바로 이 공동체를 뒤흔드는거에요.
우리가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모였을 때 우리를 건들거에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게 만들도록 할거에요. 더 심하게 여러분을 우리 가온누리를 괴롭히고 건드리고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 낼거에요.
코로나 초기에 정말 뜨겁게 대한민국을 달궜던 한 이단이 있었어요. 다 알고 있죠? 그 이단의 전략이 바로 공동체를 흔드는 것이었어요.
산 옮기기라는 그들의 전략이 있어요. 조용히 공동체에 들어와요. 그래서 열심히 해서 리더의 자리에 올라요. 그리고 나면 기존 공동체의 리더 혹은 교역자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시작해요. 그리고 공동체를 흔들어요. 자신의 사람들도 채우고 기존의 사람들도 포섭하고 포섭되지 않은 사람들은 다 쫓아내요. 그리고 그 공동체. 교회를 자신들이 먹어요. 그게 산옮기기에요.
마귀의 전략이 이래요. 개개인이 넘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으면 공동체로 시선을 돌려요. 그리고 그 공동체를 흔들어요. 임원들을 순장들을 순원들을 잡고 흔들어요. 찬양팀이 찬양에 집중하지 못하게 해요. 눈치채지 못하게 속에서 썩어 들어가게 만들어요.
여러분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요. 사도신경. 동일한 우리의 고백은요. 이러한 영적 싸움을 이기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우리는요. 우리를 미혹하고 공격하는 악한 것들에 대해 그리고 우리 공동체를 썩어가도록 하는 그 마귀의 전략에 맞서 싸울 힘이 없어요. 싸워 이길 수 없어요. 하지만 사도신경은 우리에게 싸울 힘을 넘어 이길 수 있는 힘을 줘요.
내가 믿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단호하게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이 영적 싸움의 승리를 보장해준다면요. 당연히 우리는 크고 강하고 분명한 어조로 이 것을 고백해야 해요.
초대교회 때부터 온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혔어요. 박해했어요. 교회 공동체를 없애 버리기 위해 무수히 많은 괴롭힘이 있었어요. 그 때마다 교회와 성도들은 이 신앙 고백으로 모든 고난과 위협을 견디고 이겨냈어요. 내가 믿는 신앙의 본질을 지켜 왔어요.
6-8절이에요. 우리 함께 읽을까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가지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아멘"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본질이에요. 이 신앙 고백이 있었기에, 이천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교회와 성도는 변함없이 동일한 믿음을 고백함으로 내 신앙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에요.
3. 구원을 주고자 행하신 일을 믿는 것
신앙 고백은요. 단순히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에요.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이 나를 위해 구원 계획을 세우셨고,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나라는 사람 앞에 서서 이제 너는 자유야! 너는 나와 함께 있을거야! 라고 외쳐주신 처절한 과정을 이제는 내가 알아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셨을지를 압니다! 라고 고백하는 시간이에요.
이 구원은 내 힘으로 이루어 내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구원받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내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에요.
나를 구원해주신 그 과정이 얼마나 처절하고 힘들었는지, 그렇게 힘들게 나를 구원해주셨는데 여전히 나는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걸 고백하는 것이 바로 신앙고백이에요.
사도신경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은 “너가 믿는 것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나는 성자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여 외웠다고 이야기 했잖아요?
우리가 매주 중얼중얼 사도신경을 외우는 그 시간이요. 사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질문하고 여러분의 고백을 듣고 있는 시간이었던 거에요. 주술처럼 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하며, 내가 진짜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선포하는 시간이었다는거죠.
쉬어랏
우리의 신앙 생활은 앞으로 더 험난하고 힘들어질거에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지금부터 각오해야 해요. 내 믿음을 우리의 믿음을 더 강하고 견고하게 반드시 세워야 해요. 쉬어랏
하지만 믿음을 강하고 견고하게 세우는 것 어렵지 않아요.
이제부터 사도신경을 지금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외우면 돼요. 선포하면서 외우면 돼요. 막 소리지르면서 전능하사 천지를!! 이렇게 외우라는게 아니에요. 작게 읖조리더라도 진심을 담아 마음을 담아 선포하면 돼요.
나는 나를 위해 구원 계획을 세우신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나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그리고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나를 위해 구원을 완성하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 우리 가온누리 공동체에 있어야 해요. 이제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신앙 고백을 할 때 대충 의미 없이 외우면 안돼요. 알겠죠? 마음을 담아 진심을 담아 한 문장 한 문장을 고백해야 해요.
다음 주부터 우리는 사도신경의 12개의 고백을 하나씩 살펴보게 될거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사도신경 이 신앙 고백의 의미를 하나 하나 알아갈수록 저와 여러분의 고백에 변화가 생겨나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단순히 주술처럼 빨리 외우고 해치우는 고백문. 예배의 한 순서니까 따라 외우는 고백문이 더 이상 아니기를 간절히 소망해요.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Credo in Deum. 나는 믿는다! 하나님을! Credo in Deum! 이라고 나의 신앙을. 나의 믿음을 당당하게 선포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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