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앞에 나아갈 때

레위기16장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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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앞에 나아갈때/ 죽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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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 죽은 후에

여호와 앞에 나아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무엇을 기대 할 수 있을까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 내시고 시내산 앞 광야에서 성막을 짓게 하시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법과 죄 용서 받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즉 죄를 용서받는 제사를 드리는 역할을 모세의 형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최초의 목사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 죽음을 당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러 가서 죽은것입니다.
나쁜짓 하다가 죽은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하나님 명령하신 방식대로 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예배를 드리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을 그만큼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셨지만 동네 수퍼마켓 드나들듯이 아무렇게나 슬리퍼 신고 자다 일어나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죄인인 우리 모습 그대로 우리 맘대로 하나님 앞에 나가면 모두 죽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죄 용서 받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일년에 한번 7월10일 대 제사장은 온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죄 용서 받는 제사를 드립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자세하게 알려주십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하나님을 말씀을 순종하는것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순종 없이 믿음 없이 드리는 예배는 위험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기전 마지막 기록된 성경 말라기에 보면 믿음없이 순종없이 드리는 예배에 대해 하나님이 어떤 마음이셨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말라기 1:6–14 NKSV
“아들은 아버지를 공경하고 종은 제 주인을 두려워하는 법인데, 내가 너희 아버지라고 해서 너희가 나를 공경하기라도 하였느냐? 내가 너희 주인이라고 해서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기라도 하였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제사장들아, 너희가 바로 내 이름을 멸시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언제 주님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 하고 되묻는다. 너희는 내 제단에 더러운 빵을 바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너희는, ‘우리가 언제 제단을 더럽혔습니까?’ 하고 되묻는다. 너희는 나 주에게 아무렇게나 상을 차려 주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눈먼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그런 것들을 너희 총독에게 바쳐 보아라. 그가 너희를 반가워하겠느냐? 너희를 좋게 보겠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가 하나님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간구하여 보아라. 이것이 너희가 으레 하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너희를 좋게 보시겠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 가운데서라도 누가 성전 문을 닫아 걸어서, 너희들이 내 제단에 헛된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면 좋겠다! 나는 너희들이 싫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가 바치는 제물도 이제 나는 받지 않겠다. 해가 뜨는 곳으로부터 해가 지는 곳까지, 내 이름이 이방 민족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을 것이다. 곳곳마다,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바칠 것이다. 내 이름이 이방 민족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런데 너희는, ‘주님께 차려 드리는 상쯤은 더러워져도 괜찮아!’ 하면서, 너희들도 싫어하는 음식을 제물이라고 그 위에 바치니, 너희는 지금 내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 너희는 또 ‘이 얼마나 싫증나는 일인가!’ 하고 말하며, 제물을 멸시한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가 훔쳤거나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제물이라고 가지고 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서 달갑게 받겠느냐? 나 주가 말한다. 자기 짐승 떼 가운데 좋은 수컷이 있어서, 그것을 바치기로 맹세하고서도, 흠 있는 것으로 바치며 속이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나는 큰 임금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이방 민족들까지도 내 이름을 두려워한다.”
오늘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가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드리는 예배를 보며 하나님께서는 성전문을 닫고 싶을까요 아니면 열어두고 싶으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아론에게 말씀하십니다.

2.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하는 친구가 여러분에게 우리집에 놀러와도 되 근데 아무때나 오면 안되. 니가 오고싶을 때 아무때나 오고 그러면 안되! 라고 말했다면 여러분 기분이 어떨까요?
거절감이 들지 않을까요?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기다리기 힘든 세상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배달문화가 익숙해져서 배민으로 결제하면 언제든 한시간 안에 음식이 배달되고 보고 싶은 영상은 언제든 손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검색하면 거의 찾지 못할 것이 없는 세상입니다. 즉 우리는 기다리기 힘듭니다. 돈을 내며 바로 찾아오는 서비스에 익숙해져있습니다. 심지어 공부 지식도 학원에 돈을 내면 내가 살 수 있는 개념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되는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내가 기도 했는데, 내가 교회 나왔는데, 내가 예배드렸는데 내가 간절히 바랬는데 하나님이 별 반응이 없는것 같고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것 같으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합니다.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것을 이루어주는 하나님이일때만 하나님이 중요한것입니다. 내가 원할때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는 맘은 내가 원할때 내게 필요한 일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시간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바로 그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 때나'를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배달앱이 아닙니다. 인터넷 유투브가 아닙니다. 스마트 폰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정하신 방법에 순종하여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까다롭게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일종의 서비스업체로 생각하는것과 다름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분이신지 바로 알아야합니다.
온 우주와 우리를 만드시고 생명을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까다로워 보이지만 사실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기다리게 만드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순종하라고 요구하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죽지 않도록

아무때나 들어오지 말라는 이유도 아론이 죽지않도록 하기위해서 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어 쫒겨난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관심없고 순종하기 싫어하고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하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와 함께 하실 수 없는 하나님앞에 죄의 모습 그대로 나가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죄인이 알 수 없고 정할 수 없습니다.
살인 죄를 저지른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이렇게 하면 내 죄는 없어지는 걸로 할게. 내가 뉘우쳤으니까 내 죄는 없는 걸로 하자. 라고 말하는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과 방법 그리고 때로는 거절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포함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가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사실은 우리의 죄로 인해 죽음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것은 우리 자신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소와 염소와 양의 피를 대신 흘리게 하신 이유도
우리를 죽이는걸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흠없는 짐승들의 죽음과 피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고통과 수치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시고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셔서 하나님께 죄의 대가를 치러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아론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것 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4.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주셨다고 하나님이 극장에 영화보러가듯이 편하게 가서 구경하고 예배 드려주는 존재가 되신것이 절대 아닙니다.
아론이 수송아지를 속죄물로 숫양을 번제물로 드리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지만 제물이 드려졌다고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상싱하던 지성소에 편안하게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곳이 된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세마포 속옷을 입어야 합니다. 화려한 제사장의 복장이 아닌 겸손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주셔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지만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예배 드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겸손함의 반대인 거만함과 교만함을 생각해보면 겸손함에 대한 이해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용서하셨는데 나는 아직 용서를 못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죽어야만 용서될 수 있는 나의 죄보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상대방의 죄가 더 크다고 느끼거나 교만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셨는데 감사함이나 죄송한 마음이 없나요?
그렇다면 믿지 않거나 느껴지지 않거나 교만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존재 자체가 죄인이라서 우리의 교만을 스스로 어찌하기 힙듭니다.
우리는 내가 왜 죄인인지... 죄가 잘 느껴지지도 않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신것이 그렇게 고맙다는 생각도 많이 안듭니다.
(친구가 자기가 1년동안 모은 용돈으로 새 폰을 선물로 주었을때 느끼는 감동은 느껴지는데....)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어주신것은 우리가 느끼고 깨닫고 겸손해 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느끼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겸손하지도 못한 그런 우리는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죽으신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 제가 예수님의 사랑을 알도록 도와주세요.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교만한 저를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해야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것은 생명이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에 순종하는 것이 예배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명령들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 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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