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복음

창세기 15-1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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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시는 분들에게 ‘믿음으로 사세요’하고 인사합시다.
네 감사합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걱정과 근심이 많아집니다. 전쟁으로 인해 당사자들과 함께 온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엄청난 산불로 많은 분들이 고생하고 계십니다. 코로나로 우리들 역시도 힘든 시간들을 보냅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간들입니다. 이런 상황에도 다음 주일에는 이런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헌금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교단에서 우크라이나와 산불 피해자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음 주일에 마음을 모아서 특별 재난 헌금을 드리기로 당회가 결정을 했습니다. 모두가 어렵지만 마음을 함께 하는 차원에서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코로나 방역팀의 사역은 잠정적으로 중단을 합니다. 오늘 변화를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QR 체크는 주일 예배 출석자들을 파악하는 일을 위해 더지속을 하려고 합니다. 곧 교구 사역이 정비되면 조정을 할 것입니다만 결석하신 분들을 확인하고 돌아보기 위한 일이니 양해하시고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오후 예배와 주일 학교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금요 기도회는 셋째 주일부터 시작하면 적절할 것으로 보입니다. 4월 모두가 깨어나는 계절에 힘을 내주시고, 성경 공부에도 다 함께 지원하셔서 말씀을 배우는 복된 시간들을 가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S2. 주제 제시

오늘은 아브람에게 약속의 믿음을 주시고, 이를 의로 여기시는 칭의의 복음에 대해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롯 구출 전쟁을 마무리한 아브람은 심각한 두려움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앞의 내용들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롯이 전혀 언급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롯이 구출된 것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나중에 19장에 가서야 비로소 등장합니다. 아마도 이는 롯이 아브람을 떠나 다시 소돔으로 돌아가 버렸기에 앞의 구출 전쟁에서 롯은 전혀 언급의 필요성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롯의 행동은 아브람에게 심각한 두려움을 일으켰습니다. 물론 아브람은 다시 힘을 모아 쳐들어올 그돌라오멜을 두려워했을 수도 있고, 강력한 군사력을 보임에 따라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경계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을 두렵게 만든 것은 상속자가 없는 그의 형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나이는 많아져 가는데 자신을 이어받을 아들이 없는 이 상황이 그를 매우 두렵고 혼란케 했을 것입니다. 이런 아브람을 선제적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오늘 본문의 주체이십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15장 1절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두려움에 빠진 아브람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의 방패시고, 지극히 큰 상급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 상급이라는 말씀은 ‘일을 하고 받는 보수’ 혹은 ‘보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브람이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의 보상이 되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을 하시며 두려움에 젖어 있는 아브람을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아브람은 위로를 얻고 그 마음에 묻어 둔 말들을 쏟아 놓습니다. 2, 3절입니다.
창세기 15장 2, 3절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아브람은 상속자가 없는, 그래서 집에서 기른 종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여겨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합니다. 특별히 그는 ‘보소서’라는 뜻의 ‘힌네’라는 말을 넣어서 ‘여호와여, 보소서, 저의 처지가 너무 딱합니다’ 하고 하소연합니다. 그의 이 두려움을 보신 하나님도 ‘봐라’ 하는 뜻의 ‘힌네’를 함께 사용하시면서 아브람을 안타깝게 여기십니다. 4, 5절을 봅시다.
창세기 15장 4, 5절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상속자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자손들이 그에게서 나올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브람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신 하나님은 이런 큰 계획을 이미 말씀하셨고, 지금 두려움에 빠져 있는 아브람에게 다시 그 약속을 확언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람은 이 약속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생겨납니다. 6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15장 6절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믿음을 주셔서 그의 마음의 모든 불안을 해소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마음에 드러난 이 믿음을 그의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통해 죄인이 의로워지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 외에 없다고 선언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6절의 말씀을 봅시다.
갈라디아서 3장 6절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은 최후의 심판의 날에 그가 하나님께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의로 ‘여기셨다’는 뜻의 ‘하샤브’라는 동사는 최후 심판에서 하나님께서 내리실 선고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믿음을 가진 이 시점을 영원한 날에 심판받지 않는 의를 가진날로 주셨던 것입니다.

