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06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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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69장[죄짐맡은 우리 구주]
성경본문: 시 90:1-17
공의로우신 하나님,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던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어 복음을 영접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신 것이 그저 나 혼자만 하나님 잘 섬기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 우리를 사용하셔서 잃어버린 자들을 찾게 하시고, 우리를 사용하셔서 주의 몸된 교회가 흥왕하게 하시며, 우리를 사용하셔서 이 나라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로 세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많이 세워져서 이 나라, 이 민족, 이 공동체 가운데 선한 영향력들을 더욱 많이 끼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통하여 더욱 하나님이 영광과 존귀와 찬송을 받길 소원하오며,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 시편의 핵심구절이라 할 수 있는 13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는 것처럼, 하나님의 종들에게 다시한번 긍휼을 베풀어주실 것을 중보하며 간구하는 기도 시편이라 할 수 있다.
본 시는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부분은 1-2절인데, 여기서 시인은 대대에 주의 종들의 거처가 되신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해 고백한다.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다’라고 하는데, 여기서 ‘거처’라는 말은 피난처나 안전한 집을 말한다. 즉,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들, 곧 하나님의 백성들의 피난처가 되어주시고, 안전한 집이 되어주셨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의 거처가 되어주실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가 되시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요, 온 세상의 통치자가 되시기 때문에 피난처이자 안전한 집이 되어주실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처가 되어주시되, 대대에 걸쳐, 시대와 시대, 세대와 세대, 자손과 자손에 걸쳐 그렇게 해 주셨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 주실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의 영원성’ 때문이다. 항상 계실 뿐만 아니라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영원성 때문에 대대에 하나님께서 신자들의 거처가 되어주실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 세상 어느 것도 우리의 안전한 벙커가 되어줄 수 없고, 세상 어느 것도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될 수 없다. 오직 주 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되신다. 이 사실을 기억하여 늘 하나님께 피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란다.
두 번째 부분은 3-6절인데,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죽음의 선고 아래 있는 인생들의 한계와 덧없음에 대해 고백한다. 3절은 마치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고 하신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그 이후로 시인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죽음의 선고 아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죽음을 선고받은 인간의 삶은 어떠한가? 4절에 ‘밤의 한 순간’, 5절에 ‘잠깐 자는 것’, 6절에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어 마르는 풀’과 같이 무의미할 정도로 짧다고 하며 영원하신 하나님에 비해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탄식한다.
이처럼 시인이 ‘대대에 주의 종들의 거처가 되어주신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 뒤에, 하나님이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의 죄에 대해 내리신 선고를 상기하며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탄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가 처한 상황이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거처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지게 되어 사망선고 아래에 놓여 무의미하고 덧없는 인생이 되었음을 말해주기 위해서이다.
세 번째 부분은 7-10절인데, 여기서 시인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인간의 삶이 고통으로 가득한 짧은 인생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심판하시되, 하나도 남김없이, 마음 한 구석에서 했던 악한 생각이나 어두운 비밀까지도 하나님의 거룩한 얼굴 빛 앞에 다 드러내어 심판하신다. 그러기에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의 모든 날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사는 인간의 짧은 인생은 자랑이라고 해봐야 수고와 슬픔뿐이다.
따라서 시인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움을 깨달았고, 또,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짧은 인생의 수고와 슬픔을 깨달았으니, 이제 그 진노로부터 벗어날 필요성을 느낀다. 하나님의 엄중한 진노로부터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를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이 이어지는 네 번째 부분인 11-12절을 통해 이렇게 기도한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 말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인 죄인들의 인생이 얼마나 짧고 허무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교만하고 어리석게 마치 죽음이 없는 것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께 심판이 없는 것처럼 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속히 하나님께로 돌아가 겸손히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부분은 13-17절인데, 여기서 시인은 고통으로 가득한 주의 종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한다. 13절에 보면 시인이 하나님께 ‘돌아오소서’라고 하는데, 이는 주의 진노 아래서 고통당하고 있는 시인과 그의 공동체가 그들의 고통과 삶의 허무함이 그들의 죄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인은 안전한 거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찾는 주의 종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을,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와 고통의 밤은 지나가고 속히 하나님의 구원의 아침이 도래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본시를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요, 통치자이시며, 항상 계실 뿐만 아니라 변함없으시기에 진정한 피난처와 안식처가 되신다는 것,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심판은 참으로 두려운 것이라는 것,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인간이 경험하는 것은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것,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이라는 것, 하나님은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지만, 회개하고 긍휼을 구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 등 여러 가지 교훈들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알고 깨달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기억하며 남을 위하여 도고기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시의 표제를 보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본시의 저자가 모세라는 것만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시편의 다른 표제들처럼, 이 시가 어떤 종류의 시인지, 어떤 분위기 속에서, 또는 어느 상황 속에서 어떻게 불러야 하는 노래인지 등을 알려주기 위한 것처럼, 본 시는 모세와 같은 심정으로 공동체를 위해 도고하는 시로 읽을 뿐만 아니라, 또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불순종한 이스라엘로 인해 진노하신 하나님께, 모세가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도고기도 했던 것처럼, 그와 같은 심정으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그 속에 속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피난처요 안식처임을 안다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안다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인생의 덧없음과 고통을 안다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임을 안다면,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는 인애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인해 신음하는 공동체를 위해서, 공동체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서 모세처럼 부르짖고 기도하는 모습들이 오늘 바로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본시의 표제를 단지 ‘모세의 기도’라고 해도 의미상 아무 문제 없는데, 여기에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어 놓았다. 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모세에게 덧붙였을까? 이와 같이 형제를 위하고,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일컬음 받기에 합당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토록 공동체를 위해 애통해하고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그리고 내가 속한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형제의 연약함과 공동체의 죄를 내 것처럼 괴로워하고 슬퍼해야 한다. 우리의 죄를 간과하지 않으시고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공동체가, 우리 나라가, 우리의 지도자들이 두려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유일하게 살 수 있는 소망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며, 내가 속한 지역이, 내가 속한 나라가, 내가 속한 곳의 지도자들이 여호와께로 돌이킬 수 있도록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처럼, 그 심정으로, 내가 속한 모든 공동체, 곧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국가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 그런 하나님의 사람이, 그런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기도자가 바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하자.
이 나라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자.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극심한 죄악으로 달려가는 일들을 멈추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위정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자.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자. 점점 더 부패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세상의 죄악들을 드러내며, 그들을 생명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귀한 구원의 통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하자.
마지막으로 우리의 가정을 위해 기도하자. 우리의 가정이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지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만을 영원한 우리의 거처로 삼는 신앙의 계보가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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