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늦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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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역사하시는 방식은 우리의 머리와 가슴 속에 다 담기지 않습니다. 언제나 ‘의외성'이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는 그 시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은혜야 적절한 시기에 딱 맞게 주시는 경우가 많게 그래야 하죠.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는 그 시기 조차도 참 특별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1. 참 사랑하는 3남매.
1. 참 사랑하는 3남매.
베다니에 있는 삼남매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 가운데 나옵니다.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상황을 보면 아마도 부모님들은 안 계셨던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형편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던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모임 장소를 제공하고, 접대도 하고 그랬겠죠. 그리고 마리아가 깨뜨렸던 향유도 300 데나리온에 이르렀던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일단 고맙기도 하고, 또 그 집에서 여러번 모임을 했으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참 가깝고 사정을 잘 아는 집안이었을 것입니다. 3절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주님을 잘 알고 사랑하는 자면 어떻게 역사하실까? 다른 사람말고 나에게 적용시켜보자. 하나님 앞에 서운한 감정이 드는 이유. 그리고 거기에 대하여 생각나는 것들.뭔가 드린 만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기브앤 테이크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의 기도에 응답하시지만, 그 방법까지 내가 생각하는대로는 아니다. 왜? 내가 최상의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2. 일부러 지체하셨다.
2. 일부러 지체하셨다.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자 그러면, 이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속히 가지 않으셨다.
요한복음 11:5–6 (nkrv)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듣고 나서 기다리셨다.
예수께서 사랑하셨는데, 그래서 이틀을 더 머무셨다. 이 삼남매가 있는 곳이 예수가 계시던 곳이 아니다.
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베다니에서 30km 가깝지 않다.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에 도착.
무시하시는 것도 아니고, 아프다고 사람 보낼 정도면 위독한 것인데, 일부러 머물러 계셨다.
제자들은 아마 아픈 사람 살리려다 죽게 생겼으니까, 기다리신다고 생각한 것 같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 내가 예수가 되려고 해서는 안된다. 사람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속히 도와야 한다. 그럼에도 할 수 없을 때 주님이 역사하시는거지, 내가 늦추면 안된다는 거다. 그건 사람의 영광을 위한 거다.
3. 사람의 절망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기회.
3. 사람의 절망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기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내 계획과 생각대로 하나님이 역사 하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 거다.
낮이 12시간이나 있음: 아직 주께서 일하실 때이고, 그래서 지금 가서 잡혀 죽지는 않는다는 이야기. 베다니는 예루살렘에 바로 붙어 있기 때문에 제자들의 염려는 상당히 타당하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일하시는데 막힘이 있겠느냐? 아직은 아니다 그 이야기다.
정말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는데 참여자로 부르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주님의 역사는 조금 힘내면 될 것 같을 때, 약간 뒤에서 밀어 주시는 그런 도움이 아니다. 소망이 끊어졌을 때 도리어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시는 분이다.
그것을 믿을 때, 무엇보다 우리가 예수가 부활의 주이심을 믿을 때, 나머지도 믿을 수 있다.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부활의 주, 생명의 주
오늘 기다리시고 지체하신 이유. 부활, 생명을 보여주시려고.
부활에는 조건이 있다. 죽어야 한다. 죽지않고 부활할 수는 없다.
물론 우리가 이것을 흉내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났을 때에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 잊지 말자.
14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