S3. 주제 제시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브람이 지금까지 고향과 친척 집을 떠나 하나님께 순종해 왔는데 그런 것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브람의 의가 아닙니까? 하는 것입니다. 벌써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렇게 살아온 세월이 제법 되었습니다. 그 안에 잘못한 것도 있지만 순종한 일들도 많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의로 여김을 받는 데 아무런 공헌을 안 한 것인가요? 그리고 더하여 지금 이후의 순종의 삶도 있을 것인데 그런 것들은 의로 여김을 받는 데 아무런 공헌을 안하는 것입니까? 아들을 죽이려고 모리아 산으로 데려가는 그런 엄청난 순종이 있을 것인데 그것이 아브람을 의롭게 여길 근거가 못됩니까? 왜 지금, 이 시간에 아브람이 의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하는 것입니다.

J1. 하나님의 마음, 속성, 그리고 믿음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거룩과 의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참지식을 말합니다. 물론 이 말은 하나님과 동일한 신성을 가졌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은 온전한 피조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은 이런 하나님의 형상을 부패하게 했고 더이상 하나님의 거룩과 의를 유지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삶도 상실하게 했습니다.
이런 인간의 부패를 가장 슬퍼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셨기에 하나님은 영원 전에 작정하신 대로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 된 자기 자녀의 삶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은 도저히 아버지의 형상을 자력으로는 회복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보내셔서 모든 죄의 값을 대신하게 하시고 아들을 믿는 믿음을 주셔서 창세 전에 이미 택하신 자들이 아들의 의를 소유하게 하신 것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이 땅에 아버지의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은 아버지와 동일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는 죄성이 없으십니다. 그는 아담의 후손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죄가 없으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에게 주셨던 모든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는 율법을 다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죄없으시고 모든 일에 아버지께 순종하신 온전한 의를 소유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더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심으로 아담 아래에서 태어난 모든 이들의 죄를 대신하셨습니다. 이미 인간으로 사시면서 행하셨던 그 모든 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순종의 의를 더하여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사랑을 믿는 믿음을 가진 모든 택하신 자들에게 의의 새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도는 심판주 앞에서 의로운 자로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W1. 예수님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오셔서 택함받은 자들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아브람은 아들이 없는 육신의 삶을 염려하다가 불안과 두려움에 빠집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이미 약속하셨고, 그래서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왔지만, 어느 날 그의 마음을 찾아온 세상의 염려는 그를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람을 하나님은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약속의 말씀을 다시 상기시켜 주십니다. 하나님만이 그의 삶의 방패이시고, 하나님만이 지극히 크신 상급임을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그가 마음으로 염려하고 있는 상속자가 그의 삶을 지켜주는 방패가 아니고, 그의 상급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이 아브람에게 주시는 분이시지만, 그 자손들이 아브람의 방패가 되거나 상급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상급은 바로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자신의 아들을 통해 죄인인 나를 구원해 주시는 사랑과 자비의 아버지 임을 믿는 믿음으로 인생의 보장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W2. 참된 의는 오직 아버지의 사랑(약속)을 믿는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지금까지 순종하고 앞으로 행하게 될 순종의 삶은 귀한 것이고 훌륭한 것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의를 회복하여 거룩하게 사는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삶이고 복된 열매입니다. 그러나 죄인을 의로운 자로 받아주시는 은혜는 오직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믿음 외에는 아무것으로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 그의 삶에 지금 믿음을 주십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아브람의 순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 진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베드로 전서 1장 9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아브람이 의로운 자가 되는 길은 육신의 상속자를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 믿음을 소유할 때 이를 통로로 해서 아담 안에서 잃어버린 영의 삶이 구원을 얻고 회복을 누리게 됩니다. 마지막 날 참된 구원을 얻는 삶을 얻는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오직 믿음으로만 성도를 구원하시고 세상을 이기게 하십니다.

타락한 아담의 죄성에서 구원을 얻어 의로운 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오직 믿음 뿐입니다. 아브람의 순종이 그를 의롭게 하는 능력이었다면 굳이 오늘 이런 말씀을 아브람에게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믿음을 주심으로써 아들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주시는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과 자비함을 알게 하셨습니다. 성도의 삶에는 바로 이 믿음이 주어지는 은혜의 때가 있습니다. 이미 작정하시고 부르셔서 은혜의 길에 서게 하셨지만, 참된 믿음을 모르고 지내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통해 나를 구원하시는 그 사랑을 깨닫게 하시는 그날, 우리는 아버지의 그 구원의 사랑을 깨닫고 의로운 자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T1. 아브람은 믿음으로 주신 의로 인해 온 세상의 조상이 되는 복을 누립니다.

아브람이 단순히 아들을 바라고 상속자를 바랐을 때는 상속자 없는 자신의 현재가 두려움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삶으로도 이길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아브람을 엄습하여 삼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아브람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단지 아들을 많이 주겠다는 약속은 좁혀진 은혜이고, 넓게 보면 내가 너의 방패이고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은혜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죽게 하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순간부터 아브람 안에 부어진 새로운 은혜이고 놀라운 능력입니다. 이는 아브람을 구원받을 모든 열방의 조상이 되게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믿음을 가진 우리 모두도 비록 이방인이지만 아브람의 자손이 되어 그에게 주신 이 놀라운 믿음으로 얻는 의를 소유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T2. 세상은 복음을 거부하고 아브람이 얻은 의를 거절합니다.

세상은 자발적으로 아버지를 거부합니다. 택한 자들을 위해 영원부터 아들을 예비하신 아버지의 작정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유로운 자들이고 우리에게 능력이 있는데 왜 하나님께 빚지고 사느냐고 생각합니다. 내 힘으로 의를 이루면 되고 내 능력으로 바르게 살면 되고 힘에 붙이면 하나님이 조금 도와주면 되는 데 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내 삶을 작정하고 인도하시는가 하고 하나님을 거절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자신을 자랑하고 자기의 의를 높이고 성급하게 자신을 위대하다 선언하고 남을 비웃고 이기려는 자들이 됩니다. 성도 안에서 교만하고 자기를 높이는 이들은 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T3. 그러나 참된 성도는 믿음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새 삶을 살게 됩니다.

믿음은 아버지의 사랑이 주신 은혜의 수단이자 도구입니다. 내가 의로워지고 영혼이 구원받는 크신 능력은 믿음을 통해 주신 아버지의 사랑의 힘입니다. 믿음 자체가 구원을 얻게하는 능력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 안에서 성도는 믿음을 얻어 땅의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새 삶을 살게 됩니다. 심판 날에 주실 의를 묵상하며 이 땅에서는 절제하여 죄성을 이기고 겸손히 주님을 본받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을 가진 자들은 더이상 연약한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선포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25절의 말씀을 봅시다.
갈라디아서 3장 25절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믿음이 오면 자신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오면 내 삶의 모든 것은 다 은혜입니다. 내가 순종하며 자발적으로 의롭게 살아가면서도 그 모든 것이 은혜인 줄 아는 장성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겸손해 지고 더 낮아지는 것입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도 아버지께서 주신 믿음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히 소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아버지의 사랑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말씀을 깊이 공부하고 내 속에 주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중보자로 오신 구속주 예수님 안에서 주신 내 삶에 주신 놀라운 회복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해 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교회 봉사나 섬기는 일은 그 자체가 우선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믿음을 대신할 때 우리는 심각한 영적 위기에 봉착합니다. 두려움이 떠나지 않고 불안과 불만족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섬기면서도 불안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이 모든 불안과 불만족에 대한 우리의 해답은 오직 아버지의 사랑의 약속이고 이를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믿을 때 우리는 의로운 자가 되고 삶에 있는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아브람처럼 믿음 안에서 내 삶의 방패시고 지극히 크신 아버지를 믿고 알 때 평안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아버지의 사랑을 마음 깊이 믿고 붙드시기 바랍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아는 믿음을 내 마음에 알게 해 주시기를 간구 합시다. 하나님께서 내 삶의 방패가 되시고 나의 지극히 크신 보상이 되시는 분이심을 깨닫고 아는 믿음을 가장 우선으로 구합시다. 아브람도 부르심 안에서 살아왔지만 부르심을 넘어 마침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주시고,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 시간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날을 깊이 구해야 합니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면 그 은혜 안에서 죄를 이기는 새로운 삶을 위해 간구합시다.
성도 여러분, 죄인인 우리는 온전한 믿음을 통해서만 참된 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의롭다 여김을 받는 자녀가 됩니다. 그 은혜 안에 있을 때, 오늘이 불안이 아니라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이 계절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참 믿음을 구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더하여 그 은혜로 영생을 얻어 참된 삶의 거룩한 열매들을 맺어 이를 통해 복음을 널리 증거하는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찬양

293장 주의 사랑 비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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